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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차가운 수술장의 낭만 닥터 김기준 교수

김명희 기자

2023. 08. 09

그는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한 수술장에 시의 따뜻함과 평안을 가져오고 싶어 하는 의사다. 삶과 죽음이 수시로 교차하는 그곳에서 타인의 고통에 무뎌지지 않고자 부단히 스스로를 단련하는 의사, 김기준 교수를 만났다. 

김기준(60) 교수를 만난 건 장마의 한가운데서였다. 환자가 그를 만나는 순간도 폭우가 쏟아지고 흙탕물이 튀는, 인생에서 장마 같은 시기다. 병명을 진단받고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있는 순간. 하지만 김 교수를 만났던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그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주치의도, 외과의도 아닌 마취의이기 때문이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등을 거쳐 현재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가 최근 에세이집 ‘나를 깨워줘’를 펴냈다. 김 교수는 2016년 ‘월간 시’를 통해 등단,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과 사물에 대한 예의’ 등 2권의 시집을 펴낸 시인이기도 하다. 그간 써왔던 시와 병원에서 일하며 느끼고 깨달은 바를 에세이로 엮은 이번 책에는 일반인이 잘 모르는 마취에 대한 정보와 생과 사가 교차하는 긴박한 수술장 풍경,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사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의사와 시인 외에 김 교수를 설명하는 말이 하나 더 있다. 스킨스쿠버 마니아. 25년 전, 마취제가 심장근육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던 중 우연히 질소마취라는 것을 알게 됐다. 심해에서 질소마취 효과를 직접 몸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 시작한 스킨스쿠버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잠수 포인트라면 제주 문섬, 동해안 왕돌초, 갈라파고스, 몰디브까지 안 가본 곳이 없다. 잠수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해군 해난구조대(SSU) 자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대학에서 잠수 및 고압의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시와 잠수는 의사 김기준을 단련하고 정진시키는 도구다. 시는 마음을 깨끗하게 가다듬어 사무사(思無邪·생각에 사특함이 없음)의 세계로 나아가도록 하고, 잠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 겸손한 마음을 갖도록 한다. 시인의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고, 잠수사의 정신으로 의학을 공부하는 김기준 교수와 나눈 이야기를 소개한다.

수술 집도의가 배의 선장이라면 마취의는 기관장

김기준 교수의 에세이집 ‘나를 깨워줘’의 표지. 사진은 김 교수가 직접 촬영한 것이다.

김기준 교수의 에세이집 ‘나를 깨워줘’의 표지. 사진은 김 교수가 직접 촬영한 것이다.

‘나를 깨워줘’ 표지 사진이 청량합니다. 특별한 의미가 담긴 사진 같아요.

스킨스쿠버 여행차 갔던 필리핀 세부 막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닻줄이 풀린 채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외로운 배(방카·필리핀의 작은 낚싯배) 한 척이 이 사진의 주제입니다. 마치 외로운 수술대 위에 홀로 누운, 어찌해볼 수도 없는 막막한 환자처럼요. 몇 해 전 저에게 마취를 받으려고 준비 중인, 악성고열증(마취 도중 체온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증상. 상염색체 이상으로 발생하는 유전병의 일종) 과거력이 있는 환자가 제 두 손을 꼭 잡고 부탁한 말씀이 바로 이 책의 제목입니다. 고맙게도 그 환자는 2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고 무사히 회복하셨습니다.

마취와 스킨스쿠버는 공통점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심연, 고요의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도대체 그 깊이를 알 수 없다는 것이죠.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둘 다 상당한 이론적 공부와 실전에서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어느 정도 내공이 쌓입니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그 세계에 대한 이해가 시작되고, 점점 깊어지는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마취 의사, 스쿠버다이버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시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술장에서 일하면 보통 사람들보다 아픔과 죽음에 대해 무뎌질까요.

