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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power woman

푸마코리아의 새로운 여성 수장 이나영 대표

오홍석 기자

2022. 07. 27

세계적 스포츠 브랜드의 한국 법인에 여성 대표이사가 선임됐다. 마케팅업계에서 여러 성공 사례를 남긴 이나영 푸마코리아 대표가 그 주인공. 남성 중심 스포츠 브랜드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최고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브라질과 페루가 맞붙은 8강전. 킥오프를 앞두고 축구 황제 펠레가 돌연 쪼그려 앉아 축구화 끈을 묶기 시작했다. 치열한 경기를 앞두고 숨 막히는 순간, TV 중계 카메라는 브라질의 축구 황제를 클로즈업했다. 전 세계 관객의 이목은 그의 축구화에 집중됐다. 푸마가 수많은 축구 팬의 뇌리에 자사 축구화를 각인시킨 장면이다.

52년이 지난 올해 카타르 월드컵에선 펠레 대신 네이마르가 푸마 축구화를 신고 그라운드를 누빌 예정이다. 시대의 변화는 브라질 축구대표팀의 에이스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글로벌 스포츠 기업 푸마는 올 4월 푸마코리아 창사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를 탄생시켰다. 이나영(50) 푸마코리아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이나영 대표는 AB인베브, 로레알, 리복, 아디다스 등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를 거쳐 2020년 푸마코리아에 합류했다. 전문 분야는 마케팅. 그의 성공 사례는 과거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다. 2014년 리복에서 근무할 당시 그 성과를 인정받아 미국 본사에 ‘콜 업’되기도 했다.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는 스포츠 브랜드 시장에서 푸마를 선두 두자로 만들기 위해 이 대표가 마련한 묘책은 무엇일까.

7월 6일 이 대표를 만나기 위해 찾은 서울 을지로 푸마코리아 본사 쇼룸은 월드컵 열기로 후끈거렸다. 각종 축구화와 유니폼이 전면에 전시돼 있었고, 벽에는 푸마가 후원하는 축구선수들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각 회의실은 축구 전설 ‘펠레’와 ‘마라도나’ 이름을 따서 지었다. 푸마 트레이닝복 상의에 청바지를 매치한, 편안한 차림의 이 대표와 ‘네이마르’ 회의실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푸마코리아 대표가 된 지 석 달이 지났습니다. 굉장히 바쁘셨을 것 같은데요.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네요(웃음). 방역 수칙이 완화되면서 해외에서 손님들이 많이 오셨어요. 취임하자마자 미국 본사에서 인사 담당자와 IT(정보기술) 담당자가 오셨고, 5월 마지막 주에는 제 직속상관인 CCO(최고 제품 담당자)까지 한국을 방문했죠. 6월부터는 제가 취임 후 진행할 3개년 중장기 프로젝트를 기획하느라 직원들과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기획하면서 제가 대표가 됐다는 사실을 실감했어요.



한국에 많은 분이 온 걸 보면 푸마 본사에서 국내 시장을 눈여겨보는 것 같군요.

그럼요. BTS, ‘오징어 게임’을 비롯해 한국 콘텐츠들이 해외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잖아요. 한국의 문화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아시아 전반에 끼치는 영향력이 더욱 증가했어요. 본사에서는 한국이 사실상 아시아 시장의 본부 역할을 맡아주길 바라고 있죠.

‘한국에서 뜨는 제품은 아시아에서 성공한다’ 이런 느낌이군요.

맞아요. 예전에는 일본이 이런 역할을 맡았는데 이제는 한국이 많은 기대를 받고 있죠.

현지인이 대표가 되는 경우는 이례적이라는데, 이 대표의 선임도 한국 시장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가요.

그렇다고 말할 수 있죠. 한국 소비자들은 전 세계 어느 소비자들보다도 트렌드에 민감하고 빠르게 움직여요. 이렇게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소비자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어요(웃음). 푸마 내에 좋은 분들이 많은데도 제가 이 자리를 맡게 된 이유는, 그래도 제가 한국 문화를 잘 알고 로컬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인 것 같아요.

최근 몇 년 패션업계에서 브랜드 간 협업을 의미하는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이 핵심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패션 브랜드와 스포츠 브랜드의 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푸마와 국내 브랜드 ‘아더에러(ADERERROR)’의 컬래버레이션은 많은 ‘힙스터’들의 이목을 끌었다. 해체주의적 디자인으로 스트리트 웨어를 재해석한 국내 브랜드와 유서 깊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의 조합이 소비자들에게 신선함으로 다가갔기 때문. 푸마는 이 외에도 프랑스 파리에 기반을 둔 컨템퍼러리 브랜드 메종키츠네(MAISON KITSUNE´), 아미(ami)와 협업을 진행했고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푸마와 여러 패션 브랜드 간 협업이 인상 깊었습니다.

