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영상]임성호 종로학원 대표가 진단하는 ‘문과 침공’과 ‘의대 광풍’

문영훈 기자

2024. 02. 08

유례없는 ‘의대 광풍’ 속에서 지난해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발표했다. 전국 의대 학부생은 현재 인원(3058명)의 최대 2배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의대 정원 확대가 경쟁률 하락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의대 쏠림 현상이 더 가속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29년 차 입시 베테랑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

29년 차 입시 베테랑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

‘문과 침공’과 ‘의대 광풍’. 2020년대 입시는 2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2022학년도 대입부터 시행된 문·이과 통합 수능은 진로와 적성에 따라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확대하고 학생의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국어와 수학은 공통과목과 선택과목으로 나뉘는데, 조정 표준점수를 통해 각기 다른 선택과목을 본 학생들을 합쳐 일렬로 줄 세운다. 지난 3년간 인문 계열에 진학할 학생이 주로 응시하는 ‘확률과 통계’보다 자연 계열로 진학할 학생이 응시하는 ‘미적분’과 ‘기하’ 과목 만점 표준점수가 높게 나왔다. ‘미적분’이나 ‘기하’를 응시한 학생이 높은 수학 표준점수를 이용해 인문 계열에 교차 지원하기 시작한 현상을 문과 침공이라고 부른다.





동시에 직업 안정성이 보장되는 의대 선호 현상은 더 강해지고 있다. 과거에도 의대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 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명문대 이공계 학생은 물론 메디컬 계열 학생, 직장인까지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다시 수능을 보는 일이 다반사다. 2024학년도 수능에서 ‘N수생’ 비율은 35.3%로, 3명 중 1명이 수능에 다시 응시한 셈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1996년 강사로 학원 업계에 발을 들여 종로학원 대표가 된 입시 업계 자타 공인 베테랑이다. 그가 바라보는 문과 침공과 의대 광풍의 현재와 미래를 물었다.

서울대 교차 지원 44%→52%→?

2023년 11월 21일 보건복지부는 의과대학 입학정원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했다(위). 학생들이 2024학년도 정시모집 배치표를 확인하고 있다.

2023년 11월 21일 보건복지부는 의과대학 입학정원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했다(위). 학생들이 2024학년도 정시모집 배치표를 확인하고 있다.

2024학년도 정시 모집에서 문과 침공 현상은 강해질까요.

문과 침공이 발생하는 이유는 이과 학생이 문과 학생들보다 수학에서 높은 표준점수를 받기 때문입니다. 2024학년도 수능에서 이과 학생이 선택하는 ‘미적분’ 만점은 148점이지만, 문과 학생이 선택하는 ‘확률과 통계’ 만점은 137점입니다. 최고점 차이가 11점인데, 2023학년도에는 최고점 차이가 3점이었죠. 수학만 놓고 보면 문과 학생이 만점을 받아도 그 위에 이과 학생 6800명이 있는 겁니다. 이과 학생 입장에서 인문 계열로 넘어가는 데 더 유리한 환경이 됐다고 봐야 합니다.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한 학생 중 인문 계열 학과로 진학하는 비율은 어느 정도나 되나요.

통합 수능 1년 차(2022학년도)에는 서울대 인문 계열에 진학한 44%가 ‘미적분’과 ‘기하’를 선택한 학생들로 확인됐죠. 2년 차(2023학년도)에는 52%까지 확대됐고요. 이건 서울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연세대와 고려대를 포함한 상위권 대학부터 중상위권 대학에 이르기까지 수학 기준으로 1등급에서 4등급 학생 모두에 영향을 줍니다. 이제는 수학 프리미엄을 가지고 이과 학생이 인문 계열로 진학하는 현상은 일반화됐다고 봐야 합니다. 배치표 역시 이과에서 이과로 진학하는 학생, 문과에서 문과로 진학하는 학생, 이과에서 문과로 교차 지원하는 학생 총 3가지로 나뉘어 나오고 있습니다.

문과는 취직이 어렵다는 통념이 있는 데도 교차 지원으로 인문 계열로 진학하려는 게 아이러니합니다.

