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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하주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분노의 시대, 화 가라앉히는 법’

윤혜진 프리랜서 기자

2023. 09. 25

최근 ‘묻지마범죄’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회구조나 개인의 문제로 인한 분노가 외부로 표출되면서 범죄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세상을 당장 바꿀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부정적인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을까. 



‘신림역·서현역 칼부림’ ‘신림동 등산로 성폭행 살인’ 등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묻지마범죄’가 사회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에 경찰을 사칭해 강남역에서 칼부림을 예고하는 글이 올라오는 등 온라인 세상도 흉흉하기 짝이 없다.

현재까지 잡힌 묻지마 범죄자들의 범행 동기는 대부분 비슷하다. 신림동 흉기 난동 사건을 벌인 조선은 “열심히 살아도 안 되더라.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며 사회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고,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 최원종은 자신은 억울하다는 듯 현장의 사람들이 스토커라는 피해망상적인 주장을 했다. ‘내가 가장 불쌍하고, 나만 불행한 게 억울하니 너도 당해보라’는 자포자기식 ‘급발진’을 멈추려면 문제의 시작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무엇이 그들을 화나게 만들었을까. 왜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타인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을까. 분노의 원인을 알아내고 없애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겠지만,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분노가 시작됐다면 당장의 해결은 어렵다. 그렇다면 그 쌓인 분노를 해결해주는 2차적 대안으로 눈을 돌려야 하나 이마저도 녹록지 않은 현실이다.

오히려 건들면 폭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간헐적폭발성장애(분노조절장애) 1차 진단을 받은 진료 건수는 1만869건으로 2018년의 9455건보다 약 15% 증가했다. 지난 9월 6일 연세숲정신건강의학과에서 만난 하주원(42)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홍보이사는 “나를 비롯해 진료를 한 후 간헐적폭발성장애를 택하지 않고 조울증, 양극성장애, 성인ADHD, 생리전증후군 등 다른 진단 코드를 입력하는 의사들도 많기 때문에 실제로는 분노가 조절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SNS 보면서 나만 불행하다고 착각

지난 7월 21일 서울 신림역에서 한 남성이 4명을 흉기로 찔러 1명의 사망자를 낸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8월 3일에는 경기 서현역에서 ‘묻지마’ 흉기 난동으로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온라인에 ‘살인 예고’ 글이 여기저기 올라왔고 결국 글 작성자 65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 7월 21일 서울 신림역에서 한 남성이 4명을 흉기로 찔러 1명의 사망자를 낸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8월 3일에는 경기 서현역에서 ‘묻지마’ 흉기 난동으로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온라인에 ‘살인 예고’ 글이 여기저기 올라왔고 결국 글 작성자 65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다만 희망은 있다. 진료를 보는 틈틈이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소속으로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편견을 깨주는 캠페인을 3년째 담당 중인 하주원 홍보이사는 “진료 건수라 한 사람의 중복 방문도 포함이다. 그래도 진료 건수가 많아졌다는 점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병원을 찾았다는 의미니까 아주 나쁜 신호만으로는 보지 않는다. 모든 병은 빨리 치료할수록 치료 기간이 짧아지고 나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최근 증가 중인 묻지마범죄의 원인을 무엇으로 보나요.

분노와 울화라는 감정에 대해 정교하게 성찰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내가 오늘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 성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포심 때문에 아예 생각을 안 하거나 잘못 생각하는 경우도 있어요. 화가 날 때 분노의 대상을 너무 넓게 규정짓는 것을 자극일반화라고 해요. 예를 들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집 밖에 나가는 건 위험해. 차가 전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자기한테 해를 입힌 대상이 아닌 나머지까지 포괄적으로 분노 대상으로 삼는 거죠. 어쩌면 분노의 대상이 자기 자신일 수도 있고요.

절망, 분노, 우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누구에게나 있고 또 옛날부터 있었던 것인데, 요즘 왜 특히 자기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졌을까요.

소셜미디어가 유행하면서 타인의 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잖아요. 행복한 모습만 보기 때문에 자신만 불행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이는 피해의식이나 열등감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소통을 통해 자신이 가진 잘못된 생각을 수정하고 자기감정에 집중하는 과정들이 일상 속에서 일어나야 하는데 다들 사느라고 바쁘잖아요. 그리고 유독 더 많아졌다기보다는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정신과는 여전히 질환이 존재해도 치료를 받지 않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진단이 많아진다는 사실 자체는 긍정적입니다. 다만 드러난 사례들이 매체를 통해 재생산되면서 최근에는 모방범죄의 성격도 있는 듯해요.

어떤 사람은 부정적 감정을 삼키며 혼자 동굴로 숨어들고, 어떤 사람은 거칠게 외부로 표출하잖아요. 그 차이는 어디서 생기나요.

