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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story

나에게 연기란 정말 달콤한 것, ‘자산어보’로 4년만에 스크린 복귀한 변요한

글 이현준 기자

입력 2021.03.26 14:44:14

‘독립영화계의 송중기’라 불리던 충무로의 샛별에서 어느덧 대체 불가의 배우로 성장한 변요한. 그가 이준익 감독의 새 영화 ‘자산어보’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3월 31일 개봉하는 영화 ‘자산어보’의 스틸 사진.

3월 31일 개봉하는 영화 ‘자산어보’의 스틸 사진.

“선과 악, 반항과 순응이 묘하게 교차된 얼굴을 가졌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들개’(2014)에 출연한 변요한(35)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봉 감독의 말처럼 그의 얼굴엔 선과 악, 유쾌함과 진지함,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한다.

변요한이 지닌 입체적 매력은 그가 소화한 다양한 캐릭터에서 기인한다. 2011년 단편영화 ‘토요근무’로 데뷔한 변요한은 30여 편의 독립영화와 단편영화에 출연해 존재감을 발휘하며 ‘제2의 이제훈’ ‘독립영화계의 송중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2014년 드라마 ‘미생’에서 능청스러운 연기로 한석율 역을 훌륭히 소화하면서부터. 이후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2015)’ ‘미스터 션샤인(2018)’ 영화 ‘소셜포비아(2015)’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2016)’, ‘하루(2017)’ 에 이르기까지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오가며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왔다.

변요한의 성공을 견인한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은 절박함이 있다. 그가 과거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중학생 시절 연기를 접해 예고 진학을 원했지만 부모의 반대에 부딪쳐 잠시 꿈을 접어야 했다. 이후 유학을 떠났던 그는 군 복무 이후 스물네 살이 돼서야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연극원에 입학, 연기자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됐다. 군 복무를 하는 중에도 틈틈이 입학시험을 준비하고 군 생활을 하며 봉급으로 연기학원을 다니며 거둔 성과였다. 동기들에 비해 다소 늦은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연기에 대한 간절함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이런 그가 이준익 감독의 14번째 영화이자 두 번째 흑백영화 ‘자산어보’(3월 31일 개봉)로 4년만에 스크린에 복귀한다. ‘자산어보’는 1801년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이 물고기와 해양생물에 호기심을 가지고 어류학서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변요한은 어보 집필을 도우면서도 바다를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해 글공부에 매진하는 청년 어부 ‘창대’ 역을 맡아 ‘정약전’ 역을 맡은 배우 설경구와 호흡을 맞췄다.



변요한은 3월 18일 열린 시사회에서 “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며 내내 북받친 감정을 내비쳐 화제를 모았다. 3월 23일 화상 인터뷰로 변요한과 마주했다. 그는 유쾌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진지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4년만에 선보이는 영화예요. 스크린으로 돌아오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시간이 그렇게 됐네요. 스스로 2년간 휴식기를 가졌어요. 슬럼프 같은 건 아니고 그냥 쉬고 싶어서요(웃음). 데뷔 기준으로는 10년차지만 연기는 그 이전부터 쭉 해왔기에 조금 지쳤던 것 같아요.

시사회 때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는데, 어떤 심정이었나요.

그날 영화를 처음 봤는데, 기다리고 설렜던 만큼 좋은 영화가 나왔다고 느꼈어요. 눈물을 참으려고 했는데 보니까 뒤쪽 경호원 분도 눈물을 훔치시더라고요(웃음). 부끄러웠지만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했죠.

설경구 배우는 “‘자산어보’는 변요한에게 가장 빛나는 필모그래피가 될 것”이라고 했어요.

제가 정말 존경하는 선배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것보다 더 큰 칭찬이 어디 있겠나 싶어요. ‘자산어보’는 2021년 가장 빛나는 작품이 되리라 생각해요. 묻고 더블로 가겠습니다(웃음).

근래 코로나19로 영화계 사정이 좋지 않은데, 흥행에 부담을 느끼지는 않나요.