자연 계열에 진학한다고 해서 취업이 무조건 보장되는 것은 아니죠. 학과 선택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고 해도 평생 자신을 따라다닐 꼬리표가 될 대학 브랜드를 선뜻 포기하기는 어렵습니다. 교차 지원하면 대학 레벨을 높일 수 있으니까요. 복수전공이나 전과를 노려 새로운 길을 모색해보려고 할 수도 있고요. 또 고등학교 때부터 이과 선호 현상이 있다 보니 적성과 무관하게 이과를 선택한 학생이 문과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도 있다고 봅니다.

교차 지원한 학생들은 대학에서 잘 적응하나요.

2022학년도 서울대 인문 계열 진학 학생 중 중도 탈락한 학생은 83명이었습니다. 대개 60명대 수준이므로 크게 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서연고(서울대·연세대·고려대)는 중도 탈락 학생 2131명 중 이과 학생이 1388명입니다. 오히려 자연 계열에서 메디컬 학과 진학을 이유로 학교를 그만두는 비율이 더 높다고 봐야 합니다.

통합 수능 1년 차부터 현행 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교육부는 자연 계열을 준비하던 학생이 인문 계열로 교차 지원하는 수가 적을 거라고 예측했는데 그게 빗나간 겁니다. 문·이과 통합 수능이라고 하지만 학과에서 요구하는 수학 선택과목이 다르죠. 인문 계열에 진학할 학생들은 ‘확률과 통계’를 선택해도 충분히 대학 가는 데 문제가 없다 생각하고 시험 준비를 해왔는데, 결과는 ‘미적분’ ‘기하’를 선택한 학생에게 밀렸던 거죠.

‘미적분’과 ‘기하’가 ‘확률과 통계’보다 어렵고 공부할 양이 많은데 더 높은 표준점수가 나오는 게 공정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공정하려면 처음부터 학생들에게 같은 수학 시험을 보게 했어야 합니다. 인문 계열로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확률과 통계’를 선택했다는 것만으로 최대로 받을 수 있는 점수에 제약이 생기는 건 문제죠.

지금 상황에서는 인문 계열 최상위권을 노리려면 ‘미적분’을 선택해야 하나요.

교차 지원이 활발해진 이후로 사회탐구를 선택한 문과 학생도 수학에서 ‘미적분’을 선택하는 비율이 점점 늘어 10%에 달합니다. 현행 문·이과 통합 수능의 마지막 대상이 될 고1(2027학년도) 문과 학생의 경우 지금부터 최상위권 대학 인문 계열 학과를 가기 위해 ‘미적분’을 선택하는 비율이 더 높아질 거라고 봅니다. 더구나 이들은 2028학년도부터 수능 제도가 바뀌기 때문에 재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큽니다. 보다 높은 점수를 확보해서 한 번에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미적분’을 택하는 학생이 많아질 겁니다.

내년 입시(2025학년도)부터는 수도권 대부분의 대학이 수능 필수 응시 과목을 폐지해 ‘확률과 통계’를 선택해도 자연 계열로 진학하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올해처럼 ‘미적분’과 ‘확률과 통계’ 만점 표준점수가 11점 가까이 차이 나면 ‘확률과 통계’를 응시한 학생이 자연 계열로 진학하는 건 사실상 어렵습니다. 1점 차이도 중요한 정시 모집에서 이미 표준점수가 뒤처지는데 자연 계열에 원서를 내지 않겠죠.

현재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치르는 2028학년도 입시부터 모든 학생이 같은 수능 문제를 풀게 됩니다.

수능에서만큼은 완전히 문과, 이과 구분이 사라지게 되겠죠. 어떻게 보면 이제는 당일 수학 성적이 인문 계열을 가냐, 자연 계열을 가냐 판가름하게 될 겁니다. 가령 외고 졸업생도 수능 수학을 잘 보면 의대에 지원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이과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는 상황에서 향후 인문 계열 학과의 정원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고 보시나요.

대학 내 학과 구조조정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당장은 쉽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교육부가 내년 입시부터 무전공·무학과 선발 확대 기조를 발표했잖아요. 그렇게 되면 학생의 선택에 따라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겁니다. 무전공으로 입학한 학생이 학과를 선택할 때 인기 학과로 몰리게 되면 학생들이 덜 선택하는 학과는 자연스럽게 인원이 줄어들겠죠.

“의대 정원 확대되면 그만큼 준비생 늘어”

현장에서 의대 광풍을 얼마나 실감하시나요.

