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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여성 10인이 새 정부에 바란다

문영훈·오홍석 기자, 이경은 인턴기자

2022. 03. 25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제20대 대선이 윤석열 당선인의 승리로 끝났다. 시작은 이제부터다. 세대와 젠더로 갈라진 한국 사회를 봉합하려면 국민 목소리를 듣는 것이 우선. 각계각층 여성 10인의 목소리를 모았다.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 “청년들의 구원투수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1월 21일 대전 선거대책위원회 필승결의대회에서 청년들과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 “청년들의 구원투수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1월 21일 대전 선거대책위원회 필승결의대회에서 청년들과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

3월 9일 치러진 제20대 대선 결과 윤석열 당선인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0.73%p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이제 윤석열 당선인 앞에는 세대·젠더·정치 성향으로 갈라진 한국 사회를 봉합해야 하는 과제가 놓였다. 5월 10일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여성동아는 각계각층 여성에게 새 정부에 바라는 점을 물었다.

여성 4명뿐인 인수위 구성 “아쉽다”

이번 대선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단연 ‘공정’이다. 김정희원(40)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우리 시대의 공정 담론’을 연구해온 인물. 김정 교수는 3월 18일 출범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위원 24명 중 여성이 4명뿐이라는 점에 아쉬움을 표했다. 윤석열 당선인은 인수위 구성에 앞서 “실력 있는 사람을 뽑아 국민을 제대로 모시고 지역 발전 기회를 공정하게 부여하는 게 원칙”이라며 여성 할당이나 지역 안배는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한 김정 교수 생각은 달랐다.

“‘능력주의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인재를 등용하겠다고 했지만 인수위 구성을 보면 의문이 든다. 당선인과 삶의 경험이 질적으로 달라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낯선 관점을 제시하는 사람, 그래서 자신의 한계를 돌아보게 만드는 여성들과 일해본 적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엇비슷한 남성들 사이에서만 지내지 말고 여성 동료 말을 경청하며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길 바란다.”

박혜민(29) 뉴웨이즈 대표는 “여성뿐 아니라 2030 위원도 없다”며 다양성이 부족한 인수위 구성에 아쉬움을 표했다. 박 대표는 지난해 2월 ‘젊치인(젊은 정치인)’이 더 활약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청년 정치 에이전시 ‘뉴웨이즈’를 만들었다. 6·1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기초위원 20%를 2030 세대로 채우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박 대표는 “세상이 바뀌려면 의사결정권자가 더 다양해져야 한다”며 “이는 선출직 정치인뿐 아니라 행정부 구성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20대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두려움과 막막함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앞으로 출범할 정부 안에 더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N번방 사건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성폭력 범죄,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스토킹 범죄와 데이트 폭력, 아동 학대 사건 등은 여성과 아동·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가 범죄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윤석열 당선인은 후보 시절 △범죄 피해자 보호·지원 전담 통합 기구 신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잊힐 권리 보장 △통합가정법원 신설 등의 공약을 제시했다.



박미랑(42)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새 정부에 “일상생활에서 맞닥뜨리는 치안 문제 해결에 신경 써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국내 최초로 데이트 폭력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여성 범죄학자다. 박 교수는 “흔히 안전·치안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자 하면 범죄 형량을 강화하거나 검거율을 높이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사람들이 날마다 통계를 들여다보며 사회가 얼마나 안전한지를 감지하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국민이 ‘안전하다’고 느끼려면 일상과 맞닿아 있는 공간에서의 치안이 중요하다”는 게 박 교수 의견이다.

김학자(56)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은 “아동·청소년 범죄 피해자 보호를 위한 좀 더 구체적인 정책 마련”을 주문했다. 오랫동안 여성과 아동 인권 보호를 위해 힘써온 김 변호사는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0조 6항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린 것을 우려했다. 성폭력 피해 아동이 직접 법정에 출석해 증언하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이 인정돼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미성년 피해자 보호도 그 못잖게 중요한 가치다. 그런 점에서 성적·신체적 학대를 당한 아동에게 필요한 사법·복지·보건 관련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노르웨이의 ‘바르나후스’ 모델이 필요하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컨트롤 타워 구실을 할 수 있는 전담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김미진(52) 한국미혼모가족협회장 역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 장치 마련을 강조했다. 김 협회장은 “여성과 아동으로 구성된 미혼모 가정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약한 존재들이 모인 가족 형태”라며 “아직 미혼모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혼모들은 자기 자신과 아이를 지키기 위해 매일 전쟁 같은 상황을 겪는다”고 했다. 이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미혼모를 위한 전담 기구 신설 등 정책적 노력을 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청년과 청소년을 위한 정부

