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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 남자 뭐지?’ 존재 자체로 설레는 폴 메스칼

홍수정 영화평론가

2023. 03. 13

그의 매력을 제대로 알기 전, 폴 메스칼은 동년배 배우들에 비해 평범해 보였다. 옅은 향기의 차를 입에 한 모금 머금었을 때의 인상. 그런데 지금 나는 그의 웃음을 생각하고 그의 몸짓을 떠올리고 그의 말투를 따라 한다. 어느새 옷에 깊게 배어 달아나지 않는 향기처럼 그의 매력은 은은하고 강인하다.

포근한 동시에 서늘한, 보는 사람을 이완시키는 동시에 긴장시키는 매력의 폴 메스칼. 
사진은 폴 메스칼의 데뷔작 ‘노멀 피플’의 한 장면.

포근한 동시에 서늘한, 보는 사람을 이완시키는 동시에 긴장시키는 매력의 폴 메스칼. 사진은 폴 메스칼의 데뷔작 ‘노멀 피플’의 한 장면.

다가오는 3월에 열리는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 목록에 낯선 이름이 있다. 폴 메스칼. 아직 국내 팬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이 젊은 남자 배우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폴 메스칼은 멋지다. 이목구비가 빚은 듯이 잘생기진 않았지만 대신 그에게는 투박한 아름다움이 있다. 크고 푸른 눈, 직선으로 쭉 뻗은 코, 시원한 입매, 단단한 턱과 어깨. 그의 고향인 아일랜드도, 그곳에서 즐겼다는 게일릭(아일랜드식 축구)도 모두 썩 잘 어울린다. 얼굴 위로 스르르 번지는 부드러운 미소, 자분자분 이어가는 말. 마치 한 컵의 우유 안에서 조용히 번지는 에스프레소처럼, 거침과 부드러움의 절묘한 조화가 그의 매력이다.

폴 메스칼은 TV 드라마 데뷔작인 ‘노멀 피플’로 세상에 얼굴을 알렸다. 영미권에서 돌풍을 일으킨 이 드라마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폴 메스칼이 연기한 ‘코넬’은 교내에서 소위 말하는 ‘인싸’다. 럭비선수고 인기도 많지만, 집안은 그다지 넉넉하지 않다. 그가 좋아하는 소녀 ‘메리앤’(데이지 에드거존스)은 똑똑하고 까칠하지만 자신만의 상처가 있다. 이 둘이 우연히 만나 예민한 시절을 함께하며 서로 좋아하는 것이 드라마의 내용이다. 폴 메스칼은 이 작품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에 대한 해외의 반응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무릇 사람의 매력이란 만국 공통어와 같은 것. ‘노멀 피플’을 보고서 나는 인기의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인기 연연 않고 배우의 길을 택하다

영화 ‘애프터썬’의 한 장면

영화 ‘애프터썬’의 한 장면

극 중 폴 메스칼은 단단하고 편안하다. 코넬이 하는 행동이 모두 편안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 코넬이 호감을 주는 행동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의 대사가 다정해서 그런 것도 아닐 터이다. 이런 인상은 대사나 캐릭터가 아니라 배우로부터 온다. 남들과 조금 다른 마음의 모양도 있는 그대로 고요히 받아줄 것만 같은 오라(aura)가 그에게는 있다. 알 듯 말 듯 친절한 미소, 선한 듯 깊은 눈동자, 일자로 다문 입, 탄탄하지만 허세 없는 몸, 가깝지만 공격적이지 않고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는 담백한 거리 감각. 우리가 ‘타고난 매력’이라고 쉽게 말하는 것들은 바로 이런 거다.

