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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review

여성과 과학의 화해를 위하여

오홍석 기자

입력 2022.08.16 10:00:02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임소연 지음, 민음사, 1만5000원

남성이 배란기의 여성에게 더욱 성적으로 끌린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속설을 뒷받침한 근거 중 하나는 2007년 제프리 밀러 뉴멕시코 대학 교수의 연구다. 밀러 교수는 스트립 클럽을 방문해 댄서 18명을 대상으로 2달간 생리주기와 수입의 관계를 분석했다. 그는 댄서들의 경우 배란일 직전 수입이 가장 높고, 월경 중 수입이 가장 낮다는 결과를 토대로 “인간에게도 발정기가 있으며 남성은 배란기의 여성이 암시하는 미묘한 징후를 포착한다”고 주장했다. 상식적으로 담배 연기와 소음으로 가득 찬 클럽 안에서 술에 취한 남성들이 본능적으로 배란기 여성을 알아차린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역시나 논문은 2016년 후속 연구에 의해 뒤집혔다.

수억 마리의 정자들이 난자를 쟁취하기 위해 치열한 경주를 펼친다는 능동적인 정자의 이야기도 1970년대 이후 실험실에서 퇴출된 지 오래다. 현실에서는 수많은 정자들이 뚜렷한 목적지 없이 헤엄치다 난자 앞에 도달한다. 난자는 잠시 뜸을 들이다 이 중 하나를 끌어들인다. 이렇게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들이 어떠한 이유로 강력한 과학의 후광을 받아 ‘사실(事實·fact)’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의 저자인 임소연 숙명여대 교수는 대다수가 남성인 과학계가 편향된 시선으로 지식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일반적으로 많은 이에게 과학은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시선을 고정해보면 거대한 자연 앞에선 과학 또한 주관적일 수 있다는 사실에 다다르게 된다. 과학 또한 인간의 시각으로 자연을 관찰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남성 편향적으로 기술된 과학적 사실로 인해 페미니즘은 과학과 불화해왔다. 여성들은 과학에 약하다는 통념으로 과학 공부하길 주저했다. 그렇게 과학 지식은 남성의 시각에서 기술되며 여성을 신비로운 존재로 남겨뒀다. 저자는 여성들과 과학 간의 화해를 종용한다. 과학기술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활용하기 위해, 또한 여성들이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 기울어진 운동장 안으로 들어오라고 권한다.



일찍이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은 과학 지식의 형성 과정이 다분히 정치적이라고 분석했다. 쿤은 과학 지식은 오래된 패러다임을 신봉하는 과학자들과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 과학자들 간의 대립 관계 위에 서 있다고 봤다. 기존의 지식 체계는 신진 과학자들이 우세해지며 붕괴한다. 쿤은 과학은 이렇게 혁명을 거듭하며 발전해왔다고 말한다. 이렇듯 신구의 시각차가 존재하는데 남녀의 시각차도 있으리란 사실은 자명하다. 더 이상 여자를 신비로운 존재로 놔두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여성 과학자들이 필요하다. 결국 과학도 갈등하고 대립하는 정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신비롭지않은여자들 #임소연 #민음사 #여성동아

사진제공 민음사



여성동아 2022년 8월 7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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