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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harmony

한·EU 발달장애 아티스트 70여 명 ‘붓으로 틀을 깨다’

EDITOR 김지은

2020. 09. 09

한국과 유럽의 발달장애 아티스트 70여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전시 ‘ACEP 2020 발달장애 아티스트 한국특별전’이 9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휴먼에이드포스트 홍지신 본부장을 만나 전시 소식과 우리나라 발달장애인들의 현주소, 전시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발달장애인들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는 휴먼에이드포스트 홍지신 본부장.

발달장애인들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는 휴먼에이드포스트 홍지신 본부장.

매일 쏟아지는 인터넷 뉴스, 그 속에 혼재된 낯선 신조어와 외래어들을 우리는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정보의 홍수에 떠밀려 혼란스러운 것은 비장애인들만이 아니다. 언어나 인지능력이 부족하거나 정서적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발달장애인들, K팝이나 K드라마에 심취해 있지만 한국의 정서와 문화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한 외국인들에게 지금의 사회는 몇 곱절 더 복잡하고 난해하다. ‘휴먼에이드포스트’는 이들처럼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지만 정보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쉬운 말’로 정보를 전달하는 일을 하는 미디어 그룹이다. 놀라운 것은 이곳에서 일하는 정규직 기자의 60% 이상이 발달장애인이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발달장애인 하면 현저하게 지적 능력이 떨어지거나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인터넷 사용이 불가한 상태일 거라 지레짐작하죠. 하지만 발달장애는 스펙트럼이 다양하기 때문에 장애의 정도를 구분 짓기도 모호한 면이 많습니다. 휴먼에이드포스트에서 일하는 발달장애를 가진 12명의 기자들 경우만 보아도 본인들이 직접 섭외부터 취재와 인터뷰 그리고 기사 작성까지 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저희 기자들은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글쓰기와 인터뷰 등 채용에 필요한 테스트를 거친 사람들이고, 취재원들과 소통하고 마음을 여는 재능은 일견 비장애인 기자들보다 나은 면이 있습니다.”

“1만원이라도 세금을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홍지신 휴먼에이드포스트 본부장은 선입견을 걷어내고 나면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은 무의미해진다고 강조했다. 물론 기사에서 예민하게 다뤄야 할 부분들을 검수하거나 조력자가 필요해 비장애인 기자들이 도움을 주어야 할 때도 있지만, 평소에는 취재원들에게 미리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직접 대면하기 전까지는 장애 여부를 쉽사리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일 처리가 프로페셔널하기 때문이다. 발달장애 기자들도 입사 후에는 기사 쓰는 법 등 기본적인 소양 교육을 철저히 받아야 하고, 일을 하다 실수하면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선임 기자에게 혼이 나기도 한다. 

“장애인들에게도 욕망이란 것이 있습니다. 질투도 있고, 사랑·원망·미움도 있습니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을 ‘장애’라는 한정된 단어 안에 가둬두고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조금 나눠주면서 ‘할 일을 다 했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 ‘나눔’이라는 단어 안에는 ‘Share(공유하다)’라는 뜻 외에 ‘Divide(갈라놓다)’라는 의미도 있거든요.” 

비단 발달장애인만이 아닌,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언어로 필요한 정보들을 설명하고 전달할 수 있는 매체가 필요하다는 것이 휴먼에이드포스트의 첫 번째 존재 이유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나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내 몫을 해내고 싶다’는 발달장애인들의 욕망이 숨어 있다. 성인이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도 하고 싶고, 연애나 결혼도 하고 싶은 발달장애인들. 이들에게도 저마다의 꿈과 재능이 있다. 



9월 15일부터 27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4전시실에서 열리는 ‘ACEP 2020 발달장애 아티스트 한국특별전’의 의의도 여기에 있다.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재능을 인정받고 싶어도 발달장애라는 조금 특별한 면 때문에 좀처럼 기회를 얻기 쉽지 않았던 이들에게 ‘화가’로서 당당히 이름을 알릴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전시를 위해 휴먼에이드포스트와 휴먼에이드포스트의 모체인 비영리단체 ‘휴먼에이드’, 그리고 장애를 가진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비채아트뮤지엄’이 힘을 합쳤다. 전수미 관장이 이끄는 비채아트뮤지엄은 이번 전시가 일회성 보여주기식 행사로 그치지 않도록 장애인 아티스트들을 지속적으로 인큐베이팅하고 우리 사회와 미술계 전반의 인식 전환에 기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난 그냥 좋아 1170×910mm_Acrylic on canvas, 2019, 금채민

난 그냥 좋아 1170×910mm_Acrylic on canvas, 2019, 금채민

전망 좋은 방 530×455mm_Acrylic on canvas, 2020, 김기정

전망 좋은 방 530×455mm_Acrylic on canvas, 2020, 김기정

“발달장애 기자들과 호흡하다 보니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나 단체와 교류를 할 일들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우리 기자들 중에도 좋아하는 뮤지컬의 대사를 모두 외운다거나 게임에 몰입해 엄청난 전력을 자랑하는, 특정 분야에 천재성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외부에도 그런 천재성을 가진 발달장애인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들에게는 그 재능을 펼칠 기회가 없을 뿐이었죠. 화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작품 활동을 해도 대부분 자기만족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죠.” 

재능만 있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저 재주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홍 본부장은 재능 있는 발달장애 아티스트들이 주류로 들어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싶다고 했다. 

전시가 성사되기까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주한 EU대표부를 비롯해 리투아니아, 크로아티아, 체코,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등 EU 각국의 주한 대사관, 체코문화원, 불가리아의 장애인고용협회 등 많은 기관과 단체, 예술인들의 도움이 있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ACEP 2020은 당초 발달장애 아티스트를 위한 연례행사 중 하나인 ‘예술과 문화 교류 프로젝트(Art and Cultural Exchange Project)’의 일환으로, 유럽 투어전으로 준비했으나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가 국내전으로 전환하게 된 케이스다. 

