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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지킬박사와 하이드, 일론 머스크의 본캐는?

이나래 프리랜서 기자

2023. 11. 02

일론 머스크는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자일까, 규범을 파괴하는 트러블 메이커일까. 최근 출간된 자서전을 통해 그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2021년, 미국 ‘타임’지는 좋건 나쁘건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거나 뉴스를 만들어낸 사람을 의미하는 ‘올해의 인물’로 일론 머스크(52)를 선정한 바 있다. 가능성과 위험성을 넘나드는 그의 행보는 ‘대담하다’고 찬양받거나 ‘파괴적’이라는 우려를 산다. 지난 9월 출간된 자서전 ‘일론 머스크’는 문제적 인간 일론 머스크의 진면목을 가늠하게 해주는 책이다. 애플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의 전기 작가로 유명한 월터 아이작슨이 3년간 일론을 그림자처럼 쫓으며 관찰하고 130명 이상의 주변 인물을 인터뷰한 내용을 기록한 결과물로, 그의 민낯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 하드코어 업무 방식을 고수하는 최고경영자

일론은 ‘하드코어’ 업무 방식으로 유명하다. 첫 번째 비즈니스였던 집2(Zip2)에 매달리던 시절에는 사무실에서 먹고 자기를 예사로 했다. 오죽하면 회의를 위해 집에 가서 샤워하고 오라고 직원들이 종용했을 정도. 집2 초창기의 동료는 “그는 휴가 없이 하루 종일, 밤낮으로 끊임없이 일에 매달렸고, 가끔 비디오게임을 즐기는 일 정도가 유일한 휴식이었다”고 증언했다. 자신은 물론 조직 구성원 모두에게도 워커홀릭이 될 것을 요구했다고. 실제로 그는 2022년 당시 트위터(현 X)를 인수한 후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성공을 위해 우리는 (업무에서) 극도로 하드코어가 돼야 한다. 뛰어난 업무 실적만이 합격점이 될 것”이라며 “회사가 변화하는 과정에 오랜 시간 고강도로 일하는 근무 환경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악마 모드가 켜졌을 때는 접근 금지

지금은 헤어졌지만 가장 최근까지 그의 파트너였던 캐나다 출신 뮤지션 그라임스(본명 클레어 엘리스 부셰)는 ‘악마 모드’라는 단어로 그의 성향을 설명하기도 한다. 악마 모드는 직원들에게 업무 폭탄을 투하하거나,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과 논쟁을 벌이고 때때로 조롱하기도 하는 등 분노로 타오르는 상태를 일컫는다. 그라임스는 “이런 변화는 순식간에 일어나 마치 방 안의 공기가 바뀌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파트너나 가족조차 그의 주변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정신상태가 된다”고 말했다. 다만 그녀는 이런 면모 덕분에 일론이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극단적인 감정 분출의 반작용일까? 일론 머스크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만성불면증을 겪고, 자면서 비명을 지르는 일도 흔했으며, 잦은 복통과 구토에 시달렸다는 게 헤어진 부인 탈룰라 라일리의 증언이다.

# 낮은 공감 능력은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한 노력?

책은 극단적인 성향의 원인을 그의 가족관계에서 찾는다. 부모의 이혼 이후 폭압적인 성격의 엔지니어였던 아버지 에롤 머스크와 살게 된 일론은 그 관계에서 감정적, 정신적 트라우마를 가지게 됐다. 일론은 아버지를 “이름 대신 바보, 천치, 멍청이라고 부르는 사람” “어린아이를 1시간 이상 꼼짝하지 못하게 세워두고 언어폭력을 쏟아내는 소시오패스”로 회상했다. 당시 학교폭력에도 시달렸던 터라, 일론은 학교와 집에서 모두 괴롭힘을 당하는 유년 시절을 보낸 것. 그라임스는 “일론은 어린 시절부터 인생은 고통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여러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작가는 그가 힘든 유년기를 보낸 까닭에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감정을 차단하는 성향을 갖게 됐고, 공감 능력이 낮은 사람으로 성장하게 됐을 것으로 추측한다.

#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른아이

아들 엑스(X)를 안고 공식석상에 선 일론 머스크.

아들 엑스(X)를 안고 공식석상에 선 일론 머스크.

