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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한국인 없이 외국어로 노래해도 K-팝 아이돌?

윤혜진 프리랜서 기자

2023. 08. 09

SNS에 시시각각 벌어지는 K-팝 관련 논쟁들을 지켜보면 헷갈린다. K-팝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포함되며, 누굴 위한 노래일까. K-팝의 재정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K-팝 최초로 데뷔앨범으로 밀리언셀러를 달성한 제로베이스원.

K-팝 최초로 데뷔앨범으로 밀리언셀러를 달성한 제로베이스원.

# 지난 6월 에이티즈가 미니앨범 9집 타이틀곡 ‘BOUNCY(바운시)’로 활동할 때 일이다. SNS에서 일부 해외 팬들로부터 “한국 팬들은 스밍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 특혜를 받는다”는 불만이 나왔다. 이번 컴백에서 에이티즈는 ‘빌보드 200’ 2위와 ‘영국 오피셜 앨범차트 Top 100’ 10위, 35개국 아이튠즈 1위 등을 기록했다. 각자의 나라에서 커리어하이를 이끈 해외 팬 입장에서는 국내 음원 플랫폼 높은 순위 진입에 고전한 한국 팬들이 음악방송 현장에서 미니 팬 미팅을 하고 선물을 받은 게, 마치 조별 과제 무임승차처럼 느껴졌나 보다. 평소 해외 팬들의 열정에 감탄하며 고마워하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한국 활동에 한국 팬이 참여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 하이브 레이블즈 재팬 소속 보이 그룹 앤팀(&TEAM)의 7월 8일 팬 사인회에서 보안 요원이 일부 팬들의 속옷 검사를 해 논란이 됐다. 팬 사인회를 주최한 위버스샵은 “전자 장비를 몸에 숨겨 반입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해 보안 보디체크를 진행했고 불쾌감을 드리게 됐다”며 사과했다. 후폭풍이 거센 가운데 일부 일본 팬들의 항의가 눈에 띄었다. “팀 홍보하러 한국에 갔는데, 한국 팬들이 그룹 평판을 떨어뜨려서 일본에서도 기사가 났다” “이래서 한국 활동하러 가는 게 싫었다” 등을 보니 헷갈린다. 앤팀은 K-팝 그룹일까? 일본 그룹일까?

비단 앞의 두 케이스뿐만이 아니다. 요즘 K-팝 판은 “Do you know PSY?(두 유 노 싸이?)”를 묻던 시절과 완전히 달라졌다. 일단 ‘사이즈’부터 다르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xikers(싸이커스)처럼 데뷔와 동시에 미국 ‘빌보드 200’ 차트에 진입하는 그룹이 있는가 하면, Mnet ‘보이즈 플래닛’을 통해 선발돼 7월 10일 공식 데뷔한 제로베이스원은 첫 번째 미니앨범 ‘YOUTH IN THE SHADE(유스 인 더 셰이드)’가 발매 당일에만 124만 장이 팔렸다. 특히 국내 방송사 오디션인데도 최종 1위를 차지한 중국인 장하오의 인기는 엄청나다. 예약 주문 기간 동안 중국 내 팬덤 공동구매로만 30만5886장이 나갔다.

현지화 그룹 등장으로 가속화된 K-팝 정체성 논란

외모만 보거나 음악만 들어선 K-팝 그룹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늘고 있다.

블랙스완

블랙스완

XG

XG

SB19

SB19

정체성이 헷갈리는 아이돌 그룹도 많다. 얼마 전 한국 활동을 마무리 지은 4인조 걸 그룹 ‘블랙스완’은 벨기에·브라질·미국·인도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비교적 정체성 구분 난도가 쉬운 편이다. 한국어로 노래하며 스스로 자신들을 K-팝 걸 그룹이라 말하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 에이벡스 한국 법인 소속의 걸 그룹 ‘XG’는 일본인 멤버들이 영어로 노래 부른다. 지역과 언어에 묶이고 싶지 않다는 목표를 말하지만 한국인 프로듀서의 손길이 닿은 티가 난다. 제작도 한국에서 하고 활동도 한국에서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에서 음반을 발매하며 활동하는 이유가 해외 투어 나가기 전 단순한 시작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아이브나 뉴진스처럼 폭발적인 국내 인기를 바탕으로 해외시장에서 덩달아 주목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래서 더 K-팝이 헷갈린다.



미국 온라인 사전 ‘딕셔너리닷컴’은 K-팝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K-팝은 한국에서 시작된 팝 음악의 한 장르이다. 힙합과 록 같은 서양 팝 음악 요소들을 한국의 전통과 결합하고, 일부 영어와 혼합된 한국어 가사를 쓴다. 특히 아이돌 보이 밴드와 걸 그룹에 의해 공연된다.”