당연히 무뎌집니다. 그러나 그러면 안 됩니다. 좀 더 민감해져야 합니다. 환자의 불안, 고통 등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수술장에서 일하는 의료진은 지속적인 자기 성찰과 감성 관리가 꼭 필요합니다. 물론 의학 이론과 의술 면에서도 뛰어나고 자신감이 있어야 힘들거나 어려운 상황에서 공황에 빠지지 않습니다.



학창 시절 어떤 학생이었나요. 남다른 감성을 지닌 시인과 냉정함이 요구되는 의사는 무척 다른 일 같습니다. 시인 김기준과 의사 김기준은 어떻게 다른가요.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예민하기는 했어요. 중학생 때부터 문학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거든요. 시인 의사인가? 의사 시인인가? 등단 이후 많이 받는 질문인데, 사실 저는 시에서 배운 정신을 수술장에서 실천하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환자, 동료, 의료진과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고 우리들에게 주어진 소명을 실천하며 이렇게 살 수도 있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본 보이고 가르치면서요. 착하고 아름다운 시를 쓰면서 전혀 다른 삶을 살면 안 되니까, 아이들과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시인 김기준과 의사이자 교수인 김기준은 결국 같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삶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 여겨집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나 에피소드, 마취의로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을 꼽자면요.

2014년 즈음 산부인과 마취를 담당했는데, 제왕절개 분만을 앞둔 산모가 너무 두려워하셨습니다. 산모에게는 진정제를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환자는 스스로 불안감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걱정하지 마시라”고,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하며 손을 잡아드렸습니다. 다행히 산모님은 진정이 됐고, 분만도 무사히 끝났죠. 나중에 그분이 미안하고 고마웠다며 초유로 만든 비누 두 장을 주고 가셨습니다. 이분 덕분에 처음으로 ‘비누 두 장’이라는 시를 쓸 수 있었습니다. 닫혀 있던 제 마음을 똑똑 두드려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만들었고, 다시 시를 쓸 수 있게 만들었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의사가 될 수 있게 한,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이 이렇게 따스할 수 있음을 가르쳐준 분이죠. 보람은 마취할 때마다 느끼고 있습니다. 늘 환자와 공감하려 하고 있으니까요. 그러지 않았으면 벌써 그만두고 개업했을지도 모르죠(웃음).

책에 “외과 발달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 중 하나가 마취”라고 쓰여 있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취의 발달이 외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외과 의사로 활동하다가 이제는 은퇴하신 은사님께 직접 들었습니다. 마취에 사용하는 약제 및 기계, 모니터링 장비 및 영역, 마취 의사들의 수준이 놀랄 정도로 향상되었거든요. 그 어렵다는 암 수술 및 각종 이식 수술의 생존율이 어마어마하게 향상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마취는 ‘수술 전 환자의 몸과 심리 상태를 명확히 파악해 수술 도중 환자의 활력징후를 정상적으로 유지함으로써 환자를 살아있게 하고, 수술 후에는 환자의 통증을 치료해 무사히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게 만드는 수술 전중후 의학’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환자를 큰 바다를 건너는 배로 비유한다면 수술하는 외과 의사는 선장, 마취하는 의사는 기관장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기관장은 큰 배가 무사히 바다를 건널 수 있도록 배의 안전 상태를 온전히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야 선장이 안심하고 폭풍우가 치는 바다 위에서 자신 있게 배를 운전할 수 있는 거죠. 즉, 마취 의사가 환자의 활력징후를 완벽히 지켜주어야 외과 의사가 자신 있게 수술에 몰두할 수 있는 거죠. 이러한 긴밀한 협력관계는 수술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내공 깊어질수록 겸손한 점 닮은 부부

