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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MZ핫플’ 그라운드시소 만든 지성욱 대표“ 힙하다는 건 트렌드 속 반 발짝 앞선 디테일”

문영훈 기자

2023. 07. 26

‘요시고 사진전’이나 ‘그라운드시소’를 처음 들어봤다면 당신은 MZ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라운드시소를 만들어 느슨한 한국 전시 신에 긴장감을 준 지성욱 미디어앤아트 대표를 만났다. 

인터파크가 매해 발표하는 연간 전시 순위에서 그라운드시소가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2020년 ‘유미의 세포들 특별전’이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2021년 ‘요시고 사진전: 따뜻한 휴일의 기록’, 지난해 ‘우연히 웨스 앤더슨’은 각각 연간 순위에서 4위와 9위를 차지했다. 그라운드시소의 전시는 특히 MZ세대의 큰 관심을 받는다. 스페인 작가 요시고가 찍은 푸른 지중해 위를 유영하는 남자의 이미지는 42만 명을 불러 모았다. 코로나19로 발이 묶인 2030은 공항 대신 그라운드시소 서촌 앞 긴 줄을 섰다.

그라운드시소의 기획은 서울 밖과 해외로 뻗어나가고 있다. 현재 ‘요시고 사진전’은 부산에서 열리고 있고, ‘우연히 웨스 앤더슨’ 전시는 일본 도쿄를 비롯한 주요 도시를 투어할 예정. 천편일률적인 전시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이는 지성욱(52) 미디어앤아트 대표다.

삼성엔지니어링, 다날 미디어사업본부장을 거쳐 KT 미디어 콘텐츠 사업을 담당한 그는 2010년 배우 고현정과 아이오케이컴퍼니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자기 사업에 뛰어든다. 매니지먼트사를 넘어 좋은 피부로 소문난 배우의 이미지를 이용해 리엔케이라는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2014년 미디어앤아트가 탄생한다. 당시 생소하던 미디어아트 개념을 국내에 이식했다. 반 고흐, 클림트의 명화가 현대 기술로 재탄생한다.

그라운드 시소 로고.

그라운드 시소 로고.

융합을 강조하시는 것 같습니다.

매니지먼트사를 만들 때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마케팅의 한 방식으로 풀 수 없을까 생각했어요. 할리우드에는 이미 자기 브랜드를 갖고 있는 셀럽이 많은데 우리나라엔 없었어요. 각 배우마다 이미지가 있잖아요. 류시원은 레이싱, 소지섭은 수영선수라는 백그라운드가 있죠. 고현정 씨는 피부가 좋잖아요. 미디어아트도 마찬가지예요.

어떻게요?

회사 이름이 미디어앤(&)아트잖아요. 고흐 같은 클래식 콘텐츠에 미디어를 결합하는 거죠. 저는 KT에서 일했으니까 IT(정보기술) 백그라운드에 대한 이해가 있었어요. 우리는 IT가 뛰어나니 여기에 아트 콘텐츠를 결합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거죠. 저는 최초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최초가 최고가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확률은 높아지죠. 제가 가진 비즈니스 철학은 결국 새로운 걸 계속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이건 전시가 아니다” 평가에도 25만 명 몰려

그라운드시소 명동에서 열린 ‘알폰스 무하”더 골든 에이지’ 전시

그라운드시소 명동에서 열린 ‘알폰스 무하”더 골든 에이지’ 전시

지 대표는 유튜브에서 반 고흐 관련 영상을 보고 국내에 미디어아트 전시를 열기로 마음먹는다. 처음엔 빔프로젝터를 사 사무실에서 영상을 쏘아 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뒤인 2014년 10월, 전쟁기념관 약 2300㎡(700평)가 150대의 빔프로젝터가 쏜 반 고흐의 그림으로 가득 찬다. 5개월간 25만 명이 ‘반 고흐: 10년의 기록’을 찾았다.

적지 않은 돈이 들었을 것 같은데요. 처음부터 잘될 거라고 생각했나요.

