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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유리천장 깬 김상희 국회부의장

EDITOR_FEATURE 강현숙 기자 EDITOR_FASHION 오한별

입력 2022.01.04 10:30:01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국회부의장인 김상희 의원이 여성동아와 처음으로 화보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성의 권익 증진에 앞장서온 시민운동가에서 정치인이 되기까지의 인생 스토리와, 손자 보는 행복에 푹 빠진 소소한 일상까지 털어놓았다.
2020년 6월, 헌정 73년 만에 21대 국회에서 첫 여성 국회부의장이 탄생했다. 김상희(68) 국회부의장(더불어민주당, 경기 부천시병)이 그 주인공으로, 유난히 여성에게 문턱이 높은 우리나라 정치 영역에서 공고한 유리천장 하나를 깼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국회부의장은 4선을 이룬 의원으로, 지난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최고위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현실 정치에 발을 들였다. 이후 19대 총선에서 보수의 아성이었던 경기 부천시 소사구 선거구에 출마해 ‘소사댁’이라 불리며 재선에 성공했고, 20대·21대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에 출마해 내리 당선됐다. 2012~14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여성의 인권 증진과 사회적 참여 확대를 위한 법과 제도 개선에 주력했고, 2017년에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돼 저출산 해결사로 다양한 행보를 보였다.

사실 김 국회부의장은 대한민국 여성운동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이화여대 제약학과 출신의 그는 박정희 유신 독재 시절 학생운동을 시작으로 30여 년간 민주화운동과 여성운동, 환경운동에 매진해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진보적 여성 대중운동 조직인 여성평우회를 시작으로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여성환경연대 공동대표를 맡아 단체를 이끌었고 민주화와 여성 인권, 양성평등, 환경운동을 위한 여러 활동에 헌신해왔다. 2005년에는 성폭력특별법 제정과 호주제 폐지 등 여성 관련법 제정 및 개정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양성평등 사회를 위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온 김 국회부의장을 2021년 12월 중순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자리한 동아일보 출판국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그는 첫 화보 촬영임에도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적극적으로 포즈를 취하며 분위기를 압도했다. 인터뷰 중 두 돌을 앞둔 손자 이야기를 나눌 때는 따뜻하고 소탈한 소사댁 그 자체였다.

만나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화보 인터뷰는 처음이신 걸로 알고 있어요.

정치인들의 인터뷰는 주로 말로 주고받는 형태이고 딱딱한 정치나 정책에 관한 내용들이 많기 마련입니다. 화보 인터뷰는 아주 새롭기도 하고 익숙한 인터뷰 형식이 아니라 조금 어색하기도 하네요. 정치인도 사진이 많이 찍히는 직업이긴 하지만 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하는 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 조금 걱정되기도 합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코로나19로 국민 모두가 힘든 시기입니다. 국회부의장님의 근황은 어떠신가요.

2021년 12월 9일에 정기국회가 마무리됐습니다. 국정감사와 2022년 예산안 심의, 민생 법안 심의를 위해 저를 포함한 많은 국회의원들이 1백 일 동안 애를 썼지요. 그 결과 6백7조원의 최대 예산이 편성되었고, 정기국회 기간 동안 3백40여 건의 안건을 본회의에서 처리했습니다. 장기화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민 모두가 힘들어하시는 만큼, 국가가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는 예산과 입법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2020년 6월 우리나라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국회부의장으로 선출되셨어요. 감회가 남다르실 듯합니다.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국회부의장으로 진출한 것은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에요. 정치가 ‘남성과 여성이 함께 하는 것’임을 보여줄 수 있게 됐고, 양성평등 사회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이제야 여성 국회부의장이 나온 것은 우리 사회의 발전 경로에 비추어 너무 늦은 것 같습니다. 정치적·역사적으로는 유권자의 절반이 여성임에도 헌정 73년 동안 국회의장단에 여성 대표자가 없었다는 점은 굉장히 비정상적이었던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여성으로서 대표성과 책임감을 갖고 지난 1년 반 동안 국회부의장의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어요.

‘다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복지사회’를 위한 노력들

국회부의장으로 어떤 의정 활동에 집중하셨나요. ‘성평등 국회 실현을 위한 실천 결의안’을 제출하신 점도 인상 깊었습니다.

