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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전종서라서 가능한 이야기 ‘발레리나’

두경아 프리랜서 기자

2023. 10. 25

배우 전종서가 잔혹한 복수극의 주인공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그의 변신은 놀랍다. 늘 ‘독보적 배우’로 불리는 그의 다음 스텝이 궁금하다. 

깡마른 몸, 강렬한 눈빛. 전종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묘한 매력을 가진 배우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에서 특유의 매력을 한껏 뽐냈던 그는 이후 사이코패스나 탈북자, 범죄단체 조직원 등 주로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새 영화 ‘발레리나’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판 아저씨’ 혹은 ‘여성판 테이큰’이라고도 평가받는 이 영화는 ‘발레리나’라는 우아한 제목과 달리 피가 낭자한 잔혹 복수극이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전종서가 맡은 ‘옥주’는 경호원 출신으로, 건조한 삶을 살아가던 중 우연히 중학교 동창 발레리나 민희를 다시 만나 삶의 의미를 찾는다. 어느 날 민희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옥주에게 복수를 부탁하고, 옥주는 민희가 남긴 편지로 죽음의 배후를 찾아 복수를 시작한다. 전종서는 대사 한마디, 눈빛 하나 놓치지 않고 캐릭터 그 자체를 연기하며 슬픔과 분노로 뒤섞인 옥주의 감정을 미세하게 표현해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한 액션극은 아니다. 우선 발레 공연이나 뮤직비디오 한 편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운 액션 장면이 눈을 사로잡는다. 전개도 군더더기 없이 빠르다. ‘뻔하다’ 싶을 때면 허를 찌르는 장면이 등장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개연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확실한 단죄는 보는 이로 하여금 통쾌함을 선사한다. 이 덕분에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호평받고 있다. 넷플릭스를 통해 선보인 영화는 공개 2주 차(10월 18일 기준)에 글로벌 시청 순위 1위에 올랐다. 이를 가능하게 한 주인공, 옥주를 연기한 전종서를 만났다.

‘발레리나’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그동안 꼭 액션이 아니더라도 지켜야 할 무언가를 잃어버린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잃어버린 뒤 방황하는 모습을 담는 영화도 있지만, ‘발레리나’는 화끈하게 복수를 택하죠. 그래서 에너제틱하게 해볼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선택하게 됐어요.

결과물에 만족하나요.

영화를 통해 각자가 시도해본 부분이 분명히 있었어요. 저도 배우로서 해보고 싶은 부분을 했어요. 그동안 민희(극 중 피해자) 같은 역할을 주로 해왔다고 생각했거든요. 옥주는 민희가 민희로 존재할 수 있게끔 하는 인물인데, 배우로서 조금 다른 포지션에서 연기할 수 있었던 게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경험이었어요.



액션 신을 소화해내기 위해 준비도 꽤 많이 했을 것 같아요.

액션 스쿨에서 준비를 제대로 했어요. 학원이 인천 송도에 있었는데, 아예 그 근처에 숙소를 잡고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가서 운동하다가 오후에 쉬는 식으로 집중 훈련했죠. 살을 살짝 빼기도 하고, 좀 찌우기도 하면서 체중도 조절했어요.

액션 장면은 모두 직접 찍은 건가요.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했지만, 기술적으로 도저히 안 되는 부분은 스턴트 배우와 대역이 해주셨어요. 스턴트 배우가 영화 ‘콜’과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때도 같이했던 분이라,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진행했어요.

총 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에서도 총격 신이 많아 익숙했나요.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촬영 때는 실제 총소리와 비슷해서 연기하면서 너무 무서웠어요. 총소리가 무서워 방아쇠를 당기기가 두려워지는 상황도 있었죠. 그래서 이번 영화 촬영 때는 총소리를 공기로 바꿔서 했어요.

악당을 처단하는 내용이니, 촬영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때도 있었을 것 같아요.

촬영할 때는 정신없이 땀을 흘리고 연기하느라 그런 걸 느낄 틈이 없었어요. 영화로 만들어진 다음에 객관적으로 보게 됐을 때 느낄 수 있었죠. 그동안 제가 몸을 이렇게까지 쓰면서 연기한 작품은 ‘발레리나’가 처음이었고, 무술 팀 스태프와 동고동락하면서 호흡하는 것도 재미있더라고요.

영화 OST에도 참여했어요. 랩을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네요.

