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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star

정형화 되지 않은 매력의 배우 유아인

글 정혜연 기자

입력 2020.10.21 14:49:39

아역에서 하이틴 스타를 거쳐 연기 잘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지만 유아인에게서는 여전히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정형화되지 않는 것, 그의 특별한 경쟁력이다.
열입곱의 나이에 홀로 대구에서 서울로 상경한 소년은 17년이 흐른 지금,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은 배우로 성장했다. 한때는 그저 연예인을 꿈꿨던 철부지였을지 몰라도 어느새 그는 장르 불문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찍힌 작품이라면 소임을 다하는 책임감 있는 배우로 컸다. 그 덕에 유아인(34)은 2015년 영화 ‘사도’로 제36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2016년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로 백상예술대상 TV 남자최우수연기상을 거머쥐었다. 당시 유아인과 함께 TV 여자최우수연기상을 받은 이는 김혜수였다. 유아인이 ‘꼬마’이던 시절, 이미 톱배우였던 김혜수와 어느덧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건 그가 삶을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유아인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배우다. 외모만 보면 청춘스타인데, 맡아온 역할을 보면 연기하기 까다로운 캐릭터만 고른 듯하다. 2003년 KBS ‘성장드라마 반올림’에서 주인공 옥림이가 좋아하던 아인 오빠로 출연했을 때, 유아인은 곱상하게 생긴 외모 덕에 또래들 사이에 크게 주목을 받았다. 이후 젊은 남자 배우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2010년 KBS 로맨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속 카리스마 넘치는 걸오 역을 맡아 청춘스타로 올라섰다. 

장래가 기대되는 20대 배우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던 유아인이 연기 인생에 전환점을 맞은 것은 2011년 영화 ‘완득이’에서 필리핀 혼혈 고등학생 역할을 맡으면서다. 그는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희망을 잃고 살다가 킥복싱 선수로 발돋움하는 도완득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틀을 깼다는 평을 얻었다. 이 작품으로 5백만 관객몰이에 성공했고, 이듬해 제3회 올해의 영화상에서 ‘발견상’을 받기도 했다. 이후 2013년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이순, 2014년 JTBC ‘밀회’의 이선재, 2015년 SBS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원과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영화 ‘사도’의 사도세자, 2018년 영화 ‘버닝’의 종수 등을 맡아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했다. 

최근 유아인은 또 한 번 밑바닥 인생을 연기해 주목받고 있다. 10월 15일 개봉한 영화 ‘소리도 없이’에서 말없이 범죄 조직의 뒤처리를 묵묵하게 하며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태인으로 출연한 것. 불우한 과거로 말하는 법을 잊은 태인은 부모처럼 따르는 창복(유재명)과 계획에도 없던 아동 유괴에 가담하며 진짜 범죄에 휘말리게 된다. 데뷔 후 처음으로 대사 한마디 없는 독특한 캐릭터를 맡았지만 이번에도 그는 “역시 유아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0월 중순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를 통해 영화 개봉을 앞둔 소회와 근황을 들었다.


태인은 자신이 하는 일이 범죄인지 아닌지에 대한 가치 판단 없이 상황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인물로 그려져요. 영화를 보는 내내 유아인 씨가 왜 이 역할을 선택했는지 궁금했어요. 

제가 현실에서 범죄를 저지르며 살아가는 사람은 아니지만 한 번씩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선하다고 믿는 행동이 과연 선한 것일까’ ‘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악한 것일까?’ ‘무엇이 진리일까?’ 하는 것들요. 누구나 다른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삶 속에서 이런 크고 작은 고민을 하잖아요. 그런데 개인의 의식에 따른 가치관이나 신념들에 옳고 그름이 과연 존재할까 싶었어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너무 쉽게 대하고 있지 않나’ 하는 고민을 상당히 영화적으로, 하지만 간결하고 담백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에 빠져들었어요. 사실 영화란 매체도 마찬가지예요. 배우들이 관객에게 “좋은 작품이니까 많이 봐달라”는 것도 ‘과연 그게 그 사람들에게 좋은 일일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죠.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어떤 직업을 가진 누구라도 한 번쯤 이 시대에 필요한 생각과 질문을 해보게끔 하는 영화라고 봐요. 뒤틀려 있는 현실을 뒤틀려 있지 않은 시선으로 편하게 감촉하는 영화이기도 하고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정말로 한마디도 하지 않아 놀랐어요. 태인을 연기하는 게 어렵지 않았나요. 

대사가 없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오히려 과장되게 표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런 표현을 최대한 지양하면서 대사가 없다는 부담이 작품에 반영되지 않게끔 했죠. 저는 그저 감독님과 유재명 선배를 믿는 수밖에 없었어요(웃음). 사실 특별한 준비는 따로 하지 않았어요. 작품에 녹아들기 위해 감독님과 유재명 선배, 두 분을 파헤치고 어떤 사람들인지 어떤 이야기를 담고자 하는지 탐구하면서 더 깊은 신뢰를 쌓으려 했어요. 그런 노력들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반영되기를 바랐어요. 

15kg 살을 찌우고 등장해 스크린에 뱃살이 불룩하게 드러나요. 어떻게 살을 찌웠나요. 

원래 먹는 것 자체를 즐기지 않아 살찌우는 게 힘들었어요. 치킨과 아이스크림을 엄청 먹었죠. 감독님은 조금 더 찌우길 원하셨던 것 같아요. 쉴 때는 네다섯 끼씩 먹으며 찌울 수 있었는데, 촬영하면서 예민해지고 식사 시간을 잘 못 지키는 경우가 많아 유지하기 어려웠어요. 