김 교수의 아내는 소아작업치료사다. 소아작업치료사는 발달 과정 중 뇌의 손상으로 인하여 팔 또는 다리의 마비나 기능 장애, 감각 및 정서 장애, 지능 및 언어 장애 등을 가진 아이들을 치료해 일상생활이 최대한 가능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두 사람은 김 교수가 본과 1학년 때 병원 재활원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환자에게 정성을 다하고 공부하면 할수록 부족함을 느낀다며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는 아내를 보면 존경스럽게 느껴진다고. 그는 “의학은 계속해서 새로운 논문이 나오고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기 때문에 늘 공부해야 한다. 가장 두려운 것 중 하나가 나중에 후배들이 우리 세대를 돌아보면서 ‘그때는 의사들이 참 무식했어’라고 하는 거다. 자신이 모른다는 걸 알고 늘 겸손한 자세로 공부하는 의사가 명의”라고 말한다.

김기준 교수는 시와 같은 따뜻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김기준 교수는 시와 같은 따뜻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책을 읽다 보면 마취의는 수술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도 환자들은 대부분 그 사실을 알지 못하죠.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마취의들만의 애환이 있을까요.

마취의는 주치의가 아니고 또 마취가 끝나면 환자도 기억을 못 하니, 그렇게 수술장에서 고생해도 알아주는 사람이 거의 없죠. 여기에 괴리가 있어요. 비누 두 장을 들고 찾아오신 산모님은 전신마취가 아닌 척추마취를 하셨기 때문에 아셨던 거고요. 하지만 누가 알아주길 바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로서의 당연한 소명이기에 생색낼 일도 아닙니다. 저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마취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생명을 살리는 것에만 목표를 두어야 한다. 칭찬받을 생각 마라. 생색낼 생각 마라. 하늘은 이미 다 알고 계신다. 하나님의 후배, 제자들이니까. 자기 짐이라 생각하고 흔쾌히 그 짐을 져라”라고요.

수술장에서 내 고통에 귀 기울여주는 의사가 있다는 사실이 참 위안이 됩니다.

환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의사는 의사가 아닙니다. 단순한 기술자일 뿐입니다. 물론 뛰어난 의술도 필요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사명, 인술, 공감, 배려 등이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사가 명의입니다. 수술장은, 특히 마취하기 전의 수술장에서는 환자의 불안이 배가됩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한 한 환자의 손을 잡고 기도해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태도를 후배와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고요.

가끔 뉴스에 마취 후 깨어나지 못한 사례가 보도되기도 하는데, 왜 그런가요. 마취 받기 전 환자가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이 있나요.

기본적으로 대학병원의 수술장에는 중환자들이 많이 옵니다. 대부분 여러 가지 합병증 등을 동반하고 있고요. 그만큼 수술 및 마취 위험도가 높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미리 환자와 보호자께 이를 설명드린 후 최대한 잘 준비해 안전하게 마취 및 수술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이라 불가항력적인 상황도 발생합니다. 악성고열증 등의 유전적 질환이나 마취 약물에 대한 쇼크 발생, 수술에 따른 대량 출혈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겁니다. 환자와 보호자는 솔직하게 환자의 과거력과 현재 상태에 대하여 주치의와 마취 의사에게 보고하고 상의하고, 현재 복용하고 있는 약물의 지속 사용 및 중지에 대한 의사의 지시를 철저하게 이행해주셔야 합니다. 물론 금식 등의 지시 사항도 말이죠. 가끔 수술 전날 식사를 하거나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고도 ‘소량이니 별일 없을 거다’ 생각해 말씀을 안 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저희가 알아야 어떠한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으니 꼭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올 들어 한 대학병원 마취과 의사 5명이 사직했다는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마취과 의사들이 처한 현실이 녹록지 않은 듯한데, 현장의 상황은 어떤가요.

한마디로 대학병원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죠. 이식 환자 및 중증 환자의 집중, 외상 등을 포함해 밤을 새워야 하는 응급수술 등의 과부하로 특히 상대적으로 어린 마취과 스태프가 힘들어합니다. 이들에게는 학생 및 레지던트 교육, 심지어 병원의 행정 업무 등이 맡겨지기도 하죠. 동기들은 개업해서 워라밸을 잘 유지하며 돈도 잘 벌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미래가 불안정하고 불투명하니까요. 고질적 저수가도 이에 한몫하죠. 마취료의 원가 보전율이 72.2% 정도이니 대학병원에서도 충분한 의료진을 채용하기 어렵고, 채용하더라도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요. 미래가 참 걱정입니다.

