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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토종꿀로 즐기는 다채로운 꽃의 맛

김나영 서울대학교 푸드비즈랩 연구원

2023. 12. 21

매년 11월이 되면 토종벌이 1년 동안 부지런히 모은 꿀이 결실을 맺는다. 바로 토종벌이 생산한 꿀, 토종꿀이다. 대한민국에는 꿀을 채집하는 2종류의 꿀벌이 존재한다. ‘토종벌’ 또는 ‘한봉’이라 부르는 재래종 꿀벌(Apis cerana)과 ‘서양벌’ 또는 ‘양봉’이라 부르는 서양종 꿀벌(Apis mellifera)이다. 토종벌은 오랜 세월 한반도에서 살아온 꿀벌을 의미한다. 서양벌은 1917년 독일 선교사에 의해 한국으로 들어온 종이다. 두 꿀벌이 꽃에서 꿀을 따며 생활하는 점은 같지만, 외형적인 부분을 비롯해 꿀을 채집하는 습성도 매우 다르다.

열심히 일하고 많이 먹는 서양벌,
천천히 일하고 적게 먹는 토종벌

서양벌과 토종벌은 외형적으로 체구와 혀의 길이에서 차이를 보인다. 토종벌은 서양벌에 비해 체구가 작고 혀의 길이가 짧다. 이러한 외형적 차이는 찾아가는 꽃의 종류로 이어진다. 서양벌은 체구가 큰 편이라 주로 큰 꽃에서 꿀을 따며, 긴 혀를 이용해 깊은 꿀샘에서도 꿀을 얻을 수 있다. 서양벌보다 체구가 작은 토종벌은 작은 꽃 속에 파고들어 꿀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 혀가 짧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꿀샘이 얕은 다양한 들꽃에서 꿀을 채집한다.

두 꿀벌은 꿀을 모으고 그 꿀을 소비하는 습성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다르게 말하면 일꾼이 일을 하는, 그리고 일을 하기 위해 먹는 습성의 차이다. 서양벌은 꿀을 빠르게 모으고, 이에 비례하여 많은 양의 꿀을 자체적으로 소비한다. 서양벌 한 마리는 꽃의 꿀샘에서 한 번에 약 37㎎의 꿀을 따고, 하루에 약 100㎎의 꿀을 소비한다. 주로 큰 꽃에서 꿀을 따며 몸집이 커서 생산성도 좋다. 열심히 모은 만큼 자신이 모아둔 꿀을 많이 먹기도 한다. 적절한 시기에 꿀을 꺼내지 않으면 서양벌이 꿀을 다 먹어버려 빈 벌집을 마주할 수도 있다. 또한 서양꿀은 꽃의 다양한 개화 시기에 따라 1년에 여러 차례 수확된다.

토종벌은 천천히 꿀을 모으는 대신 모아둔 꿀을 덜 먹고 축적한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토종벌은 한 번에 약 16㎎의 꿀을 딴다. 이는 서양벌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토종벌은 생산성이 낮지만 하루에 40㎎의 꿀을 소비하며, 그만큼 꿀을 덜 먹고 차근차근 모으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토종꿀은 토종벌이 봄꽃, 여름꽃, 가을꽃에서 채밀한 꿀이 축적되기를 기다렸다가 1년 중 꽃이 다 진 11월 단 한 번 수확한다. 이때 추운 겨울이 지나 꽃이 다시 피는 봄까지 토종벌이 월동할 수 있도록 적절한 양의 꿀을 남겨두고 인간이 먹을 꿀만 내린다.

사계절의 향을 농축한 토종꿀

꿀벌을 모으기 위해 양봉틀을 설치한 모습.

꿀벌을 모으기 위해 양봉틀을 설치한 모습.

꿀벌을 사육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사육 방식은 채밀을 위해 개화 시기에 맞춰 밀원식물을 따라 벌통을 이동하는 ‘이동식’과 벌통을 이동하지 않고 주변 밀원식물을 이용하는 ‘고정식’이 있다. 꿀벌이 꿀과 화분을 채취하는 식물을 밀원식물이라 한다.