배우로서 이런 변화를 시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색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변화를 시도한 거예요. 작품에서 새로운 감독과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지만 유아인 자체는 크게 새롭지 않다 싶었거든요. 또 원래는 마르고 초췌한 인물로 설정돼 있었는데 전형성을 벗어나고 싶기도 했고요. 살을 찌운 것도, 삭발을 한 것도 제 생각이었죠. 개인적으로 화면에 불룩한 배가 비칠 땐 별거 아닌데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충격을 받았어요. 그런데 혹자는 그렇게까지 극단적 외모 변화는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영화를 보신 많은 분들이 생각보다 유아인의 변화를 너무 당연하게, 별다를 바 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아 ‘이건 또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15kg을 다시 빼는 것도 힘들었을 것 같아요. 

찌우는 노력을 안 하면 감량은 자연스럽게 되는 것 같아요. 죄송해요(웃음). 

오랜 연극배우 생활로 이름난 유재명 씨와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어땠나요. 

이 작품에서 존재하는 것만으로 감사한 배우였어요. 카메라 돌아가는 순간에 제가 뭘 더 해드릴 게 없었죠. 대사를 주고받는 신은 없었으나 서로 합을 맞출 때 그 호흡들이 다 편안하게 느껴졌어요. 같이 등장하는 신에서 어떤 불편함이나 이질감, 감정적 불순물 없이 자연스럽게 그 상태에 몰입해 연기할 수 있었다는 게 큰 영광이고 기쁨이었어요. 


영화 ‘소리도 없이’로 관객들과 만나는 유아인. 몸무게를 15kg 늘려 화제가 됐다.

영화 ‘소리도 없이’로 관객들과 만나는 유아인. 몸무게를 15kg 늘려 화제가 됐다.

선택의 여지 없이 악행에 가담한 태인이 극 후반부에 중요한 결심을 하고 행동에 옮기는데요. 하나의 의식을 가진 인간으로 변하는 게 느껴졌어요. 이런 디테일한 감정 변화를 연기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태인이 한 번도 겪지 못한 경험을 통해 ‘내가 무언가 되어간다’는 걸 감지하지 못한 채 변화하는 것 같아요. 그건 극 중 외부인이나 밖에서 극을 보는 관객만 알 수 있죠. 이런 변화를 ‘어떤 계획을 세우고 연기해야지’가 아니라 ‘나중엔 태인이 뭐라도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믿고 잘 디벨럽하려 노력하며 따라갔을 뿐이에요. 

유아인 씨는 선악이 모호하게 공존하는 배우 같아요. 기존에 연기했던 캐릭터도 선악을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요. 보통 어떤 역할에 끌리나요.
 
과거에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는 캐릭터에 끌렸어요. 그때 당시에는 제가 희망을 꿈꿨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졌어요. 최근에는 이 작품 속 태인처럼 모호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규정할 수 없는 인물이 주는 매력이 아주 커요. 선악이 모호하게 공존하는 배우라고 해서 그런 역할을 선택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작품에서 선악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캐릭터도 있지만, 역할이 주어졌을 때 어떤 인물인지 고민하고 연구해야 하는 사람들이 배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고민을 안고 연기하다 보니 결국 지금 선악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너무 어릴 때부터 뭐가 뭔지도 모르고 배우를 시작했으니까요. 

지난 6월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화제가 됐어요. 기분이 어땠나요. 

친구들이 제 대표작이 ‘나 혼자 산다’라고 얘기할 정도예요(웃음). 예전엔 인사도 잘 못 하던 분들이 편하게 인사해주는 경우도 많아져서 예능의 파급력을 직접 느꼈어요. 한편으로는 아주 조심해야 하는 일이라고도 생각했어요. (예능 출연) 경험이 많지 않았기에 최대한 솔직하게 해보자 생각하고 임했어요. 그런데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큰일이구나’ 하고 느꼈죠. 제가 가진 영향력이 아닌 방송을 통해 만들어진 영향력이 끊임없이 퍼졌기 때문에 책임감이 투철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생각했어요. 이슈가 되고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면 좋아하는 이상한 세상이지만, 배우들은 어쨌든 파괴력 있는 어떤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봐요.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고, 유행 현상으로까지 번지는 건 즐거운 경험 아닌가요. 

‘유아인이 이런 걸 입었다’고 유행하는 게 좋아할 일만은 아니더라고요. 내가 하는 게 다 좋은 건 아닌데 유행이 되는 건 공포스러워요. 연기나 캐릭터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나온 방송을 통해 어떤 편견을 만들어냈다거나 화제를 만들어낸 것을 압도적으로 체험하다 보니 ‘위험한 일인데?’라는 생각까지 들었죠. ‘왜 그렇게 날 궁금해하시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그 호기심을 잘 써먹어야겠다’ 싶었어요. 예를 들어 방송에서 젓갈을 먹는 장면이 나간 뒤로 젓갈 시장에 바람을 일으킨 것도 아주 가치 있는 일이죠. 그런 맥락에서 제 가치를 잘 활용해야겠다 싶어요. 저라는 유형의 인간을 재밌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불씨가 되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그런 활동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또 한 편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어요. 소감이 어떤지 한 말씀 부탁드려요. 

배우로서, 한 사람으로서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몸 상태와 내면의 상태를 체험할 수 있었다는 게 가장 큰 소득이에요. 그 결과가 어떻게 쓰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주 조금은 한 발짝 나아간 것 같은 자유로운 느낌을 얻었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분들에게 울림을 주는 영화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사진제공 UAA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여성동아 2020년 11월 6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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