힙합을 제대로 해본 적은 없지만, 정말 오랜 시간 좋아했고 동경한 분야예요. 힙합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거침없이 가사로 전달하잖아요. 그래서 힙합 뮤지션에 대한 존경심이 있는데, 그레이(힙합 뮤지션) 음악감독님이 영화음악을 맡으신다는 걸 알게 돼 좋았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OST에 참여해볼 생각이 있냐고 물으시더군요. 제가 “절대 못 한다”고 해서 확정된 부분은 아니었죠. 그러다 음악을 받아 하루 정도 연습한 뒤 녹음을 해봤어요. 그래도 그날 녹음된 것을 쓸 줄은 몰랐어요.

영화 속에서 자신의 연기와 랩을 동시에 만난 기분이 어떤가요.

민망했어요. 그래도 다른 음악과 음향효과에 잘 묻어서 다행이에요.

일과 사랑의 인연, 이충현 감독

‘발레리나’를 연출한 이충현 감독은 전종서의 연인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전작 ‘콜’에서 호흡을 맞추며 연인 사이가 됐다. 이러한 이유로 ‘발레리나’는 제작 단계에서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전종서 배우밖에 없었다”며 “실제 성격도 뭔가 잘못된 일이 있으면 폭풍 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연인을 평가했다. 또 그는 “전종서는 굉장히 순수한 사람”이라며 “동시에 모든 걸 쏟아부을 수 있는 사람이다. 매력적인 배우이자 여자 친구”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전종서 역시 인터뷰에서 그와의 관계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이충현 감독님과 특별한 관계다 보니 시선이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 초반에는 전혀 그런 걱정을 안 했어요. 스태프에게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죠. 감정이 섞일까 우려하는 것일 텐데 실제로 사적인 부분이 영화에 미칠 만한 상황은 없었어요. 진짜 딱 영화만 찍었거든요. 저는 어떤 작품이든 간에 촬영 전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눠서 현장에서는 따로 대화를 안 해도 될 정도로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는 스타일이에요. 이 영화도 다를 게 없었죠. 스태프도 우리 또래라 젊은 에너지가 컸어요. 그래서 현장 분위기도 좋았고 다른 시선 없이 열심히 잘했어요.

이충현 감독님과는 ‘콜’에 이어서 두 번째 작품이에요. 호흡은 어땠나요.

저는 처음부터 어떤 걸 정해두고 거기에 맞춰서 철저하게 준비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촬영장에 가면 준비해온 것들이 많이 달라질 수도 있어서 열린 상태로 연기하거든요. 감독님과는 이전 작품 ‘콜’에서 한번 호흡을 맞춰봤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는 합이 잘 맞았어요. 촬영감독님도 ‘콜’ 때 같이하신 분이라 친밀했고 카메라 호흡도 되게 좋았어요.

이충현 감독님은 현장에서는 어떤 스타일인지 궁금해요.

아마 여배우라면 감독님과 작업해보고 싶을 것 같아요. 단편영화부터 감독님이 연출한 작품을 보면 다른 분의 작품에서는 실현되지 못한, 여배우로서 욕심나는 판타지적인 부분이 있거든요. 그런 점들을 ‘콜’에 이어 ‘발레리나’에서 한 번 더 경험할 수 있었어요.

‘여배우로서의 판타지’는 뭘까요.

금기를 깨는 거요. ‘콜’에서도 여성 캐릭터가 부각되었는데, 사이코패스 역할이 되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감독님의 단편영화 ‘몸값’도 반전이 드러나며 역할이 확 바뀌는 부분이 있거든요.

이충현 감독은 “전종서 배우는 영리하고 동물적 감각이 있는 배우”라고 평했습니다.

배우들은 각자 연기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계산하지 않는 편이에요. ‘이렇게 해야지’ 생각하면 연기할 수가 없어져요. 또 ‘여기서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하면 그것만 생각하느라 딴것을 아예 못 하거든요.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연기하는 게 제 스타일인 것 같아요. 막상 촬영장에 가면 다른 것들을 시도해볼 수 있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니까 현장에 의존하는 편이에요. 아무리 뭘 준비했어도 막상 촬영장에 가면 달라지는 경험을 많이 했으니까요. 주현 선배님도 현장에서 바로 하시는 게 진짜 있으시더라고요. 선배님을 보면서 ‘나는 새 발의 피’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영화에는 주현, 김영옥 등의 중견 연기자들도 나와요. 선배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김영옥 선배님은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에서 만났던 분이라 진짜 반가웠고, 주현 선배님은 처음 뵙는 건데 연기하실 때 너무 재미있으셔서 덕분에 많이 웃었어요. 주현 선배님은 대본에 없는 대사를 많이 하셨는데, 그게 장면과 너무 잘 맞는 거예요. 제가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 계속 어떤 연기를 하실지 모르니까 무방비 상태로 공격당하면서 웃곤 했어요. 그러면서 ‘괜히 주현 선배님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껏 못 해봤던 경험이라 기억에 많이 남아요. 다음 작품에서 두 분과 다시 연기해보고 싶어요.

