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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interview

가장 먼 그대, 아버지와 대화 소통전문가 김창옥

EDITOR 두경아

입력 2020.05.30 10:00:01

‘소통전문가 김창옥’ 하면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다. 남녀 간, 가족 간의 소통 방법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그는, 정작 쌍둥이 두 아들과는 소통하지 못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랜 불통의 근원인 아버지를 만나러 나선 그의 이야기.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소통전문가 김창옥(47)과 인터뷰를 하던 중이었다. 저쪽에서 누군가가 쭈뼛거리더니, 용기를 내서 다가와 그에게 뭔가를 내민다. 

“아들 둘 가진 엄마인데, 남편까지 남자 셋하고 살면서 남자들을 이해하지 못해 너무 힘들었거든요. 선생님 강의 듣고는 남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감사해요.” 

김창옥에게는 흔한 일상일 것이다. 그는 지난 20년간 8천 회 넘게 ‘변화와 소통’을 주제로 전국에서 강연하며 수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울림을 전해왔다. 최근 방영된 tvN ‘김창옥 쇼’를 비롯해 tvN ‘어쩌다 어른’,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등 TV에 출연한 이후에는 그의 강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사람의 마음을 잘 읽고, 무엇이 문제인지 진단하며,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명쾌한 해법도 제시하는 것이 그의 인기 비결. 아주 쉬워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가족 간의 소통과 부부간, 부모와 자녀 간의 불통 등이 그의 강연 주제다. 

그는 진리를 가르치려 들기보다는 웃음과 해학으로 공감을 이끌어내는 쪽을 택한다. 박장대소하며 듣다 보면 어느새 ‘내 문제가 무엇인지’ ‘상대는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안티가 없는 비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소통전문가가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소통의 결핍 속에서 자라서였다. 

“가정에서 불통을 너무 오래 겪어 왔어요. 아이러니하게도 불통이 낳은 자식이 소통을 말하고 있는 거죠. 소통에 대해 공부하거나 연구해온 건 아니에요. 제 삶이 불통이었고 결핍이었는데 어느 날 그게 채워졌고, 좋아진 부분이 있고 소통이 됐으니 저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제가 알게 된 걸 소개해주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무면허 시술이고, 민간요법인 셈이죠.” 



김창옥의 불통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알려졌다시피 그는 제주도에서 청각장애 3급인 아버지 밑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이런 이유로 아버지와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는데, 이는 비단 아버지의 장애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버지와 관계가 정상적이지 않았어요. 지금도 입에서 아버지라는 말이 안 나와요. 아버지가 귀도 안 들리시지만, 정이 없고 무미건조한 성격이세요. 아주 심각할 정도로. 장애가 원인일 수도 있지만, 아버지가 원래 그런 분인 것 같기도 해요.” 

그의 아버지는 도박을 했고, 종종 가정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그의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한번은 그가 잠결에 아버지 배 위에 다리를 올렸다고 한다. 그 순간 아버지의 손이 날아와 그의 뺨을 때렸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까지 상식 이하의 일들이 많았어요. 아버지가 뭔지 모르고 자랐고, 아버지와 정서적 교감 없이 40년 넘게 살아왔습니다.” 


아버지와의 불통에서 이어진 아들들과의 문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창옥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바르게 자랐다. 공업고등학교를 다녔으나, 경희대 성악과를 졸업한 뒤 ‘대한민국 1호 보이스 컨설턴트’로 활동하다가 전문 강사의 길로 들어섰다. 불행한 가정에서 자란 이유로 결혼은 안 하려고 했으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렸고, 어느덧 딸 하나와 아들 둘의 아빠가 됐다. 그러나 쌍둥이 아들 둘이 크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두 아들이 5~6세 정도 됐을 무렵, 어린이집에서 제게 상담을 받으러 오라고 하더군요. 아이들이 친구를 때린 거예요. 정말 창피했어요. ‘내가 소통전문가로 불리고, 유치원 원장님들 상대로 강의를 하러 다니는 사람인데 학부모 상담을 받아야 한다니….’ 제 엄청난 치부가 드러난 거죠. 수치스럽고, 당혹스러웠어요.” 

김창옥은 첫째 딸에게는 많은 애정을 쏟았지만, 더 어린 두 아들에게는 건조하고 엄하게 대했다고 털어놓았다. 해병대 출신인 그는 두 아들이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군대식으로 “정신 안 차려?”라며 다그쳤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그를 ‘아빠’라 부르지 않게 됐고, 꼭 불러야 할 때는 누나 이름인 은혜를 붙여 ‘은혜 아빠’라 불렀다고 한다. 그는 문제의 원인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와의 불통이 제겐 심각한 문제였던 거예요. 알고 있긴 했지만, 외면하고 살아온 거죠. 그러나 지하수로 스며든 썩은 물처럼, 불통은 제 삶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어요.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컸으니 딸과의 관계는 좋았는데, 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겠더군요. 의도한 건 아니었어요.” 