푸마코리아만의 현지화 전략의 일환입니다. 저희는 본사로부터 현지에서 의류를 기획하고 생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습니다. 한국의 빠른 트렌드에 발맞춰 움직이기 위해서죠. 푸마의 슬로건인 ‘Forever Faster’에 걸맞게 소비자의 니즈에 따른 발 빠른 조치예요. 최근 있었던 브랜드들과의 협업도 푸마코리아가 직접 기획한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한국 브랜드와의 협업도 가능했던 거군요.

맞아요. 그렇지만 아더에러는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브랜드예요. 이번에 한국에 오신 저희 상사를 서울 성수동 아더에러 플래그십 스토어에 모시고 갔는데, 굉장히 인상 깊다고 하시더라고요.

최근 몇 년 새 ‘스니커즈 신’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푸마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저희도 물론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스니커즈 마니아들의 특징은 히스토리가 있는 신발을 좋아한다는 점이에요. 푸마는 내년이면 창사 75주년이 되는 브랜드고 그에 걸맞게 방대한 아카이브가 있습니다. 조만간 레거시 있는 스니커즈를 재해석한 제품을 보여드릴 것 같습니다. 물론 여기에도 현지화가 가미된, 차별화된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에요.

“마케팅, 여전히 어렵다”

4월 28일 이나영 푸마코리아 대표가 ‘대한민국 남녀 배구 국가대표팀 공식 후원 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4월 28일 이나영 푸마코리아 대표가 ‘대한민국 남녀 배구 국가대표팀 공식 후원 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대표의 전문 분야는 마케팅이다. 커리어를 시작했을 당시부터 마케팅이라는 한 우물을 깊게 파며 한국 스포츠 브랜드 시장에 굵직한 족적을 여럿 남겼다. 2000년대 후반 하이톱 운동화를 유행시키고, 2010년대 초반 여성을 겨냥한 기능성 운동화를 판매하고, 크로스핏을 한국에 상륙시킨 것 모두 이나영 대표의 작품이다. 그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미국 본사의 부름을 받고 보스턴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한국 지사의 직원이 미국 본사에 콜 업돼 근무한 사례는 이례적이다.

여러 성공 사례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마케팅이 여전히 어렵고, 이전보다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유통 산업 전반에 디지털 전환 바람이 불면서 기존 방식을 답습하면 거인들조차도 맥을 못 추고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환의 시대를 그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커리어 초기부터 마케팅 업무를 맡아오셨어요. 원래 마케팅을 좋아하셨나요.

네. 마케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잖아요. 현실적으로 모든 브랜드가 100% 다른 (기능이나 디자인을 가진) 제품을 들고 나올 수는 없어요. 결국 제품이 구매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마케터가 브랜드를 좋아하게끔 소비자를 설득해야 하죠.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게 브랜드가 내세우는 가치와 스토리예요. 이런 스토리를 소비자에게 납득시킬 때 성취감이 들더군요.

어렸을 때 고고학을 좋아했다고 들었습니다. 업무와 연관이 있던가요.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어요. 고고학자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미지의 사실을 발굴하고 다른 이들이 시도하지 않은 것들에 도전하는 사람이잖아요. 일하면서 출장을 정말 많이 다녔는데, 고고학과 연관된 성향 때문인 것 같아요.

다양한 분야에서 근무하셨는데, 업계마다 차이점이 있을 것 같아요.

처음 저의 근무지는 맥주 회사였는데 당시만 해도 ‘마케팅 사관학교’라고 불리던 곳이었어요. 저에게 일을 가르치신 분이 시장조사기관 출신이어서 데이터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셨어요. 흔히 마케팅은 창의적인 분야라고 생각하는데 그분은 직관이나 독창성보다는 통계를 중시하셨죠. 처음에 마케팅을 그렇게 배웠는데 스포츠 업계에 들어와 보니 제가 접했던 점과 많이 달라 고생했어요.

어떤 점이 다르던가요.

소비자 조사 데이터로는 잡히지 않는 점에 주목해야 하더라고요. 패션업계와 비슷한 점이 많아요. 소수의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들, 세계 곳곳의 부티크 숍들, 또 스니커즈 마니아들 이런 분들과 소통하며 직접 데이터를 수집해야 해요. 대체로 주류보다 앞서면서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죠. 이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제품을 만들 때 대중에게 반응이 좋더군요.

최근 마케팅 환경의 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무래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이 환경을 많이 바꿔놓았죠. 고객들의 취향이 더욱 개인화되고 세분화됐어요. 그러다 보니 기저에서부터 소비자의 의견을 청취하고 트렌드를 읽어내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어요.

