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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식도암 딛고 돌아온 56세 발레리노 이원국

김명희 기자

2023. 10. 11

인간의 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땀 흘려 단련한 신체가 얼마나 감동을 주는지 알려준 발레리노 이원국. 그가 암 수술이라는 큰 고비를 넘기고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AI(인공지능)나 챗GPT가 아무리 진화해도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게 있다. 예를 들어 무용수가 무대에서 혼신을 다해 춤추며 흩뿌리는 땀방울 같은 것. 무용수는 아마 그 무대에 서기 전까지 그것의 수천 배에 달하는 땀을 흘렸을 것이며, 자신을 단련하던 그 고통스러운 시간은 감동이라는 가치로 환산돼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오직 인간이 인간에게만 전할 수 있는 감동이다. 그래서 모든 무용수는 박수받아 마땅하다. 한국 발레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발레리노 이원국(56)은 특히 그렇다.

1986년, 열아홉 나이에 뒤늦게 발레를 시작한 이원국은 이듬해 부산 KBS 무용콩쿠르 대상, 1989년 동아무용콩쿠르 대상을 받으며 우리나라 대표 무용수로 자리 잡을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이후 유니버설발레단 수석 무용수, 러시아 키로프발레단 주역 무용수, 루마니아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국립발레단 수석 단원을 거치며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 발레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동화 속 왕자의 실사판 같은 비주얼, 땀으로 한 가닥 한 가닥 빚어낸 섬세한 근육, 중력을 가뿐하게 이기는 점프와 섬세하고 부드러운 표현력으로 발레리나에 가려져 있던 발레리노의 위상을 재정립했다는 평을 얻는다. 무엇보다 솔리스트로서 그의 천부적 재능과 후천적 노력에 의한 춤의 완성도는 자타가 공인한다. 발레리노 팬클럽 시대를 연 주인공이기도 하다.

무대에 서고 싶은 열망 때문에 암 수술 후 회복도 빨라

‘발레리노의 교과서’라 불렸던 이원국이 제자들의 동작을 지도해주고 있다.

‘발레리노의 교과서’라 불렸던 이원국이 제자들의 동작을 지도해주고 있다.

한동안 활동이 뜸했던 그가 지난 4월 광명문화재단이 주최한 ‘최태지와 함께하는 발레 스타워즈’ 무대에 오른 데 이어 8월에는 용인문화재단 주최 ‘힐링 발레 콘서트’에 출연했다. 8월 공연에선 발레 ‘해적’ 3인무와 아울러, 가족과 함께 탭댄스도 선보였다. 공연 후 한 언론 보도를 통해 그가 한동안 무대를 떠났던 이유가 암 투병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는 무대에서 볼 때보다 조금 수척해진 모습이었지만 오라는 여전했다. 발레에 대해 이야기할 땐 무척 담담했는데, 마치 다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사람의 내공이 느껴졌다.

얼마 전 큰 수술을 받으셨다고요.

2년 전쯤 건강검진을 받다가 식도암이 발견돼 수술을 받았습니다. 식도를 잘라내고 위를 끌어 올려 목과 연결하는 수술이었는데, 제법 큰 수술이라 한 일주일은 걷지 못했어요. 그러다 발을 떼고 걸을 수 있게 되니 발레 동작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익숙한 일이 있잖아요. 저는 밥 먹듯이 해온 일이 발레니까 그냥 본능적으로 발레가 떠올랐던 거죠. 수술을 앞두고 ‘앞으로 내가 발레를 계속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춤을 계속 추게 될 것 같아요.



조기에 발견돼서 다행입니다.

네. 다행히 1기에 발견됐는데 의사의 권유도 있고 해서 수술을 했습니다. 의료진은 간단한 로봇수술이라고 했는데, 간단한 암 수술이 어디 있나요. 특히 식도암은 수술 후 일주일간 물도 못 마셔요. 몸과 마음이 다 힘들지만 다시 태어났으니 열심히 살라는 하늘의 가르침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뜨거운 음식을 좋아하고, 빈속에 술도 마시고 했는데 돌아보니 참 안 좋은 습관이었어요.

수술 후 다시 무대에 섰을 때는 감회가 남다르셨을 듯합니다.

가족이든 친구든 일이든, 좋아하는 것과 함께할 때 행복하다고 하잖아요. 저는 무대에 서는 것만큼 기쁘고 행복한 일이 없더라고요. 발레를 다시 하고 싶고 무대에 서고 싶은 열망 덕분에 슬픈 줄도 몰랐고 병도 빨리 나은 것 같습니다.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았나요.

