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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인문개의 밈사이드

골 때리는데 빠져드는 병맛 영화 ‘킬링 로맨스’

김경수(@인문학적개소리) 밈평론가

2024. 01. 26

황당한 B급 영화에서 찾은 진정한 인터넷 밈의 미학에 대하여. 

킬링 로맨스’ 포스터

킬링 로맨스’ 포스터

2023년 가장 호불호가 갈렸던 영화는 이원석 감독의 ‘킬링 로맨스’일 것이다. 개봉 첫날 CGV 에그 지수(관객의 평점)가 61%에 달할 정도로 불호 의견이 상당했다. 온갖 병맛 개그 코드와 예측 불허한 전개가 관객의 호불호를 갈리게 만드는 지점이었다. 1점이나 10점이라는 극단적인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필자는 이 영화가 극장에서 금방 자취를 감출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개봉 2주 차에 역주행이 시작됐다. MZ 관객 사이에서 ‘여래바래 4기’라고 불리는 팬덤이 형성되더니 싱어롱 상영회가 열렸다. 또 N회차를 인증하는 SNS 게시물이 쏟아지며 ‘킬링 로맨스’의 평점은 오르기 시작했다. 이처럼 영화 평점이 회복된 경우는 이례적이다. ‘킬링 로맨스’는 컬트영화의 반열에 올랐지만 총 20만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데는 실패했다.

2023년 개봉한 영화 ‘킬링 로맨스’.  병맛 개그 코드와 황당무계한 설정으로 호불호가 갈렸다.

2023년 개봉한 영화 ‘킬링 로맨스’. 병맛 개그 코드와 황당무계한 설정으로 호불호가 갈렸다.

필자는 ‘킬링 로맨스’를 2023년 최고의 한국영화로 선정하고 싶다. 사수생 오타쿠 범우(공명), 왕년에 이름을 날렸던 여배우 여래(이하늬), 그리고 동물 타조가 법 위에 서 있는 재벌 조나단 나(이선균)의 횡포에 맞서는 이야기다. 여래의 팬인 범우가 우연히 조나단 나가 여래를 가스라이팅하는 모습을 본 뒤 여래를 구할 결심을 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의 스토리가 평범하진 않기 때문에 일반 관객에게 추천하기는 어렵다. 동물과 대화하는 사수생, 하늘을 나는 타조 등 온갖 황당무계한 설정이 난무하는 것을 즐길 준비가 된 관객들을 위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원석 감독은 이 모든 것을 이해하지 말고 느끼라는 듯이 뻔뻔한 태도로 일관한다.

‘킬링 로맨스’를 사랑하는 이유는 뻔뻔한 태도에 담긴 선한 마음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 등 고전 명작의 이미지가 케이블 홈쇼핑 광고, 노래방, 대학로 뮤지컬, 인터넷 밈과 공존한다.

범우와 여래, 여래의 팬클럽 여래바래 3기가 조나단 나와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 장면을 살펴보자. 조나단 나가 “리슨!”이라고 소리치자 느닷없이 H.O.T.의 ‘행복’이 재생되고 노래방에서 봤을 법한 궁서체의 곡 제목과 작사·작곡가 자막이 나오기 시작한다. 조나단 나가 노래를 부르며 여래를 유혹하자 범우와 여래바래 3기는 비의 ‘Rainism(레이니즘)’을 개사한 ‘여래이즘’으로 노래방 배틀에 응수한다. 이때 영화와 노래방 뮤비가 어우러지듯 오타쿠와 가스라이팅 피해자, 학대당한 동물이 어우러지는 기적의 순간이 펼쳐진다. 이 장면은 인터넷 밈의 미학과 맞물려 있다. 인터넷 밈은 여러 이미지의 합성을 통해 제작된다. 그 출처가 무엇이든 한데 어우러져 웃긴 콘텐츠를 만들면 그만이다.



영화, 웹툰 모두 인터넷 밈의 소스일 뿐 위계를 지니지 않는다. 우리는 평소 계층과 출신, 이념 등을 고려해 서로의 위계를 정하는 사고에 익숙하다. 인터넷 밈을 공유하며 즐기는 순간에는 그 위계를 잊을 수 있다. ‘킬링 로맨스’의 윤리적인 아름다움은 거기서 온다. 잠시나마 모두가 하나가 되자는 그 착한 마음에서.

‘킬링 로맨스’에서 ‘조나단 나’로 열연한 故 이선균 배우.

‘킬링 로맨스’에서 ‘조나단 나’로 열연한 故 이선균 배우.

지난해 4월 개봉한 ‘킬링 로맨스’를 지금 다루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조나단 나를 연기한 이선균 배우의 급작스러운 죽음 때문이다. 폭력과 혐오 없이 공생을 도모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의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가 비극적인 죽음에 이른 아이러니를 감당하기 어렵다. 당분간은 이 영화를 돌려보지 못할 듯하다. 비록 우리가 폭력과 혐오의 악순환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살아간다고 한들, 함께 연대해 맞서야 한다는 영화의 희망적인 메시지만큼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킬링로맨스 #B급영화 #여성동아

사진제공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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