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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함규정 한국감성스킬센터장 "아이에게 치미는 화 참아낼 수 있는 자신만의 '감정 응급조치법' 만드세요"

조지윤 기자

2024. 01. 25

아이가 단단한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이다. 하지만 부모도 때론 감정에 휩쓸리기 마련. 감정 코칭 전문가 함규정 교수에게 부모와 아이의 감정 관리법에 대해 들었다. 

자식이 좋은 학교를 나와 어엿한 직장에 다니고 또 좋은 배우자를 만나길 바라는 건, 결국 자식이 행복해지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부모도 알고 있다. 진정한 행복은 이와 같은 조건이 아니라 마음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당장 시험 한두 문제를 더 맞히는 것보다 앞으로 펼쳐질 인생의 고난 속에서 ‘나’를 지킬 줄 아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아이를 채찍질하는 이유는 부모도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법을 몰라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요동치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려고 노력해도 불쑥 화가 튀어나온다.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아이를 볼 때면 자꾸만 속이 끓는다. 기죽고 자신 없어하는 아이의 모습에 속이 상해서 ‘이러면 안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윽박지르곤 한다. 속상함을 분노로 표현하고, 미안함을 한숨으로 드러내면서 아이와 부모 사이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진다.
현재 한국감성스킬센터 센터장이자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 겸임교수로 재직 중인 함규정 교수는 “아이의 행동을 바로잡기 전에 아이의 감정을 먼저 읽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는 기본적으로 부모의 사랑을 원한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헤아려주고 관계를 친밀하게 다질수록 아이는 부모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 하기 마련. 자연스레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려고 애쓴다. 물론 부모와 사이좋은 아이들 모두가 전교 1등은 아니다. 다만 1만큼 하는 아이는 부모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3 또는 5를 달성하려고 노력한다. 이때 아이의 감정을 헤아릴 줄 아는 부모는 스스로의 감정부터 돌볼 줄 아는 사람이다. 함규정 교수와 함께 아이와 부모의 감정을 현명하게 관리하는 법에 대해 살펴봤다.

화를 낸다고 해결되는 건 없어

감정을 잘 관리한다는 것은 어떤 건가요.

느끼는 감정들을 스스로 읽고 돌본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요즘 어떤 감정 상태인지를 대략 알고 내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죠. 스트레스가 쌓일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하죠. “나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찼어.” “열이 턱 밑까지 차올랐어.” 사람은 누구나 감정의 물병이 가슴속에 들어 있어요. 긍정 감정은 가벼워서 쌓이지 않지만 부정 감정은 무거워서 감정의 물병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종이에다 자신의 감정 물병을 그리고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차 있는지 색칠해보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기를 쓰는 것도 방법이에요. 일기를 쓰면 적나라하게 오늘 하루를 성찰할 수 있죠. 이렇게 직접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여유를 내기 힘들다면 자기 전 오늘 내 마음이 어땠는지 한번 생각해 보는 것으로도 충분해요. 되짚어본 오늘이 힘들었다면 내일은 스스로에게 좀 더 잘해줄 수 있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듯 나를 조금만 배려하면 됩니다.

흔히 인내를 미덕으로 여깁니다. 부정적 감정을 표출하는 걸 꺼리는데요.

많은 사람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걸 감정 관리를 잘하는 거라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감추고 억누른 감정은 결국 터져요. 갑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폭발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내 건강을 해치기도 하죠. 무작정 화를 내는 것과 현명하게 표현하는 건 확실히 다릅니다. 화를 낸다는 것은 현재 상황을 개선하고 싶어서일 때가 많아요. 이때 무작정 화를 내면 상대방 입장에서는 내가 분풀이를 하거나 성질부린다고 생각해요. 상대방이 잘못해서 화를 냈는데도 상대는 소리를 높인 나를 도리어 비판하죠. 그래서 화는 현명하고 전략적으로 내야 해요. 이왕 화를 낸다면 속상한 내 마음도 밝히고 상대방이 다시 그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메시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어떻게 화를 현명하게 낼 수 있나요.

소리를 지르거나 거칠게 행동하지 않되 나의 불편한 마음을 전해야 합니다. 지금 화가 난 상태이고 상대가 자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을 하면 됩니다. 상대가 계속해서 나를 화나게 한다면 ‘네가 이렇게 행동하면 나는 이렇게 할게’라며 행동 의지를 보여주세요. 화를 내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화를 낼 필요가 없어요. 누군가 물건을 훔치면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경찰에 신고하면 되는 것처럼요.

