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찬 리더스교육 소장
수시모집 원서 접수 전 마지막 평가인 6월 모의평가(이하 6모)에 더 큰 관심이 쏠린 이유다. 특히 의대 증원 등으로 15년 만에 역대 최대 N수생(8만9698명)이 응시한 데다, 이들 가운데 의대 증원을 노리고 참전한 이과 상위권 학생들이 포진돼 있다는 분석도 관심에 불을 지폈다. 지난해 처음 적용된 킬러 문항 배제 방침이 이어지며 출제 경향과 난도에도 이목도 쏠렸다. 한편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가 6모 영어 1등급 비율을 1.3%로 추정하면서 믿었던 절대평가인 영어에 대한 불안도 높아졌다.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의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대치동에서 20여 년간 입시 컨설턴트로 활동 중인 정문찬 리더스교육 소장을 만났다. 정 소장은 “입시는 최대한 부정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문을 텄다. 이어 그는 “이번 6모보다 N수생 없이 치른 3월, 5월 모의평가 성적을 믿고 싶은 고3 학생들이 많을 것”이라며 “6모는 남은 수능까지 동기 부여해주는 의미도 있지만 현실을 객관적으로 직시할 수 있는 지표”라고 강조한다. 정 소장은 6모 이후 전국을 돌아다니며 20여 차례 입시 설명회를 진행하면서 늘 “‘우리 아이가 갈 대학이 없다’는 생각으로 수험에 임해야 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입시에 있어서만큼은 최선이 아닌 최악을 상정해야 마지막 기회까지 놓치지 않을 수 있다고.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메디컬 계열 출신 반수생 대거 몰려
이번 6모는 졸업생 응시자 숫자가 역대 최고치입니다.숫자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응시자들의 수준입니다. 통상적으로 이전에는 상위권 대학 학생들이 메디컬 계열 학과를 가기 위해 반수를 했어요. 올해는 의대를 가기 위해 치대, 한의대, 약대생들이 반수를 합니다. 예년 반수생, N수생보다 실력이 좋죠. 심지어 레지던트 2년 차로 근무 중인 현직 의사가 이번에 수능을 본다고도 합니다. 지방 의대 비인기 학과를 졸업했는데 상위권 의대 인기 학과로 갈아타려고 하는 거죠. 문제는 이들 대다수는 이번 6모에 응시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수능 난이도는 6모와 비슷하더라도 등급 커트라인이 이번보다 훨씬 높아질 가능성이 있죠. 다만 영어는 이번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것으로 보이기에 수능에서는 난이도가 하향될 것으로 분석됩니다.
의대 증원으로 SKY 자연계열(이공계 포함) 입시는 수월해질 수 있나요.
2022학년도 대입부터 약학대학이 학부 모집을 시작하면서 1700명을 선발했어요. 이번 의대 증원 인원이랑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때도 상위권 학생들이 약대를 지원하니까 SKY 가기는 쉬워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당시 연세대 학생부종합전형 활동우수형은 경쟁률이 8.9:1에서 11.6:1로 증가했어요. 고려대 학생부종합전형 학업우수전형 경쟁률은 18.6:1로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높아졌죠. 정원은 1700명 늘었는데 이를 노리고 지원하는 인원은 1만7000명으로 대폭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이전이면 SKY에 지원하지 않았을 학생들도 지원하고, 심지어 약대에 지원한 상위권 학생들도 수시 원서 1~2장은 SKY에 썼기 때문입니다. 올해 의대 입시도 비슷하게 흘러갈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N수생이 늘어나면서 정시로 가는 것은 더 어려워지겠죠. 입시만 따졌을 때 의대 정원 확대는 고3들에게 절대 유리하지 않습니다.
2025학년도 정시모집에서 유의할 점은 무엇인가요.
‘문과는 간판, 이과는 학과’라는 불문율이 깨졌습니다. 요즘은 이과 학생들도 과를 양보해가면서 대학을 높이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이전에 입결이 낮았던 비인기 학과들의 경쟁률과 합격 커트라인이 자꾸 올라갑니다. 문제는 본인 성적보다 좋은 학교의 낮은 학과를 쓰면서 불안하니까, 나머지 원서 한 장은 낮은 학교의 높은 과를 써요. 안정적으로 합격하기 위해서요. 예컨대 성균관대에 합격할 수 있는 학생이 정작 정시에서는 연세대랑 중앙대만 쓰는 거죠. 이때, 연세대에 떨어지면 성균관대를 갈 수 있는 학생인데 중앙대를 가게 됩니다. 그러면 중앙대를 갈 수 있는 학생이 밀려서 한 단계 낮은 대학을 가게 되는 거죠.
