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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OTT 추천| 이 겨울, 서정을 담은 영화 4편

문영훈 기자

2024. 01. 15

‘O!리지널’은 OTT 플랫폼 오리지널 콘텐츠 및 익스클루시브 콘텐츠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범람하는 콘텐츠 세상 속 등대까진 못 돼도 놓치고 갈 만한 작품을 비추는 촛불이 되길 바랍니다.

고레에다 감독의 출발
‘환상의 빛’

누구나 어릴 적 상실의 경험이 있다. 갑자기 전학 가게 된 친구를 떠나보낸다든지, 키우던 강아지가 세상을 떠난다든지. 주인공 유미코에겐 할머니가 행방불명되기 전 마지막 대화를 나눴던 장소, 다리 위다. 유미코는 어른이 돼서도 왜 멀어져가는 할머니를 잡지 못했는지를 남편 이쿠오에게 털어놓을 만큼 그 장면은 유미코에게 가까이 있다. 새로 태어난 아이와 일상을 보내던 유미코에게 그의 삶을 뒤흔드는 두 번째 상실의 경험이 발생한다. 이쿠오가 기찻길에서 자살한 것. 유미코는 왜 이쿠오가 자살했을까를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한다.

‘환상의 빛’은 일본을 대표하는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1995년 데뷔작이다. 그는 영화를 찍기 전 방송사 외주 프로덕션 TV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일했다. 일본 고위 관료의 자살을 다룬 다큐멘터리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를 촬영하며 남편의 자살 후 남겨진 아내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995년 발표된 작품이지만 한국에서는 2016년에서야 개봉했다. 당시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고레에다는 “20여 년 전에 만들었는데도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는 점에서는 지금까지 내 영화에서 계속되고 있는 모티프와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의 죽음에 대한 관심은 후기작 ‘원더풀 라이프’(1999), ‘아무도 모른다’(2004), ‘걸어도 걸어도’(2008)로 이어진다.

‘환상의 빛’에는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데뷔작’이라는 설명이 따라다닌다. 이 수식에 대한 개인차는 있겠지만 영화의 영상미는 압도적이다. 인위적인 조명을 최대한 배제해 자연스러운 빛과 어둠이 도드라진다. 카메라는 한 뼘 떨어져서 인물, 도시와 시골의 풍경을 조망했다. 한컷 한컷을 캡처해 엽서로 만들고 싶은 충동이 인다.

함께 보면 좋을 작품
영화 ‘괴물’(2023)과 ‘걸어도 걸어도’

한 여성의 전환점
‘다가오는 것들’

위기는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찾아온다. 꽃과 책으로 둘러싸인 중산층의 삶을 살고 있는 나탈리는 고등학교 철학 교사로 일하며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분주하지만 평온한 일상을 보낸다. 20년간 함께 세월을 보낸 남편 하인츠는 어느 날 다른 사람과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고, 자신에게 히스테리를 부려 골칫거리로 생각했던 어머니는 죽는다. 출판 트렌드에서 멀어졌다는 이유로 필진으로 참여하던 철학 총서에서 배제되기도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영화의 제목은 ‘사라지는 것들’ 혹은 ‘지나간 것들’이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떠난 빈 공간에는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경험들로 채워진다. 나탈리는 남편과 항상 듣던 슈만과 브람스 음악 대신 포크송을 제자와 함께 들으며 “나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자유를 되찾았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훌쩍 여행을 떠나거나 일탈을 하는 등 중년의 위기에 대한 쉬운 해결책은 등장하지 않는다. 나탈리는 철학책을 곁에 끼고 다니는 지적인 여성이지만 고양이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처연한 면도 갖고 있다. 그는 묵묵히 주어지는 고통을 견뎌내며 ‘다가오는 것들’을 맞이할 뿐이다.