“처음에는 우리 작가들이 발달장애인 지원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는 유럽 국가를 방문해 교류전을 준비하려 했습니다. 주한 EU 대사의 주선으로 스위스 UN본부를 비롯해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 등 다양한 국가를 둘러보고 현지 아티스트들과 워크숍도 개최하기로 되어 있었고요. 하지만 코로나19로 모든 계획이 좌초되면서 계획을 전면 수정하게 되었죠.” 

누군가 국내전 이야기를 꺼냈을 때, 홍 본부장조차 선뜻 맞장구를 치기는 어려웠다. 이름난 화가가 아니고서야 인사동의 작은 갤러리조차 대관이 어려운 것이 현실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발달장애인’ 타이틀을 내세워 전시를 치르고 싶지는 않았다. 이번 전시는 예술의전당 수시대관 공모를 통해 선정된 기획전이다. 출품작 리스트를 제출하고 경쟁을 벌여 대관에 성공한 것이다. ‘장애인’이라는 틀에 가둬두었던 선입견을 깨고, 오롯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재능 있는 작가들이 그린 그림으로 보아주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이번 전시의 캐치프레이즈 ‘붓으로 틀을 깨다’에 담긴 의미다.


Spring Vibrations 리투아니아, Paulius Varanaviˇcius

Spring Vibrations 리투아니아, Paulius Varanaviˇcius

이번 전시에서는 국내 발달장애 아티스트 56명과 오스트리아, 체코, 리투아니아, 크로아티아, 독일, 영국 스코틀랜드 등 EU 6개국 20여 명의 발달장애 아티스트 작품 총 1백67점이 선을 보인다. 참여작 중에는 이다래와 김태호 등 제법 이름을 알린 작가들의 작품도 있고,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신진 작가들의 작품도 있다. 해외 작가들의 경우 주한 EU대표부의 주선으로 EU 각국 주한 대사관이 직접 현지 아티스트 관련 기관에 자문을 구해 선정했다. 

홍 본부장을 비롯한 유관 기관 담당자들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이번 전시가 영속성을 가지고 이어질 수 있도록 할 것인가다. 다행히 이번 행사를 성사시키기 위해 물심양면 도움을 주었던 주한 EU대표부의 미하엘 라이터러 대사가 임기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한국과 유럽의 아티스트들이 꾸준히 교류를 이어갈 수 있도록 애쓰겠다는 희망적인 약속을 해주었다. 전시 소식을 전해 들은 청강문화산업대학교 패션스쿨 학생들 또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작가들의 작품을 활용한 ‘굿즈(Goods)’를 제작해 판매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작가들에게는, 자신의 작품이 실생활에 활용될 수 있고 또 다른 수익을 창출해낼 수도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는 일이어서 매우 고무적이다. 

여느 전시와 마찬가지로 작가들의 작품 판매도 준비하고 있다. 작품에 따라서는 개인전을 준비하기 위해 판매를 고사한 작가들도 있는데, 홍 본부장은 이 또한 매우 긍정적인 상황이라 설명했다. 

“자신의 작품 활동이 경제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건 작가의 자존감을 높이는 매우 중요한 사항입니다. 표현은 서툴지만 이분들도 압니다. ‘아, 이 사람이 나를 작가로 대우해주고 있구나’ ‘내가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받고 있구나’라는 걸요. 공간에 예술 작품을 건다는 건, 작가의 자존심도 같이 거는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때마침 8년째 계류 중이던 장애예술인지원법 시행령도 국회를 통과했다. 국내에서도 장애인들의 창작 환경 개선과, 장애인 예술 활동이 고용과 수익 창출로 이어지는 분위기가 조금씩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유엔인권위원회에서 가장 큰 어젠다로 삼고 있는 것이 장애인 인권 문제인데, 한국은 이를 실천하는 가장 적극적인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장애인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할 수 있도록 정책을 개편하고 기업들과도 다양한 방식으로 교류하고 있으니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장점은 ‘이것이 문제다’라는 문제의식이 생겼을 때 해결을 하지 않으면 잠을 못 자는 성격 아닐까요. 장애인에 대한 인식 문제도 지금같이 선진국화되는 과정 속에서 훨씬 좋은 변화의 불씨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가 특별함에 묻어가는 이벤트이기보다 발달장애 작가들이 한 사람 사회인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과 믿음. 얄미운 훼방꾼 코로나19를 뒤로하고 9월이 기대되는 이유다.

영화관 먹거리 910×655mm_Acrylic on canvas, 2020, 강선아

영화관 먹거리 910×655mm_Acrylic on canvas, 2020, 강선아

Suddenly Deserted 독일, Ono Ludwig

Suddenly Deserted 독일, Ono Ludwig

동물원(Animal Zoo) 910×450mm_Acrylic on canvas, 2018, 이동민

동물원(Animal Zoo) 910×450mm_Acrylic on canvas, 2018, 이동민

발달장애(Developmental Disability)란

특정 질환이나 장애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연령에 이뤄져야 할 발달이 성취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선천적 또는 발육 과정에서 생긴 대뇌 손상 등으로 지능이나 운동의 장애, 언어장애, 시각이나 청각 등 특수 감각 장애, 학습장애 등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지적장애, 자폐 스펙트럼 장애(자폐증), 레트증후군, 전반적 발달장애 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8년 현재 국내 지적장애인은 20만 명,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은 2만6천 명에 이른다.

사진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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