돈은 항상 많이 들죠. 드라마도 비슷해요. 사실 A4 용지 몇 장으로 투자받는 거잖아요. 저는 그런 생각은 있었어요.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인상주의에 대한 팬층은 있거든요. 기본은 하겠다는 생각은 있었죠. 그리고 최초잖아요(웃음).

비판도 있었죠.

디지털아트라고 설명했지만 원화가 없다며 환불해달라는 분도 계셨어요. 당시 언론이나 전시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이건 진짜 전시가 아니다”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관객들이 물밀듯이 왔어요.

그의 첫 시도는 성공적이었고 2016년 다시 고흐 그리고 클림트 디지털아트 전시를 연다.

“많은 분이 기억하는 고흐 전시는 서울역에서 했을 거예요. 구서울역사(문화역서울284)를 상업적으로 이용한 게 처음이었어요. 전체를 프로젝트 매핑했는데 한 달에 5만 명씩 왔으니까요. 역사적인 건물에서 가장 현대적인 형태의 전시를 했던 거죠. 3개 기관의 허가가 필요해서 힘들었지만요. 저희는 예술의전당이나 DDP처럼 굳이 전시가 많이 이뤄지는 공간을 택하지 않았어요. 그래야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있죠. 클림트 미디어아트 전시가 열린 서울 성수동 S팩토리도 그랬고요.”

그라운드시소가 기획한 요시고 사진전은 42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그라운드시소가 기획한 요시고 사진전은 42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문화역서울284, S팩토리, 갤러리아포레 더 서울라이티움(‘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전) 등 그가 전시 공간으로 택한 곳은 이후 ‘핫 플레이스’로 등극했다. 2019년 지 대표는 직접 핫 플레이스를 만들기로 한다. 그라운드시소다. 2020년 7월 서촌을 시작으로 현재 성수, 명동에도 그라운드시소가 있다.

공간을 직접 만들게 된 이유가 있나요.

제작사의 이름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미디어앤아트라는 이름은 어렵고요. 그렇다면 공간을 만들어 그 이름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려면 고정적인 공간이 필요했죠.

왜 이름이 그라운드시소인가요.

내부에서 공모를 했어요. 시소는 놀이터에 있는 그 시소입니다. 시소가 높이 올라갈 때 그리고 아래로 떨어질 때 뷰 포인트가 달라지잖아요. 고흐 전시도 현대적으로 표현 방식을 바꾼 거고 앨리스 전시도 과거 명작을 오늘날의 앨리스로, 지금의 정서와 트렌드로 재해석하는 거잖아요. 그런 관점을 바꾸는 장소, 그라운드(ground)를 제공해준다는 의미로 그라운드시소로 결정했습니다.

그라운드시소 홈페이지 로딩 화면은 세모 받침대 위 상하좌우 빙글빙글 돌아가는 원판 이미지다. 그 원판에 올라서면 다채로운 세상의 풍경이 보일 것이다. 다양한 시각을 체험할 수 있는 그라운드. 이것이 지 대표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이다. 그에 따르면 서촌, 성수동, 명동의 세 그라운드시소에선 장소의 성격과 맞는 전시가 펼쳐진다.

서촌을 첫 공간으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인근에 대림미술관이 있어서 시너지를 기대한 측면도 있고요. 서촌이라는 동네가 주는 정취도 한몫했어요.

그라운드시소 성수에서 8월 열리는 ‘포스터덤프: 썸머 디깅 페스티벌’은 팝업스토어가 거리를 메우는 성수동과 어울립니다.

새로운 실험의 일환이에요. 기존에 작가가 부스에 앉아 관객들과 만나는 일러스트 페어가 있었잖아요. 여기에 전시의 문법을 결합했어요. 기간을 늘리되 작가가 직접 상주하지 않는 대신 그 공간을 작가 작품과 어울리게 바꾸는 거죠. 일러스트레이터, 그래픽디자이너, 사진작가 등 작가 43명의 작품이 전시됩니다. 그중에 포스터만 골랐어요. 개라지 세일(garage sale)을 하듯 막 찍어서 쏟아붓는다는 의미로 ‘포스터 덤프(poster dump)’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전시장에 들어가면서 관객들은 포스터를 툭툭 담을 수 있는 장바구니를 받게 돼요. 그라운드시소 명동은 디지털 미디어아트 중심입니다. 전시가 영상 위주로 구성되기 때문에 인지도가 있는 작가들을 고르죠.