수술하고 나서는 (역류 위험 때문에) 음식을 많이 먹을 수도 없고, 똑바로 누워서 잠을 잘 수도 없기 때문에 힘들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도 되고, 발레도 오래 하다 보니 힘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요령이 생겨서 괜찮습니다.

이원국은 발레 동작의 정확도와 고난도 스킬 면에서 ‘발레리노의 교과서’라 불린다. 실제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국을 대표하는 발레리노”로 소개되기도 했다. 아동 교양서적 베스트셀러 ‘실패의 전문가들’에서는 학창 시절의 방황을 딛고 부단한 노력을 통해 꿈을 이룬 인물로 소개된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사춘기가 시작돼 공부와 담을 쌓았고, 공고에 진학했지만 거기서도 적응하지 못해 자퇴했다. 그의 어머니는 어떻게든 아들에게 길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에 피아노·수영·축구·보디빌딩·서예 등을 권했으나 모두 채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동아무용콩쿠르 수상자 인터뷰를 건네며 발레를 권했다.

열아홉 살에 시작한 발레 덕분에 처음으로 성취감 느껴

2016년 ‘맥베스’ 공연 무대에 선 이원국. 그는 한국 발레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을 얻는다.

2016년 ‘맥베스’ 공연 무대에 선 이원국. 그는 한국 발레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을 얻는다.

발레는 처음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처음 1년은 남자가 무슨 발레냐고, 안 간다고 버티다가 1986년 어머님을 따라 부산의 정금화무용학원에 갔어요. 선생님이 저를 보더니 “키도 크고 괜찮겠네” 하면서 한번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타이츠를 입는 것도 어색하고 친구들한테 “나 발레 한다”고 말하기도 민망했지만 딱 3개월만 해보자며 버텼어요. 3개월이 지나도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선생님께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리러 갔는데, 말을 꺼내기도 전에 선생님이 먼저 “오늘 저녁 부산 어느 극장에서 공연하는데 남자 무용수가 필요하다니 가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우리 학원에는 남자 무용수가 저 하나였는데, 극장에 가서 12명 정도 되는 남자 무용수가 턴도 하고 점프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흥미가 생겼어요. 그래서 발레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고등학교에도 복학했죠.

그 시절만 해도 우리나라에 발레리노가 드물었죠. 비단 우리나라뿐이 아니죠. 198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보면 빌리 아버지도 “남자가 무슨 발레냐”며 아들이 발레 하는 걸 반대하잖아요.

빌리 아버지가 자라온 환경에서는 남자가 발레를 하는 게 일반적이지는 않았으니까요. 저 역시도 처음엔 그랬고요. 다양한 문화를 접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에 가치관이 그렇게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우리가 예술을 하는 이유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편견을 깨고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서 아닐까요.

발레를 시작하고 3년 만인 중앙대학교 2학년 때 동아무용콩쿠르에서 우승했죠. 재능이 탁월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정금화 선생님, 김긍수(전 국립발레단장) 선생님 등 좋은 스승님들을 만난 덕분이죠. 또 고등학교 때까지 실컷 놀았기 때문에 대학에 진학해서는 한눈팔지 않고 발레에만 집중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발레를 하면서 처음으로 칭찬받고 자신감, 성취감, 책임감을 느끼게 됐죠. 행복은 희생과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됐고요. 그런 것들이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러시아의 세계적인 발레 학교 ‘바가노바’에는 “아름답지 않은 신체에 깃든 재능은 재능이 아니다”라는 교훈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신체가 아름다운 사람만 발레를 해야 한다는 건가요? 너무 냉정한 것 같습니다.

무용수들에겐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도록 하는 말입니다. 아름다운 생각을 한다고 해서 몸이 아름답게 바뀌는 건 아니지만, 어떤 무용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꾸준히 트레이닝하다 보면 신체도 거기에 맞춰 변형이 됩니다. 팔다리도 길어지고 근육도 단련되고 자세와 표정까지도 변하죠. ‘아름답지 않은 사람은 무용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무용수로서 아름다운 생각을 갖고 거기에 맞춰 신체를 단련하라는 뜻입니다. 저 역시 동양인치고는 팔다리가 긴 편이지만 서양에는 저보다 훨씬 신체가 좋은 사람들이 많죠. 단순히 육체적인 아름다움으로만 판단한다면 발레라는 장르를 따로 둘 필요가 없었겠죠.

발레리노들은 연습량이 엄청나다고 하던데, 발레를 잘하기 위해 이런 것까지 해봤다는 게 있다면 뭘까요.

