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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LVMH는 티파니를 다시 품에 안을까

#tiffany&co #lvmh

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엘 킴벡

2020. 09. 22

1940년부터 뉴욕의 맨해튼 5번가를 지키고 있던 티파니(Tiffany&Co) 본점이 리노베이션을 위해 잠시 문을 닫았다. 코너를 돌면 바로 나오는 57번가에 위치한 빌딩을 임시로 이용하고 있지만 오랜 시간 5번가를 지켜온 티파니 매장이 사라지니 왠지 거리 전체가 허전해진 느낌이다. 

티파니는 맨해튼 5번가의 상징과도 같았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주인공 홀리(오드리 헵번)가 커피와 페이스트리를 먹으며 윈도 안에 전시된 보석을 보던 곳이 바로 여기다. 신분 상승을 꿈꾸는 홀리의 욕망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2019년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뽑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음식 신 20’에 선정되기도 했다. 

영화 개봉 이후부터 5번가의 티파니 본점은 보석을 사러 가는 사람들만큼이나 영화 속 명소를 찾아 방문하는 이도 많았다. 이에 티파니는 2017년부터 매장 4층 한쪽에 ‘블루 박스 카페’라는 레스토랑을 열었는데, 오픈과 동시에 뉴욕의 핫 플레이스로 등극해 길게는 한 달 가까이 웨이팅을 해야 했다. 


실제 티파니 매장을 배경으로 촬영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한 장면(왼쪽). 티파니의 스테디셀러 스퀘어링.

실제 티파니 매장을 배경으로 촬영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한 장면(왼쪽). 티파니의 스테디셀러 스퀘어링.

본점을 리노베이션하는 사이, 티파니와 관련된 빅 뉴스가 흘러나왔다. 루이비통과 디올을 비롯한 70여 개의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세계 1위 명품 그룹 LVMH사가 티파니를 인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양 사는 지난해 11월 LVMH가 1백62억 달러(약 19조원)에 티파니 주식 전체를 인수하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이어 2020년 3월 미국의 공정위원회에 기업 합병을 신고하고, 6월 인수 합병에 대한 승인이 나자 업계 관계자들의 관심은 두 럭셔리 브랜드가 어떻게 시너지를 낼까에 쏠렸다. 특히 2001년 2억2천5백만 유로(약 3천1백억원)에 파리의 유서 깊은 백화점 라 사마리텐을 인수한 LVMH는 2005년부터 15년간 약 10억 달러(1조2천억원)를 투입해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단행하고 루이비통, 디올, 펜디, 셀린느, 로에베, 불가리 등 자사 명품 브랜드들을 입점시킬 것으로 알려져 기대감을 높였는데, LVMH와의 합병으로 티파니도 이곳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소비자들이 아마존 같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시대에, 엄청난 금액을 들여 백화점을 재개장하는 LVMH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행보에 많은 미디어들이 관심을 보였다. 아르노 회장은 백화점이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닌 반드시 방문해보고 싶은 매력 넘치는 공간인 동시에 다양한 즐길 거리를 갖춘 ‘어뮤즈먼트 스토어(Amusement Store)’ 시대를 여는 듯 보였다. 언론에 일부 공개된 라 사마리텐의 내부는 ‘벨 에포크’를 재현해놓은 듯 화려한 인테리어로 개장과 동시에 SNS 사진 명소가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리노베이션 전부터도 센 강변과 퐁네프 다리가 한눈에 보이는 뷰로 유명했던 옥상 전망대는 한층 업그레이드되었으며, 백화점과 면세점 뿐 아니라 5성급 호텔과 유명 레스토랑 그리고 디올의 스파 등이 자리해 엄청난 관광객이 몰릴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의 여파로 4월로 예정됐던 라 사마리텐의 재개장은 기약 없이 연기됐다. 업계에서는 명품 브랜드의 큰손인 중국 관광객들이 다시 파리로 돌아올 즈음 라 사마리텐도 문을 열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많은 기업들도 마찬가지지만 LVMH는 코로나19로 인해 특히 큰 타격을 입었다. 아르노 회장의 자산이 1백72억 달러(약 20조원) 증발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코로나19로 직격타 입은 LVMH의 속사정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왼쪽). LVMH가 거액을 들어 리모델링 중인 파리의 백화점 라 사마리텐.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왼쪽). LVMH가 거액을 들어 리모델링 중인 파리의 백화점 라 사마리텐.