서양벌은 벌통을 놓는 자리에 잘 적응하는 습성이 있어 이동식과 고정식 양봉이 모두 가능하다. 서양벌은 자체적인 꿀 소모량이 많아 그만큼의 꿀을 부지런히 모으는 것이 중요한데, 고정식 양봉은 연중 꾸준히 채밀할 수 있는 밀원식물을 확보하기 어려워 이동식 대비 생산성이 낮다. 반면 이동식 양봉업자는 벌통을 차에 싣고 개화 시기에 맞춰 밀원식물을 따라 이동하며 꿀을 모은다. 이를테면 5월에 아까시나무 꽃을 따라 이동하며 모은 꿀이 아까시꿀, 6월에 밤꽃을 따라 이동하며 모은 꿀이 밤꿀이다. 이처럼 특정 시기에 특정 꽃의 이름을 달고 있는 꿀은 대부분 서양벌이 딴 꿀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까칠한 토종벌은 벌통을 놓는 자리에 매우 민감하여 밀원식물을 따라가는 이동식 채밀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토종벌은 인적이 드문 곳에 정착하여 봄부터 10월까지 그 주변의 피고 지는 들꽃에서 꿀을 모은다.

흔히 토종꿀은 야생의 여러 꽃에서 꿀을 땄다고 해 ‘잡화꿀’, 다양한 종류의 야생화에서 꿀을 얻었다고 해 ‘야생화꿀’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토종꿀에는 그 지역의 봄, 여름, 가을 동안 산과 들에 피는 다채로운 꽃의 향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즉, 토종꿀을 맛본다는 건 단순히 꿀을 맛보는 것 이상으로 그 지역에 피고 지는 사계절의 농축된 향을 즐기는 것이다. 토종꿀은 벌통이 놓여 있는 지역에 따라 색, 맛, 향이 다르다. 각 지역의 기후와 그 지역에 생육하고 있는 식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강원 평창 사자산에서 난 토종꿀은 마가목, 찰피나무, 음나무, 붉나무의 꽃이 녹아 있어 짙은 암갈색에 강렬한 꽃향기와 산미가 특징이다. 충북 단양 소백산에서 난 토종꿀은 고삼, 헛개나무의 꽃이 녹아 있어 연한 황갈색에 시원한 나무 향이 난다.

같은 지역의 토종꿀이라도 벌통의 위치에 따라 고도나 일조량이 다르기 때문에 맛과 향에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경기 연천 내에서도 높은 고도의 비무장지대(DMZ) 산골짜기에서 얻은 토종꿀은 골짜기를 둘러싼 개복숭아나무, 산딸기나무 등을 밀원으로 해 꽃향기가 강하다. 한편 임진강 상류 주상절리에서 채취한 토종꿀은 귀룽나무, 참싸리 등을 밀원으로 해 새콤달콤한 과일 향이 난다. 같은 지역도 매년 기후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꿀을 수확한 시기에 따라 맛과 향이 약간씩 달라지는 것도 흥미롭다.

내 입맛과 취향에 맞는 달콤한 선택

토종꿀은 벌통이 놓여 있는 지역에 따라 색, 산미, 맛 등이 다르다(충북 단양 소백산, 강원 평창 사자산, 경기도 연천 비무장지대(왼쪽부터)).

토종꿀은 벌통이 놓여 있는 지역에 따라 색, 산미, 맛 등이 다르다(충북 단양 소백산, 강원 평창 사자산, 경기도 연천 비무장지대(왼쪽부터)).

꿀을 선택할 때 어떤 것이 더 좋은지 고민할 터이다. 특히나 토종꿀과 서양꿀 중 무엇이 더 가치 있는지에 대한 오해가 존재한다. 일부 소비자는 토종꿀은 자연에서 귀하게 얻은 꿀로 성분과 약성이 서양꿀보다 우수하다고 오해한다. 한 가지 꽃에서 채밀한 꿀이 여러 꽃에서 모은 잡화꿀인 토종꿀보다 더 좋은 꿀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아까시꿀이나 밤꿀 같은 특정 꽃에서 얻은 서양꿀은 해당 꽃에 따라 강렬하고 독특한 향을 가진다. 토종꿀은 한곳에서 자리를 지키며 1년 동안 주변의 다양한 들꽃에서 꿀을 모아 그 지역의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복잡하고 다채로운 향을 지닌다.

서양벌과 토종벌이 만든 꿀은 각각 다른 맛과 향을 낸다. 서양꿀은 꽃에 따라서, 토종꿀은 지역의 시공간에 따라서 또 다른 달콤함을 느낄 수도 있다.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꿀이 더 좋은지는 꿀의 맛과 향에 대한 개인의 취향에 따라 결정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입맛과 취향에 맞는 꿀이 가장 좋은 꿀이다.


#꿀 #꿀벌 #토종꿀 #서양꿀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출처 위키트리 푸드비즈니스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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