하루 6시간 이상씩은 연습을 하죠. 저는 를루베(발뒤꿈치를 수직으로 들어 올려 발끝으로 서는 동작)를 매일 1000번씩 했어요. 회전할 때 힘을 키우려고 양쪽 다리에 2kg짜리 모래주머니를 차고 점프 연습을 하거나 산을 오르내리기도 했고요. 평상시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니고, 심지어 잘 때도 차고 자곤 했는데 그건 좀 바보 같은 짓이었던 것 같아요(웃음).

그동안 수많은 작품을 하셨는데 특별히 사랑하는 작품을 꼽는다면요.

‘스파르타쿠스’죠. 그 작품을 통해 러시아 볼쇼이발레단 감독을 역임한 ‘발레의 살아 있는 전설’ 유리 그리고로비치 선생님을 만났어요. 유리 선생님은 당시 그 공연을 위해 볼쇼이 프리마 발레리나 출신 부인(나탈리아 베스메르트노바)과 서울에서 석 달 정도 머물며 저희를 직접 지도해주셨어요. 기교적인 부분은 전적으로 저를 믿어주셨지만 그 외 클래식 발레의 정신, 발레리노로서의 삶의 자세 등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해주셨죠. 선생님 덕분에 발레에 새롭게 눈떴고 많은 에너지를 받았죠.

마린스키발레단 수석 무용수 김기민 씨에게는 선생님이 그런 존재 아닐까요. 김기민 씨가 이원국 선생님을 존경한다는 이야기를 인터뷰에서 많이 한 걸로 알고 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기민이 부모님이 발레를 계속 시켜도 괜찮겠는지 한번 봐달라고 아이를 데리고 오신 적이 있어요. 그때 테스트를 해보고 “기민이가 발레를 계속하면 좋겠다. 세계적인 발레리노로 대성할 수 있다”고 부모님을 설득했죠. 그 이후로 제가 기민이를 가르치기도 하고, 무대에 함께 서기도 했어요. 하지만 기민이가 커가면서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훌륭한 선생님들을 만나 크게 성장했기 때문에 저로선 “기민이가 내 제자”라고 말하기는 좀 그래요. 그런데 요즘도 한국에 오면 꼭 저를 찾아 인사하고, 발레를 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선생님은 어떻게 하셨어요?”라고 묻기도 하고 그러니 오히려 제가 고맙죠. 한국인이 클래식 발레의 성지와 다름없는 곳에서 정상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워요. 또 제자이긴 하지만 무용에 대한 진지한 자세나 그런 점에서 배울 부분이 많은 친구죠.

천재 예술가에게는 항상 그걸 알아봐준 스승이 있더라고요. 김기민이 세계적인 발레리노가 될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았나요.

처음 와서 테스트할 때 제가 콤비네이션 동작을 시연하고 따라 하도록 시켰는데, 꽤 어려운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하더라고요. 어디서 배우거나 흉내 낸 게 아니라 굉장히 자연스러웠어요. 음악성도 있고, 눈썰미도 좋았고, 발레에 재능이 있다는 게 한눈에 보였어요.

이원국발레단 명백 다시 잇고 싶어

이원국은 2004년 국립발레단을 은퇴한 후에는 이원국발레단을 설립, 후배들과 대학로 소극장에서 매주 ‘월요발레’라는 상설 공연을 열고, 군부대 공연을 다니고, 발레STP 협동조합을 결성하는 등 발레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우리나라처럼 발레 인프라가 열악한 상황에서 돈이 목적이었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소극장 공연은 고급 예술이 폄하되고 초라해 보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지만 이원국은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고집스럽게 밀고 나갔다.

이제 건강을 회복하셨으니, 본격적으로 활동을 다시 시작하셔야죠.

6개월마다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는데, 재발하지 않도록 관리를 잘해서 환갑 기념 공연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처럼 일주일에 한 번은 아니더라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상설 공연을 하며 이원국발레단의 명맥을 이을 수 있는 방법도 고민 중입니다.

한 논문을 보니 발레리노는 상위 5%의 실력이 돼야 발레단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발레단에 들어간다 해도 연봉은 4000만 원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서른여섯 살에는 은퇴해야 한다고요. 고생한 것에 비해 보상이 너무 적은 직업 같습니다.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어요. 발레리노들은 이미 그런 사실을 다 알지만, 그런데도 춤이 좋아서 자신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거든요. 그리고 지금은 국립발레단에도 노조가 있어서 본인이 원하면 정년을 채울 수 있어요. 물론 60세까지 춤을 추려면 엄청난 노력과 자기관리가 병행되어야 하겠지만요. 저는 발레를 통해 내가 행복해지고 다른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고, 발레라는 예술을 통해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 것에 물질적인 보상 이상으로 감사합니다.


#이원국 #발레리노 #여성동아

사진 박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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