국회부의장으로 출마하면서 약속한 ‘성평등 국회’를 만들기 위한 과제들을 차근차근 실행했어요. 박병석 국회의장님께 ‘성평등국회자문위’ 신설을 제안 드렸고, 자문위가 7개월간 성평등 국회로 가기 위한 개혁 과제들을 추렸어요. 이 과제들을 결의한 형태로 2021년 10월 대표 발의했지요. 1백여 명의 여야 의원님들이 공동 발의해주셨습니다. 관련 법안도 제출되어 있는 만큼 남은 임기 동안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국회부의장으로서는 코로나19 대응에 국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또 한국판 ‘클림비 보고서(영국 정부가 학대로 사망한 8세 빅토리아 클림비에 대해 2년간 조사해 그 결과를 발표한 보고서로, 아동보호 프로그램의 바이블로 인식됨)’를 도입해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예방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아동학대방지법 개정안’도 대표 발의했고, 여성 과학기술인 육성을 위한 정책들도 제안했습니다.

이대 제약학과를 졸업하신 약사 출신으로 30여 년간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양성 평등, 환경보호 등에 힘쓰셨어요. 약사라는 보장된 진로 대신 시민운동가의 길로 접어든 계기는 무엇인가요.

대학을 다니며 학생운동에 참여하게 됐고, 졸업 후 약사가 돼서도 여성운동·민주화운동을 병행했어요. 당시에는 전업 시민운동가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한동안 약사 일을 함께 하다 전업 시민운동가의 길로 들어섰지요. 제가 처음 시민운동을 시작한 1970년대는 권위주의적·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로 여성에 대한 전근대적 차별과 폭력이 만연했던 시기예요. 차별과 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조차 희박했지요. 그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해보고자 시작한 여성운동이 시민운동가의 삶을 살게 된 계기입니다. 제가 이런 사회적 인식을 가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의감 강하고 활동적이셨던 어머니의 영향과 가르침이 자리해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는 여성이 독립적인 경제력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셨고, 박정희 독재 시절에도 야당 정치인을 후원하시는 등 소위 말해 깨어 있는 분이셨어요. 제가 여성운동, 시민단체 활동, 민주화운동을 하는 과정에서도 늘 지지해주셨고요.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여성의 경제적 독립에 대한 개념을 일깨워주셨다니, 어머니가 참 대단하신 분 같아요.

1929년생이셨는데 그 연세에 드물게 굉장히 진취적이셨어요. 저희 집이 2남 3녀인데, 딸들에게 “여자는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결혼해서도 당당하게 독립적으로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시며 직업을 갖길 권하셨어요. 저는 약대, 언니는 간호대, 여동생은 법대에 진학했지요. DNA의 힘은 무시 못 하는지 제가 성격도 그렇고 어머니와 참 많이 닮았어요(웃음). 2017년에 별세하셨는데 지금도 무척 그립습니다.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주도하셨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활동은요.

30년간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해소하기 위한 여러 정책적·입법적 요구와 제안을 했어요. 현재의 ‘성폭력특별법’ ‘남녀고용평등법’ ‘성매매방지법’ ‘양성평등기본법’ 등의 법률들이 제정되는 과정에 여성운동 세력이 주도적인 영향을 미쳤지요.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두 가지예요. 먼저 성평등과 민주적 가족법 구현을 위해 가족법 개정 운동을 벌여 1990년과 2002년 두 차례 개정을, 그 연장선상에서 2005년 호주제 폐지를 이뤄냈어요. 두 번째로는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공천에 여성을 의무적으로 50% 할당하는 선거법 개정 과정을 주도한 거예요.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와 여성 정치진출의 큰 물꼬가 터진 계기였기에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정치권에 뛰어드신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198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정치권보다는 시민사회가 사회 개혁 입법을 추동하는 중심 세력이었어요. 2000년대 이후 우리의 민주주의도 성숙해지고 제도 정치권이 하나하나 제 역할을 하게 됐지요. 이렇듯 정치권이 제 역할을 찾아가는 시점에서는 정치가 국민들의 목소리에 제대로 응답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2007년 참여정부 말기에 범진보 진영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었고, 여당을 중심으로 정치 개혁과 국민 통합에 대한 요구도 제기됐습니다. 저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 국민들이 투쟁으로 일궈온 민주주의의 역사가 후퇴하고 민생이 힘들어질 수 있는 위기라고 판단했어요. 뜻을 함께하는 시민사회 출신의 여러 분들과 정치를 시작하기로 결심했고, 열린우리당과 통합 과정에 참여하며 정치권에 입문하게 됐어요.

