“왜 굳이 (맥북)프로를 사려고 하세요?”
8월 19일, 서울 명동 애플스토어 직원이 물었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속으로 생각했다. ‘맥북프로 14인치 M1’ 기본형은 ‘맥북에어 13인치 M2’ 고급형 모델보다 60만 원 비싸다. 맥북프로는 지난해 10월 말 출시된 구형 모델이지만 맥북에어는 7월 나온 따끈따끈한 신형이라는 점도 달랐다. 하지만 기자는 결국 269만 원짜리 맥북프로를 손에 넣고 유유히 애플스토어를 빠져나왔다.
과거 맥북은 소위 ‘감성’으로만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온라인 뱅킹 ‘필수템’이었던 공인인증서 사용도 못 하는 주제에 가격은 일반 노트북의 1.5배 수준. 디자인이나 영상 작업을 하는 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대부분의 사용자에겐 ‘한국에서 쓰기 불편한 노트북’으로 통했던 것. 그럼에도 맥북 겉면에 들어있는 사과 모양과 유려한 디자인 때문에 선택한 이들을 카페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여러 면에서 호환성이 개선돼 맥북 이용자가 더 늘어났다. 그리고 2020년 11월, 업계의 판도를 바꾼 M1 칩이 출시된다.
M1 칩에 담긴 기술을 죄다 설명하려면 한 권의 책을 써야 할 터.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과거 애플은 컴퓨터의 두뇌에 해당하는 CPU를 인텔로부터 수급받았다. 조별 과제는 항상 분란이 생기기 마련, 애플은 문득 생각했을 것이다. ‘이걸 우리가 직접 만들면 왜 안 돼?’ 만드는 김에 CPU에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스템메모리 (RAM), 신경망처리장치(NPU)를 하나의 칩에 다 넣어버렸다. 어려운 말로 시스템 온 칩(system on chip)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애플의, 애플에 의한, 애플을 위한 M1 칩이 탄생했다.
출시 당시 이전 세대 제품보다 최대 3.5배 빠른 CPU, 6배 빠른 GPU, 15배 빠른 머신러닝 속도를 지녔다고 홍보했다. ‘그게 말이 돼?’라는 의심은 사용 후기가 게시되면서 단박에 사라졌다. 반도체의 ‘뉴노멀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월가에서는 애플 주식 매수 의견이 쇄도했다.
애플은 1년 뒤 M1 칩 CPU 성능을 60% 향상시킨 M1 pro 칩, 2년 뒤 M1 대비 18% 향상된 M2 칩을 선보였다. 숫자가 많아 헷갈릴 수 있지만 먼저 출시된 M1 pro 칩이 M2 칩보다 속도가 빠르다. 성능 면에서 M1 pro가 탑재된 맥북프로가 맥북에어 보다 우위에 있다는 뜻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선량한 애플스토어 직원은 “왜 프로를 사세요?”라고 말하기 전 내게 물었다. “노트북으로 주로 어떤 일을 하세요?” 사실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노트북으로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문서 작업과 웹 서핑, 유튜브 시청 정도다. 그러니 애플스토어 직원이 “왜 프로를 고집하냐”고 다그쳤던 것. 사실 성능은 맥북에어만으로도 차고 넘치지만, 프로는 2가지가 다르다. 하나는 화면, 하나는 스피커다. 맥북프로는 14.2인치로 맥북에어보다 0.6인치 클 뿐만 아니라 색 표현이 훨씬 다양하고 선명한 미니 LED(발광다이오드)를 탑재했다. 내장된 스피커 개수 역시 맥북프로는 6개, 맥북에어는 4개다. 그러니까, 조금 더 쾌적한 환경에서 유튜브를 볼 수 있는 셈이다.
‘내가 가진 유일한 생산수단은 노트북이니 이것만이라도 좋은 걸 써야 한다’고 합리화하며, 과한 사양을 갖춘 타자기이자 OTT 시청 도구를 구입한 지 두 달이 막 지났다. 그간 맥북프로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사용했다.
처음 노트북을 열어 당일 막 공개된 블랙핑크의 ‘Pink Venom’ 뮤직비디오를 시청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갖고 있던 구형 맥북 역시 디스플레이가 꽤 괜찮은 편이지만 미니 LED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같은 기종을 사용하는 친구는 “개안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는데, 딱 들어맞았다. 강한 햇빛 아래서 사용해도 화면은 선명히 빛을 발하고, 색 표현 역시 다채로웠다. 스피커 역시 놀라운 수준이었다. 최대 음량으로 재생하면 26.4㎡(7평) 남짓 거실에 소리가 꽉 차 옆집에 들릴까 우려될 만큼 사운드 크기도, 해상도도 높았다.
