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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brand story

불닭볶음면으로 ‘K푸드’ 선도

올 상반기 수출 라면 절반 이상이 삼양식품 제품

글 이현준 기자 사진제공 삼양식품

입력 2020.09.21 14:39:54

한 때 라면 시장점유율 4위까지 추락했던 삼양식품이 최근 ‘불닭 브랜드’를 내세워 ‘라면 명가’ 재건에 나섰다. 올 상반기 우리나라에서 수출된 라면의 51%가 삼양식품의 제품이다.
1963년 9월 15일 출시된 ‘삼양라면’.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이다.

1963년 9월 15일 출시된 ‘삼양라면’.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라면 사랑은 각별하다. 세계인스턴트라면협회(WINA)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라면 소비량은 75.1개다. 2위 57.6개(네팔), 3위 56.9개(베트남)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히 압도적이다. 라면은 우리 국민 생활의 일부이자 문화가 됐다. 또 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면서 K팝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최근의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식사대용으로 한국 라면을 선호하는 외국인들도 많다고 한다. 

그럼 올 상반기 해외로 가장 많이 수출된 라면은 어느 회사 제품일까. 정답은 라면 업계 1, 2위 농심과 오뚜기가 아닌 삼양식품이었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 집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한국 라면 수출액(3천6백16억원) 중 삼양식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51%(1천8백62억원)에 달한다. 농심의 수출액은 1천1백90억원, 오뚜기는 4백억원이다. 삼양식품은 해외 공장이 없는 반면 농심‧오뚜기는 현지 공장의 매출까지 고려해야 하기에 단순 비교는 어렵다. 하지만 삼양식품 자체만 놓고 보면 2015년 수출액(2백94억원) 대비 올 상반기에만 6배 이상의 눈부신 성장을 기록했다.   


다시 찾은 원조의 명성

글로벌 한류 페스티벌 ‘2019 KCON LA’의 불닭볶음면 부스. 많은 방문객들이 몰려 불닭볶음면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글로벌 한류 페스티벌 ‘2019 KCON LA’의 불닭볶음면 부스. 많은 방문객들이 몰려 불닭볶음면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기회가 오고 있다.” 

지난 3월 30일 서울 성북구 삼양식품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정태운 삼양식품 대표가 한 말이다. 올 상반기 수출 호조는 정 대표가 말한 ‘과거 영광 재현’의 시작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사실 라면을 논할 때 ‘원조’ 삼양식품을 빼놓을 순 없다. 이야기는 약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쟁 후 기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1960년대 초, 창업주 고(故)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은 남대문시장에서 ‘꿀꿀이죽’을 사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노동자들을 목격했다. 미군이 버린 음식을 끓여 끼니를 때우는 그들의 모습에 전 명예회장은 값싸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의 필요성을 느꼈고, 그 해답은 라면이었다. 당시 라면 제조기술은 일본이 보유하고 있었는데, 일본 내에서도 군사기술에 버금갈 정도의 기밀이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전 명예회장은 일본의 묘조(明星)식품으로부터 라면 제조기계와 기술을 도입했고 1963년 9월 15일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 ‘삼양라면’을 탄생시켰다. 

1965년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 아래 삼양라면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삼양식품 관계자에 따르면 삼양식품의 1960년대 매출은 해마다 36~254%로 성장할 정도였다. 1972년엔 매출 141억원을 기록했는데, 당시 삼양라면의 소비자 가격이 22원이던 점을 감안하면 한 해에 약 7억 개가 팔린 셈이다. 삼양식품은 그야말로 라면 업계의 ‘패왕’과도 같았다.




우지파동으로 벼랑 끝에 몰리다

영광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았다. 경쟁사들이 시장에 속속 뛰어들기 시작하면서 삼양라면의 아성엔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가장 두각을 나타낸 것은 현 업계 1위 농심. 농심은 1980년대 ‘너구리’, ‘안성탕면’, ‘짜파게티’ 등 히트 상품을 잇달아 선보이며 맹렬한 기세로 삼양식품을 압박했고 마침내 1985년 시장 점유율 40.4%를 기록하며 업계 1위로 올라섰다. 농심이 1986년 베스트셀러 ‘신라면’을 출시하면서 간격은 점점 더 벌어진다. 

삼양식품은 ‘라면의 원조’라는 명성을 바탕으로 절치부심, 왕좌 재탈환을 노렸지만 1989년 서울지방검찰청에 날아든 한 익명 투서는 이를 산산조각 내고 말았다. 이른바 ‘우지 파동’의 서막이었다. 투서의 내용은 라면회사가 공업용 우지(소기름)로 면을 튀겼다는 것. 당시 검찰은 삼양식품이 라면을 튀길 때 쓰이는 정제 쇠기름의 원료로 미국산 2·3등급 비식용 우지를 썼다며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를 적용, 11월 3일 삼양식품 등 5개사 대표와 실무자들을 구속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우지는 1등급부터 16등급까지로 나뉘는데, 1등급이 아니라 해도 정제‧가공을 거치면 먹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시 삼양식품이 사용한 2·3등급 우지는 벨기에‧네덜란드‧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식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7년 9개월간의 법정 공방 끝에 1997년 8월 26일 대법원에서 무죄 최종판결을 받았지만 ‘공업용’이라는 단어가 심어준 거부감에 돌아선 대중들의 마음을 돌리기는 어려웠고, 회사는 만신창이가 됐다. 이 기간 동안 100억원 이상 상당의 제품이 폐기됐고 1천여 명에 달하는 직원이 일자리를 잃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MF 외환위기 사태까지 터지면서 삼양식품은 1998년 2월 화의(和議‧기업이 파산위험에 직면할 때 파산을 피하기 위해 채무 정리에 관해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맺는 강제 계약)에 처해지기에 이르렀다.   


