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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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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작 만든 손예진

editor 고수진 eNEWS24 기자

2016. 09. 01

배우 손예진(34)이 인생작을 만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 〈덕혜옹주〉(감독 허진호)에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를 완벽하게 되살려낸 덕분이다. 권비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덕혜옹주〉는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끌려가 평생 조국으로 돌아오고자 했던, 역사가 잊고 나라가 감췄던 덕혜옹주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손예진은 이 영화를 통해 〈해적:바다로 간 산적〉 이후 2년 만에 사극 장르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 여자의 일생이 피고 지기까지의 과정을 열정을 다해 영화에 담아냈다. 뽀얀 피부에 검버섯을 드리우고, 촉촉한 눈가에 깊은 주름을 그어가며 그녀는 오롯이 덕혜옹주가 됐다. 그녀의 이런 노력 덕분인지 〈덕혜옹주〉는 ‘손예진의 인생 연기’라는 호평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 영화에 직접 10억원의 제작비를 투자한 일도 화제다.

영화 〈클래식〉과 〈내 머리속의 지우개〉를 통해 ‘대한민국 대표 청순 여배우’로 자리매김한 그녀는 〈무방비 도시〉 〈작업의 정석〉 〈공범〉 등에서 색다른 캐릭터에 도전하며 자신만의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덕혜옹주〉로 또 한 번 새로운 도전에 나서 우리의 역사를 숙연하게 되돌아보게 한 그녀를 만났다.   

▼ 출연한 영화를 보면서 이번처럼 펑펑 운 건 처음이라면서요.

영화 찍으면서 덕혜옹주의 감정에 푹 빠져 있었어요. 촬영이 끝나면 왠지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단 생각이 들 정도였죠.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촬영하다가 끝나고 혼자 쉴 때면 쓸쓸함이 몰려왔어요. 굉장히 복잡다단한 감정으로 깊이 몰입하면 허망함과 쓸쓸함이 배가되더라고요. 이런 감정은 배우 생활을 오래 해도 잘 떨쳐지지 않아요. 촬영 끝나자마자 여행 다니면서 감정을 잘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개봉 앞두고 시사회장에서 영화와 관련된 영상과 자료들이 나오는 걸 보니 울컥하더라고요.



▼ ‘덕혜옹주’의 삶에서 다른 느낌을 받았나 봐요.

박해일 선배가 언론시사회 전에 “너 왠지 영화 보면서 울 것 같다”고 했어요. 여행 다니고 쉬면서 덕혜옹주를 다 떠나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질 못했던 거죠. 사실 전작들은 관객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줘야겠다는 생각에 이성적인 판단을 하면서 찍었어요. 완성본을 보며 잘된 점과 잘못된 점도 분석했고요. 그런데 이번엔 달랐어요. 시사회 후에 왜 저 음악이 들어갔고, 왜 저렇게 연기했는지가 전혀 생각나지 않더라고요. 연기를 했다기보다는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것 같아요.

▼ 영화를 찍기 전 덕혜옹주라는 인물에 대해 알고 있었나요.

소설 〈덕혜옹주〉가 베스트셀러로 한창 팔릴 때 저도 사서 읽었죠. 그러다 허진호 감독님께서 〈덕혜옹주〉를 찍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허 감독님이 만드는 덕혜옹주는 어떤 그림일지 굉장히 궁금했어요. 시간이 좀 흐른 뒤 우연히 감독님과 영화제에서 마주쳤는데 “한번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이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어요. 소설로 덕혜옹주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영화화된다면 해보고 싶은 인물이었기에 설레기도 했어요. 감독님께서 시나리오를 제게 건네셨을 때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인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게 부담으로 다가오진 않았나요.

부담이 되긴 했죠. 덕혜옹주라는 한 여자의 일대기를 오롯이 표현하면서 역사 속에 기록돼 있는 인물이라 와 닿는 무게감도 컸죠. 덕혜옹주를 어떻게 그려야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 결국 한 여자로서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그녀를 둘러싼 정국, 왕실 같은 특수한 배경보다 한 여자의 인생으로 보면 접근하기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결과는 만족스러운가요.

상황이 주는 비극성 자체만으로도 관객들을 울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수 있는 영화여서 오히려 감독님은 신파를 지양하는 연출을 하셨어요. 원래 담담하게 보여줄 때 더 슬프잖아요. 저 역시 덕혜옹주를 연기하면서 슬픈 감정을 다 쏟아내듯 오열하지 않았어요. 덕혜옹주의 감정을 다 토해내면 관객들이 공감할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점에서 감독님과 합이 잘 맞았어요.



▼ 박해일, 라미란 등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데뷔 초반에는 제 역할에만 집중하다 보니 상대가 잘 보이지 않았어요. 지금은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죠. (박)해일 오빠는 김장한(덕혜옹주의 어릴 적 정혼자) 캐릭터와 싱크로율이 높아요. 편안하게 저를 지켜주는 느낌이 있거든요. 오빠만이 갖고 있는 묵직함은 상대를 의지할 수 있게 하는 힘을 가졌어요. (라)미란 언니, (정)상훈 오빠 역시 항상 밝은 에너지와 웃는 얼굴로 저를 즐겁게 해주셨고요. 악역을 맡은 윤제문 선배도요. 암울한 시대의 이야기지만 현장 분위기는 굉장히 밝았죠.

