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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송민호 강승윤 기안84 개인전 성공시킨 최종신 우리넷 대표 “숲속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처럼 공간의 감동 전하고 싶어요”

윤혜진 프리랜서 기자

2023. 07. 28

올 6월 북악산 자락에 약 1만6528㎡ 규모의 뮤지엄이 문을 열었다. 우리옛돌박물관 부지를 활용해 야외 전시 공간을 살리고 본관 건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 인상적이다. 한 가지 이색적인 건, 이 건물의 주인은 예술과는 거리가 먼 유무선 통신장비업체를 운영한다는 것. 최종신 우리넷 대표에게 IT와 K-컬처 콘텐츠의 만남이 가능한 배경을 들었다. 

광통신 장비 등을 제조·판매하는 우리넷은 2000년 삼성전자 출신 연구원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IT 기업이다. 통신 3사와 공공기관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특화망 5G 동글 디바이스에 대해 국내 제조사로는 최초로 KC 인증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넷의 최근 행보가 심상치 않다. 우리넷은 지난해 3월 주주총회를 통해 사업 목적에 블록체인 기반 소프트웨어·플랫폼 개발사업을 추가했다. 특히 K-아트 분야에서의 활발한 움직임이 눈에 띈다. 우리넷은 지난해 2월 설립한 자회사 제이스테어를 통해 미술 전문 기업 스타트아트코리아를 인수하며 미술시장에 발을 들였다. 스타트아트코리아는 런던 사치갤러리와 협업해 매년 아트페어를 개최하는 영국 기업 스타트아트의 국내 사업을 맡고 있다. 지난해 ‘스타트아트페어 서울’을 개최했으며, 갤러리스테어와 스타트아트플러스 부산갤러리를 개관해 아이돌 그룹 ‘위너’ 송민호와 강승윤, 기안84 등의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올 6월 북악산 자락에 문을 연 ‘뮤지엄 웨이브’는 그간의 갤러리 공간보다 훨씬 큰 규모다. 약 1만6528㎡(5000평)의 우리옛돌박물관 부지를 활용해 야외 전시 공간을 살리고 본관 건물을 현대적으로 재단장했다. 개관전 ‘SUBLIME 숭고’는 9월 17일까지 열린다.

IT 기업과 미술관 그리고 석조 유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꼭대기에 위치한 뮤지엄 웨이브를 찾아가 보니 예상보다 더 근사했다. 알렉산더맥퀸의 해골 모티프 디자인으로 유명한 재키 차이의 작품부터 한국 후기 단색화의 대표 주자 김택상 작가의 회화, 영국의 테크노 뮤지션 맥스 쿠퍼와 비주얼 아티스트 케빈 맥글루힌이 함께한 미디어아트 작품 ‘Repetition(반복)’ 등이 알차게 이어진다. 백미는 영화감독 테런스 맬릭이 제작에 참여하고 영국의 록 밴드 라디오헤드 출신의 조니 그린우드가 사운드를 담당한 몰입형 체험 전시 ‘Evolver(진화하는 자)’. 압도적인 크기의 스크린 영상을 접한 뒤 배우 이정재의 내레이션을 들으며 AR 체험을 하고 나면 현실과 가상 그 어딘가의 경계에 붕 떠 있다. 정원에서 고요함을 깨는 풍경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현실에 발이 닿는다. ‘숭고’라는 타이틀을 붙인 이유를 알 것 같다.

지난 7월 5일 뮤지엄 웨이브에서 만난 최종신(54) 대표는 “숭고라는 단어가 기대를 넘어서는 감동이나 아름다움을 포괄한다고 생각한다. VR 기기를 착용하고 작품을 쌍방향으로 즐기거나 놀라운 풍경을 마주하는 게 일상의 흔한 경험은 아니지 않느냐”며 “많은 분이 이곳에 와서 기대 이상의 감동을 얻어가셨으면 좋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뮤지엄 웨이브 1층 전시실에서는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중국계 아티스트 재키 차이의 작품을, 2층에서는 김택상 작가의 회화를 만날 수 있다.