작품에서 만난 배우와 사적으로도 인연을 이어가는 편인가요.

같이 연기했던 배우들과 따로 만나는 건 좀 어려워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되게 조심스러워서 제가 먼저 연락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장)윤주 언니와는 친해요. 제게 가장 많은 조언을 해주시는 분이에요. 대중의 시선이나 제가 부족한 부분을 객관적으로 이야기해주세요. 누군가가 지적하면 ‘왜 그렇게 말하지?’ 생각할 수 있지만, 언니는 제가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조언을 해줘요.

이젠 ‘로코’ 장인?!

어느덧 데뷔 6년 차. 전종서는 그간 평범치 않은 캐릭터를 주로 맡아왔다. ‘발레리나’ 옥주뿐 아니라 데뷔 영화 ‘버닝’에서는 미스터리한 실종에 휘말리는 해미를, ‘콜’에서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영숙을,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에서는 범죄 조직원 도쿄를 맡았다. ‘연애 빠진 로맨스’와 비교하자면, 일상에 있을 법한 인물이지만 그마저도 4차원 캐릭터였다. 그러나 앞으로는 전보다 사랑스러운 전종서를 만날 수 있을 듯하다. 차기작인 tvN 드라마 ‘웨딩 임파서블’에서 그는 생애 첫 로맨틱코미디 연기에 도전한다.

작품을 선택할 때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시나리오죠. 장르에 상관없이 시나리오가 재미있으면 출연을 결심하거나 오디션을 보는 식이었어요. 딱 하나만 가지고 출연을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선택의 기준은 지금껏 ‘재미’였던 것 같아요.

굳이 센 역할만 했던 이유가 있을까요.

연기적으로 도전하고 싶은 게 있어서였어요. 또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거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보고 싶었고요. 그리고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분노가 조금 쌓여 있었던 것 같아요. 혹은 에너지였을 수 있고요. 그게 정확히 뭔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내면의 어떤 것들을 폭발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마침 그런 제 마음의 데시벨과 맞아떨어지는 작품을 그때그때 만나왔죠. 지금은 그렇지는 않아요. 저도 좀 바뀌는 것 같고, 취향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런 제 상황을 반영해 작품을 선택하는 것 같아요. 또 대중이 제게 다른 모습을 기대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최근 그런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계기가 있었나요.

최근에 로맨틱코미디를 찍었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러면서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어요. ‘연애 빠진 로맨스’도 로맨스이긴 한데, 특이한 캐릭터였잖아요. 이번 드라마에서는 동네 어디선가 있을 법한 평범한 여자를 연기했어요.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그런 역할이죠. 그동안 로맨스코미디는 못 할 것 같다고 생각해왔거든요. 그런 연기는 되게 낯간지럽고 사적인 부분이라고 여겼으니까요. 그런데 연기를 하면서 ‘현실에서였으면 어색할 수 있을 법한 감성과 분위기, 대사들이 사람들의 마음 깊숙이 가닿을 수 있구나’ ‘이런 걸 두고 드라마 같다, 드라마틱하다고 말하는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어떤 부분에서 달라졌다고 느끼나요.

그동안은 강렬하고 자극적인 걸 선호했죠. 제 취향이 그랬어요. 제가 보는 작품이나 환호하는 대상도 다 그런 종류였죠. 그런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요즘 나오는 영화나 콘텐츠들이 너무 자극적인 것 같아서 그런지, 그동안 좋아했던 스타일은 잘 안 보게 되더라고요. 요즘은 드라마를 많이 봐요. 드라마의 매력에 빠져 있어요.

요즘 재미있게 본 드라마는 어떤 건가요.

몇 년 전 방영이 끝난 ‘사랑의 불시착’과 ‘내 이름은 김삼순’이에요. 예전에는 그동안 해왔던 작품들이 더 현실적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드라마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전종서 #발레리나 #이충현 #여성동아

사진제공 넷플릭스 앤드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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