물론 더 나은 상황에 개봉했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은 하죠. 하지만 이건 욕심이고, 이준익 감독님께서 오랫동안 남을 영화라는 확신으로 개봉일을 정하셨을 거라 믿어요. 또 어느 영화든 출사표를 던져야 하는 시기잖아요. 정말 용기 있는 선택이라 생각해서 더 감사함을 느껴요. 흥행에 대한 부담이라면…, 저는 흥행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웃음).

흑백영화 촬영은 어땠나요.

흑백영화는 눈빛, 표정, 풍경의 형태 등 컬러 영화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요. 그래서 마음을 내려놓았죠. 연기 기술을 써도 모두 티가 나니, 조금 서툴게 보이더라도 진실하게 연기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후회는 없어요. 아주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창대는 실존 인물이고 17세였던 것으로 알려졌어요. 변요한 씨보다 스무 살 가까이 어린데….

‘나는 젊다’ ‘나는 17세다’, 그리고 ‘나는 어부다’라고 계속 상상했습니다(웃음). 사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17세인 창대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창대의 시선을 이해하는 데 집중하려 했습니다.

어부 역할을 위해 물고기 손질과 수영을 따로 배웠다고 들었어요.

‘살면서 어부 역할을 언제 해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감사했어요. 물고기 손질은 가르쳐주시는 전문가 분들이 계셔서 열심히 배웠죠. 실내 수영장에서 오래 수영 연습을 했어요. 시대에 맞는 노 젓는 법이 있어 그것도 함께 연습했고요.

어류에 대해 설명하는 전문적이고 긴 대사를 소화 하는 게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예컨대 홍어와 가오리의 차이를 설명해야 하는 장면이요. 전라도 사투리까지 써야 했잖아요.

설경구 선배님이 현장에서 대본을 안 보세요. 다 외워 오시거든요. 그러니까 후배로서는…, 잘 해야 합니다(웃음). 피해를 끼치면 안 돼요. 좋은 후배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컸고요. 그래서 긴 기사도 웬만하면 한 번에 다 끝낸 것 같아요. 제가 잘 해서가 아니라 현장 분위기가 그랬어요. 모두 집중력이 높았죠.

설경구 배우가 창대 역에 변요한 씨를 추천했다고 알려졌어요. 기존에 어떤 인연이 있으셨나요.

독립영화를 한참 찍던 시절에 상업영화로 진출하겠다는 생각으로 영화 ‘감시자들(2013)’ 오디션을 봤는데 덜컥 붙어버렸어요. 그때 설경구 선배님과 마주친 적은 없었고 크레디트에 함께 올라간 것뿐이었는데, 그 뒤로도 저를 계속 지켜보셨던 듯해요. 그래서 이번 촬영으로 함께 하는 동안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준익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변요한 배우가 그렇게 연기를 잘 하는지 몰랐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연기에 대해서만큼은 이견이 없다”고 극찬한 바 있는데 연기에 대해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함께 작품을 한 감독에게 이런 칭찬을 듣는 건 기뻐해도 되는, 가장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배우는 평가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한 문화를 책임져야 하는 직업이고 더 나아가 연기를 통해 대중에게 영감을 줘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이번 작품을 통해 위로와 위안을 얻고 영감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저 자신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지나면 해보려고 해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더라고요. 제 그릇을 조금 더 넓힌 다음에요.

이준익 감독은 그동안 만났던 감독들과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어떤 감독이든 각자의 개성이 있어요. 이준익 감독님은 저든, 설경구 선배님이든, 아역배우든 상관없이 남녀노소 모두 대화가 가능한 분이죠. 그런 점에서 이 감독님은 배우를 편안하게 해주시는 분이에요.

영화에서 정약전과 창대는 각자의 이유로 ‘자산어보’ 집필 혹은 글공부에 이끌리는데, 변요한 씨를 연기로 이끄는 건 무엇일까요.

영감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마음 같아요. 저는 모든 게 다 느려요. 말하는 것도 느리고 걸음마도 느렸고, 한글도 늦게 뗐고 말도 더듬었었어요. 제가 연기를 10대 때부터 접했는데, 30대가 된 지금에서야 세상도 조금 알 것 같고 무엇을 위해 연기를 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아요. 성장하는 어린이들에게 좋은 작품으로 문화적 영감을 주고 싶어요. 저보다 더 잘 할 수 있게요. 그런 어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절 연기로 이끄는 원동력이에요.