뮤지엄 웨이브 1층 전시실에서는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중국계 아티스트 재키 차이의 작품을, 2층에서는 김택상 작가의 회화를 만날 수 있다.

갤러리 밀집 지역으로 떠오른 서울 한남동이나 청담동이 아닌 성북동 우리옛돌박물관을 뮤지엄 자리로 택한 이유가 있나요.

젊은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한남동, 청담동 근처에 갤러리나 미술관이 많이 생겼죠.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나 국제갤러리, 현대화랑 등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곳이 많은 동네는 경복궁 옆 골목으로 쭉 들어오는 이 라인이에요. 도로 선상으로 보면 삼청각 지나서 바로 우리 뮤지엄이 위치하니까 현대미술의 벨트가 연장됐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최첨단 전시를 보고 나와 초록빛 정원을 걸으니 신선하더라고요.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도 파리 16구 불로뉴의 숲 근처에 있어요. 거기 가는 사람들은 숲 한가운데 자리한 루이비통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죠. 우리도 교통 접근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일부러 찾아오는 분들에게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많은 감동을 드릴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콘텐츠에서 받는 감동도 있지만 그 콘텐츠를 담은 공간에서의 경험치도 큰 감동 중의 하나거든요.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네” 하실 겁니다.

건물 인테리어와 전시 구성도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아요.

개관전이니까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과 유명 국내 작가 작품, 임팩트가 강한 작품들을 골고루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전시를 준비하며 작품을 맡긴 작가들이 먼저 만족해야 관람객에게도 감동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 꾸민 곳이라 작가분들 걱정이 많았을 텐데, 층마다 작품에 따라 달리한 조명과 바닥, 배치 등에 감탄하셨어요. 정말 신경 많이 썼습니다. 건물 내부에 있던 석조 유물을 옮기는 데만 한 달이 걸렸어요.

‘Evolver’의 한국 영상 내레이션을 배우 이정재 씨가 맡은 점이 신의 한 수 같습니다.

영국에서는 영상 내레이션을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주연상을 받은 적이 있는 유명 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했어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분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이정재 씨가 떠올랐어요. 목소리에 울림이 있으면서도 작품을 압도하지 않는 적당한 저음이 필요했거든요. 명상 10분, VR 체험 25분이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몰입할 수 있도록 이끌어줘서 관람객들 사이에 굉장히 반응이 좋습니다. 이정재 씨도 체험 후 만족해했어요.

그간 K-아트 관련 행보를 보면 바닷가 옆 미술관, 호텔 속 전시, 스타 작가 전시 등 미술 대중화에 힘쓴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뮤지엄 웨이브가 맡은 역할은 무엇인가요.

일단 우리넷에서 직접 운영하는 뮤지엄 웨이브가 브랜딩 측면에서 메인 플랫폼이라 할 수 있어요. 앞으로 우리넷이 추구하는 사업과 방향성을 맞춰가면서 전시, 미술교육, 행사 등을 진행해나갈 계획입니다. 스타트아트코리아는 미술 대중화를 목표로 아트테이너 작품을 소개하거나 아트페어 브랜드를 운영하는 회사예요. 그렇게 중복되지 않은 각자의 영역에서 잘해나가면 폭넓은 관객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대표님도 미술에 조예가 깊을 것 같습니다.

조예가 깊다기보단 미술관이란 공간이 주는 느낌을 좋아합니다. 본사가 평촌이라 서울을 오갈 때 시간이 비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과 과천을 자주 찾는데, 미술관에 가면 생각이 잘 정리되는 편이에요. 평소 주말이나 해외 나가서도 가족들과 미술관에 자주 가고요.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 스타일이 있나요.

좋아한다는 표현보다는 존경의 차원에서 몇 분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저는 작품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과정을 알고 나면 더 감동이 커지는 경우가 많아요. 유영국 작가는 1961년부터 한 40년 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작업실에 나갔어요. 구도의 길을 걷듯 사는 게 작가에게 필요조건은 아니지만, 그런 산고 끝에 나온 작품이라는 걸 알고 봤을 때 저는 더 깊이 있는 감상이 되더라고요. 또 정상화 작가의 단색화 역시 질감 표현을 위해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년 동안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과정을 거쳐요. 덕분에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을 달리할 수 있죠.