K-팝이란 단어가 매체에 처음 등장했을 때 K 역시 ‘Korea’의 K였다. 1999년 10월 9일 자 ‘빌보드’지에 실린 ‘S. Korea To Allow Some Japanese Live Acts(한국, 일부 일본 라이브 공연 허용)’이란 제목의 기사였다. 당시 조현진 전 빌보드 한국특파원이 인터뷰이인 김창환 프로듀서가 말한 ‘가요’를 대체할 적당한 단어를 찾다가 국내 프로축구 리그인 ‘K-리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이후 2000년 H.O.T.의 중국 진출을 계기로 한류 열풍이 불면서 소녀시대, 빅뱅 등의 인기와 함께 차츰 국내외에서 고유명사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에는 K-팝이 한국 기획사에서 만든 한국인 가수 또는 한국인이 대다수인 그룹이 부르는 한국 노래로 통했다.

K-팝의 개념이 조금씩 확장되다가 특징적인 변화를 겪는 시기는 2018년 이후다. 한국 기획사가 K-팝 시스템을 활용해 인큐베이팅을 하되 아예 현지인으로 팀을 구성하고 현지 위주로 활동하는 아이돌 그룹이 등장했다. 한국 연예기획사 쇼비티가 필리핀에 진출해 2018년 선보인 필리핀의 5인조 그룹 ‘SB19’은 2021년 미국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BTS, 아리아나 그란데 등과 나란히 ‘톱 소셜 아티스트’ 후보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2019년에는 SM에서 그룹 NCT에 포함되면서 중화권 공략 유닛으로 기획한 6인조 다국적그룹 ‘WayV(웨이션브이)’를, CJ ENM은 일본판 ‘프로듀스101 재팬’을 통한 ‘JO1’을 선보였다. 2020년 12월 JYP는 일본 소니뮤직과 합작한 오디션 ‘니지 프로젝트’를 열고 전원 일본인 그룹 ‘NiziU(니쥬)’를 내놓았고, 올 7월부터는 ‘니지 프로젝트 시즌 2’를 통해 새 보이 그룹을 발굴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JYP와 하이브는 올 하반기에 미국 현지에서 걸 그룹을 론칭할 예정이다. 공교롭게도 두 곳 모두 미국 유니버설뮤직 산하 레이블들과 손잡았다. JYP는 리퍼블릭 레코드와 함께 ‘A2K(American2Korea)’ 오디션을 진행해 현재 JYP 본사에서 최종 데뷔 멤버 선발을 위한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하이브는 게펜레코드와 협업해 미국 현지 걸 그룹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K-팝은 음악 장르 아닌 산업이자 문화

일본인 7명과 한국인 1명, 대만인 1명으로 구성된 하이브 레이블즈 재팬 소속의 앤팀.

일본인 7명과 한국인 1명, 대만인 1명으로 구성된 하이브 레이블즈 재팬 소속의 앤팀.

K-팝의 기준은 한국인 멤버, 한국 활동도 아니다. 해외 팬들이 푹 빠진 K-팝은 보다 복잡하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비주얼, 보컬 실력을 고루 갖춘 아티스트를 주축으로 이 아티스트의 매력을 극대화해주는 뮤직비디오, 패션 등이 한데 어우러진 주류문화이자 산업이다. ‘Z를 위한 시’의 저자인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학교 교수는 “힙합이 음악뿐만 아니라 의상, 그라피티, 댄스 등을 빼놓고 정의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K-팝도 수많은 요소가 종합적으로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K-팝이라는 장르로서의 의미를 갖게 된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은 “K-팝은 팬들의 소비 행태, 제작 시스템, 계약 구조를 통틀어 지칭하는 것”이라며 “K를 희석시켜야 하고, K-팝이 특정한 의미로 정의되지 않는 선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K-팝이 산업이라는 정의를 알고 보면 K-팝의 미래도 명쾌해진다. 많이 팔아야 또 만들고 자꾸 만들어야 더 잘 만든다. 다만 잘나갈수록 조심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K-팝이 세계로 향할수록 소외감과 역차별을 느끼는 국내 팬 그리고 파이가 커진 만큼 요구도 다양해진 해외 팬 모두를 보듬어야 할 때다. 자칫하면 뿌리가 흔들릴 수 있는 문제지만 ‘짬짜면’을 만들어낸 우리 아니던가. 오랜 K-팝 팬으로서 바란다. “이왕이면 맛있게 섞어주세요!”


윤혜진은 
아이돌 조상 H.O.T.부터 블락비, 에이티즈까지 청양고추 매운맛에 중독된 K-팝 소나무다. 문화교양종합지와 패션 엔터테인먼트 매거진 기자를 거치며 덕업일치를 이루고, 지금은 ‘내돈내산’ 덕질 하는 엄마로 살고 있다.

#K-팝 #제로베이스원 #현지화 #여성동아

사진출처 웨이크원 홈페이지 블랙스완·XG·앤팀·SB19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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