누구보다 지적인 여성으로 어울리는 이자벨 위페르가 주인공 나탈리를 연기했다.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두 번 수상한 프랑스 대표 배우다. 그의 얼굴에 서린 꼿꼿함과 공허함이 아니었더라면 영화의 감흥은 한층 줄었을 것이다.


함께 보면 좋을 작품
영화 ‘어나더 라운드’ ‘어느 멋진 아침’

중요한 건 꺾였는데도 그냥 하는 마음
‘인사이드 르윈’

앨범 2장을 낸 포크 가수 르윈 데이비스의 삶은 너절하다. 듀오로 활동했던 파트너는 자살했고, 잘 곳이 없어 지인들의 집 소파를 전전한다. 밤에는 동네 술집에서 성질을 죽이지 못하고 손님에게 핀잔을 주다 얻어맞기도 하며, 그 와중에 임신한 여자 친구의 낙태 수술 비용도 마련해야 한다. 감독 코엔 형제는 포크 가수 데이브 반 롱크의 자서전 ‘더 메이어 오브 맥도갈 스트리트’를 바탕으로 ‘인사이드 르윈’을 만들었다. 책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뉴욕을 배경으로 노래 부르는 삶을 산 한 뮤지션의 이야기를 실었다. 전설적 가수 밥 딜런은 롱크의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영화는 무기력으로 가득하다. 뉴욕과 시카고의 겨울은 아름다운 대신 냉정하다. 관객은 르윈이 노래 부르는 장면에서 미약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예술가의 삶은 각박하지만 잠시 음악과 르윈만 존재하는 세상에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을 “중요한 건 꺾였는데도 그냥 하는 마음”으로 변주한 박명수의 명언이 떠오른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 오스카 아이작의 역할이 컸다. 짙은 눈썹과 움푹 파인 눈을 가진 그는 최근 거대 예산 작품에서 근엄한 역할을 주로 맡았다.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저항군 조종사인 포 대머론, ‘듄’의 레토 아트레이데스 1세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의 눈은 처량하기 그지없다. 줄리아드음악학교를 졸업한 오스카 아이작은 처연한 포크송을 완벽하게 부른다. 가수 출신인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르윈의 옛 음악 동료 짐 역을 맡아 피터, 폴 앤 메리의 히트송 ‘500 miles’를 부르는 장면도 이 영화의 백미다.


함께 보면 좋을 작품
영화 ‘미스터 터너’ ‘본 투 비 블루’

‘없음’과 ‘없음’이 만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진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책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서 영화 ‘러스트 앤 본’과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 기들’을 평한 글로 이렇게 썼다. 말 못 하는 인간과 양서류 인간의 사랑을 다룬 이 영화에도 어울리는 이야기다.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이 칼을 겨누던 시절, 미국은 정부 산하 비밀 기구를 운영한다. 주인공 일라이자는 이곳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 그는 아마존에서 잡혀 온 양서류 인간과 교감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양서류 인간이 생체실험에 이용돼 죽임을 당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일라이자는 동료, 이웃과 함께 양서류 인간을 구출하기로 마음먹는다. 일라이자와 괴생명체의 정서적 교감은 육체적 상호작용으로 이어진다.

“나도 그 사람처럼 입을 뻥긋거리고 소리를 못 내요. 그럼 나도 괴물인가요?”

일라이자는 괴생물체 구출 프로젝트에 참여하길 주저하는 이웃, 자일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장애가 있는 일라이자 외에도 그 계획에 함께하는 이들은 모두 당시 사회 기준에서 문제가 많은 인물이다. 동료 청소부인 흑인 여성, 과학자로 살아가는 러시아 스파이, 실직한 게이 화가 등. 두 사람이 빚어내는 사랑의 모양이 다르듯 사람의 모양도 저마다 다르다.


함께 보면 좋을 작품
영화 ‘판의 미로’ ‘그녀’

#환상의빛 #다가오는것들
#인사이드르윈
#셰이프오브워터 #O!리지널

사진제공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디즈니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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