새로운 장소도 기대해볼 수 있나요.

10월 서울 중구 소공동에 있는 그랜드센트럴 빌딩에 4호점을 오픈해요. 3층에 있어 한 면은 빛이 들어와요. 채광과 전시가 결합할 때 어울리는 콘텐츠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서울 외 지역이나 해외에도 그라운드시소 오픈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건 미디어앤아트가 전시 기획에 대한 저작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전시 IP를 해외에서 가지고 오면 원하는 시기에 전시를 열기 어렵거든요.

“작가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

열었다 하면 15만 명이 훌쩍 넘게 방문하는 그라운드시소의 콘텐츠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그는 기존의 전시 문법을 탈피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라운드시소가 제안하는 전시 장르는 달라요.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서울시립미술관 카테고리의 전시가 있죠. 또는 해외에서 전시회를 그대로 가져와 진행하는 경우도 있죠. 저희는 그 중간쯤에 있어요.”

가령 요시고 전시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우선 주제를 정해요. 해외여행에 대한 갈망이 있었잖아요. ‘전시를 보면 여행을 다녀온 것 같아’라는 느낌을 받길 원했죠. 어떤 작가에 주목해서 그 작가를 연대순으로 정리해 기승전결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콘텐츠를 만드는 거예요. 사실 작가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가 하고자 하는 얘기가 중요하고 그걸 누가 잘 표현해줄 수 있을까를 찾죠. 원래 우리가 처음으로 채택한 작가는 요시고가 아니었어요. 결과적으로는 훌륭한 선택이었고 요시고는 한국에서 거의 신드롬이 됐어요. 작가 입장에서도 좋죠. 얼마 전에 부산에서 요시고 사진전 오프닝 세리머니를 했는데 작가가 거의 아이돌 스타 같았어요(웃음).

외부 인력도 쓰나요.

예전엔 내부 영상 팀이 있었지만 그게 정답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어요. 누구나 스타일이 있잖아요. 모던한 편집을 좋아할 수도 있고 화려하게 편집할 수도 있죠. 그게 잘 안 바뀌어요. 중요한 건 편집이 아니라 관점이었어요. 저희는 클림트 전시를 할 수도 있고 무민 전시를 할 수도 있는데, 편집 스타일이 정해져 있으면 좋은 게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전시마다 관련 영상의 톱티어와 계약해요. 대신 우리 기획자들이 이미지 바이 이미지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거죠. 예전엔 음악도 시중에 있는 것을 구매해서 사용했는데 별 호응이 없었어요. 그래서 음악을 작곡하는 회사와 접촉하거나 작곡가에게 직접 부탁하기도 해요.

촬영감독과 미술감독, 음악감독이 각자의 역할을 맡는 영화 제작 시스템과 유사하네요.

저희는 제작사 같은 구조를 갖고 있어요. 공간 디자이너, 비주얼 디자이너, 마케터가 따로 있고요.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어봤으니 그 시스템을 갖고 와서 체계적으로 전시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아이템 제안할 때도 전 직원이 참여해요. 많은 전시 기획사는 대표의 취향이 반영되고 그의 네트워크가 중요하게 작용하거든요. 채택이 되면 직급과 무관하게 PM(Product Manager)을 맡아요. 전시가 기획되는 과정에서 저를 포함한 구성원의 의견이 포함되고요.

구성원의 이야기는 다양한 방식으로 지 대표에게 흡수된다. 미디어앤아트 직원들이 함께 기르는 반려견 봉구(7)도 그중 하나다. 지 대표를 만나기 위해 미디어앤아트 사무실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반겼던 건 봉구였다.

“직원들이 회식하다가 강아지를 키우면 안 되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근처에 오랫동안 팔리지 않은 친구가 있었나 봐요. 그런데 다음 날 가니까 마침 분양이 됐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다른 회사에서 임시 보호하고 있던 봉구를 데리고 왔어요. 회사에서 봉구가 큰 역할을 해요. 봉구 산책을 시키며 업무 집중도가 높아지기도 하고요. 회의할 때도 마음이 좀 울적하면 안고 있고요(웃음). 아침에 모든 직원과 인사를 나눠요. 그 교감이 정말 다른 거 같아요.”