제20대 대선 기간 동안 각 당이 ‘이대남(20대 남자)’ 표심을 얻고자 애쓰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청년 여성을 소홀히 여겼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비건 밀키트 판매 기업 ‘바로(VARO)’ 창업자 이원정(25) 대표는 “창업가 중 여성이 적은 편인데, 윤석열 정부가 여성 창업자를 위한 맞춤형 지원 제도를 만들지는 잘 모르겠다”면서도 “청년 창업을 활성화하려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의 지속성을 늘리고 소액 창업 기업에 대한 조세 지원, 전문가 멘토링 지원 등을 통해 청년이 계속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2018년부터 학내 성폭력 고발 운동인 ‘스쿨미투’를 주도해온 양지혜(25) 활동가는 “윤석열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청년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강조하면서도, 이때 말하는 ‘청년’에서 여성과 청소년은 배제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인권 친화적인 교육 현장을 만들기 위한 학생인권법 제정을 위해 힘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양 활동가는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학생들 고통을 줄여주려면 학교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학교가 입시를 위한 공간만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우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사회 시니어들도 새 정부가 청년을 위한 정책을 펴주길 당부했다. 37년간 대구에서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을 해 지난해 LG의인상을 수상한 우영순(74) 씨는 “우리 세대보다 공부도 더 많이 하고 똑똑한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걸 보면 안타깝다”며 “정부가 애를 낳으라고 말로만 할 게 아니라 적어도 자녀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보육을 책임져주든가,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경제적인 걱정이 없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윤정숙(64) ‘60+ 기후행동’ 공동운영위원장도 “경제 성장만큼 분배에도 신경 썼으면 한다”며 “특히 모든 청년이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하는 상황이 아닌 만큼 다양한 사회 구성원을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기후 위기 대응에도 목소리를 냈다. 그가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60+ 기후행동은 고령층이 기후 변화에 적극 대응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모임이다. 윤 위원장은 “현재 한국 플라스틱 소비량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반면 재활용률은 40%대에 머물고 있다. 윤석열 후보가 공약으로 내건 재활용률을 높이는 방안뿐 아니라 생산·유통·소비 단계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한 정책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년 넘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싸우는 간호사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도 있었다. 신경림(68) 대한간호협회 회장은 “팬데믹 상황이 3년 차로 접어들면서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하루하루 버텨온 간호사들조차 사직서를 내고 있다”며 “기존에도 우리나라 간호사는 선진국 간호사에 비해 2~4배에 달하는 환자를 담당했다. 지금은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에 대응하면서 환자 간호 업무 외에 청소는 물론 사체 처리까지 도맡고 있다”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신 회장은 “공공 의료기관 병상 확충과 더불어 코로나19 같은 국가 위기 상황에 대응하려면 간호법 제정이 필요하다”며 “양질의 중환자 간호사 교육 훈련 체계를 구축하고 사후 관리를 위한 예산을 정규 편성하는 등 각종 정책을 추진할 근거를 마련해달라”고 밝혔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 그간 여성가족부는 성평등 문제뿐 아니라 한부모가정·돌봄·아동 및 청소년에 대한 지원 등을 담당해왔다. 김미진 한국미혼모가족협회장은 “정부 부처 중에서는 여성가족부가 미혼모 가정을 위해 가장 많은 일을 해왔다”며 “윤석열 당선인은 여성가족부가 폐지돼도 기존 업무를 다른 부서에서 계속 진행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간 여성가족부가 쌓아온 노하우까지 전수되기는 힘들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윤석열 당선인은 ‘여성가족부 폐지’ 7글자 공약을 페이스북에 게시한 뒤 “여성에 대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여러 차례 발언한 바 있다. 하지만 김학자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생각은 달랐다. 그는 “아직도 30대에서 40대 초반 여성 상당수가 육아 등으로 인해 경력 단절을 겪고 사회에 복귀하지 못해 힘들어한다”며 “앞으로 노동력이 부족해질 상황에서 여성이 국가와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형식적 평등 면에서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혜민 뉴웨이즈 대표는 “이번 대선은 유독 이분법적인 구도 속에서 펼쳐져 이로 인한 갈등도 많았다”며 “새 정부는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20대대선 #여성동아

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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