기질적인 차이도 있고, 표현 양식은 원래 다 다릅니다. 외연화하거나 내연화하는 사람이 있고, 밖으로 투사하고 남 탓을 하는 사람 또는 자기 탓을 하는 사람이 있어요. 자극을 추구하는 사람과 반대로 위험을 회피하는 사람도 있고요. 이런 성향은 정해져 있는데, 이게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작은 차이지만 어떤 병적인 상황에서는 큰 차이를 낳는 거죠. 그래서 자기 공격성이 심한 사람은 우울감에 빠지고 자살 같은 행동까지 하게 돼요. 남에 대한 공격성이 강한 사람은 괜히 화를 낸다거나 심한 경우 이 세상이 다 잘못이라며 타인에게 해를 끼치기도 해요. 일반적으로는 이런 면들이 적절하게 섞여야 합니다. 우리도 가끔 나라 탓, 남 탓하잖아요.

전문가 입장에서 어떤 성향이 더 치료하기 힘드나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그런데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오는 분들은 자신감이 없고, 죄책감을 과도하게 갖고 스스로 우울해하는 내연화의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자기 발로 찾아오는 분들은 그래도 치료가 가능하지만, 타인 탓을 하는 분들은 아예 병원에 오질 않으세요.

병원 대신 어딘가에서 ‘깽판’을 놓을 수도 있겠죠. 남 탓하는 묻지마 범죄자 대부분이 은둔형외톨이였던 것으로 밝혀졌어요. 은둔형외톨이가 가장 문제시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은둔형외톨이는 과거에도 있었어요. 과거 은둔형외톨이는 신문, 텔레비전 등을 통해 일방향으로 정보만 접하고 아무와도 소통하지 않는 진짜 외톨이였어요. 하지만 요즘은 SNS와 인터넷을 통해서 자신이 세상을 읽고 있다고, 소통 중이라고 착각하는 게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냥 모르고 살면 차라리 나을 텐데 상대방의 실제 사정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면서 자기만 힘들다고 생각해 상황을 악화시키거든요. 아직은 이런 분들을 전문 의료진이 직접 집으로 찾아가 진료하거나 비대면 원격진료를 하는 게 불가능해요. 코로나19가 심할 때 원격진료가 이뤄지기도 했는데, 향정신성의약품 유통 같은 문제가 있었어요. 저는 차라리 왕진 시스템이 좀 더 갖춰지면 좋을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황이라면 주변의 역할이 중요하겠어요.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요.

제 가족들도 제 말을 안 듣습니다(웃음). 아무리 좋은 말도 본인이 힘든 상태에서는 잘 안 들려요. 그런 사람을 계속 설득했는데 반응이 없으면 ‘내가 잘못 설득했나’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단순한 메시지를 꾸준히 주는 게 중요합니다. 사실 전문가에게 치료받도록 동행을 해준다거나 온라인 심리상담을 권하는 게 가장 나아요.

외상은 눈에 보이지만, 심리적 문제는 언제 전문적인 치료를 필요로 하나요.

스스로가 우울한 감정 때문에 얼마나 생활에 방해를 받는지 살펴봐야 해요. 또 두통, 두근거림, 복통, 이명, 흉통, 숨 막힘, 근육통 등 수많은 신체 증상이 정신으로부터 생겨납니다. 전에 없던 증상이 생겨 검사를 해봤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나오거나, 별다른 문제가 없는데도 몸이 무거운 상태가 2주 정도 지속된다면 꼭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세요. 시기를 놓치고 1년 이상 오래 방치하면 그게 이상한 상태인지도 모르게 돼요. 특히 못 자고 못 먹으면서 의지를 가질 수 있는 인간은 없어요. 의지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죠.

그러나 많은 분이 여전히 정신과 방문을 어려워하잖아요. 왜 정신과 문턱이 유독 높을까요.

연령대별로 이유가 좀 다른데요. 50대 이상은 아직도 자신이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닌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비칠까 봐 방문을 꺼리세요. 의지가 부족하고 나약한 사람으로 보일까 걱정하기도 하고요. 최근 교사들의 정신 건강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는데, 상담해보면 자신의 멘털이 약해서 교육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평가받는 건 아닌지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정신건강의학과 도움이 필요한 시기가 있어요

겁낼 것 없는 정신건강의학과 치료

젊은 층은 방문을 꺼리는 이유가 다른가요.

요즘 10대, 20대들은 친구들이랑 올 만큼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어요. 다만 약 처방을 받기 시작하면 약을 끊지 못할까 봐 두려워합니다. 증상이 나아지고 1개월 정도 유지가 되면 약을 서서히 줄여볼 수 있어요. 한꺼번에 딱 끊으려니까 안 되는 거죠.

실제로 약물치료를 많이 하나요. 정신과 약을 먹으면 졸립다, 멍하다 등 부작용에 대한 ‘카더라’가 많잖아요.

내원하는 환자의 90% 정도가 약물치료를 합니다. 정신과 약물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어요. 피부과에서 어떤 알레르기 약을 처방받았는데 부작용이 있으면 다른 약으로 바꾸는 것처럼 정신건강의학과도 똑같아요. 자기한테 맞는 약을 찾으면 됩니다. 좋은 약은 먹자마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에요.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별 차이를 모르겠지만 2~3주가 지나면 그래도 먹기 전보단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삶이 달라지게 만듭니다. 그리고 제가 환자들을 오랫동안 지켜본 결과 성욕 저하가 와서 약을 끊겠다는 경우는 있어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잠이 쏟아지고 집중력이 저하되는 부작용은 드물어요.