에세이를 보면 소아작업치료사인 아내에 대한 존경이 느껴집니다.

아내의 치료실에 가끔 들를 때마다 구슬땀을 흘리면서도 아이의 상태가 좋아졌다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가슴이 찡합니다. 아이들이 아내를 잘 따르고, 부모님들도 깊이 신뢰하는 것을 보면 감격스럽고 부럽습니다. 저는 환자를 재우는 마취 의사이다 보니 환자나 보호자와 그런 관계를 맺는 것이 매우 제한적이거든요. 어깨가 좋지 않아 끙끙 앓는 날이 많은데도, 관절이 굳고 몸이 뒤틀리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 그만두지 못하겠다고 하네요. 어깨가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수업 마지막 시간에 학생들에게 부모님께 “사랑한다, 감사하다”고 전화하라는 과제를 내신다고 들었습니다. 학생들 반응은 어떤가요.

당연히 눈물바다가 됩니다. 학생들보다는 부모님 반응이 좋습니다. 간혹 담임 반 학생들과 하는 모임 또는 파트 회식 자리에서 부모님들께 전화하기도 하는데, 감동이 그냥 전해집니다. 저도 요즘 아침마다 수술장 들어가기 전 어머님께 전화를 걸어 “사랑합니다”라고 말씀드려요. ‘사랑한다, 고맙다’ 이런 따뜻한 말을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랑해” 말하는 게 어색하다면 “고맙다”는 말부터 시작해보세요. 그다음은 훨씬 쉬울 겁니다.

얼마 전 안타깝게 타계한 서울아산병원 주석중 교수의 유품 가운데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며 도와달라고 간구한 기도문이 발견되었습니다. 교수님도 책에서 수술 전 항상 환자의 손을 잡고 기도하신다고 고백하셨고요. 신이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나요.

자주 있지요. 수술장에서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회복하는 환자들을 보면, 병은 하늘이 우리를 통해서 치료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주석중 선배님도 그러셨을 겁니다. 흉부외과는 일 자체도 힘들지만 특히 중환자, 응급환자가 많아서 수술하다 잘못되는 경우도 많아요. 자신이 맡은 환자가 사망하면 그 의사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트라우마가 굉장히 오래 갑니다. 그래서 환자를 위한 기도는 사실 의사 자신을 위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무사히 수술을 마치게 해주십사, 수술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수에 잘 대처하도록 도와주십사 하는.

시인으로서도 의사로서도 초심을 잃지 않는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새벽마다 하는 명상과 기도, 시 읽고 쓰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는 사무사(思無邪)입니다. 세브란스병원 교수라는 소명은 제겐 단순한 직업 이상의 의미입니다. 내 제자들, 내 아이들이 보고 있을 테니 공부도 일도 결코 소홀할 수 없죠. 저에게는 기도이고 순례이며, 수행이고 정진입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그냥 뚜벅뚜벅 걸을 뿐입니다.

환자를 위한 기도는 곧 의사 자신을 위한 기도라고 말하는 김기준 교수.

환자를 위한 기도는 곧 의사 자신을 위한 기도라고 말하는 김기준 교수.

“예수님 대하듯이 환자를 대한다.” 세브란스병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김기준 교수의 진료 철학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오늘도 성경 이사야서 41장 10절 문구가 적혀 있는 병원 수술장에 들어서는 김기준 교수. 환자가 예수라면 지금 이 순간 환자를 머리에 이고 죽음과 싸우는 그와 그의 동료들은 성자(聖者)가 아닐까.

#나를깨워줘 #김기준교수 #여성동아

사진 박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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