부모의 부정적인 감정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부모는 아이한테 굉장히 강력한 존재예요. 아이는 부모의 감정을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직감적으로 알아채죠. 아이가 어릴수록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부모의 감정적 영향력은 더 막강하죠. 특히 사람은 부정적 감정에 더 예민하기 때문에 부모의 우울, 짜증, 화, 두려움 등은 아이에게 쉽게 전염됩니다. 아이가 밝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자라나길 원한다면 부모부터 먼저 감정 관리에 신경 써야 합니다.

부모도 감정 관리가 서툴 수 있는데요.

많은 부모가 하는 이야기예요. 머리로는 감정을 가라앉혀야 한다는 것을 알아도 자기도 모르게 욱하기도 하고요. 그럴 때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으로 ‘초점 전환’을 제안합니다. 감정은 강렬하게 발생했다가 시간이 지나면 점차 가라앉는다는 특징이 있어요. 일단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을 넘기기 위해 생각을 전환하는 행동을 해야 해요. 순간 화가 끓어오른다면 벽지 무늬나 바닥 패턴을 눈으로 세보세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물을 마시고 오는 것도 좋아요. 감정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으로 바꿀 수 있으니까요.

생각이 아니라 행동으로 감정을 바꿀 수 있는 건가요.

감정이 차오른 상태에서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소용없어요. 차라리 손을 씻고 오거나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고 오는 행동이 화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줘요. 화나고 속상할 때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감정의 응급조치법’을 만드는 것을 추천해요. 이는 아이랑 함께 만들어도 좋은데요. 예를 들어 아이가 오늘 학교에서 친구와 싸워서 화가 난다면 일단 목욕을 하게 한다거나 숙제가 많아서 짜증이 난다면 우선 코코아를 한잔 마시게 하는 식이죠.

“어떤 감정이든 말해도 괜찮아”

어린 시절에 감정 관리법을 익히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요.

감정 관리는 습관입니다. 한번 들인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요. 그만큼 한번 잘못 들인 습관을 고치기도 어렵죠. 마음이 아직 말랑하고 유연할 때 좋은 감정 관리법을 익히면 아이는 행복하면서도 성공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릴 때 감정 관리 습관을 들인 아이는 사춘기도 비교적 힘들이지 않고 지나가는데요. 사춘기는 뇌가 그간 지어놓은 집을 와르르 무너뜨리는 시기라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행동 양상을 보여요. 하지만 감정 관리를 습관화한 아이들은 스스로 휘몰아칠 때, 집을 나가는 것이 아니라 목욕을 하거나 코코아를 마시며 감정을 다독여요. 배고플 때 밥을 먹고 졸릴 때 자는 것처럼 생활 습관이 된 것이죠.

감정 표현이 서툰 아이들이 감정을 잘 관리하게 돕는 방법이 있을까요.

아이가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심리적 안전감을 조성해주세요. 아이가 힘든 감정을 드러냈을 때 “화를 내면 나쁜 아이야” “울면 바보야” 등 부모가 혼을 내면 아이는 감정을 숨기게 됩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서 안 느끼는 것은 아니거든요. 이렇게 숨겨진 감정들은 아이의 감정 물병에 쌓이다가 어느 순간 폭발하는 시기가 와요. 그러니 아이에게 “어떤 감정이든 말해도 괜찮아”라고 안심시키는 것이 핵심입니다. 서로 감정에 대해 솔직히 소통하면서 차근차근 감정을 이끌어주면 돼요.

심리적 안전감은 어떻게 조성하나요.

우선 아이에게 꼬치꼬치 캐묻지 않아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눈치챘다고 해서 자꾸 아는 척하고 해결책을 제안하려 든다면 아이는 거부감을 느낍니다.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면 부모의 해결책이 유치하고 뻔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아이의 표정이 좋지 않으면 “무슨 일 있어?”라고 묻기보다는 아이가 좋아하는 음료수 하나 갖다 주고 따로 할 일을 하세요. 면담처럼 마주 보고 앉지도 말고 멀리 떨어져서 혼자 휴대폰을 보든 책을 읽든 자유롭게요. 부모가 아이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편안하게 둔다면 어느 순간 아이가 먼저 “나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하며 말을 붙여와요.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정말 그래요. 아니면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가자며 같이 산책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에요. 마주 보고 있는 것보다 같은 곳을 보면서 걸어갈 때 마음을 터놓기 쉽거든요.