그러던 차 지난 9월 9일 LVMH사가 티파니 인수 계약을 철회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 배경에는 미국과 프랑스 정부의 경제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있다. 프랑스 정부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글로벌 IT 기업에 디지털세(매출의 3%)를 부과하자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그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산 치즈와 와인, 럭셔리 브랜드 제품 등 63개 품목에 대해 100%까지 관세를 매기겠다고 맞대응했다. 양국의 신경전이 격화되자 프랑스 외교부는 LVMH 측에 미국 기업인 티파니의 인수를 내년 1월 6일 이후로 미룰 것(원래 계약대로라면 오는 11월 인수 합병과 관련된 모든 절차가 끝나야 한다)을 요청했고, LVMH로서는 이를 무시할 수 없었던 것. 하지만 티파니 측의 입장은 다르다. 프랑스 정부의 디지털세는 양 사의 계약 체결 이전부터 인지된 상황이며, 또 프랑스 외교부에서 보낸 서신은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는 단순한 권고일 뿐이기에, LVMH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체결한 계약 조건보다 낮은 금액으로 티파니를 인수하려는 모종의 음모라는 것이다. 

LVMH의 계약 철회에 맞서 티파니는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대해 LVMH도 맞고소를 선언했다. LVMH 측은 티파니가 자신들의 브랜드 관리에 소홀해 지난 1분기 매출이 44%가량 감소했으며 앞으로도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 매출 부진을 커버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아울러 지난해 인수 합병 계약 당시 책정된 금액이 과대평가 됐다는 점을 넌지시 언급했다. 양 사의 소송전이 알려진 직후 티파니의 주식은 6.44%의 급락한 반면 LVMH의 주가는 큰 변화가 없었다. 시장에서는 소송전으로 갈 경우 결국 티파니가 불리할 것이라 보고 있는 셈이다. 

현재 업계 관계자들은 재협상의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본다. 사실 지난해 계약 당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LVMH가 다소 높은 금액을 책정했다는 분석이 있었다. 또 LVMH의 라이벌로 불리는 다른 럭셔리 그룹이 티파니의 인수전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전망도 흘러나온다. 구찌, 발렌시아가, 생 로랑, 보테가 베네타 등 초일류 럭셔리 브랜드를 보유한 케링 그룹이 대표적이다. 

LVMH가 티파니를 포기하는 대신 다른 브랜드에 러브 콜을 보낼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LVMH는 불가리와 위블로, 태그호이어 등의 주얼리와 시계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지만, 전체 매출에서 시계와 보석 분야가 차지하는 매출 비율이 아직 한 자릿수에 불과하기에 까르띠에, 반 클리프 아펠 등의 브랜드를 거느린 리치몬트 그룹으로 타깃을 바꾸었다는 분석이 그것. 만약 리치몬트 그룹과의 빅딜이 성사되면, LVMH는 그간 고전해왔던 주얼리와 시계 분야에서도 전 세계 1위에 올라서게 된다. 

LVMH는 티파니의 가격을 낮춰 다시 품에 안을까, 아니면 티파니를 버리고 리치몬트로 향할까. 지금의 형국은 웨딩 링의 대명사 티파니가 마치 양가 부모(양국 정부)의 간섭 때문에 LVMH와 파혼한 듯한 형국이다. 무슨 막장 드라마 같지만 

그 이상의 예측 불가한 일들이 난무하는 곳이 기업 인수 합병 시장이다. 70개가 넘는 기업을 인수 합병 해 지금의 LVMH라는 제국을 건설한, 일명 M&A의 달인 아르노 회장과 맞붙고 있는 티파니의 운명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에 패션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조엘 킴벡의 칼레이도스코프


뉴욕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기네스 팰트로, 미란다 커 등 세기의 뮤즈들과 작업해왔다. 현재 브랜드 컨설팅 및 광고 에이전시 ‘STUDIO HANDSOME’을 이끌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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