중학교 때 연기를 처음 접하기 전 변요한은 수줍음이 많았다. 전화를 받았을 때 ‘여보세요’를 하기 힘들 정도였다고. 하지만 다니던 교회에서 연극을 선보이기 위해 연기를 배우면서 대사를 할 땐 막힘없이 말을 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배우의 꿈을 갖게 됐다.

변요한 씨에게 연기란 무엇인가요. 소극적인 성격을 연기로 극복했다고 들었어요. 단순한 직업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연기를 시작하고 성격이 변해서 지금은 소극적이지 않아요. 약간의 머쓱함은 남아있지만 굉장히 적극적입니다. ‘홍보요정’이라는 말까지 듣고 있어요(웃음). 연기를 통해 작품을 하면서 다른 인물의 호흡과 언어를 알고 사랑하는 과정이 저에게는 정말 달콤해요. 또 많은 배움이 되고 있고요. 결국 배우란 직업은 작품을 통해 삶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저에게 연기는, 그냥 너무 좋습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갈 수 있는 데까지

‘자산어보’ 주연배우 설경구, 변요한과 메가폰을 잡은 이준익 감독(왼쪽부터).

‘자산어보’ 주연배우 설경구, 변요한과 메가폰을 잡은 이준익 감독(왼쪽부터).

창대는 출세하고 싶어 글공부를 하지만 신분 등 현실의 벽 앞에 여러 번 좌절을 겪어요. 변요한 씨를 제약하는 벽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너무 많아요. 그래서 무엇이라 이야기 할 수는 없고 다만 하나하나 허물면서 가고 있어요. 벽이 없는 사람은 없고 누구나 힘들 거라 생각해요. 어쩌면 그래서 더 창대에게 동질감을 느끼지 않았나 싶어요.

창대는 목민관이 되고 싶은 꿈이 있는데, 변요한 씨는 어떤 길을 가리라고 생각한 적 있나요.

늘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해 왔다고 생각해요. 부모님의 영향 같은데, 쉬운 길로 가는 건 재미가 없더라고요. 요령을 피운다면 보다 쉬운 길로 갈 수는 있겠죠. 하지만 배우의 길에 있어선 어려운 길이 좋은 것 같아요. 그래야 나중에 좀 더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독립영화계의 스타 변요한을 상업영화로 진출하게 해준 교두보이자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한 작품은 영화 ‘들개’다. 변요한은 ‘들개’에서 사제폭탄을 만들어 분노를 표출하는 ‘정구’역을 맡아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이며 화제가 됐다. 당시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명해지는 것보다 연기 잘하고 롱런하는, 대한민국에 필요한 배우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2014년 영화 ‘들개’ 관련 인터뷰에서 밝힌 포부는 유명인이 된 지금도 유효한가요.

저 안 유명합니다(웃음). 마음은 그때와 똑같아요. 연기 잘하고 필요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롱런하고 싶다 밝힌 건 지금 생각하면 겁 없이 한 말 같아요. 롱런하고 계신 선배님들을 보면 정말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저는 그저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고 싶어요.

이번 작품에선 설경구, 이정은 등 걸출한 선배들이 많았잖아요. 그들을 보면서 40대, 50대로서의 삶을 그려본 적이 있나요.

있어요. 이번 작품 준비기간 동안 그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참 따뜻하다’ ‘참 멋지다’ ‘참 솔직하다’ ‘카리스마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분들의 노하우를 체득하는 중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 나이쯤 되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하죠. 저한테 주어진 숙제입니다.

사극과 현대극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고 있잖아요. 도전하고 싶은 장르나 배역은 없나요.

저는 장르와 배역과는 관계없이 할 수 있는 만큼 많이 도전하고 싶어요. 그렇다고 욕심을 부리고 싶진 않고, 제 그릇이 되는 한도 내에서 넘치지도 덜하지도 않도록 딱 맞게요. 지금은 그릇을 넓혀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삶을 보다 풍요롭게 연기할 수 있을 때,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어요.

사진제공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여성동아 2021년 5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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