신의 한 수가 된 불닭볶음면

2019년 미얀마에서 열린 불닭볶음면 빨리 먹기 대회. 불닭볶음면에 도전하는 것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매김했다.

2019년 미얀마에서 열린 불닭볶음면 빨리 먹기 대회. 불닭볶음면에 도전하는 것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매김했다.

후유증은 쉬이 치료되지 않았다. 여러 악재가 겹치며 삼양식품의 시장 점유율은 계속 하향곡선을 그렸다. 2016년 1분기 땐 현 업계 2위 오뚜기는 물론 팔도에게도 추월당하며 4위로 추락하기도 했다. 창립 반세기만에 처음 겪는 수모였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는 법. ‘불닭볶음면’이 구세주가 됐다. 불닭볶음면은 삼양식품가의 며느리이기도 한 김정수 전 사장의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2011년 김 전 사장은 고등학생인 딸과 명동에 놀러갔다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매운 찜닭 집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 ‘바로 이거다.’ 영감을 얻은 김 전 사장은 ‘눈물 나게 매운 맛을 라면에 적용해보리라’ 마음먹고 개발에 착수한다. 투입된 소스만 2t, 닭은 1200마리에 달하는 1년의 개발 기간 끝에 불닭볶음면이 탄생했다. 하지만 2011년 말 파일럿 제품으로 출시된 불닭볶음면은 너무 매운 까닭에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소수의 마니아층만 생긴 상황에 김 전 사장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래도 GO.’ 김 전 사장의 결단은 신의 한 수가 됐다. 유명 유튜버 ‘영국 남자’ 조쉬가 2014년 2월 업로드한 ‘불닭볶음면 챌린지’ 동영상이 2016년 하반기부터 화제에 오르면서(올해 9월 18일 기준 조회수 1천40만 회) 중국‧동남아 등 해외 중심으로 불닭볶음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삼양식품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현지 유통 회사와 총판계약을 체결해 유통망을 강화하고 세계 무슬림 인구의 60%가 살고 있는 동남아를 공략하기 위해 인증기관으로부터 ‘할랄(무슬림이 먹거나 사용할 수 있는 제품)’ 인증을 받는 등 맞춤형 전략을 구사했다. 불닭볶음면은 80여 개 나라로 퍼졌고 소비자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불닭볶음면을 소비하며 ‘모디슈머(‘수정하다’라는 의미의 modify와 ‘소비자’를 의미하는 consumer의 합성어 ·제조업체가 제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용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품을 활용하는 소비자들)’의 모습으로 이에 화답했다. 

불닭볶음면은 하나의 브랜드가 돼 문화현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K컬처 열풍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이 주효했다. ‘한국’하면 ‘매운 음식을 먹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매운 음식인 불닭볶음면에 도전함으로써 한국의 문화를 체험한다는 의미를 두는 것”이라 분석했다. 

불닭볶음면은 삼양식품의 대표상품으로 떠올랐다. 불닭볶음면‧까르보불닭볶음면‧치즈불닭볶음면 등 불닭볶음면 시리즈가 삼양식품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가 넘는다. 이에 힘입어 올해 상반기 삼양식품은 전년 동기 대비 매출 30.1%, 영업이익은 55.4%가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또한 해외에서의 인기를 반영하듯, 2019년 삼양식품의 매출은 수출부문이 총 2천7백27억원으로 2천7백8억원을 기록한 내수 부문을 최초로 앞질렀다. 이번 해 상반기 매출에서도 수출액이 1천8백62억원으로 1천4백42억원인 내수 부문보다 높았다.


삼양식품은 현지 맞춤 전략의 일환으로 지난해 싱가포르 지하철에 불닭볶음면 래핑광고를 진행했다.

삼양식품은 현지 맞춤 전략의 일환으로 지난해 싱가포르 지하철에 불닭볶음면 래핑광고를 진행했다.

신제품 개발의 원동력 2030 직원들의 ‘수요시식회’

삼양식품은 안주하지 않고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이미 10여 개에 달하는 불닭 시리즈 라인업에 8월 말 신제품 ‘김치불닭볶음면’을 추가했다. 2030세대 직원들이 매주 수요일마다 모여 진행하는 ‘수요시식회’가 신제품 개발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과거 농심의 다양하고 공격적인 라인업에 왕좌를 내줬던 아픈 기억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해석된다. 

이승윤 교수는 “삼양식품의 지속적인 신제품 개발은 ‘모디슈머’ 성향을 보이고 있는 소비자들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매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다양한 제품을 변주해 보이는 것만으로도 브랜드의 스토리를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지속적으로 화제를 만들면서, 불닭 브랜드만의 독특함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채로운 불닭시리즈. 폭 넓은 라인업으로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하겠다는 전략이다.

다채로운 불닭시리즈. 폭 넓은 라인업으로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하겠다는 전략이다.



여성동아 2020년 10월 6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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