하지만 이뿐이라면 지금같이 폭발적인 인기는 없었을 터. 그 편안함 위에 포개어진 섹시함이 있다. 그것은 단순히 성적 긴장을 넘어, 그가 주변에 만들어내는 여러 결의 미묘한 파동을 의미한다.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일렁임. 폴 메스칼은 어떤 방식으로든 주변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든다. 아마도 설렘에 가까울 것이다. 그가 지닌 편안함도 이런 설렘과 어우러지며 진정으로 빛을 발한다. 그는 다음으로 영국 드라마 ‘더 디시브드: 현혹된 사람들’(2020)과 영화 ‘로스트 도터’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하지만 분량이 적어 그의 색깔을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그랬던 폴 메스칼이 최근 ‘애프터썬’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샬롯 웰스라는 신인 감독의 데뷔작이다. 웰스는 이 작품으로 제87회 뉴욕비평가협회상 신인작품상을 비롯해 각종 영화제의 상을 휩쓸며, 천재 신예라는 평을 듣고 있다. TV 시리즈를 통해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뒤 이 영화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폴 메스칼의 행보는 꽤 놀라운 구석이 있다. 손쉽게 스타의 자리에 머무는 대신 배우로서의 길을 걷겠다는 결심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소피는 20여 년 전 소녀 시절에 아빠와 함께 튀르키예를 여행하며 찍은 캠코더를 돌려보면서 어린 날을 회상한다. 한 소녀와 젊은 아빠가 낯선 곳에서 보낸 며칠의 휴가가 이 영화 내용의 전부다. ‘애프터썬’은 가정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가족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영화는 ‘아빠’ ‘딸’과 같은 이름에 난 상처의 틈을 벌려서, 그 사이에 자리 잡은 감정을 집요하게 들여다본다. 그 과정에서 풍기는 모종의 긴장감이야말로 이 영화가 극찬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흔히 가족을 떠올릴 때 연상하지 못하는, 혹은 알고 있지만 모른 척 지나치는 순간들을 이 영화는 정성스레 담아낸다. 낯선 사람들이 오빠라고 착각할 만큼 젊은 아빠, 그는 현재 아이와 함께 살고 있지 않다. 여행지에서도 그는 가끔씩 밤에 홀로 방을 나선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막 사춘기에 접어든 딸은 완전히 어리지도, 성숙하지도 않다. 그녀는 한 번씩 자신보다 조금 성숙한 아이들을 유심히 바라본다. 가족의 틀을 비껴가는 그 순간들은 어딘가 모를 긴장을 빚어낸다.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폴 메스칼의 존재감이다. 듬직한 아빠지만, 아직 젊음의 풋풋함이 사라지지 않은 남자. 딸에게 한없이 다정하지만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사람. 어린 소녀의 보호자이면서 친구이기도 하고, 청춘이기도 하며, 불안정한 남자의 얼굴. 이것은 편안함과 긴장감을 동시에 뿜어내는 폴 메스칼이라서 할 수 있는 연기다. 그런 면에서 ‘애프터썬’은 ‘노멀 피플’과 닮은 면이 있다. 두 작품 모두 그의 양면적인 매력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노멀 피플’에서 이런 양면성이 연인으로서의 편안함과 설렘으로 표현된다면, ‘애프터썬’에서는 부모로서의 다정함과 불안으로 표출된다. 그런 의미에서 ‘애프터썬’은 폴 메스칼의 매력을 가족의 틀 안으로 끌고 들어와서 새로운 실험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 결과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직접 확인해보기를 권한다. 특히 담배를 들고 베란다에서 춤을 추는 그의 뒷모습은 영영 잊기 힘들다.

양가적인 매력을 동시에 뿜어내는 배우

폴 메스칼은 이목구비가 빚은 듯이 잘생긴 배우는 아니다. 그러나 투박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배우다.

폴 메스칼은 이목구비가 빚은 듯이 잘생긴 배우는 아니다. 그러나 투박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배우다.

폴 메스칼이 나온 작품들에는 신기한 공통점이 있다. 그 작품의 감성을 한마디로 요약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감성의 결이 워낙 다채롭기 때문이다. 그건 폴 메스칼이 작품 안에서 무수히 다양한 파동을 온몸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상대역인 여자 캐릭터들이 유독 시리고 여린 감수성을 지녔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것은 폴 메스칼이 이런 감성에 응답할 정도로 섬세하면서, 모두 받아낼 정도로 단단한 배우라는 방증이다. ‘밀양’(2007)에서 전도연의 상대역을 맡아 열연한 송강호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앞으로도 폴 메스칼에게 이런 역할이 몰려들리라 생각한다. 그가 지닌 섬세한 단단함이 특별하므로.

여기 한 남자가 있다. 포근한 동시에 서늘한, 보는 사람을 이완시키는 동시에 긴장시키는. 이런 매력을 시시각각 펼쳐내는 배우는 더러 있어왔지만 동시에 뿜어내는 배우는 간만이다. 그래서 이런 매력이, 그만의 성정이 앞으로 영화에서 어떻게 뻗어나갈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보여줘야 하는 순간, 그 자리에는 폴 메스칼이 자주 서 있을 것이다. 그 설레는 편안함에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너무 길지 않은 시간 안에.

#폴메스칼 #애프터썬 #노멀피플 #여성동아

사진제공 안다미로 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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