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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actress

‘동백꽃 필 무렵’ 츤데레 어벤져스

EDITOR 이나래

2019. 12. 01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으로 연기 꽃을 활짝 피운 옹산의 미워할 수 없는 센 언니들.

“내가 너 위해서 뭐든 딱 하나는 해주고 갈게.”

동백이 엄마 조정숙 역 
이정은

일곱 살 동백이에게 소고기를 배 터지게 사 먹이고는 “엄마가 부탁이 있어, 엄마 이름 뭐냐고 물어보면 꼭 모른다고 해줘”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던 비정한 엄마.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나타나서는 동백이(공효진)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치매라는데 동백이만 사라지면 기억은 또렷하고, 특히 필구(김강훈)가 보기에는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이다. 신장을 얻으러 온 건지, 죽기 전에 동백이를 지켜주러 온 건지 알쏭달쏭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물씬 풍겨낸 배우 이정은(49)은 탄탄한 연기 내공으로 딸 동백이의 안타까운 서사를 강화한다.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후 대학로 연극 무대를 거쳐 충무로를 누비던 그녀는 브라운관에서도 점점 배역을 키워가며 한 번 본 사람은 자신을 잊을 수 없게 하는 강렬한 인상을 선사했다. 대중들이 확실하게 인지하기 시작한 시점은 2015년 전후로, tvN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속 서빙고 보살과 KBS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의 금촌댁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17년에는 넷플릭스와 봉준호 감독이 손을 잡으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영화 ‘옥자’에서 주인공 돼지 옥자의 목소리를 맡아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이어 영화 ‘택시운전사’ ‘미쓰백’,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명실공히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마침내 올해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동백꽃 필 무렵’으로 3연타석 홈런을 날린 것이다. ‘기생충’을 촬영할 당시에는 한국 최고 배우로 꼽히는 송강호로부터 “사람이 어떻게 저런 연기를 하냐”는 극찬을 받았다니 그야말로 신들린 연기력의 소유자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이정은의 탁월한 생활 연기는 그녀의 현실로부터 왔다. 2000년도 초반, 의욕적으로 제작했던 연극 두 편이 연이어 실패하고 경제적으로도 큰 손해를 입은 그녀는 전혀 다른 공간으로 해법을 찾으러 떠났단다. 바로 마트. “고생을 사서 해야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그녀는 마감 시간에 떨이를 파는 경험을 하면서 생활력을 다졌고, 보통의 삶에서 연기를 발견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얼마나 열심히 팔았는지 마트에서 간장 행사 판매왕에 오르며 초빙을 받았을 정도다. 

중년 여성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은 그녀는 푸근한 인상과 무던한 말투로 세상없이 순할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의외로 댄스 스포츠를 즐기는 반전 매력의 소유자다. 겉보기엔 영판 다른 외모의 소유자인 배우 황석정과 절친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으면 이런 반전이 이정은이 가진 최고의 매력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듯!

“원래 지 동생 톡톡 건드리는 언니들이 남이 내 동생 건드리는 꼴은 못 보는겨.”

준기네 게장 CEO 박찬숙 역
김선영

그야말로 ‘빅 마우스’다. 동네 사람들의 여론이 준기 엄마의 한마디로 이리저리 움직인다. 대체 동백이가 뭐라고 동네 남자들이 다 까멜리아에 가서 코를 빠트리고 있는지, 속이 터지는 그녀는 홍자영(염혜란) 변호사한테 가서도 “규태 좀 말리라”는 말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다. 내가 괴롭히는 건 괜찮지만 남이 괴롭히는 꼴은 못 보겠다는 이상한 논리로, 동백이를 찾아온 기자를 쫓아내는 걸 보면 영 미워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제멋대로 구는 것 같지만 내심은 따뜻한 준기 엄마를 연기한 사람은 배우 김선영(43)이다. 대학 연극 동아리에서 연기의 첫 단추를 꿰었다는 그녀는 1995년 연극 ‘연극이 끝난 후에’로 데뷔했으며 2014년 영화 ‘국제시장’과 2015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연이어 흥행하면서 온 국민에게 존재감을 알렸다. 