김창옥은 ‘아이들이 자라면, 지금보다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겠다’는 생각에 위기의식과 불안감이 커졌다. 그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동안 외면해 온 문제의 근원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살면서 핑계가 필요할 때가 있어요. ‘스트레스 많이 받았으니 케이크를 먹어야겠다’는 것도, 스트레스를 핑계 삼아 케이크 먹고 싶다는 거잖아요(웃음). 아버지를 영상으로 찍는다는 핑계로 아버지를 만나서 숙제를 풀고 싶었어요. 직접 대면하기 멋쩍으니 카메라를 통해서 만나자는 생각에서였죠.”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김창옥 TV’를 통해서 아버지와 소통하는 과정을 담고자 했다. 이야기는 단 한 번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아버지는 왜 듣지 못하실까’부터 출발해야 했다. 

“아버지의 귀가 안 들리는 것으로부터 모든 문제가 시작됐다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아버지가 듣지 못하는 이유를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죠. 어려서는 돈도 없고 사회적 힘도 없으니 그걸 해결해볼 생각을 못 했어요. 이제는 아들로서 부양의 의무도 있으니 숙제를 할 겸,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병원에서 유명한 의사의 진료를 받기로 했죠. 어차피 듣지 못할 것을 알지만, 의사에게 속 시원하게 묻고 싶었어요.” 


‘평생 숙제’ 풀기 위해 핑곗김에 시작한 영화

시간이 흐르면서, 아버지 관련 유튜브 프로젝트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 김창옥은 영화 ‘히어로’ ‘보통사람’ 등을 연출한 김봉한 감독과의 술자리에서 이 같은 계획을 털어놓았다가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의받았다. 그는 김 감독과 오랜 친분이 있어서 영화 ‘보통사람’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김 감독이 ‘그 내용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라고 하더군요. 저는 이게 영화로 만들 만한 내용인가 했죠. 또 이야기가 생각대로 안 나올 수 있잖아요. 제 걱정에 그 친구는 ‘그럼 그런 대로(안 풀리는 대로) 나가면 돼’라고 하더군요. 그게 2년 전이었죠.” 

6월 개봉 예정인 영화 ‘들리나요?’의 탄생 배경이다. 아무런 연출 없이, 김창옥을 따라가던 영화는 생각 이상의 성과도 얻었고, 예상치 못했던 난관에도 부딪쳤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전하자면, 그는 우선 병원 검사를 통해 아버지의 청력에 대한 희망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의료 지식에 무지했던 과거, 아버지에 대한 무관심, 경제적 무능력 등으로 그동안 아버지를 내버려뒀다”고 자책했다. 

반면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할 다큐멘터리에서 출연자들, 즉 어머니와 아버지가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인 건 크다면 큰 난관이었다. 

“카메라가 돌아가니 어머니가 갑자기 서울말을 쓰기도 하고(웃음)… 편하게 말을 못 하더라고요. 그래서 휴대폰으로 몰래 찍기도 했어요.” 

다큐멘터리 영화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이 있고 반전도 있으며 감동적인 결말도 있다. 그는 영화 촬영이 끝난 뒤 첫 기술 시사를 보고는 김 감독에게 “개봉을 안 해도 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에 대한 만족감에서다. 

“영화 제작비를 감독과 제가 댔어요. 돈이 꽤 들어갔죠. 그런데 첫 기술 시사 후 ‘제작비를 이미 다 걷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스러웠어요. 나중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제게 엄청난 선물이 되겠다는 생각에서요. 제가 죽는 날까지 이걸 보고 또 보면서 저에 대해, 또 부모에 대한 생각에 눈물을 흘릴 것 같더군요. 물론 투자한 돈이 있으니 개봉은 해야겠죠(웃음). 이 영화는 제게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영화는 억지로 화해나 이해를 말하지 않는다. 영화를 찍는 2년 동안, 지난 47년간 쌓인 마음의 응어리가 풀어지긴 쉽지 않았을 터. 그는 “아버지가 내 삶에 영향을 주니 여전히 밉다”고 하면서, “같은 남자로서, 또 가장으로서 바라보면 불쌍한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아버지 친구들은 이미 다 돌아가셨고, 몸이 아파서 주사를 맞으려고 해도 돈이 없고, 돈 주는 자녀들에게는 눈치가 보이고…. 아버지가 저를 낳은 나이를 지나고 이 일을 20년 정도 하고 나니, ‘그 남자도 힘들었겠다. 돈도 없고, 귀도 안 들리고, 자식은 여섯 명이나 되고…. 그 남자는 무슨 생각으로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일을 하면서 마냥 좋지만은 않지만, 아버지는 일용직이었으니 삶이 업그레이드되는 기회도 없었을 테고, 장애인으로 대우가 지금하고는 달랐을 텐데…. 아버지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바라보면 안타깝죠.” 