그의 어머니인 메이 머스크는 “일론은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될까 두려워한다”고 말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의 유사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특히 정치적 발언은 거의 동일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아버지 에롤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짓이라고 믿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대해 “미국이 옹호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려고 하는 범죄자”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일론 역시 바이든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X에 반트랜스젠더 콘텐츠를 게시하거나 음모론을 일으키는 등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일론 머스크의 트윗은 (그의 아버지처럼) 음모론을 전달하는 이상한 가짜 뉴스 사이트를 읽는 경향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평했다. 탈룰라 라일리가 “그 남자(일론) 안에는 여전히 어린 시절, 아버지 앞에 서 있는 아이가 있다”고 말한 것은 일론이 여전히 유년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추측에 힘을 실어준다.



# 2명의 아내와 여자 친구, 대리모 사이에서 얻은 10명의 자녀

대리모를 통해 자녀 셋을 둔 일론 머스크와 전 파트너 그라임스.

대리모를 통해 자녀 셋을 둔 일론 머스크와 전 파트너 그라임스.

그렇다면 일론의 자녀들은 그를 어떤 아버지로 기억할까? 그는 첫 아내인 작가 저스틴 윌슨과의 사이에서 5명의 아들을 얻었고, 영국 여배우 탈룰라 라일리와는 두 번에 걸쳐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앰버 허드와의 짧은 연애를 마친 이후에는 캐나다의 뮤지션 겸 배우 그라임스와 파트너로 지내며 대리모를 통해 3명의 자녀를 얻었다. 비슷한 시기에 계열사 뉴럴링크의 임원 시본 질리스에게 정자를 기증함으로써 유전적으로 그의 자녀인 쌍둥이가 태어나기도 했다. 큰아들 자비에르와의 관계만 보면, 그와 그의 아버지가 겪던 부자 갈등은 대를 이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트랜스젠더로서 성정체성을 밝힌 자비에르는 2022년 4월 소송을 통해 성별을 여성으로 바꾸고, 이름도 어머니의 성을 따서 ‘비비언 제나 윌슨’으로 개명했다. “나의 생물학적 아버지와는 어떤 형태로든 연관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힘으로써, 평소 성전환 및 동성애를 비판해온 일론과는 절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머스크는 지난 9월 미국 뉴욕을 방문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을 접견할 당시에는 그라임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세 살배기 아들 X를 안고 나가 화제가 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머스크는 “아이 엄마와 별거 중이라 아들은 대부분 내가 돌본다”고 답했다.

# 마음대로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 사이에서

최근 일론의 행보 중 가장 종잡을 수 없다고 평가되는 트위터 인수 배후에는 경영자적 판단보다 감정적 결정이 우선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그는 트위터를 ‘놀림과 괴롭힘이 이루어지는 학교 운동장’인 동시에 ‘정치적 올바름’과 ‘성인지감수성’을 강조하는 플랫폼으로 인식했다. 큰아들 자비에르가 절연을 선언한 즈음, 100억 달러 규모의 스톡옵션이 만료되어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던 그는 그 돈으로 트위터를 인수하기로 결정한다. 본인의 불우한 학창 시절과 아들의 성전환수술에 대한 트라우마를 동시에 자극하는 트위터를 자신이 장악하기로 결정한 것. 실제로 경영권 이전을 하루 앞두고 트위터 본사를 방문한 그는 사옥 곳곳에 붙은 새 모양의 로고를 보고 “이 빌어먹을 새들은 모두 없어져야 한다”고 선언할 만큼 부정적인 인식을 내비쳤다고. 이후 그는 트위터를 X로 개명하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시행했으며, 기존의 시스템을 마구잡이로 변경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거듭해 유저가 끊임없이 이탈하는 중이다.

트위터의 경영 악화로 테슬라까지 영향을 받으면서 세계 1위 부자 자리를 빼앗길 때까지만 해도 일론 머스크의 행보에 물음표가 떠올랐던 것이 사실. 하지만 그가 오랜 시간 집중해온 스페이스X가 2023년 1분기에 마침내 흑자를 기록하면서 그의 도전에는 다시 청신호가 켜졌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에 따라 다음 자서전의 내용이 결정될 것은 분명하다.


#일론머스크 #스페이스X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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