연극과 영화, 드라마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그녀의 바쁜 스케줄은 ‘동백꽃 필 무렵’ 종영 이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12월 14일부터 tvN에서 방영될 예정인 현빈·손예진 주연의 주말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북한 아줌마 군단으로 혁명적 훈남 리정혁(현빈)을 향한 애정을 뽐낼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해봐도 좋을 듯.

“근디 왜 남의 떡은 집어 먹고 있어? 시골이 무슨 호구여?”

떡집 사장 김재영 역
김미화

옹산 간장게장 골목의 경쟁자 없는 독점 떡집의 주인이다 보니 성격은 둥글둥글하다. 나한테 피해 주거나 떡값을 내지 않는 사람만 아니라면 대체로 잘 지낼 수 있는 원만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의 캐릭터는 동백에게도 적용돼 다른 언니들이 이런저런 핑계로 동백이를 괴롭게 만들 때도 웬만하면 넘어가는 관대한 인물. 대신, 향미(손담비)가 죽은 후 언니들이 옹벤져스로 변신한 후에는 누구보다 든든하게 동백이를 지켜주는 지원군이 되기도 했다. 

떡집 사장 김재영을 연기한 배우 김미화(45) 역시 20년 넘게 연극 무대를 누비며 1백60여 편에 출연한 베테랑이다. 2017년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으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그녀는 2018년 영화 ‘암수살인’과 드라마 ‘은주의 방’으로 활동을 이어갔고 올해 드라마 ‘구해줘2’의 수다스러운 아줌마 대구댁에 이어 ‘동백꽃 필 무렵’의 떡집 사장으로 신 스틸러 계의 샛별로 떠오른 상황. ‘힘쎈여자 도봉순’과 ‘품위있는 그녀’ ‘우리가 만난 기적’의 백미경 작가와 세 편 연속 합을 맞추며 백 작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그럼 7천원 하는 데 찾아가아~ 여기서 알타리는 우리가 독점이니께.”

채소가게 사장 오지현 역
백현주

본인의 주장대로라면 용식이(강하늘)를 업어 키웠다. 동네의 유일한 채소 가게 주인으로,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가격이 기분에 따라 널을 뛴다는 것. 용식이 어머니 곽덕순(고두심) 여사가 물어봤을 때는 7천원이었던 알타리 값이 동백이한테는 갑자기 8천원이 된다. 그래도 막상 싫어하던 동백이가 떠난다는 소식에 누구보다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이사를 가겠다고 박스를 구하러 다니는 동백이에게 배추 박스를 턱 던져주는 것을 보니 속정은 깊은 게 분명하다. 

연극으로 잔뼈가 굵은 배우 백현주(49)는 옹벤져스 중 가장 늦게 브라운관에 등장한 축이다.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서 청와대 국정기록비서관 역을 맡았고, ‘동백꽃 필 무렵’을 통해 얼굴을 알린 그녀의 행보는 겨우내 지속될 전망. 12월 16일부터 방영되는 드라마 ‘검사내전’에서 주인공 이선웅(이선균) 검사와 함께 일하는 수사관 장만옥 역을 맡아, 일에는 철저하지만 성격은 털털한 캐릭터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러게 진작에 껴주자고 했잖아. 동백이가 남편도 없고 뭐도 없고 뭔 낙으로 살아.”

백반집 사장 정귀련 역
이선희

귀가 얇은 걸까,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잘도 하는 백반집 사장 정귀련은 언뜻 보면 얄밉게도 느껴지지만, 악의가 없어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다. 푸근한 외모처럼, 밥 잘 먹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준기 엄마 찬숙과 떡집 사장 재영의 뒤를 잇는 3인자의 책임감을 가지고 옹산을 누비는 인심 좋은 밥집 사장이다. 