감정 표현이 과한 아이들은 어떻게 지도해야 하나요.

아이가 외향적이거나 평소 에너지가 높은 경우에는 작은 사건에도 크게 반응할 수 있어요. 이럴 때 부모가 감정적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중요해요. 부모가 같이 흥분하며 “왜 이렇게 난리야!”라고 자제시키는 건 별 도움이 안 됩니다. 병원에서 의료진이 흥분한 환자나 보호자에게 “진정하세요”라고 말하면 오히려 반발감을 사는 것처럼요. 감정은 전염되기에 한쪽이 불붙을 때 다른 한쪽이 차분하게 가주면 서서히 섞여요. 가만히 안아주거나 등을 천천히 다독이는 것도 아이의 감정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됩니다. 부모의 감정을 따라 아이의 흥분도 점차적으로 가라앉아요.

부정적인 단어는 나쁜 예언이 될 수도

교수님도 자녀분과 다툴 때가 있나요.

기본적으로 잘 지내지만 저 역시 사람인지라 감정적 한계를 느낄 때가 있죠. 어느 날은 아이가 아침부터 게임을 시작해서 제가 퇴근할 때까지 요지부동이더군요. “야!” 소리가 목 끝까지 치밀고 화가 났죠. 일단은 샤워부터 하러 갔어요. 10분 정도 물을 맞다 보니 마음이 서서히 안정되더라고요. 같이 밥을 먹으면서 “네가 게임을 온종일 해서 엄마가 마음이 속상하다”고 이야기를 꺼냈죠. 이렇게 대화할 때 중요한 것은 “네가 앞으로 게임을 안 할 것이라고 믿어”라고 말하지 않는 거예요. 이 말은 곧 ‘네가 나중에는 정신 차리고 공부한다고 믿어’라는 뜻이잖아요. 아이가 해낼 역할이 아니라 아이의 존재 자체를 인정해줘야 해요. “난 네가 내 아들이라서 마음에 들어” 이렇게요. 부모가 아이를 계속 믿어주면 아이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조절합니다. 그 시기가 언제 올지 모르니 부모 입장에서 견디기 힘들지만요.

이미 아이와 관계가 나빠도 개선할 수 있을까요.

가족 간의 감정의 끈은 언제든 연결될 수 있어요. 제가 2년 전에 코칭한 대기업 한 임원은 딸과 사이가 정말 안 좋았어요. 딸이 엄마가 출근하면 방에서 나오고, 퇴근하면 방으로 들어갈 정도였죠. 그런데 그분이 먼저 “네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다가가자 아이가 마음을 열기 시작했어요. 이때 “네가 먼저 엄마한테 그랬었잖아” 등의 말은 절대 하면 안 돼요. 아이가 당장은 반응이 없어도 닦달하지 말고, 입을 닫고 들어준다면 일주일 안에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에게 싫은 소리를 해야 할 때 어떻게 상처 주지 않고 전할 수 있을까요.

아이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이유는 아이가 미워서가 아니라 안 좋은 행동을 자제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을 명심해야 해요. 거친 단어에는 중독성이 있어요. 처음에는 1단계로 말해도 아이가 듣지만 그다음엔 3단계, 5단계의 거친 말들을 해야만 행동하죠. 일단 사납고 센 단어들은 다 빼주세요. “내가 너 때문에 못 살아!” “앞으로 뭐가 되려고 그러니?” 등등 화가 나면 자신도 모르게 아이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부모의 말은 아이에게 일종의 예언처럼 작용할 수 있어요. 부모가 아이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지속적으로 하면 아이의 머릿속에 각인되기 때문이죠. 하고 싶은 말의 핵심만 담아서 단호하게 전하세요. 감정은 빼고 차분하게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마지막으로 감정 관리로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우선은 부모의 마음부터 케어해주세요. 비행기에서 비상시 산소마스크를 낄 때 어른부터 마스크를 쓴 후 아이를 해주게 돼 있어요. 마찬가지예요. 엄마의 마음이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어요. 우리 아이는 엄마가 행복한지 아닌지를 금세 알아챕니다. 바쁘시겠지만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사소한 이벤트들을 준비해주세요. 아이를 보살피듯 엄마 자신에게도 따듯하게 대해주셔야 이 기나긴 양육을 견뎌낼 수 있어요. 결국 엄마의 감정이 행복해야 아이의 일상과 인생이 행복해진다는 걸 꼭 기억해주세요.


#감정관리 #마음건강 #함규정 #여성동아

사진 박해윤 기자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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