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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철학 열풍 일으킨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저자 강용수

문영훈 기자

2023. 12. 28

삶을 비관한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학계에서 사실상 버림받고 프랑크푸르트에서 강아지와 함께 고독한 40대를 보냈다. 그의 존재는 60대가 돼서야 인정받게 된다. 연말을 달군 책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의 저자 강용수는 “그의 삶 자체에서 우리가 되새겨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한다. 

2023년 베스트셀러 시장은 불혹으로 시작해 불혹으로 끝났다. 1월의 베스트셀러는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30년간 정신분석 전문의로 활동한 김혜남 작가가 마흔 살의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담은 책이다. 다시 돌아온 겨울,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가 온오프라인 도서 시장을 장악했다. “산다는 건 괴로운 것이다” “인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시계추와 같다”고 말한 독일의 철학자이자 대표적인 염세주의자로 불리는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에 독자들은 열광하고 있다.

10년간(2011~2021) 전국 대학 철학과 4곳 중 하나가 사라지고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조차 한물간 시대, 왜 사람들은 236년 전 태어난 철학자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일까. 쇼펜하우어의 격언을 정리한 책 여러 권이 동시에 베스트셀러 10위권 안에 안착한 것을 보면, 유명 배우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책을 소개한 것만을 ‘쇼펜하우어 열풍’의 이유로 보기는 어렵다. 12월 만난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의 저자 강용수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원조차 “이 책이 왜 이렇게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지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강 연구원은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쇼펜하우어, 니체에 관한 논문을 저술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강 연구원에게 18세기에 태어난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21세기 한국에서 사랑받는 이유를 물었다.

타인과의 적절한 거리가 행복의 시작

왜 쇼펜하우어는 사는 건 고통이라고 말하나요.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욕망 때문에 고통이 빚어진다고 봤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더 많이 갖고 싶어 하지만 그건 쉽지 않죠. 그 절망감에 고통을 느낍니다. 가까스로 욕망이 충족된다고 해도 행복한 건 아닙니다. 과잉 충족으로 인해 느끼는 따분함, 지루함, 권태 역시 고통이죠. 결핍과 과잉을 왔다 갔다 하며 인간은 계속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쇼펜하우어는 자살을 찬미한 철학자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에 따르면 사는 건 고행인데, 인간은 왜 살아야 하나요.

쇼펜하우어가 존재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인 걸로 봤지만 그렇다고 자살해야 한다고 말한 건 아닙니다. 죽는 건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목숨 하나가 사라진다고 해서 세상의 고통이 사라지는 게 아니죠. 쇼펜하우어는 이를 무지개와 물방울에 비유했어요. 물방울 하나가 사라진다고 무지개가 사라지는 건 아닌 것처럼요. 오히려 자살은 가족과 친지들에게 고통을 부가합니다. 또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삶에 대한 강한 긍정일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가요.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하잖아요. 채무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사람이 있다면 돈이 그만큼 필요했다는 것이고, 불치병에 걸려 자살하는 사람이 있다면 건강에 대한 갈망이 큰 겁니다. 그러니까 누가 자살하겠다고 한다면 그 메시지 안에는 삶에 대한 긍정과 욕망이 들어가 있는 겁니다. 조난 구조 요청인 거죠. 또 하나 덧붙인다면, 삶의 고통에 대해 설파한 쇼펜하우어는 장수했습니다. 마냥 비관적이기만 했다면 그렇게 오래 살지 않았겠죠. 쇼펜하우어의 인생 자체가 삶에 대한 부정이나 염세주의는 충분히 살아본 뒤에 결정을 내리라고 말하고 있죠.

인간 욕망의 대표적인 것으로 돈과 명예를 얻고 싶어 합니다.

쇼펜하우어는 돈을 나쁘게 보지는 않았어요. 자유로워지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 역시 물려받은 재산이 있기에 사색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고요. 다만 얻는 만큼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고 봤습니다. 자유로워지기 위한 수단일 뿐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는 거죠. 명예를 얻기 위한 개인의 노력에 대해선 부정적으로 봤어요. 출세를 위해 우리는 남들에게 고개를 숙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도리가 없죠. 그렇게 사람들에게 맞추다 보면 자신 마음의 평화를 헤치게 됩니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사람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하나요.

가장 중요한 건 건강입니다. 운동과 산책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을 건강을 해치면서 일하는 사람이죠. 요즘으로 보면 번아웃을 겪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두 번째로는 마음의 평온입니다. 그러려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줄여야 한다고 봤어요. 타인을 만나면 비교하기 시작하고 시기와 질투가 생기고 상처받는다고 생각했어요.

홀로 지내라는 건가요.