정귀련을 연기한 배우 이선희(41)는 극작가 지망생으로 서울예대에 진학했다가 연극을 시작한 케이스다. 연기를 하면서도 여전히 희곡에 대한 열정을 품고 있다고 밝힌 그녀는 언젠가 더 재미있는 작품을 쓰는 것이 목표라고. 하지만 ‘동백꽃 필 무렵’에서의 활약이 너무나 대단해 충무로와 드라마의 러브 콜이 예상되니, 그녀의 희곡을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출몰할 그녀의 활약을 기대해보자.

“이 새끼가 사람 죽일 새끼 아니라는 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아니까.”

옹산 최고의 엘리트 홍자영 역
염혜란

홍자영은 똑똑하다. 똑 부러진다. 동네 사람들도 다들 안다. 홍자영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문제는 매사에 어수룩하고, 기분만 좋으면 만사 오케이인 안경사 남편 노규태(오정세)와 너무 비교가 된다는 거다. 철없는 남편은 노상 까멜리아에 죽치고 앉아 동백이와 향미를 붙잡고 시시덕거리는 와중에, 시어머니는 “우리 집에 돈이 없었으면 네가 시집을 왔겠냐”며 유세를 부린다. 사실 그녀에게 들어왔던 맞선 중 선박 회사 아들이 하한선이었던 것도 모르면서. 도저히 안 되겠어서 이혼을 결심했는데, 노규태가 살인 용의자로 몰렸단다. 지하 주차장에서 드리프트까지 하며 강제 연행당하는 남편 노규태 앞을 막아섰다. “이 새끼가 사람 죽일 새끼 아니라는 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아니까.” 

남편은 모르지만 시청자는 다 아는 츤데레 와이프, 홍자영 역을 맡은 배우 염혜란(43)은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연기자의 꿈을 꿨고 극단 연우의 단원으로 처음 대학로에 입성했다. 극단 연우는 송강호, 문성근, 김윤석, 안석환 등 실력파 배우들의 산실이다. 차근차근 배역을 맡아온 그녀가 회상한 자신의 경쟁력은 외모라는데, 너무 날씬하고 예쁜 배우들 사이에서 엄마나 아줌마 같은 조연을 맡을 만한 얼굴이 없었던 터라 자신에게 여러 기회가 돌아온 것 같다고. 

그녀의 진가는 눈 밝은 감독과 작가의 주선으로 이루어졌다. 처음 출연한 영화 ‘살인의 추억’은 봉준호 감독이 그녀의 연극을 인상 깊게 본 후 직접 오디션을 제안하며 출연으로 이어졌다. 브라운관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작품은 2016년 방영한 ‘디어 마이 프렌즈’로, 이 작품 역시 노희경 작가의 제안으로 캐스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녀와 함께 연극에 출연하고 있던 나문희 배우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던 노희경 작가의 눈에 띈 것. 이후 드라마 ‘도깨비’에서 지은탁(김고은)의 악독한 이모 역을 맡아 본격적으로 인지도를 쌓았다. 

염혜란에게도 2019년은 기억할 만한 한 해가 될 듯. 특별 출연으로 등장한 영화 ‘82년생 김지영’ 속 스카프 여인은 주인공 김지영 옆에서 큰 인상을 남겼고, ‘걸캅스’ 속 민원실장 역시 경력이 단절된 평범한 직장인이자 주인공 라미란을 든든히 서포트하는 속 깊은 선배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와 ‘증인’으로 제54회, 제5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여자조연상 후보로 올랐지만 아깝게 수상에는 실패했던 그녀가 올해는 트로피를 거머쥘 수 있을까? 혹은 어떤 영화 또는 드라마로 트로피를 거머쥐게 될까? 가능성은 충분하니, 수상은 시간문제가 아닐까.

기획 김명희 기자 사진 뉴스1 게티이미지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에이탑엔터테인먼트 팬엔터테인먼트 공효진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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