X세대의 MZ 분석

이른바 MZ 감성을 어떻게 좇아가나요.

아트페어에서 순수미술도 보지만 평소 책을 많이 읽고 영화·드라마·뮤지컬도 봐요. 대중은 전시만 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저희도 다양한 걸 보려고 노력합니다. 내부에 조사하는 리서치 팀도 있어요. 여긴 철저하게 대중적인 전시를 여는 곳이라 지금의 흐름에 부합하는 소재를 찾아야 하죠. 특히 MZ세대가 관심을 갖는 것들을 보려고 합니다.

그걸 본다고 해서 MZ 타깃의 전시가 항상 성공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지금의 정서와 동떨어지지 않은 주제를 선택하는 거죠. 올해의 트렌드, 올해의 컬러 그리고 현재의 흐름이 어떻게 이어질지. 그중에서 변하지 않는 주제는 무엇일까를 고려해요. 지금은 그라운드시소가 일정 궤도에 올라온 것 같아요. 사람들이 요시고나 루이스 멘도라는 작가를 알았던 게 아니잖아요. 하지만 그라운드시소도 분명한 색깔이 있으니까 아무것도 모른 채 전시에 가도 어느 수준 이상은 맞춰줄 거라는 믿음이 형성된 것 같아요.

전시를 기획할 때 보편성과 특수성 중 어떤 걸 선택하나요.

보편적인 걸 힙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주제는 보편적으로 큰 주제를 잡되 그 안에 지금의 트렌드를 넣는 거죠.

‘힙하다’를 어떻게 정의하나요.

지금의 정서와 트렌드를 담고 있는데 반 발짝 앞선 겁니다. 가령 레트로가 있다고 해보죠. 레트로라는 유행이 갑자기 없어지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레트로 중에서도 에어팟 대신 선이 있는 이어폰을 다시 찾는다든가 그런 걸 디테일하게 알아봐서, 몇 명이 먼저 시도할 때 우리가 그것을 캐치하는 거죠.

연이은 전시 흥행으로 그라운드시소를 서울의 ‘힙스터’들에게 각인시켰지만 지 대표는 아직 목마르다. 인터뷰 전에도 싱가포르 전시를 위해 출장을 막 다녀온 참이었다. 그는 “한국에서만 전시하기는 아까운 콘텐츠”라고 자신감을 보이며 자평했다.

왜 그런가요.

한국에서 2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웃음). 미국의 어느 미디어아트 회사는 기획 하나를 가지고 7000억 원 넘는 매출을 내요. 전 세계 20~30개 도시로 투어하는 거죠. 전시를 전 세계에서 동시에 개봉하려는 구상도 있습니다. 극장 공간 전후좌우를 매핑해서 미디어아트를 동시 상영하는 거죠. 아직 그런 사례는 없거든요. 최초를 좋아한다고 했잖아요(웃음).

다양한 사업을 해왔는데 욕심나는 분야가 남았나요.

결국 전시도 K-콘텐츠의 한 갈래라고 생각해요. 전 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는 대중적인 콘텐츠를 먼저 해외로 보내고 그다음엔 많은 한국 아티스트를 소개하고 싶어요. 그라운드시소가 먼저 자리 잡으면, 고정 방문객이 생기고 한국의 근현대 작가를 알릴 수 있죠.

마지막으로, 만드는 일의 핵심이 뭘까요.

치우치지 않는 식견이 필요합니다. 제작자도 자기만의 취향과 스타일이 있잖아요. 그걸 없앨 수는 없지만 원의 중심에 들어가는 게 중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치우침이 생기거든요. 그러면 상업 전시나 대중 전시가 될 수 없어요. 지금의 MZ는 취향이 다양해서 더 어렵습니다. 정확하게 보편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현실감각을 유지해야 해요.

#지성욱 #그라운드시소 #미디어앤아트 #여성동아

사진 박해윤 기자 사진제공 그라운드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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