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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foodie

전혀 고독하지 않은 미식가, 어반자카파 박용인

글 이미주

입력 2022.01.06 10:30:01

아메리칸 스타일 치즈버거를 맛볼 수 있는 넛츠버거부터 재패니즈 이탤리언 타파스와 내추럴 와인 페어링을 경험할 수 있는 쏘심플, 런던 소호에 있을 법한 스타일리시한 막걸리 포차 짠짠까지. 카테고리도 콘셉트도 모두 다른 세 개의 레스토랑이 최근 성수동 수제화거리 근처에 차례로 오픈했다. 오너는 어느덧 외식업 8년 차, 보컬 그룹 어반자카파 박용인이다.

성수동 핫플을 이끄는 야심만만 외식 사업가

(왼쪽부터) 너츠버거, 쏘심플, 짠짠

(왼쪽부터) 너츠버거, 쏘심플, 짠짠

201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서울 성수동은 지금의 분위기와 사뭇 달랐다. 1970년대 서울의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준공업 지역의 영광은 온데간데없고 노후 건물과 인구 감소 등 공동화현상으로 대책 마련이 시급한 곳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지자체의 노력과 지역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현재의 ‘힙한’ 동네로 다시 태어난 것. 오래된 건물과 신축 건물이 공존하고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 카페와 음식점 등 정체성 확실한 상점들이 오밀조밀 오여 있는 곳, 위드 코로나와 함께 젊은 세대의 발길이 다시 이어진 성수동에 최근 눈에 띄는 가게 세 곳이 연이어 문을 열었다. 버거, 재패니즈 이탤리언, 전통주 등 범주와 스타일이 모두 다른 이곳들의 오너는 ‘널 사랑하지 않아’ 등 많은 히트곡을 낸 보컬 그룹 어반자카파의 멤버이자 연예인 대표 식객으로도 유명한 박용인이다. “해보고 싶은 것을 하나씩 선보인 것인데, 준비하면서 공교롭게 시기가 맞물린 것 같아요.”

재패니즈 이탤리언 음식과 내추럴 와인을 경험할 수 있는 쏘심플

재패니즈 이탤리언 음식과 내추럴 와인을 경험할 수 있는 쏘심플

알고 보면 그는 외식업계에서도 제법 잔뼈가 굵다. 2014년 청담동에 오픈한 이탤리언 레스토랑 ‘1988 일미오삐아또’를 시작으로 일식 다이닝, 면 요리 전문점, 그리고 트렌디한 심야식당까지 다양하고 개성 강한 외식 브랜드를 선보이며 숨 가쁘게 달려왔다. “일미오삐아또는 쫄딱 망했어요. 허허. 그땐 경영에 대한 기본이 없었으니까, 매출 금액이 어디로 세는지도 몰랐어요. 반응은 괜찮았지만 금전적으로는 손해를 봤죠.” 호기롭게 시작한 첫 도전이 결과적으로 실패이긴 했으나 요식업에 대한 그의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바로 옆 건물에 일식을 기반으로 한 이자카야 ‘달아래’를 선보였고, 이후 성수동으로 눈을 돌려 면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달아래, 면’과 같은 공간에서 저녁에만 문을 여는 술집 ‘안주밥집’을 차례로 성공시켰다.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해보고 죽자’는 그의 철학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브랜드를 기획하고 만드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데, 제가 하는 것들이 대부분 마니아적인 성향이 강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만석이 되는 걸 보니 제 취향을 인정받은 듯해 재미가 붙었던 것 같아요.”

기존 매장을 정리하고 2021년 6월부터 차례로 론칭한 세 개의 브랜드 역시 하나같이 컨셉추얼하다. 피너츠 버터가 들어간 치즈버거가 대표 메뉴인 ‘넛츠버거’는 번 테스팅에만 7개월이 소요됐을 정도로 공을 들인 아메리칸 스타일의 버거 전문점이다. 폭신폭신한 식감의 포테이토 번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며 내슈빌 치킨과 함께 먹으면 진한 미국 맛을 느낄 수 있다. 같은 건물 지하에는 재패니즈 이탤리언 음식과 내추럴 와인을 경험할 수 있는 ‘쏘심플’이 자리한다. “일식 터치가 가미된 이탤리언 음식은 달아래 때부터 해보고 싶었던 장르예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식당인 메제바바나 구치테의 디시는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심플하지만 맛에서는 엄청난 내공이 느껴지거든요. 브랜드에 대한 기획은 이미 끝난 상태였고 키친을 맡아줄 적임자를 찾지 못해 미루고 있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소원 풀이를 한 거죠.” 쏘심플은 국내에서 재패니즈 이탤리언 퀴진의 대표 격인 알라프리마 출신의 김재훈 셰프가 이끌고 있다. 기존 달아래, 면 자리를 재단장한 막걸리 포차 짠짠은 LA의 한인타운, 런던의 소호, 밴쿠버의 번화가에서 한식을 소개하면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하며 만든 공간이다. “가게 이름도 외국인들이 발음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짠짠으로 지었어요. 인테리어부터 각종 기물, 메뉴 디자인까지 외국 현지에 있는 한국 스타일의 포차를 상상하며 만든 공간이에요.”

