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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패션 낭만주의자를 위하여

오한별 객원기자

2024. 03. 18

발레코어부터 리본, 레이스, 시폰, 퍼프소매까지. 봄과 함께 찾아온 패션 낭만주의에 대하여.

낭만주의는 인간을 중시하고 자연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려는 계몽주의에 반대하여 일어난 사상이다. 낭만주의, 즉 로맨티시즘(romanticism)은 ‘비현실적인, 지나치게 환상적인’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이성과 합리, 절대적인 것에 대해 거부한 사조였다. 고전의 엄격함과 규칙을 중시하는 신고전주의와 대립되기도 한다.

낭만주의는 18세기 후반 프랑스대혁명과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혼란스러운 유럽 정세와 함께 나타났다. 대혁명으로 시작된 사회적 불안은 인간이 가진 공포를 더욱 부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계몽주의에 대한 신뢰는 서서히 무너져갔다. 그 대신 인간의 이성이 중요하지 않게 여겼던 개인의 직관, 상상력, 감성 등이 화두에 올랐다. 이것이 바로 낭만주의의 핵심이다. 오랜 기간 정신적 피폐함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낭만주의는 메마른 땅의 오아시스와 같았다. 낭만주의의 특징 중 하나는 개인의 주관, 지성보다는 감성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예술가들은 신고전주의가 중요하게 여겼던 보편적인 미학과 엄격한 규칙에 저항하여 보다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스럽고 불규칙적인 것으로 관심을 확대했다. 그리고 점차 즉흥적이며 감성적인 자신의 감정과 철학을 드러내는 작업을 그려냈다.

지난 2023년, 디자이너들이 우리에게 선사한 것은 잊혔던 로맨티시즘에 대한 환기였다. 산뜻한 봄바람만큼이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우아한 룩들은 새삼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눈뜨게 했다. 그리고 이러한 로맨티시즘의 귀환과 함께 눈길을 끄는 것은 그 누가 뭐래도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패션계 낭만주의자들이다. Y2K, 인디 슬리즈, 콰이어트 럭셔리 등 묵직하고 강렬한 트렌드의 홍수 속에서 비주류였던 로맨티시스트들은 묵묵히 낭만을 실현해왔다.

낭만주의자들의 활약은 2024 S/S 시즌에도 꾸준히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인기 트렌드였던 발레코어가 쏘아 올린 탐스럽고 러블리한 리본 디테일은 소녀들의 열렬한 지지와 사랑을 동력 삼아 이번 시즌에도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낸다. 발레코어의 선두 주자이자 알렉사 청, 클로에 세비니, 로자먼드 파이크 등 여러 셀럽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시몬 로샤는 패션계의 대표적인 로맨티시스트다. 시몬 로샤가 선보인 진주와 리본, 마카롱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컬러, 겹겹이 덧댄 레이스와 실크가 메말랐던 낭만을 채워준다. 이번 시즌 런웨이 역시 로맨틱한 기운이 가득했다. 장미와 코르사주, 리본의 향연에 레이스, 크리스털, 진주가 조화를 이루며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세실리아 반센은 풍성한 실루엣과 다소 과장된 퍼프소매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마치 디즈니 공주들이 입을 법한 의상을 그려낸다. 그녀는 파리와 런던에서 배운 쿠튀르 감성과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익힌 스칸디나비아식 미니멀리즘을 대조하고, 둘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디자이너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포인트는 옷을 입었을 때 편안하고 안락해야 한다는 것. 러블리한 드레스에 비즈와 진주로 장식한 아식스 운동화 공식은 세실리아 반센의 아이코닉한 스타일이다.



블랙핑크 제니의 사랑을 듬뿍 받는 디자이너이자, 새로운 낭만 계보를 잇고 있는 샌디 리앙도 빼놓을 수 없다. 엄마의 옷장을 몰래 뒤지거나 오래된 레이스 드레스를 입어보는 등 어린 시절 일기장 속에 등장할 법한 소소한 행복의 순간들을 룩에 녹여냈다. 전 세계의 로맨틱한 소녀들이 두 팔 벌려 환호할 만한 낭만적인 룩을 선보여온 몰리 고다드나 디자이너의 고향인 튀르키예에서 얻은 영감과 어린 시절 가족에 대한 기억을 패션에 담은 보라 아크수, 파리의 낭만을 대담하고 실험적으로 풀어낸 마르지엘라와 할리우드의 감성을 순수하게 표현한 샤넬까지. 진정한 낭만을 추구하는 디자이너들이 우리의 로맨티시즘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로맨티시즘 #시몬로샤 #발레코어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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