변화된 마케팅 환경이 조직 운영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도 궁금한데요.

저는 직원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고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데 집중하는 편이에요. 세상이 이전보다 빨리 변화하다 보니 기존의 하향식, 톱다운 방식을 고수해서는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려워요.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꼰대’가 되는 이유는 자신의 습관이나 방식에 자주 갇히기 때문이거든요. 젊고 현장에 있는 직원들이 저보다 잘 알고, 이들이 옳을 때가 많은 걸 인지하기에 그들의 말에 더욱 귀 기울이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소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거군요.

최근 여성 리더십이 주목받고 확장되는 이유도 소통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 여기고 있어요. 저도 그 수혜자라고 생각하고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의사소통 수단이 줌 미팅과 이메일로 제한된 상황에서 본사는 조직원들 간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현지에 여성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아들은 나의 선생님”

이 대표는 고3 수험생 아들을 둔 엄마이기도 하다. 글로벌 브랜드의 현지법인 대표이사인 그도 여느 엄마나 여성이 겪는 어려움을 경험했다. 일례로 2014년 그가 미국으로 향할 당시 남편은 한국에 남고 초등학교 4학년이던 아들과 단둘이 ‘기러기 엄마’로 2년간 보스턴에서 지냈다. 미국 생활도 녹록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본사에 여성이 적었고, 동양인 여성은 이 대표 혼자뿐이었다고 한다. 그는 “직원들을 집으로 초대해 잡채, 불고기를 대접하고 소주를 따라주면서 먼저 다가가려고 애썼다”며 “마음의 문을 여는 데 1년 정도 걸렸다”고 회고했다.

미국 본사 근무 제안을 받았을 때 망설이지는 않으셨나요.

인생에서 큰 기회라고 생각했죠. 돌아보면 당시 본사에서는 아시아, 그리고 여성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는 시점이어서 제게 기회를 준 것 같아요. 고민할 당시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죠.

결국 가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아시아 여성 최초로 디렉터직을 제안받아 국위 선양한다는 느낌이 있었어요(웃음). 개인적인 커리어에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고요. 그리고 아들에게 해외에서 공부할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과거라고 해도 미국에서조차 여성 직원이 적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아무래도 스포츠산업이 남성의 영역이라 여겨지다 보니 그랬던 것 같아요. 이제는 세상이 변했죠(웃음). 요즘은 모든 브랜드가 다양성을 표방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전 세계적으로 여성 리더십이 가진 장점들이 드러나는 것 같고요.

소통을 중시하는 경영 방식을 보면 좋은 엄마일 것 같은데요.

그런가요(웃음). 제게 아들은, 선생님 같은 존재예요. 미국에서 단둘이 2년 동안 시간을 보내며 이전에는 갖지 못한 각별한 관계가 만들어졌어요. 퇴근하고 부랴부랴 방과 후 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간 기억이 많이 나네요. 항상 마지막에 데리러 가서 미안한 마음이 늘 있었어요. 요즘은 수험생이라 바쁘게 생활하고 있어 자주 얘기는 못 나누죠. 하지만 자기 뒤에는 항상 엄마가 있고, 엄마가 자신을 믿고 있다는 신뢰가 자리하더라고요.

스포츠 브랜드 대표이신데 취미로 스포츠를 즐기시는지 궁금한데요.

팬데믹 기간 동안에는 홈트레이닝을 주로 했어요. 요즘은 골프 재미에 푹 빠져 있어요. 남편과 자주 라운드를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1년 정도 쳤는데, 골프 마니아들이 자주 하는 “골프에 인생이 담겨 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더군요(웃음). 정말 재미있는 게, 잘 치겠다고 조금만 욕심 부리면 바로 샷이 흐트러져요. 모든 걸 내려놓고 스윙을 하면 그제야 공이 제가 보내고 싶은 곳으로 가더라고요. 참 묘한 스포츠고, 그래서 너무 재미있어요.

마지막으로 소비자들에게 푸마가 어떤 브랜드로 남기를 바라는지 말씀해주세요.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육상 스타 우사인 볼트가 속해 있던 자메이카 육상 국가대표팀 후원사는 푸마였어요. 이 외에도 저희는 아프리카 소속 국가대표팀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습니다. 소외받는 비주류 국가들의 선수를 후원해 이들의 퍼포먼스를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푸마의 DNA라고 생각해요. 흔히 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고 하잖아요. 저는 소비자분들이 푸마가 1등이 아닌 잠재력을 지닌 사람들을 응원하고 같이 성장하는 브랜드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나영대표 #푸마코리아 #파워우먼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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