왜 이과 학생들도 학과보다는 대학을 중시하는 기조로 바뀌었나요.
냉정하게 말하면 ‘의대병’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이과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가고 싶은 학과가 명확하고, 과에 욕심이 있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문과 성향인데도 고등학교 1학년 때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의대에 가기 위해 이과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늘었어요. 진로나 적성을 고민하지 않고,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들 기대에 떠밀려서요. 문제는 막상 학년이 올라갈수록 의대에 갈 만큼의 성적이 안 나올 때예요. 대학은 가야 하는데 이 학생들은 하고 싶은 전공이 없다고 말합니다. 물리를 베이스로 하는 기계, 전자 등 이공계는 엄두도 못 내요. 그러다 보니 과학보다는 수학 중심인 컴퓨터공학과나 데이터사이언스과로 몰립니다.
하지만 이런 학과들도 입결이 높아서 붙기가 힘들어요. 이렇게 되면 일단은 좋은 대학을 가자는 방향으로 틀게 되는 거예요. 이후 복수전공이나 전과를 해서 원하는 과를 가고자 하는 건데, 아시다시피 자연계열은 대학에 가서도 공부량이 방대합니다. 원전공 공부량이 많다 보니까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을 못 하는 경우도 많아요. 심지어 인기 학과를 복수 전공하려면 원전공 성적도 좋아야 해서 난도가 더 올라갑니다. 대학에 가놓고도 못 다니겠다고 다시 수능을 치르는 학생들이 많은 이유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떨어질 각오를 하더라도 처음부터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라고 권합니다. 합격하고도 가고 싶지 않은 학과를 쓰지 말고, 대학을 한 단계 낮추더라도 충분히 과에 대한 욕심을 내서 자기와 잘 맞는 학과를 가면 기회는 많습니다.
학생부의 핵심은 결국 ‘내신’
이번 대입부터 무전공 선발이 대폭 확대됩니다. 기존 자율전공학부와 차이는 무엇인가요.사실 자율전공학부는 10년 전 SKY를 중심으로 생긴 바 있습니다. 이때 고려대 자유전공학부, 성균관대 글로벌리더학부처럼 대다수는 로스쿨이나 행정고시 준비를 위한 학과로 운영됐습니다. 연세대는 결국 자유전공학부를 폐지했고요.
이번 무전공 선발 확대의 취지는 전공 탐색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취지는 좋지만 끝까지 이 경향을 가져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다만 아직 진로를 확정하지 못한, 특히 문과와 이과 가운데서도 고민하는 학생들은 이 제도를 활용하는 것을 추천해요.
수시에서 학생부를 잘 관리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대학에서 학생부종합전형(학종) 평가 항목을 모두 공개하고 있습니다. 공통적으로 학업 역량, 전공 적합성, 인성 등 3가지 영역을 평가하죠. 여기서 ‘전공 적합성’ 때문에 동아리, 보고서 및 진로 활동에 신경을 씁니다. 그런데 전공 적합성 항목도 들여다보면 결국은 학업 역량이에요. 성균관대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공 적합성 항목에서 ‘지원 모집 단위에서 수학할 만한 재능이 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어떤 수업을 수강했는지, 해당 과목은 몇 등급인지를 보는 거죠. 즉, 우리 과에서 수업을 따라갈 만한 학생인지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공학계열에 지원한 두 학생이 있습니다. 한 학생은 수학 1, 2, 미적, 기하, 확통만 수강했고 다른 학생은 여기에 기하 2, 심화 수학, AP 수학까지 이수했습니다. 학교 입장에서는 후자가 더 전공 적합성이 높다고 봅니다. 냉정히 말해서, 전공 적합성이라는 이름하에 출신 학교의 커리큘럼을 보겠다는 거예요. 특목고나 영재고, 전국 단위 자사고는 커리큘럼이 화려합니다. 이 학생들이 해당 전형에서 더 유리할 수밖에 없죠. 일반고 학생들이 동아리, 봉사활동,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을 꼼꼼히 채워도 커리큘럼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동아리 활동이나 세특은 큰 의미가 없나요.
역사학과를 지망하는 전국의 모든 학생은 역사 동아리를 합니다. 기계공학과를 가고 싶어 하는 학생 가운데서 영어 토론 동아리를 하는 경우는 없죠. 같은 학과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비슷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어요. 점수 차이가 유의미하지 않죠.