애플이 입이 마르도록 자랑했던 속도는 쾌적하기 이를 데 없다. 대개 응용 프로그램을 열면 잠깐의 로딩 시간이 필요한데, 맥북프로에선 마우스 클릭과 앱 실행의 간격이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기자는 수십 개의 인터넷 창을 동시에 열어두고 기사를 작성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는데, 여섯 살 구형 맥북은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꾸 열을 식히는 팬이 ‘위잉’ 돌아가며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형 맥북프로를 산 뒤, 팬이 돌아가는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단점은 무게다. 맥북프로 14인치 모델은 1.6kg의 듬직한 무게를 자랑하는데, 들고 다니면 충분히 거슬리는 무게다. 1kg 미만 노트북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대라는 걸 고려하면 약간 화가 나기도 한다. 유선형 디자인 대신 각 모서리를 뭉툭하게 깎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 역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영역이다. 누군가는 ‘흰둥이’로 불렸던 2010년대 초반 맥북을 떠올리며 ‘레트로’ 감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투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앞서 맥북프로의 성능에 대한 찬사를 길게 늘어놓았지만 사실 맥북프로는 ‘프로(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굳이 선택할 필요는 없는 제품이다(스스로 내가 프로인지를 반문해야 한다면, 아니라는 뜻이다). 기자를 포함해 웹 서핑과 문서 작업을 주로 하는 대부분의 노트북 사용자에겐 최대 100만 원 싼 맥북에어를 구입해도 충분히 쾌적한 작업이 가능하다. 다만 ‘기왕 살 거라면 비싼 게 좋지’라는 생각을 가졌거나, 투박하지만 매력적인 디자인에 끌려 맥북프로를 하루에도 수차례 검색해보고 있다면? 3개월 낼 할부금을 5개월로 늘릴 요량으로 도전해 봐도 좋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냐고? 아주 행복하다.
#맥북프로 #애플 #문테크 #여성동아
문(文)영훈.
3년 차 잡지 기자. 기사를 쓰면서 이야깃거리를 얻고 일상 속에서 기삿거리를 찾는다. 요즘 꽂힌 건 테크. 처음엔 “이게 왜 필요한가” 싶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기술에 매료된다.
사진 박해윤 기자
사진제공 애플홈페이지
8월 19일, 서울 명동 애플스토어 직원이 물었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속으로 생각했다. ‘맥북프로 14인치 M1’ 기본형은 ‘맥북에어 13인치 M2’ 고급형 모델보다 60만 원 비싸다. 맥북프로는 지난해 10월 말 출시된 구형 모델이지만 맥북에어는 7월 나온 따끈따끈한 신형이라는 점도 달랐다. 하지만 기자는 결국 269만 원짜리 맥북프로를 손에 넣고 유유히 애플스토어를 빠져나왔다.
업계 판도를 바꾼 M1 칩
애플이 2021년 10월 맥북프로 14인치·16인치 모델과 함께 발표한 M1 pro, M1 max 칩. 중앙처리장치, 시스템메모리, 신경망처리장치 등이 하나의 칩에 들어있는 시스템 온 칩(system on chip)이다.
M1 칩에 담긴 기술을 죄다 설명하려면 한 권의 책을 써야 할 터.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과거 애플은 컴퓨터의 두뇌에 해당하는 CPU를 인텔로부터 수급받았다. 조별 과제는 항상 분란이 생기기 마련, 애플은 문득 생각했을 것이다. ‘이걸 우리가 직접 만들면 왜 안 돼?’ 만드는 김에 CPU에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스템메모리 (RAM), 신경망처리장치(NPU)를 하나의 칩에 다 넣어버렸다. 어려운 말로 시스템 온 칩(system on chip)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애플의, 애플에 의한, 애플을 위한 M1 칩이 탄생했다.
출시 당시 이전 세대 제품보다 최대 3.5배 빠른 CPU, 6배 빠른 GPU, 15배 빠른 머신러닝 속도를 지녔다고 홍보했다. ‘그게 말이 돼?’라는 의심은 사용 후기가 게시되면서 단박에 사라졌다. 반도체의 ‘뉴노멀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월가에서는 애플 주식 매수 의견이 쇄도했다.