매일 먹는 끼니에 진심인 편

아메리칸 스타일의 버거 전문점 너츠버거

아메리칸 스타일의 버거 전문점 너츠버거

미식가로도 유명한 박용인은 인스타그램 개인 계정 외에 ‘용슐랭(@yong.chelin)’이라는 맛집 리뷰 계정도 운영하고 있다. 그의 음식 취향과 좋아하는 식당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시작한 지 1년 반 만에 1만 명이 넘는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다. 맛집 리뷰가 하나같이 정성스러운 것을 보니 음식을 대하는 그의 진심이 느껴진다. 음반 작업과 외식 사업만으로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텐데 언제 이런 걸 만들었는지 묻자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며 울음 섞인 탄식이 터져 나왔다. “원래 한 끼 한 끼가 중요한 사람이라 매번 맛있는 것을 찾아 먹거든요. 어떤 감정으로 음식을 먹었는지 기억하려고 만든 계정인데 우연찮은 기회에 팔로어가 대폭 늘어나면서 덩달아 책임감도 막중해졌어요.” 이 정도 규모면 광고 게시글도 제법 있을 법한데, 현금이나 음식을 제공받고 리뷰를 작성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자신했다. 다만 자기가 소개하는 맛집은 본인의 기준일 뿐 구독자들의 기준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제가 좋아하는 식당과 음식을 소개하는 공간이라 기본적으로 안 좋은 말은 거의 없어요. 근데 제가 맛있다고 모든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저 푸디 한 명의 주관적인 리뷰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막걸리 포차 짠짠

막걸리 포차 짠짠

보컬 그룹을 결성하며 스무 살 때부터 혼자 살았던 박용인에게 맛있는 음식은 위로 그 자체였다. 그래서 그는 ‘한 끼를 때우다’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음반 작업과 음악 활동을 하다 보면 시간에 쫓겨 끼니를 챙기기가 힘들어요. 녹음이 잘 안 되던 어느 날,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로 집에 와서 삼각김밥에 컵라면을 먹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언제 먹어도 맛있는 조합이지만 온종일 고생한 제 자신에게 미안한 느낌이랄까. 그때, 최소한 열심히 산 날만큼은 나한테 소중한 한 끼를 선물해주자고 다짐했어요.” 데뷔 후부터 계속되는 전국 투어 일정 역시 그에겐 새로운 맛집에 도전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인맥을 총동원하고 발품을 팔고 수소문해 찾은 지방 맛집의 생생한 리뷰는 용슐랭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누구의 방해 없이 혼자 음식을 즐기는 사람을 고독한 미식가라고 한다면 박용인은 전혀 고독하지 않은 미식가다. 그의 주변엔 맛있는 음식뿐만 아니라 푸디들로 넘쳐나기 때문. “좋은 음식은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먹었을 때 맛이 배가되는 것 같아요. 음식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고 맛집 찾아다니는 것을 즐기는 지인들과 자주 어울리는 편이에요.” 늘 맛을 아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그는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파트너와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 것을 선호한다. 최근에 오픈한 짠짠과 쏘심플은 푸드 인플루언서 송슐랭가이드(@songchelin_guide)와 의기투합해 만든 곳들이다. 푸디로서 좋은 음식을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픈 그의 열정은 단순히 맛집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을 모아 맛집을 방문하는 ‘#용슐랭투어’를 기획하기에 이르렀다. 지인들을 대상으로 한 용슐랭투어는 큰 호응을 얻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한동안 미뤄지다 올해 말부터 다시 재개할 예정이다. 대상도 일반 구독자로 확대하고 사전 고지 없이 ‘벙개’ 형식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편견 없이, 모든 음식을 사랑하는 인싸 푸디

먹는 것에 진심인 그의 미각을 형성하는 데는 어린 시절 젓갈 장사를 했던 외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귀한 젓갈이 냉장고에 항상 가득했어요. 명란젓을 밥에 넣어 비벼 먹고,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찜으로 만들기도 했고요. 성인이 돼서 명란 파스타 먹어보고 우리나라 명란으로 이 정도 맛을 내는데 굳이 이탈리아 어란을 써야 하나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그는 미각에 예민한 만큼 요리 실력도 수준급이다. “음식점 차리기 전부터 원래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또 주변에 워낙 요리 잘하는 분들이 많으니까 어깨너머로 배웠고요.” 이탤리언 레스토랑 창업을 준비할 즈음에는 순수하게 파스타 먹으려고 이탈리아를 방문한 적도 있다. “정통 생면 파스타가 먹고 싶어서 비행기 타고 날아간 거죠. 정통 이탈리아 파스타 맛도 모르면서 어떻게 이탤리언 레스토랑을 할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차곡차곡 내공을 다진 박용인의 폭넓은 미식 스펙트럼은 레스토랑의 메뉴를 짤 때 진가를 발휘했다. “기본적인 메뉴는 제가 다 기획하고 셰프와 의논해서 디벨롭시키는 식으로 최종 메뉴가 결정돼요. 예외적으로 넛츠버거의 메뉴는 모두 제가 만든 것들이고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을 즐기는 박용인은 이번 겨울 성수동에 네 번째 매장을 선보일 예정이다. 버터를 주제로 한 카페로, 음료와 베이커리뿐만 아니라 자체 생산한 다양한 플레이버의 버터를 판매할 계획이다. 그의 최종 목표는 독보적 콘셉트의 외식 그룹을 만드는 것. “재미있는 캐릭터의 먹거리 브랜드들로 가득 찬 외식 그룹을 만들고 싶어요. 지금은 그걸 실험하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푹 빠져서 하는 것, 열심히 하는 것은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그. 미식이란 단어는 여전히 어렵지만 좋아하는 음식 찾아 먹는 것이 행복하다며 남들이 뭐라 해도 자신의 감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 보컬로서 박용인의 눈빛이 부드럽고 애절하다면 외식 사업가와 푸디로서 그의 눈빛은 강렬하다 못해 반짝반짝 빛이 난다.

사진 홍태식



여성동아 2022년 1월 6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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