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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개의 밈사이드

하야오와 전청조 말투가 만든 웃음의 두 얼굴

그대들은 “I am ~에요” 밈을 어떻게 쓸 것인가

김경수(@인문학적개소리) 밈평론가

2023. 12. 04

전청조가 누군가와 나눈 카톡내용.

전청조가 누군가와 나눈 카톡내용.

지난 10월 25일, 제작 기간이 무려 7년 6개월에 달하는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개봉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인터넷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비록 은퇴를 번복하기는 했지만, 하야오 감독의 은퇴작이었다는 화제성 때문이다. 화제성에 이어 우스꽝스러운 인터넷 밈도 생겼다. 네티즌이 이 작품의 제목을 기억나는 대로 대충 말하는 것. 필자 역시 이 인터넷 밈을 보면서 계속 키득키득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제목은 일본 작가 요시노 겐자부로의 청소년 소설에서 빌려온 것이다. 의문형으로 적힌 이 제목은 사실 영화 제목으로는 다소 무거운 느낌이다. 영화보다는 인생론이나 자기 계발 강의와 어울린다. 요시노 겐자부로의 원작은 1937년에 출간된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다. 한창 일본이 군부를 중심으로 파시즘에 물들기 시작한 시기에 나왔다. 인생론이니만큼 아이(코페르)와 외삼촌의 인생 상담이 담겨 있다. 당시 이 책은 금서로 지정되었다. 전쟁을 반대하는 부분 때문이다. 하야오는 어릴 적 어머니의 추천으로 이 책을 접했고, 이는 그의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인 반전(反戰)에 영향을 주었다. 그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이 책을 영화화한 것은 의미심장하지만, 살펴보면 제목만 같고 내용은 전혀 다르다. 제목만 빌린 것이 신의 한 수다.

전청조가 맛집이라고 부른 곳의 리뷰에는 그의 말투를 흉내낸 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전청조가 맛집이라고 부른 곳의 리뷰에는 그의 말투를 흉내낸 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인터넷 밈은 실수에서 비롯되었다. “그대들, 이따위로 살 것인가” “그대들, 언제까지 그리 살 것인가” 등 뜬금없는 문장을 들어도 우리는 상대가 하야오의 신작을 말하는 것임을 안다. 아무렇게나 말해도 의문문인 문장구조와 거기에 담긴 뉘앙스가 익숙하기 때문이다. 물론 공적인 자리에서 같은 실수를 하면 따가운 눈초리를 받겠지만, 대화할 때의 실수는 왜인지 귀엽고 웃기다. 원제목이 워낙 긴 탓에, 그 제목을 정확히 기억하기 힘들다는 걸 모두 알아서다. 장난기 넘치는 네티즌은 여기서 멈출 리 없다. ‘그대들 ~것인가’ 등의 문장구조를 공유하되 자기가 할 말을 하는 방식으로 밈을 만들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하나의 놀이가 된 셈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둘러싼 밈은 이뿐만이 아니다. 오래전 ‘무한도전’에서 시작된 ‘무야호’ 밈이 유행할 때, 어감이 비슷해서 미야자키 무야호로 불리기도 했다. 어쩌면 뜻을 잘 모르고 뉘앙스만 공유할 때, 온갖 오해와 왜곡이 생기고 예기치 못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는 비단 하야오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사실 이 놀이는 낯설지 않다. 어떤 단어나 문장, 심지어 노래의 뉘앙스만 공유하는 일도 흔하다. 특정 뉘앙스가 형성되는 규칙이 생기면 어떤 웃긴 장난도 허용된다. “그대들 ~것인가” 인터넷 밈이 유행할 즈음에 또 다른 밈이 화제가 됐다. 최근 황당한 혼인빙자사기로 화제가 된 전청조의 말투를 흉내 낸 밈이다. 자산이 51조 원에 달하는 재벌 3세라고 상대를 속여야 하는 만큼 그녀는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교포 말투를 썼다. 전청조가 누군가와 나눈 카톡이 언론에 공개되자마자 네티즌은 그 말투를 따라 했다. 전청조가 한 말 중 “I am 신뢰에요”는 문법상 말이 되지 않는다. 네티즌은 물론 광고 등에서도 “I am ~”를 따라 하면서 그 파급력이 커졌다. 네티즌에 의해 ‘무한도전’과 합쳐지기도 하고, 전청조가 맛집이라고 부른 곳에 가서 전청조 문체로 후기를 남기기까지 한다. 이 두 인터넷 밈이 동시에 유행한 것은 왜인지 의미심장하다.

광고까지 확산된 전청조의 밈.

광고까지 확산된 전청조의 밈.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웃음의 이면에는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상대를 비하하고 교정하려는 욕망이 있다고 분석했다. 슬랩스틱을 생각하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슬랩스틱은 코미디언이 자연스러운 몸짓을 일부러 느리게 한다든지, 어긋나게끔 움직이면서 관객을 웃기기 때문이다. 이를 흔히 비하적 웃음이라고 한다. 하야오의 영화 제목도 비슷한 맥락으로 생각할 수 있다. 영화라기엔 너무 길고 부자연스러운 제목이 웃음을 자아내도록 만드는 것이다. 다만 하야오 밈에는 긍정적인 면이 존재한다. 최근 가수 카더가든을 “칼 든 강도”로 부르는 인터넷 밈이 유행했다. 카더가든의 자음만 공유하더라도, 우리는 그가 칼 든 강도로 불리든 카더가든으로 불리든 간에 그라는 것을 느낀다. 뉘앙스만은 공유하고 있어서다. 서로의 실수를 그냥 웃어넘기는 관용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미덕이라는 생각이 든다.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인간이 두려워하는 일 중의 하나다. 잘못된 것을 교정하든, 서로가 실수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든 웃음은 우리의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 두 인터넷 밈의 가치는 거기에 있는 듯하다.

#전청조 #그대들은어떻게살것인가 #미야자키하야오 #여성동아

디자인 강부경 사진제공 한국일보 JTBC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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