그렇다고 사람들을 만나지 말라는 건 아닙니다. 타인의 마음에 들려는 행동을 애써서 하지 말라는 거죠.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 이야기를 했는데요. 고슴도치는 겨울을 견디기 위해 다른 고슴도치와 붙어 있어야 하지만 가시 때문에 서로를 찌르니까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죠. 쇼펜하우어는 그 거리가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또 중요한 건 자신에 대한 성찰입니다.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자기가 할 수 있는 능력과 적성을 찾아 자립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아 성찰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스스로에 대해 아는 게 쉽다는 뜻은 아닙니다. 잘하는 걸 찾았다고 생각해서 거기에 몰두해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수 있고요. 이를 주장한 쇼펜하우어 역시 오랫동안 절망 속에 살았습니다. 서른이라는 이른 나이에 야심 차게 자신의 철학이 담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출간했지만 독자들에게 거의 읽히지 않았고요.

아웃사이더였던 철학자

쇼펜하우어 이전 서양의 철학자들은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파악해왔다. 세계의 합리적인 측면, 인간 친화적 측면을 강조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통해 인간 본성을 삶에 대한 맹목적인 의지, 그러니까 욕망으로 해석했다. 인간을 욕망에 사로잡힌 동물로 해석하는 그의 시각은 낯선 것이었다.

쇼펜하우어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 역시 풍족한 삶을 살았는데 어떻게 비관적인 주장을 하는 철학자가 됐나요.

당시 전쟁으로 유럽이 황폐화한 상황이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어릴 적 유럽의 여러 도시로 여행을 다녔는데, 그때 시민들이 겪는 참상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권태를 느낀 것 같습니다. 그는 “천국에는 권태만 남았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가난한 사람은 삶에 허덕이는데 부유한 사람은 지루함과 권태라는 고통을 느끼는 걸 보면서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쇼펜하우어가 활동하던 시기, 철학계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이미 당대에 칭송받던 헤겔은 인간의 이성이 역사 발전의 주체가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역사는 발전하고 더 자유로운 단계로 나아간다는 주장이었죠. 그러다 보니 쇼펜하우어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쇼펜하우어는 헤겔을 비롯한 당대 철학자를 비난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괴팍한 성격이기도 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당시 교수들을 ‘강단 철학자’라고 비난했습니다. 대학 강단에만 갇혀 있다는 뜻이죠. 결국 헤겔과 같은 시간에 강의를 열었다가 참패를 당해 학계에서 비난받고, 교수 자리를 얻지 못했죠.

쇼펜하우어가 주목받은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1851년, 63세에 ‘소품과 부록’을 출간하며 화제에 올랐습니다. 그렇게 이름이 나자 일흔 살 생일 때는 유럽 곳곳에서 손님들이 찾아오기도 했죠.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야심 차게 낸 철학 서적이라면 ‘소품과 부록’은 청춘들을 위해 쓴 에세이입니다. 쇼펜하우어는 뛰어난 문장가이기도 합니다. 수사적인 표현에 능하고 문체가 뛰어납니다. 후대 쇼펜하우어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는 니체, 아인슈타인, 바그너 등이 모두 이 책을 참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강 연구원은 “쇼펜하우어의 인생을 보면 고통의 경험이 자기 자신을 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고 말했다.

“자신을 알게 되는 건 어쩌면 절망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 같아요. 나는 뭐가 문제일까를 생각해보는 시간이죠. 쇼펜하우어는 남들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정작 그도 교수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실패했습니다. 그의 이름을 알린 ‘소품과 부록’은 모든 걸 내려놓고 강아지와 산책 다니며 노년을 보낼 때 쓰기 시작했습니다. 내려놓는 경험이 지금의 쇼펜하우어를 만든 거죠.”

“내 40대를 돌아보며”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와 대표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와 대표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출판사에서 처음 요청이 왔을 때는 거절했어요. 하지만 기획 의도가 좋다고 생각해서 응하게 됐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저도 타인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40대를 보냈습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며 쓰다 보니 내용이 독자들에게 더 잘 가닿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사람들이 쇼펜하우어 책에 열광할까요.

요즘 삶이 힘든 분들이 많잖아요. 고독, 실업, 가난 등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죠. 그에 대한 해답을 철학자로부터 얻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또 인간의 본성은 유사하잖아요. 20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뛰었지만 19세기 초의 독일 사람이나 2023년의 한국 사람이나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인간 본성 대한 쇼펜하우어의 주장이 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어떤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나요.

인생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삶을 힘들게 하는 원인은 너무 많죠. 아픈 몸일 수도 있고, 돈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어그러진 관계일 수도 있고요. 쇼펜하우어는 그런 고통에 관한 이야기를 모두 다뤘습니다. 저는 ‘행복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는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몇 달 전만 해도 저는 제가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지 전혀 몰랐거든요. 그렇게 염세적인 주장을 펼치던 쇼펜하우어도 자신이 행복한 노년을 보낼 줄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어쩌면 좋은 일이 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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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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