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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gagwoman

박나래 · 장도연 · 홍현희… 선을 넘지 않는 여성들

글 정세영 기자

2021. 03. 18

누군가를 웃음거리로 만들지도 않고 굳이 자학하지도 않는다. 선 넘지 않는 영리한 여성 4인의 개그 코드를 분석해봤다.

메소드 능청, 치고 빠지는 
타이밍을 아는 박나래

‘나 혼자 산다’ ‘신박한 정리’ ‘놀라운 토요일’ 등 내로라하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 MC를 맡고 있는 박나래. 상대방을 공감하는 따듯한 태도와 팔색조 매력, 능청스러움을 장착한 그녀는 세대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예능 대세 퀸이다. 춤, 요리, 인테리어까지 잘하는 만능 재주꾼에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맥시멀한 스타일링도 그녀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 

박나래는 다양한 애칭을 보유한 별명 부자다. 새로운 역할로 분할 때마다 진심을 담아 메소드 연기를 펼치니 여러 부캐와 유행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 걸 그룹 블랙핑크 제니의 솔로곡 ‘SOLO’ 안무와 스타일링은 물론 특유의 표정 연기로 ‘죄니’라는 애칭을 얻는가 하면, 글래머러스한 속눈썹과 립 메이크업, 단발 헤어 스타일을 선보였을 때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주연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을 닮았다 해서 ‘나래 바르뎀’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여자들의 은밀한 파티에서는 이국적인 금발 히피 펌을 한 채로 본인을 “마이 네임 이즈 조지나”라고 소개했는데, 천연덕스럽게 본관을 ‘안동 조씨’라고 덧붙이며 역대급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녀의 개그 코드 핵심은 치고 빠지는 타이밍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정확히 안다는 것이다. 반응 좋은 드립이나 기획이라도 구차하게 끌고 가는 경우가 없다. 예를 들면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다채로운 분장들(tvN 예능 ‘코미디빅리그’에서 혁오, 차승원, 이병헌 등 다양한 인물을 오마주해왔다)은 매번 대중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소위 우려먹는 일이 없었다. 또한 넷플릭스 스탠딩 코미디 프로그램 ‘박나래의 농염 주의보’에서도 “오늘 한번 더럽게 놀아보겠다”며 수위 높은 야릇한 농담을 이어갔지만 초점은 당당하고 솔직한 경험과 가치관에 맞춰 있었다. 이런 영리한 태도는 스타일링으로도 이어지는데, 퍼프 슬리브 톱이나 패턴이 화려한 블라우스에 볼드한 네클리스와 이어링을 레이어드하는 상체 시선 강탈 룩을 즐기며 작은 키를 커버하고 얼굴이 작아 보이는 효과도 누리고 있다. 

2월 초 KBS Joy 예능 프로그램 ‘썰바이벌’에 합류하며 여전히 예능 신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증명한 박나래. 방영한 지 두 달이 채 안 된 따끈따끈한 예능이 그녀와 함께 어떻게 발전할지 기대해봐도 좋을 듯하다.

나의 목표는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개그, 장도연

쭉 뻗은 키와 작은 얼굴, 지적이고 모던한 스타일링으로 ‘장신 미녀 개그우먼’으로 불리는 장도연은 사실 몸 개그와 드립이 탁월한 모태 ‘뼈그우먼’이다. 2007년 데뷔한 그녀는 큰 키와 긴 다리를 이용한 꽃게춤과 사타구니춤을 유행시켰고, 박나래와 영혼의 듀오로 활동하며 유쾌한 입담을 과시하기도 했다. 



본인에겐 자조적이고 상대방에겐 관대한 특유의 화법은 개그우먼을 넘어 매력 넘치는 MC로 만들어주기도 했는데, 호스트 MC로 활약한 SBS 예능 프로그램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에서 그 진가가 제대로 드러났다. 게스트였던 공유를 향해 “비율이 이기적이네”라고 읊조리거나 “얼굴이 작아서 좀 징그러워요”라며 놀리는 듯 교묘하게 장점을 치켜세우는 토크 방식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홀린 것. 엄마 같은 여자가 이상형이라는 이동욱을 향해 “이눔 시끼야!!”라며 아들을 혼내듯 받아치는 장면은 유튜브 조회수 2백35만을 돌파할 만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녀의 개그는 “굉장히 수줍어하시는 것 같은데 힘 안 들이고 약간 사람 약 올리는 스타일”이라는 공유의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장도연은 시선을 사로잡는 제스처나 상대방을 제압하는 커다란 목소리 대신 조용하고 다정하게 시비 거는 고급 스킬을 지녔다. 특이한 것은 그 시비가 기분 나쁘지 않다는 것. 멘트 수위를 자유롭게 조절하며 상대방을 치켜세우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능글맞고 부드러운 화법 때문에 상대방도 웃어 넘길 수 있는 듯하다. 