이 영화에는 아버지와의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다. 무대에서 내려온 ‘인간 김창옥’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도 리얼하게 담겨 있다. 그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닌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40·50대에 대한 이야기”라면서 “부모가 있고, 같이 일하는 사람 있고, 직장 생활 20년 정도 해오면서 겉보기에는 성과를 잘 내기도 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영화 속 리얼하게 드러난 제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어요. ‘교수’ ‘강사’라는 수식어를 뺀 인간 김창옥의 모습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약하기도 하고 그늘이 있을 수도 있죠. 스크린으로 처음 제 모습을 봤을 때는 눈물이 많이 났어요.” 

김창옥의 강의는 삶에서 찾아낸 보석 같은 깨달음으로 가득하다. 유명 강사들에게는 더러 소재를 발굴해 제공하는 팀도 있는 요즘, 그는 모든 강의 재료를 직접 경험하고 깨달은 것만을 사용한다고 한다. 누구보다 예민하게 세상을 바라보면서 보편적 소재 속 공감을 이끌어낼 진리를 찾아낸다. 그는 “어려서부터 삶의 근원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며 자랐다”고 털어놓았다. 남들보다 뛰어난 감각 덕분에 강의를 하고 인기를 얻었으나, 가끔은 쉴 새 없이 받아들이는 정보와 새로운 콘텐츠 개발에 대한 부담감이 강박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잘 맞추는 사람은 위험해요. 자신의 마음을 누르고 상대방에게 맞추다 보면, 감정의 찌꺼기들을 연소하지 못해 계속 쌓일 수 있어요. 강의하는 20년 동안 두 번의 위기가 왔어요. 예를 들면 저는 요리하는 법을 알아냈고, 그걸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본 것뿐인데 내가 먹었다고 착각한 것 같아요. 뇌가 배불렀던 거죠. 그렇게 되면 2차 문제가 생겨요. 최근 몇 년 사이 디스크에 문제가 생겨서 7번 시술을 받았고, 5개월 전에는 다른 곳에 수술도 받았어요. 그러다 ‘이제는 내가 직접 요리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김창옥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휴식의 시간을 마련했다. 한 달에 3주는 일하고, 나머지 한 주는 고향인 제주도에서 지내는 것이다. 그는 1년 전부터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우도, 그 섬에서도 사람을 볼 수 없는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고 옹기를 굽고 있다. 그는 이러한 생활을 “영점(균형)을 잡아가는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올해 초 발생한 전 세계적 코로나19 사태는 그에게 많은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됐다.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진 뒤 석 달 동안 강의가 없었어요. 한 달 정도는 원망이 생기더라고요. 다른 인기 강사들의 유튜브 채널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방송 클릭 수를 늘리기 위해) 청귤 주스라도 만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두 달이 넘어가니 제 속에 흙탕물의 흙먼지가 가라앉듯 맑은 물이 생기더군요. 그동안 제 삶의 중심은 강연에 있었어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본주의의 노예로 살았죠. 지난 석 달 동안은 처음으로 제가 제 삶의 주도권을 가진 시간이었어요.” 


코로나 시대, 버티고 견디는 것만으로도 충분

김창옥은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조언을 건넸다. 

“영화가 시작된 후 늦게 극장에 들어갔을 때 어두워서 얼른 자리를 찾으려고 하다가는 들고 들어간 나초를 옆 사람에게 쏟을 수 있어요.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역설적으로 서서 잠깐 눈을 감는 거예요. 그러면 눈의 조리개가 열리면서 눈을 떴을 때 더 많은 빛을 받아 내가 갈 정도의 길은 보여요. 지금은 너무 어두운 시기인데 눈에 불을 켜고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는 대신 눈을 감고 나름의 시간을 보내야 해요. 그것이 기도든 요가든 산책이든 그렇게 견디다 보면 최소한 내가 갈 길은 보이지 않을까요.” 

아들과의 관계는 ‘연기’를 통해 극복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연기’라는 말에서 희망을 발견했다”고 털어놓는다. 

“사람들은 흔히 진심의 반대를 연기라고 하죠. 저는 진심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보고, 그 반대가 ‘자연스럽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뇌가 반복한 기억을 자연스럽다고 느껴요. 그건 옳은 게 아닌, 익숙하고 길들여진 거예요. 저는 아들과의 관계가 자연스럽지 않았어요. 그런데 계속 연기를 하다 보니, 그게 익숙해지고 자연스럽게 변하더군요. 아이들도 저를 ‘김창옥 아빠’라 부르다가 이제는 ‘아빠’라고 해요. 저도 어느 날 아들을 껴안는데, 자연스럽게 팔이 감기더라고요. 가면을 썼는데, 그게 진짜 피부가 되어가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사랑의 털이 날 수도 있지 않겠어요.”

기획 정혜연 기자 사진 지호영 기자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김창옥아카데미



여성동아 2020년 6월 6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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