“인터넷망 업체가 망에 싣는 콘텐츠 만드는 건 당연”

1 2 3층을 통으로 할애한 몰입형 체험 전시 ‘Evolver’.

1 2 3층을 통으로 할애한 몰입형 체험 전시 ‘Evolver’.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 있는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최종신 대표는 곧바로 “세월을 아우르는 모던함을 지닌 알렉스 카츠나 사연이 있는 가게 그림만 그리는 이미경 작가처럼 표현하고자 하는 기조가 명확한 작품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어떤 주제로 이어져도 말이 끊어지지 않는 박학다식한 면모는 최종신 대표의 강점이다.

최종신 대표는 1994년 삼성물산에서 일을 시작했다. 인터넷 사업 기획 TF팀에 발탁된 것을 계기로 세중게임박스를 거쳐 30대에 콘솔게임 개발사 스튜디오나인을 창업했다. 스튜디오나인을 바른손에 매각한 후에는 바른손크리에이티브 대표와 영화사 위더스필름 대표를 역임했다. 우리넷에 합류한 시기는 2018년, 신규 사업을 이끈 리더십을 높이 평가받아 2020년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현재 자회사 제이스테어 대표도 겸하고 있는 최종신 대표는 성장 가능성이 큰 K-아트 외 이미 정점에 올라 있는 K-팝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제이스테어는 걸 그룹 마마무가 있는 엔터테인먼트사 RBW와 MOU를 맺어 온라인 팬덤 커뮤니티를 추진 중이며, 올 6월에는 K-컬처 기반 스트리트 브랜드 ‘돕(daub)’을 론칭하며 걸 그룹 오마이걸의 효정과 협업했다.

우리넷에서 미래 먹거리로 콘텐츠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넷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장비를 개발·제조하는 업체입니다. 빠른 속도로 안전하게 더 많은 데이터를 전송하도록 전문적인 연구개발 위주의 일을 하죠. 그런데 인터넷망을 통해서 얻어지는 부가적인 수익은 대부분 콘텐츠에서 나옵니다. KT도 디지코(디지털플랫폼 기업) 전환 선언 이후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SKT도 영상과 게임 사업을 하잖아요. 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넷의 전략적인 판단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콘텐츠 사업을 잘하면 그 성과를 바탕으로 시설 투자가 생기면서 장비가 많이 팔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K-컬처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플랫폼을 택한 이유는요.

지금 K-컬처가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잖아요. 여러 시도를 해볼 수 있고, 특히 아트 분야에서 적기라고 생각한 이유가 있어요. 문화면에서 홍콩이 갖고 있던 아시아 권역에서의 독보적인 위치에 균열이 생겼거든요. 구매력을 가진 컬렉터들은 아트페어가 한국에서 열리든 홍콩에서 열리든 가서 그림을 삽니다. 실제로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국제아트페어 ‘프리즈’가 열렸는데, 거래액 6500억 원을 기록했어요. 이 기록 자체가 국내 미술시장의 성장으로 볼 순 없지만 세계 미술시장에서의 우리나라 포지셔닝에 한 분기점이 된 거예요. 프리즈는 올 9월에도 우리나라에서 열립니다.

폭넓은 분야만큼이나 속도 측면에서도 빠르게 전개 중인데, 이에 따른 내부의 우려는 없나요.

오히려 속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홍콩 액션배우들이 출연한 누아르물이 인기를 끌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죠. 우리도 지금 이 불씨를 이어가려면 더 빨리 구체적인 성과를 내야 해요. 이후 산업적인 뒷받침이 되면 생명력이 길어질 겁니다. 무엇보다 우리넷이 가진 역량 범위를 넘어선다면 우려의 목소리가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완급 조절을 잘해오고 있어요. 그러기 위해 제이스테어를 설립할 때부터 최선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연합군들과 함께해왔고요(제이스테어는 영화 ‘변호인’을 제작했던 최재원 앤솔로지스튜디오 대표를 사외이사로, RBW 김진우 대표를 감사로 영입했다).