팩폭과 농담을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장도연. 앞으로 많은 예능에서 게스트가 아닌 메인 MC 장도연을 더 자주 만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해본다.

EDPS도 쿨하게 소화하는
대체 불가 캐릭터, 안영미

안영미의 유행어를 헤아리려면 1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KBS 예능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분장실 강선생님’ 코너에서 밉상 선배로 활약하며 남발한 전설의 유행어 “영광인 줄 알어 이것들아~” “미친 거 아냐~?!”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 2011년 ‘코미디빅리그’에서는 4차원 폭주족 김꽃두레 역할을 맡으며 ‘간디 작살’ ‘할리라예~’라는 허세 가득한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유머 코드가 본격적으로 19금 개그가 된 것은 비슷한 시기에 ‘코미디빅리그’에서 활약한 안부선 역할과 tvN 예능 프로그램 ‘SNL 코리아’에서 아슬아슬한 드립을 일삼던 것에서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그녀가 명명한 EDPS(음담패설)와 거친 말로 똘똘 뭉친 개그는 다소 조심스러운 유머를 선보이던 개그계에 신선한 환기와 자극을 가져다 주었다. 개그의 수위는 시간이 지날수록 과감해졌는데, 2016년 유튜브 채널 ‘대도서관 TV’에서 중국어로 치킨을 뜻하는 민망한 단어를 반복한다든지, 올해 초 ‘셀럽파이브’ 채널에서 보조개가 정답인 퀴즈에 다른 신체 부위를 연상시킨다든지 하는 아찔한 장면에서 짐작할 수 있다. 작년 MBC 방송연예대상에서는 미국에 있는 남편이 모처럼 귀국해 “2세를 만들러 가야 한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안영미의 행보가 지속될수록 대중의 반응은 한결같다. ‘안영미만이 소화할 수 있다’라는 분위기. 

안영미 하면 떠올려야 할 새로운 단어가 있으니 바로 스타일이다.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 고정 MC로 활약하고 있는 그녀의 헤어스타일과 패션이 화제가 됐기 때문. 목선을 노출하거나 뷔스티에 또는 퍼프, 프릴 등 디테일이 있는 의상으로 여성미를 한껏 강조하곤 하는데, 필라테스 애호가이자 명품 몸매 소유자답게 핏 역시 완벽하다. 

한때 ‘여자 신동엽’이라 불렸지만 어느샌가 꼬리표를 떼고 그 자체의 독보적인 매력을 인정받고 있는 그녀. 19금 개그를 부담스럽지 않게, 쿨하게 소화할 수 있는 대체 불가 ‘멋쁜’ 인물이다.

망가져도 마이 웨이
자존감 충만한 마성의 여자, 홍현희

홍현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끈적끈적한 말투 아닐까. 취기가 오르거나 졸음이 온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내 당당, 고혹, 섹시를 연상케 하는 멋진 태도가 피어오른다. 

스타일링도 멋지다. 아담한 체구를 가졌음에도 오버핏 의상을 쿨하게 걸치는가 하면, 빈티지부터 걸리시까지 다양한 무드의 룩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하며 자존감과 자신감, 자기애를 발산한다. 

1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SBS 예능 프로그램 ‘개그투나잇’의 ‘더 레드’ 코너에서 사회 고위층을 응징하는 자아도취 여성 캐릭터를 맡았었는데, 눈치 보지 않고 자신만만하게 연기하던 모습이 지금과 똑 닮았다. 당시 화제가 됐던 ‘이런 치명적인 여자를 갖고 싶나요?’ ‘용기 내봐~요~’라는 유행어 또한 최근 만들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금은 ‘홍현희’라는 사람 자체가 개그 소재, 콘텐츠가 되었다는 것. 가끔 입을 벌린 채 손가락으로 입술 가장자리를 닦아내는 제스처를 한다든가, 눈을 내리깔고 매혹적인 손짓으로 “어머~ 이쓴아~” 하고 남편만 불러도 대중은 빵빵 터진다. 생활이 개그고, 개그가 생활인 것. 시매부와 먹방 대결을 하거나, 시아버지 앞에서 잔망을 부리고, 트럭 위에서 자장면을 먹다 얼굴에 쏟기도 하지만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듯하다. 자연스러운 모습 속에서 유발되는 웃음을 대중이 가장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 타인에게 비치는 모습에 연연하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통해 대중들에게 찐 웃음을 전달하는 홍현희야말로 ‘롱런’할 수 있는 개그우먼인 듯하다.

사진제공 인스타그램 MBC ‘나 혼자 산다’ ‘놀면 뭐하니’ 방송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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