19대부터 21대 총선에서 경기 부천 소사구에 출마해 내리 당선되셨고, 4선 의원이십니다. 4선까지 이어나갈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2012년 총선에서 제가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되기 전까지 우리 지역은 16년간 보수의 아성이었어요. 당선되고 한참 후에 지역 당원들과 주민들께서 그동안 ‘새로움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30년 넘는 시민사회 활동으로 ‘변화와 개혁’을 지향해온 것이 지역 주민들에게 새로움으로 평가받았다고 생각해요. 제 의정 활동의 지향점은 정의와 평등, 그리고 복지입니다. 제가 꿈꾸는 나라는 ‘다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복지사회’라고 할 수 있지요. 항상 이 기준에 부합하는지 자문하며 의정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역구민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했어요. 처음 지역구 활동을 시작하고 1년여 동안 주민들을 만나기 위해 신발 밑창이 떨어질 만큼 방방곡곡 쉬지 않고 다녔습니다. 그때 겪었던 어려움을 지금도 기억하며 진심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지역 주민들과의 활발한 소통으로 ‘소사댁’이라는 애칭도 갖고 계세요. 국민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이처럼 소통이 필수인데, 특별히 힘쓰고 있는 부분은요.

소사댁이란 별명은 2011년 전통시장 상인께서 붙여주신 거예요. 인사를 드리기 위해 시장에 자주 찾아뵀더니 “그만하면 소사댁 다 되었다”고 칭찬해주신 것이, 제게는 최고의 애칭이 된 것이죠. 소통은 잘 듣는 것인데, 좋은 소리만 들으려고 하는 건 소통이라고 보기 어려워요. 불만의 목소리도 잘 들어야 하지요. 이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획도 얻을 수 있고요. 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 현장의 목소리를 꼭 들어야 해요. 그래서 저는 토론회와 간담회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신념, 다양한 목소리 가운데서 중심을 잘 잡겠다는 각오로 의정 활동을 하고 있어요. 다선 의원임에도 토론회·간담회를 많이 한다는 평가를 들으면 마치 훈장을 받는 기분입니다.

국회에서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으로 의정 활동을 하셨고, 2017년에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저출산 정책을 다루셨습니다. 정치권에서 많은 저출산 대책이 나오고 있지만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재직할 때는 저출산 정책을 대하는 국가 차원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환하고자 노력했어요. 과거 정부에서 출산율과 출생아 수 제고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국가주의적 저출산 정책을 추진해왔다면, 저희는 개인과 가족의 선택을 존중해 전 세대의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하는 ‘사람 중심’ 정책으로 전환했지요. 이런 기조 아래 남녀고용평등법과 ‘고용보험법’을 개정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활성화와 배우자 유급 출산 휴가 확대, 남성 근로자의 육아 참여 촉진, 가족돌봄휴가제도 도입 등을 대표 발의하고 입법했어요. 돌봄 서비스의 대폭 확대와 난임 부부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정책도 성과가 있었고요. 하지만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고 부족한 점도 많습니다. 저출산 문제에 관해서는 일하면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도록 국가가 전방위적이고 촘촘한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감한 정책적 결단이 없으면 우리 사회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위기의식으로 저출산 문제를 해소해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최근 아이를 국회에 동반하며 ‘국회 회의장 아이동반법’을 발의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등 젊은 여성 국회의원들의 행보도 눈길이 갑니다. 후배 여성 국회의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더 큰 자부심과 소명 의식으로 의정 활동에 임하면 좋겠습니다. 17대 국회부터 비례대표에 여성 동수 공천이 이루어짐에 따라 여성의 정치 진출이 확대됐어요. 특히나 17대 국회 이후 의정 활동의 질이나 정치 수준이 빠르게 높아졌는데, 여성 의원들의 역할이 매우 컸음을 부인할 수 없어요. 더 잘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했으면 합니다.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여성 의원들은 여성의 대표성을 보장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에 따라 국회로 보내진 사람이라는 점이에요. 특별하게 성평등을 위한 시대적 소명으로 뽑힌 사람들인 만큼, 그 소명을 잊지 않고 의정 활동에 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인생의 엔도르핀 손자 보며 좋은 나라 고민해

인생의 좌우명이나, 큰 영향을 미친 롤 모델이 있으신가요.