준비 중이라 알려진 아이돌 카드 수집형 리듬게임이나 RBW와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는 K-팝 팬덤 커뮤니티는 후발 주자인 셈인데요. 기존 서비스와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지금 두 프로젝트 모두 올해 안으로 론칭하기 위해 후반 작업을 하고 있어요. 해외시장을 바라보고 있는 리듬게임의 경우 SBS미디어넷 음악방송 ‘더쇼’의 콘텐츠를 활용하다 보니 적극적인 해외 진출이 쉽지 않은 소형 기획사 아티스트도 우리 플랫폼을 통해 해외에 소개될 수 있고요. 팬덤 커뮤니티는 아티스트와 팬이 함께 게임하며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주려 합니다. 아티스트 IP를 활용한 사업의 핵심은 팬들이 돈을 써도 의미가 있다고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요.

팬들로부터 “우리 오빠, 우리 언니를 돈벌이로 이용하지 마세요”라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는 노골적으로 상업적인 색채만 강조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번에 론칭한 ‘돕’에서 오마이걸 효정과의 협업을 보면 효정 씨가 디자인 회의부터 제작, 검수까지 6개월 넘게 참여했어요. 이런 경험을 통해 아티스트는 재미와 행복을 느끼고, 우리 역시 의지를 가진 아티스트들의 참여가 이어질수록 더 좋은 플랫폼이 될 수 있겠죠.

평범한 회사원에서 코스닥 상장사 대표까지

‘돕’과의 여름 시즌 컬래버레이션에 즐겁게 참여한 오마이걸 효정은 그 과정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남겼다.

‘돕’과의 여름 시즌 컬래버레이션에 즐겁게 참여한 오마이걸 효정은 그 과정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남겼다.

표면상으로 그간의 길과 우리넷은 결이 다른 느낌이 없잖아 있어요. 일하며 고충은 없나요.

사회생활을 삼성물산에서 시작해 10년 가까이 보냈고 우리넷도 삼성전자에서 출발한 회사예요. 조직문화라든지 회사 체계가 크게 다르지 않아 잘 적응했습니다. 일에 관해 고충 말고 아쉬운 부분은 있어요. 다른 분야의 신사업에 비해 영화나 드라마 쪽 진도가 조금 늦기에 더 얘기할 게 없어서 아쉽습니다(웃음).

여러 분야를 섭렵한 콘텐츠 전문가답네요. 또 어떤 분야의 가능성을 높이 사나요.

산업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공간 사업을 주목해볼 만합니다. 특색 있는 공간에 대한 니즈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커졌어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가면 빌딩을 거꾸로 세워놓고 물을 채워놓은 것 같은 다이빙 체험장이 있어요. 유리 포토 존이 있어 밖에서 사진을 찍어줄 수도 있고요. 그 체험을 하러 두바이에 가는 분들이 있듯이 여행의 목적이 특별한 공간을 방문하기 위해서가 될 수 있죠.

우리넷에서 준비하고 있는 다음 스텝이 궁금해집니다.

우리넷 본업에서는 올 하반기 무렵 성과가 나타날 프로젝트가 몇 건 있고, 신규 사업은 신규 사업대로 아직 부족하다고 느낀 부분을 채워가는 해가 되도록 밀도 있게 움직일 계획입니다.

개인적으로 꼭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가 있나요.

지금까지 회사원으로 시작해 제 회사를 만들어 상장사에 매각해보기도 하고 상장사 대표도 됐잖아요. IPO 관련해 남은 것은 제가 만든 회사를 직접 상장시키는 일 같아요. 제이스테어를 상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버킷 리스트를 일에서 찾으면 무능한 사람이니까 다른 하나를 추가해도 될까요. 하하. 피아노를 좀 더 잘 치고 싶습니다. 지금도 즉흥연주는 할 수 있지만 예전에 그만둔 바하 인벤션부터 이어서 레슨을 더 받고 싶어요.

#우리넷 #뮤지엄웨이브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사진출처 유튜브 ‘쩡이언니’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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