애플은 1년 뒤 M1 칩 CPU 성능을 60% 향상시킨 M1 pro 칩, 2년 뒤 M1 대비 18% 향상된 M2 칩을 선보였다. 숫자가 많아 헷갈릴 수 있지만 먼저 출시된 M1 pro 칩이 M2 칩보다 속도가 빠르다. 성능 면에서 M1 pro가 탑재된 맥북프로가 맥북에어 보다 우위에 있다는 뜻이다.
“왜 맥북프로를 사세요?”
필자는 ‘맥북프로 Early 2015’ 모델을 2016년에 구매했다. 지금은 사라진 외부 애플 사과 모양 조명이 탑재된 추억의 제품이다. 그리고 새 노트북을 산 건 6년이 지난 2022년. 그간 수십 차례의 영상편집, 땅으로의 낙하, 키보드 위 콜라 쏟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형 노트북을 괴롭혀왔지만, 조금 느린 점만 빼면 아직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멀쩡하다. 맥북은 잔고장 없이 장수한다는 것이 맥북 이용자들 사이의 정설. 그래서 60만 원의 웃돈을 주고서라도 고사양인 맥북프로를 선택했다.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선량한 애플스토어 직원은 “왜 프로를 사세요?”라고 말하기 전 내게 물었다. “노트북으로 주로 어떤 일을 하세요?” 사실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노트북으로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문서 작업과 웹 서핑, 유튜브 시청 정도다. 그러니 애플스토어 직원이 “왜 프로를 고집하냐”고 다그쳤던 것. 사실 성능은 맥북에어만으로도 차고 넘치지만, 프로는 2가지가 다르다. 하나는 화면, 하나는 스피커다. 맥북프로는 14.2인치로 맥북에어보다 0.6인치 클 뿐만 아니라 색 표현이 훨씬 다양하고 선명한 미니 LED(발광다이오드)를 탑재했다. 내장된 스피커 개수 역시 맥북프로는 6개, 맥북에어는 4개다. 그러니까, 조금 더 쾌적한 환경에서 유튜브를 볼 수 있는 셈이다.
‘내가 가진 유일한 생산수단은 노트북이니 이것만이라도 좋은 걸 써야 한다’고 합리화하며, 과한 사양을 갖춘 타자기이자 OTT 시청 도구를 구입한 지 두 달이 막 지났다. 그간 맥북프로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사용했다.
처음 노트북을 열어 당일 막 공개된 블랙핑크의 ‘Pink Venom’ 뮤직비디오를 시청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갖고 있던 구형 맥북 역시 디스플레이가 꽤 괜찮은 편이지만 미니 LED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같은 기종을 사용하는 친구는 “개안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는데, 딱 들어맞았다. 강한 햇빛 아래서 사용해도 화면은 선명히 빛을 발하고, 색 표현 역시 다채로웠다. 스피커 역시 놀라운 수준이었다. 최대 음량으로 재생하면 26.4㎡(7평) 남짓 거실에 소리가 꽉 차 옆집에 들릴까 우려될 만큼 사운드 크기도, 해상도도 높았다.
애플이 입이 마르도록 자랑했던 속도는 쾌적하기 이를 데 없다. 대개 응용 프로그램을 열면 잠깐의 로딩 시간이 필요한데, 맥북프로에선 마우스 클릭과 앱 실행의 간격이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기자는 수십 개의 인터넷 창을 동시에 열어두고 기사를 작성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는데, 여섯 살 구형 맥북은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꾸 열을 식히는 팬이 ‘위잉’ 돌아가며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형 맥북프로를 산 뒤, 팬이 돌아가는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단점은 무게다. 맥북프로 14인치 모델은 1.6kg의 듬직한 무게를 자랑하는데, 들고 다니면 충분히 거슬리는 무게다. 1kg 미만 노트북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대라는 걸 고려하면 약간 화가 나기도 한다. 유선형 디자인 대신 각 모서리를 뭉툭하게 깎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 역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영역이다. 누군가는 ‘흰둥이’로 불렸던 2010년대 초반 맥북을 떠올리며 ‘레트로’ 감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투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사, 말아?
6년간 사용한 ‘맥북프로 Early 2015’(오른쪽)을 떠나보내고 맥북프로 14인치 모델을 구입했다.
#맥북프로 #애플 #문테크 #여성동아
문(文)영훈.
3년 차 잡지 기자. 기사를 쓰면서 이야깃거리를 얻고 일상 속에서 기삿거리를 찾는다. 요즘 꽂힌 건 테크. 처음엔 “이게 왜 필요한가” 싶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기술에 매료된다.
사진 박해윤 기자
사진제공 애플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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