10년 전만 해도 지방 의대에 합격한 학생이 최상위권 이공 계열에 진학하기도 했습니다. 의대를 지망하는 학생은 왜 의대에 가야 하는지 이유가 분명한 경우가 많았고요. 3년 사이에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점수가 잘 나오면 무조건 의대를 가야 한다는 생각이 학부모뿐 아니라 학생들 사이에서도 당연해졌습니다. 정시와 수시 모두 정부가 지원하고 고용이 보장된 첨단 분야 채용조건형 계약학과 합격생이 전원 등록하지 않는 일도 발생하고 있으니까요. 또 의대 중에서도 수도권 의대 쏠림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로 불리는 전체 메디컬 계열에서도 한 해 700여 명이 중도 탈락합니다. 그중에는 의대 학생 179명도 포함돼 있습니다. 비수도권 의대생이 수도권으로 들어오기 위해 반수하는 거죠.

의대 열풍이 고입에도 영향을 미쳤나요.

일반고든, 특목고든, 자사고든 수능을 제대로 준비할 수 있는 학교로 학생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의대는 수시에서도 높은 수능최저학력기준을 요구합니다. 가령 국어, 수학, 영어, 탐구 과목의 합이 5인 식이죠. 정시의 경우는 영어는 당연히 1등급이라고 보고 국어, 수학, 탐구 각 과목이 상위 1~2% 안에 들어야 합니다. 결국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면 의대에 진학할 수 없으니 수능 대비가 철저한 학교로 진학하려는 움직임이 큽니다.

의대 정원이 확대되면 의대 경쟁률이 줄어들까요.

사실 의대를 비롯한 메디컬 계열 학부 모집 인원은 2015학년도부터 늘어왔습니다. 그때부터 의학전문대학원이 학부로 전환하기 시작했고, 2022학년도에는 약학전문대학원도 학부로 바뀌어서 1700명이 한꺼번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메디컬 계열 합격선이 내려가거나 지원 인원이 줄었냐 하면 그렇지 않거든요.
경쟁률이 높아질 수도 있다는 말이네요.

오히려 의대 정원이 확대되면 의대를 준비하는 학생도 그만큼 늘어날 겁니다. 의대 내에서도 수도권 의대를 가려고 반수하는 인원이 증가할 테고 메디컬 계열 내에서도, 상위권 이공 계열에서도 연쇄 이동 현상이 발생할 겁니다. 이탈 인원이 늘면 편입으로 의대를 시도하는 학생들도 있을 거고요. 최근엔 고등학교 3년을 포함해 재수, 삼수는 물론 편입까지 5~6년에 걸쳐 의대를 준비한다고 봐야 합니다.

정부는 이공계 인재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합니다.

취업 상황이나 고용 조건이 나아지지 않으면 효과를 거두기 힘들겠죠. 지금은 첨단 분야 채용조건형 계약학과에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대기업 입사를 보장해준다고 하는 데도 정년이 없고 라이선스가 확실한 의사가 되는 길을 선택하잖아요.

입시 업계에 오래 계신 분으로서 의대 광풍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의대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 가는 곳이었죠. 하지만 의대에 상응하는 다른 학과도 많았습니다. 최상위권 자연 계열이나 인문 계열로 가기도 했죠. 이제는 그 학생들이 모두 메디컬 계열로 몰린다는 건데, 과거 사례를 보면 학과 합격 점수나 선호도는 10년을 주기로 계속 바뀝니다. 수험생이 의대를 목표로 하는 게 행복하다 생각하고, 부모님 역시 아이가 이런 노력과 고통을 겪더라도 의대에 들어가는 걸 바란다면 이 역시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봐야겠죠. 다만 적성보다 성적 위주로 의대 진학을 결정하는 문화에 따른 부작용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5년에서 10년 뒤를 놓고 봐야 할 문제입니다.

임 대표는 “‘문과 몰락’ ‘의대 광풍’ 같은 용어가 현재를 지배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정반대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인적 자원 쏠림 현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학생들이 이과로 쏠리면서 인문 계열 수요가 적지만 나중에는 그게 희소가치로 부각될 수도 있는 일이고요.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문과 학생 숫자가 더 많아서 소위 인서울 대학에 가려면 이과 학생에 비해 문과 학생 수능 등급이 더 높아야 했습니다. 수험생과 학부모님들도 특정 분야로 가면 무조건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는가를 충분히 생각해본 뒤 결정을 내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임성호 #문과침공 #의대광풍 #여성동아

사진 박해윤 기자 동아DB 뉴시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