그럼 병명을 진단받고 치료하기 시작하면 완치까지 어느 정도의 기간이 걸리나요.

평균적으로 공황장애나 우울증은 6개월 정도로 얘기하긴 하나 정확히는 사람마다 달라요. 확실한 건 시의적절하게 정신과를 찾아올수록 빨리 낫습니다. 실제로 정신과 의사들도 본인이 우울하거나 잠을 못 잘 때 약을 빨리 먹고 며칠 만에 끝냅니다. 내 감정이 환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내버려 두면 안 되거든요.

그런데 치료를 통해 상태가 좋아졌더라도 인간의 감정은 싹 없앨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정신질환이 재발하는 환자도 많을 듯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든다고 꼭 병원을 다시 찾을 필요는 없어요. 부정적 감정으로 방해를 받을 때만 병원에 다니면 됩니다. 긴 인생에서 모든 질병은 재발의 위험이 있어요.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치료해서 나았기 때문에 재발이 있는 거예요. 낫지 못한 사람에게 재발이란 표현은 쓰질 않죠. 조현병, 치매, 자폐를 제외하고는 약을 서서히 줄여보면서 증상이 다시 나타나는지 관찰하면 됩니다.

“뇌는 하지 말라는 메시지 받아들이질 못해”

신체 질병과 비슷하게 생각하면 되겠네요. 그럼 치료의 개념 말고 순간적으로 분노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어 올랐을 때 이를 가라앉힐 응급처치법도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추천하는 방법은 하나, 둘, 셋 세어보는 거예요. 우리 뇌는 어떤 일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잘 받아들이지 못해요. 화를 내지 말자, 생각해봤자 효과가 별로 없어요. 차라리 화를 내더라도 하나, 둘, 셋 세고 나서 내자, 이렇게 생각하고 잠깐 지연시키는 거예요. 그 2~3초간의 잠깐에도 분노가 많이 사라질 수 있어요. 또 날숨에 신경 써서 심호흡을 해보세요. 흔히 가슴이 답답하니까 숨을 들이마시는데 오히려 내쉬어야 머리가 맑아집니다.

휴대폰 집어 던지고 후회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화나면 물건을 던지고 파괴하는 버릇은 그 물건을 수리하거나 다시 구입할 때 또 한 번 화를 불러일으켜요. 깨진 컵을 치우다가 다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차라리 다치지 않고 망가지지 않는 쿠션을 던지거나 종이를 찢어보라고 해요. 가장 좋은 방법은 뭔지 아세요? 우리가 어떤 상황에 맞서 싸우고 자기 이야기를 제대로 해야만 마치 그 일을 잘 해결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굳이 맞설 필요가 없어요. 자리를 피해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더 좋은 방법은 응급처치할 일이 없도록 평소 불안, 분노, 우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그때그때 해소하는 것 아닐까요. 보다 건강하게 표출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요.

많이 움직이는 걸 추천합니다. 운동도 종류에 따라 나오는 호르몬이 각각 다르거든요. 자전거 타기나 걷기는 세로토닌이, 격투기류는 도파민이 많이 나옵니다. 여러 가지 운동을 해보고 나에게 맞는 것을 찾아 꾸준히 실천해보세요. 사람들과의 대화도 도움이 많이 돼요. 타인을 음해할 의도가 있거나 지속적인 정도가 아니라면 약간의 뒷담화도 건강한 해소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열받는 일이 있다고 매번 앞에서 들이받으며 살 순 없잖아요.

요즘 명상이 유행인데, 명상도 도움이 되나요.

명상을 할 수 있으면 좋죠. 그런데 명상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제법 있어요. 명상의 기본은 현재의 자신에게 집중하는 거예요. 꼭 가부좌를 틀고 앉아 도 닦듯이 하지 않아도 되고 걸으면서 집중해도 됩니다. 간단하게는 건포도 명상법도 있어요. 건포도의 모양과 질감에 집중하면서 그 순간만큼은 다른 생각을 비우는 거예요.

선생님은 화가 날 때, 우울할 때, 짜증 날 때 어떻게 해결하나요.

걷거나 머리를 감습니다. 찬물로 설거지하면서 접시를 던지지 않은 나 자신을 칭찬하기도 합니다(웃음). 아무리 전문가여도 화는 나고, 화를 참다 보면 언젠가 터지게 되거든요. 환자들을 만나보니 거의 90대는 되어야 모든 일에 초연해지더라고요.

그럼 지금 말씀하신 걸 반대로 생각해보면, 인간의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있고 평소 화를 조절하지 못한다면 묻지마범죄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겠네요.

현대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어요. 너무 공포에 떨지 말고 나와 남, 서로의 정신건강을 챙기며 살아가야죠. 결국 분노나 짜증, 우울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감정이고 평생 싸워야 하는 숙제인걸요. 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함께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해결할지 자신만의 방식을 찾는 게 중요해요.

#묻지마범죄 #분노의시대 #화가라앉히는법

사진 이상윤 
사진출처 채널A 뉴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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