금강경에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응당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라)’이라는 말이 있어요. 이 말을 마음속에 새기며, 최선을 다하되 거기에 집착하거나 머무르지 않고 담담하게 갈 길을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2020년 작고하신 이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님이세요. 우리나라 여성학과 여성운동의 길을 개척한 선구자이자 은사님이셨어요. 분단과 독재로 어렵던 시절, 약자들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애정을 갖도록 일깨줘주셨던 스승이자, 제가 어떤 소명 의식으로 살아야 할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해주신 분입니다.

남편인 이목훈 전 호서대 교수께서 2016년 총선 당시 지지를 호소하며 작성하셨던 ‘소사구민에게 드리는 편지’가 인상 깊었습니다. 시민운동에 이어 정치까지 쉽지 않은 길을 걷고 계신데 남편분께서 어떤 힘이 되고 있는지요.

남편이 다감한 성격은 아니지만 저희 부부 사이에는 신뢰가 있습니다. 4년 정도 연애 기간을 거쳐 1980년에 결혼했는데 결혼식에서도 신랑 신부 동시입장을 했어요. 사실 결혼식장에서 아버지가 딸을 데리고 들어가 신랑에게 인계하는 건 마치 보호자 바통터치처럼 보이는 의식 중 하나였지요. 당시 생활 속 성평등 실현의 일환으로 저뿐 아니라 친구들 역시 결혼식에서 동시입장을 했습니다. 남편도 제 뜻을 존중해줬고요.

요즘 ‘사람’ 김상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관심거리는요.

곧 두 돌이 되는 손자를 보는 게 가장 마음 설레는 일이에요(웃음). 워낙 아이를 좋아해서 아들을 키울 때도 어쩔 줄 몰라 했는데, 손주는 너무 예쁘더라고요. 일요일마다 아들 집에 가서 2시간 정도 있다 오는데 이 시간이 최고의 행복입니다. 남편 역시 손자를 너무너무 좋아하고요. 손주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조금 더 좋은 나라, 지속 가능한 사회를 물려주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도 많이 하고 있어요.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국회에 헬스장이 있어서 아침에 가면 운동을 해요. 국회의원들은 아침에 회의나 조찬이 많아 일찍 나오는 일이 잦거든요. 나이가 들수록 규칙적으로 운동 루틴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건강관리가 안 되는 것 같아 틈틈이 운동하고 있어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오신 워킹맘 선배로서 이 시대의 워킹맘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은요.

제가 워킹맘으로 살았던 시대와 현재 워킹맘들은 사회적 여건이 완전히 다르므로 조언을 하기가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에요. 여성들이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유지하고, 자기계발을 하고 살기 어려운 상황이지요. 그러한 어려움이 저출산이나 경력 단절 여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조언보다는 응원을 해주고 싶어요. 제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모든 여성들이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존중하고 믿으며 끊임없이 나아가길 바라요. 여성들이 당면한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와 국가가 인식하고 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며 대한민국이 이를 해결해나갈 거라는 희망과 믿음도 함께 가지면 좋겠습니다.

국회부의장님께 남은 임기 동안 어떤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정치는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고 약자를 보호하며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데 가장 중요하고 힘 있는 도구입니다. 그 도구가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늘 정직하게 의정 활동을 하겠습니다. 특히 국회부의장 임기가 5개월가량 남았는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일하는 국회, 성평등한 국회, 협치의 국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드렸는데 그동안의 성과를 점검해보고 남은 임기 내에 할 수 있는 일들을 끝까지 잘해내고 싶습니다. “여성이 국회부의장이 되니 정치와 국회가 이렇게 달라졌구나”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남은 임기를 잘 마무리하겠습니다.

사진 김도균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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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동아 2022년 1월 6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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