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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경영 시험대 오른 패션가 2세들

김명희 기자

2024. 03. 27

여러 산업 분야 가운데 패션 기업들은 유독 오너 경영 체제가 강하다. 창업주의 바통을 물려받아 경영 전면에 나선 패션가 2세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창업주인 부친으로 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성래은 부회장  강준석 사장  최준호 부회장(왼쪽부터)

창업주인 부친으로 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성래은 부회장  강준석 사장  최준호 부회장(왼쪽부터)

토종 패션 기업 창업주들은 작은 브랜드 혹은 동대문 의류 도매업에서 시작해 차근차근 부를 일군 자수성가형이 많다. 이들은 다른 데 눈 돌리지 않고 패션 한 우물만 판 데다 직접 사업을 시작하고 키워온 개척자들답게 현장 경영을 중시한다. 1990~2000년대 도시 번화가마다 빼곡히 들어섰던 의류 프랜차이즈업체들이 이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패션계에는 ‘오너나 디자이너가 나이 들면 브랜드도 늙는다’는 속설이 있다. 트렌드가 바뀌고 산업구조가 변하면 ‘오너들의 현장 경영’ 영양가도 떨이지기 마련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백화점과 로드숍 매출이 급감하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 활로 모색을 위해 2세 중심으로 새판을 짜는 기업이 늘고 있다.

패션 기업 2세 경영의 선두에 선 인물은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의 세 딸 중 둘째 성래은(46) 영원무역영원무역홀딩스 부회장이다. 성래은 부회장은 2022년 영원무역 부회장에 오른 데 이어 지난해 3월 부친의 YMSA(영원무역홀딩스 지분 29%를 보유한 비상장회사) 지분 절반을 증여받으면서 자매들 가운데 승계 구도에서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성 회장의 맏딸인 성시은 영원무역 이사는 그룹의 사회공헌사업을 맡고 있고, 셋째인 성가은 영원아웃도어 부사장은 노스페이스 등 브랜드 경영 전반을 이끌고 있다. 성가은 부사장은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외삼촌인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의 며느리이기도 하다.

성래은 부회장은 지난 2월 한국패션산업협회 회장으로 선임되면서 업계에서 입지도 다지게 됐다. 한국패션산업협회는 패션 산업 선진화를 위해 1985년 설립된 단체로 국내 400여 개 토털 패션업체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성 부회장은 “K-패션의 글로벌화, K-제조 혁신, 디지털 생태계 전환 등 대한민국 패션의 글로벌 톱 5 진입을 위해 필요한 미션들을 해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성래은 부회장은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뒤 일찌감치 미국 명문 보딩스쿨인 초트 로즈메리 홀(Choate Rosemary Hall)로 유학을 떠났다. 초트 로즈메리 홀은 국내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딸 원주 양이 로빈 리 중국 바이두 회장의 딸, 사프라 캐츠 미국 오라클 CEO의 딸 등과 함께 찍은 사진이 SNS에 게재되면서 세계 명문가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로 화제에 오른 바 있다. 이후 성 부회장은 미국 스탠퍼드대에 진학해 사회학을 전공한 후 2002년 영원무역에 합류해 2020년 영업 및 경영관리총괄 사장, 2022년부터는 영원무역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성 부회장은 도전적인 성격과 친화력 등의 면에서 세 딸 중 부친을 가장 많이 닮았다는 평을 얻고 있다. 실제로 그녀는 부회장 승진 직후 펴낸 책 ‘영원한 수업-나의 아버지에게 배운 경영의 모든 것’에서 “어릴 때부터 ‘공장 집 딸’이라는 호칭에 친숙했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아버지를 따라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어울리며 지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그들과의 공감을 최우선으로 삼으라는 아버지의 깊은 뜻이었다. 이는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늘 명심해야 하는 지침이 됐다”고 적고 있다. 현장과 생산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부친의 뜻에 따라 미국 유학 중에도 방학 동안 영원무역의 파트너사 제품 검수 창고 등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현장을 익혔다. 대학 졸업후 회사에 입사해서도 생산 현장과 경영 일선을 누비며 번아웃이 올 정도로 부지런히 일했다고 한다.



성기학 회장이 1974년 설립한 영원무역은 한때 노스페이스 패딩이 ‘등골 브레이커’라 불릴 정도로 학생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급성장한 브랜드. 창업 이래 단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는 우량 기업이기도 하다. 눕시 재킷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매출 1조 원을 돌파했지만 글로벌 소비 경기 둔화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수요가 감소하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성 부회장은 국내 OEM 업체 중 처음으로 인도에 투자하는 등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친환경 소재나 자동화에 강점이 있는 해외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등 경영 다각화를 통해 실적 회복의 돌파구를 찾고 있다.

누나들과 남매 경영 나선 강준석 사장, 최준호 부회장

BYN블랙야크는 올 초 강태선 회장의 두 자녀가 나란히 승진하면서 ‘남매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블랙야크는 ‘경영하는 산악인’이라 불릴 정도로 산을 좋아하는 강태선 회장이 1973년 창업한 등산용품 장비업체 동진사를 모태로 한 고기능성 아웃도어 브랜드. 블랙야크는 2020년 BYN블랙야크로 사명을 변경했다. 강 회장의 장남인 강준석(43) 사장은 서울 압구정고를 나와 한양대 신소재공학과를 다니다가 중퇴하고 미국으로 유학, 위스콘신대를 졸업하고 고려대 경영대학원(MBA)을 수료했다. 2014년 블랙야크 글로벌사업본부 이사로 시작, 차곡차곡 경영자 수업을 받다가 지난 2월 BYN블랙야크 사장으로 승진했다. 강 사장은 경영전략본부를 이끌며 그룹의 중장기 방향과 전략을 수립하는 한편 글로벌 비즈니스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총괄하게 된다.

강 회장의 맏딸인 강주연 동진레저 부사장도 2월 말 사장으로 승진했다. 2010년 블랙야크에서 인적 분할된 동진레저는 등산복 마운티아와 작업복 등을 만드는 회사로 강태선 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매출 규모는 블랙야크의 10% 수준. 강주연 사장은 2002년 동진레저에 입사해 20년 넘게 근무하며 실무 역량을 다져왔다.

패션그룹형지는 지난해부터 최병오 회장의 장남인 최준호(40) 총괄부회장 체제로 돌입했다. 최 부회장은 단국대학교 행정학과와 런던패션대학 패션매니지먼트학과를 졸업하고 2011년 패션그룹형지에 입사했다. 2021년부터 까스텔바작 대표와 형지엘리트 사장직을 맡아 그룹 및 계열사를 이끌다가 지난해 11월 총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부산 출신인 최병오 회장이 광장시장 1평 남짓한 의류 매장에서 시작한 형지는 현재 크로커다일레이디, 샤트렌, 올리비아하슬러, 캐리스노트, 골프 웨어 까스텔바작, 학생복 엘리트 등 23개 브랜드를 거느린 종합 패션 회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경기 불황, 중저가 브랜드와 오프라인 시장의 몰락 등으로 실적 부진에 직면한 상황. 최준호 부회장은 교복 브랜드 형지엘리트, 골프 브랜드 까스텔바작 등을 필두로 계열사 글로벌화를 통해 이를 타개해나갈 계획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순방에 동행해 글로벌 사업 확대 기회를 모색하기도 했다. 네 살 터울의 누나인 최혜원 씨는 패션그룹형지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형지I&C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노스페이스 #블랙야크 #형지 #후계구도 #여성동아

사진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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