▼ 박해일 씨 말로는 촬영장에서 헤드폰을 놓지 않았다던데, 어떤 노래를 주로 들었나요.

〈클래식〉 때부터 현장에서 헤드폰으로 음악 듣는 게 습관이 됐어요. 촬영 들어가기 전에 항상 작품에 맞는 음악을 선곡하고 반복해서 듣는 편이죠. 이번에는 나윤선 씨 음악을 즐겨 들었어요. 영화에 윤심덕의 노래 ‘사의 찬미’가 나오는데 개인적으로는 나윤선 씨가 부른 ‘사의 찬미’를 더 좋아하거든요. 나윤선 씨 음악 중에 흘러간 옛 노래를 그만의 스타일로 부른 곡이 꽤 많더라고요. 그 노래들을 모두 내려받아서 들었죠.

▼ 영화 〈덕혜옹주〉에 직접 10억원을 투자한 일이 화제예요. 제작비를 보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예전부터 배우들이 자기 작품에 투자한 경우가 종종 있었잖아요. 배우라면 누구나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영화를 찍다 보면 예산이 점점 늘어나면서 어떤 부분은 축소해서 찍어야 하는 상황도 오죠. 돈을 많이 쓴다고 꼭 좋은 영화가 되는 건 아니지만, 돈을 더 들여서라도 좋은 장면이 나올 수 있다면 그 부분을 돕고 싶었어요. 영화가 정말 잘될 것 같기도 했고요.

▼ 이번 영화로 ‘천만 배우’라는 타이틀에 대한 기대감도 있겠어요.

천만 배우는 연기자에게 정말 매력적인 타이틀이죠. 하지만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욕심낸 적이 없어요. ‘천만 영화’는 기획 단계부터 예산도 크고 초호화 캐스팅에 모든 상황이 맞아떨어져야 해요. 이제까지 출연한 작품 가운데 천만 영화답다고 느낀 건 〈타워〉와 〈해적:바다로 간 산적〉 뿐이에요.

▼ 노인 역할에 도전한 것도 처음인데 어떤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나요.

나이 든 모습을 얼마나 실감 나게 보여줄 수 있을까보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어요. 덕혜옹주가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첫 장면은 뒷모습만 잠깐 나오잖아요. 그런데도 감정을 잡기 위해 그 안에서 몇 시간을 있었어요.

▼ 노인이 된 자신을 미리 본 기분이 어땠나요.

저렇게만 나이 들면 좋겠다 싶던걸요. 피부가 처지지 않고 주름만 진 상태니까요(웃음). 이번 작품을 하면서 나이 듦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더욱이 덕혜옹주는 정신질환이 있는 노인이었기 때문에 더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노화는 자연의 섭리이니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 이제 적지 않은 나이인데, 결혼은 염두에 두고 있나요.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점점 늦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요. 뭐든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결혼하면 일과 가정 둘 다 잘 챙겨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둘 다 잘해낼 자신이 없어요. 일이 더 소중해요. 그래도 언젠가 결혼해야죠.

▼ ‘청순미의 대명사’ ‘남자들의 이상형’으로 꼽혀왔는데, 손예진 씨의 이상형은 어떤 타입인가요.

한 번도 청순해 보이고 싶었던 적은 없는데 그런 이미지로 좋아해주신 분들이 많더군요. 덕분에 누군가의 이상형으로 꼽히는 게 아직도 기분 좋고 기대도 돼요(웃음). 제 이상형은 심플해요. 저랑 코드가 잘 맞는 사람요.

▼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나 캐릭터가 있나요.

해보지 않은 역할에 관심이 가는 편이에요. 익숙한 건 재미없어서 전작이 멜로드라마였다면 다음 작품은 다른 장르를 선택하죠. 무조건 변신만 하겠다는 건 아녜요. 다만 조금이라도 해봤던 느낌은 피하고 싶은 마음이 크죠. 지금 바람은 정말 좋은 멜로물을 만나고 싶어요. 또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도 해보고 싶고요.

▼ 스크린을 고집하던 여배우들의 TV 복귀가 잇따르고 있는데 드라마 출연 계획은 없나요.

아직 확정된 건 없지만 모르죠. 다음 작품이 드라마가 될지도(웃음). 영화는 시간적 여유가 있고 어떤 신을 어떻게 찍을 것인지 하나하나 의논하고 상의하면서 공을 들이는 느낌이에요. 반면 드라마는 체력과 연기력, 대본 암기력 등 여러 부분이 다 맞아떨어져야 하는 작업이죠. 차분한 작업 환경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자연스럽게 영화를 우선순위에 두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드라마가 영화보다 대중과 빨리 친밀하게 소통할 수 있잖아요. 배우에겐 그 점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몇 년에 한 번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드라마 대본도 신중하게 검토 중이에요.


촬영이 끝난 후 덕혜옹주를 다 떠나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시사회장에서 그녀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배우 손예진이 아니라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덕혜가 그 눈물 속에 녹아 있었다.

기획 김지영 기자
사진 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디자인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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