세특은 활용법에 따라 중요도가 달라집니다. 대부분 학생은 세특에 진로 활동을 적어서 전공 적합성을 보여주려고 해요. ‘의사가 되고 싶은 학생으로서 국어 시간에 의학 관련 발표를 했다’ ‘경제학과를 지망하는 학생으로서 경제 관련 토론을 했다’는 식으로요. 그런데 세특은 내신 등급에 나타나지 않는 학생의 학업적인 능력이나 특징을 적는 사항입니다. 진로 활동은 학업 능력이 아니에요.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평가한 학생의 학업 능력을 보여줄 만한 내용으로 채우는 것이 좋습니다.
일반고 학생들은 학종에서 무엇으로 승부해야 하나요.
결국은 내신이죠. 교과목을 잘 선택해서 수강하고, 지망하는 전공과 관련된 내신을 챙겨야 합니다. 물리학과를 가고 싶다면 물리와 수학 과목 등급이 중요합니다. 영문과를 가려면 영어 성적을 잘 받아야 해요. 이게 전공 적합성입니다.
전체 내신이 낮아도 지망 전공과 관련된 과목 성적이 좋으면 유리할까요
그럼요. 실제 사례로, 강남권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두 학생이 모두 서울대 치의학과를 지망했습니다. A 학생은 내신 등급이 1.46, B 학생은 1.64였어요. 아이러니하게도 A 학생은 떨어지고 B 학생이 붙었습니다. 학생부를 자세히 보면 B 학생은 전 과목 평균 내신은 1.64지만 수학 내신은 1.1로 학교 1등이었어요. 반대로 A 학생은 수학 내신은 1.6대였죠. 지망 학과에서 중요시 여기는 과목에서 더 성적을 잘 받는 것은 분명 강점입니다. 대학 홈페이지에서 모집 단위별 핵심과목과 권장과목을 확인할 수 있어요.
특목고 학생들은 수능 최저학력기준(최저)이 있는 수시 전형을 잘 안 쓴다고요.
특목고나 전국 단위 자사고는 수업을 자체 커리큘럼으로 진행합니다. 수능을 대비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책 읽고 토론 능력을 향상한다거나 수학, 과학 과목을 특화하는 식으로요. 학교 커리큘럼을 따라가다 보면 일반적으로 학생들이 수능을 준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자체 커리큘럼으로 미리 대학에서 배우는 수업을 이수하고, 전공 공부를 해온 학생들과 학종에서 경쟁한다면 일반고 학생들이 불리하겠죠. 최대한 수능 최저가 높은 전형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논술도 마찬가지일까요.
네. 이과는 영재고나 과고처럼 수학, 과학에 특화된 학생들이 수리논술을 치고 들어오고요. 문과에서는 토론 중심의 수업을 한 전국 단위 자사고, 국제고 학생들이 유리합니다. 특히 수능 최저 없는 논술 전형에서는 대학생들이 가장 위험한 경쟁 상대입니다. 이공계 대학생들은 1학년 때 고등 미적분을 배웁니다. 논술 유형 연습만 해놓으면 웬만한 고3 학생들보다 훨씬 수리논술을 잘 씁니다. 인문계열 학생들도 대학에서 학술적 글쓰기와 각종 인문·사회 교양수업을 듣기에 마찬가지고요. 논술 전형도 수능 최저가 있는 전형을 우선해야 하는 이유죠.
3수 이상 N수를 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나요.
재수까지는 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라고 해요. 재수했는데도 시험 당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면 3수까지도 괜찮습니다. 남학생의 경우 군대 전역 후 정신 차리고 한 번 더 시험을 치르는 것까지도 괜찮아요. 다만 그 이상으로 입시에 매달리는 것은 절대 권하지 않아요. 낮은 대학에 가더라도 편입이나 대학원 진학을 통해 좋은 학교로 갈 기회는 충분히 있습니다. 학교 외에 사회에서 배울 수 있는 공부도 많아요. 오래 공부해서 서른 살에 의대를 가더라도 공부 끝내고 나면 마흔입니다. 20대에만 할 수 있는 게 많습니다. 정말 좋은 시기에 10년을 입시 판에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에요.
마지막으로, 남은 수능 준비 기간에 학부모들이 염두에 둬야 할 게 있다면 뭔가요.
제가 학부모님들께 입시 정보를 드리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학생들이 입시를 앞두고 흔들릴 때 잡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공부할 시간에 입시 커뮤니티 등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듣고, 전략을 짜는 데 곁눈질하지 않도록요. 다만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되, 학생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가 완벽한 계획을 갖고 학생들에게 들이밀면 위축될 수밖에 없어요. 결국 입시는 학생 본인이 치르는 것이기에,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되 조언을 구할 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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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홍태식
자료제공 정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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