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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주년 맞은 ‘써니 언니’의 놀라운 귀환

글·구희언 기자 | 사진·김형우 기자, 후크엔터테인먼트 뉴시스 제공

입력 2014.05.19 15:34:00

가수 이선희가 데뷔 30주년을 맞아 살면서 느껴온 것을 담은 15번째 앨범을 냈다. 진솔한 가족사도 허심탄회하게 공개했다.
데뷔 30주년 맞은 ‘써니 언니’의 놀라운 귀환
‘태양처럼 빛을 내는 그대여’. 3월 25일 서울 송파구 우리금융아트홀에서 열린 그의 데뷔 30주년 쇼케이스에서 가수 이선희(50)를 보며 러브홀릭스의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15집 ‘세렌디피티’로 돌아온 그는 임정희, 거미, 타카피, 이승기, 윤도현 등 후배 가수들의 응원을 받으며 신곡을 열창해 박수를 받았다. 올해로 그를 매니지먼트한 지 17년째인 소속사 권진영 대표는 “1백여 곡을 쓰고 지우며 앨범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이래서 이 가수의 매니저를 하고 있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1984년 제5회 강변가요제 대상 수상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이선희. 데뷔곡 ‘J에게’는 청아한 목소리와 폭발적인 가창력이 조화를 이루며 그를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해 방송과 시상식을 휩쓴 것은 물론이고 KBS 방송가요대상 신인상을 받았으며, MBC에서는 10대가수가요제 최고 인기 가요상·신인상·10대 가수상으로 최초 3관왕에 오르는 진기록도 세웠다. 그때도 지금도 그는 커트 머리에 둥근 테 안경과 바지 정장 차림이었다.

컴퓨터 배워가며 공들여 만든 앨범

15집 타이틀곡은 ‘그 중에 그대를 만나’. 그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아름다운 선율이 어우러진 팝 발라드다. “패션쇼나 행사장 가서도 쑥스러워서 포토월 앞에 서본 적이 없다”던 그지만 이날만큼은 다소곳한 자세로 카메라 앞에 서서 플래시 세례를 즐겼다.

“이렇게 기자간담회를 열고 앨범을 소개하는 게 우리 시대에는 정착되지 않았던 문화라 처음 누려보는 거예요. 그래서인지 잠도 많이 설쳤지만, 어느 때보다 기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무대에 서야지 생각하며 여기 올라와 있어요. 앨범을 준비하는 2년 동안 데뷔 30주년이 되면 어떤 노래를 어떻게 할까, 가수로서 어떤 자리매김을 해야 할까 고민하며 외롭게 준비했거든요. 앨범이 세상에 나오니 혼자만의 음악이 아닌 많은 사람들의 음악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즐거워요. 떨리지만 굉장히 차분해지네요.”



노래 가사에는 그가 살면서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담았다.

“늘 곁에 있던 것들을 잘 모른 채 항상 다른 곳을 바라보며 부러워하고, 남을 따라가려는 마음으로 지낸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곁에 있던 걸 알고, 그걸로 인해 삶이 다르게 보이는 거예요. 혼자만의 깨달음? 이번 앨범에는 가족에 대한 내용도 있고,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받은 감동에 대한 내용도 있어요. 데뷔 후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줄 때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했는데, 정상에서 내려와 지난 시간을 바라보니 그 말이 더 많은 걸 담고 있었는데 미처 몰랐구나 싶더라고요. 제 팬들에게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발전해나가고, 지금도 어디론가 향해 가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저를 좋아해준 분들에 대한 기억, 제가 누린 인기, 바로 그런 것들이 따뜻한 힘이 돼서 제가 이렇게 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데뷔 30주년 맞은 ‘써니 언니’의 놀라운 귀환
이번 앨범의 수록곡 11곡 중 이선희 작곡이 9곡, 작사가 7곡이다. 그만큼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역량이 집약된 앨범이다. 후배인 이승기의 말에 따르면 컴퓨터도 할 줄 모르는 이선희가 직접 컴퓨터를 배워가며 작업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고. 이선희는 “14집까지는 편곡이나 앨범 외적인 부분에는 참여하지 않았는데, 15집은 거기까지 다 참여했다”고 말했다. 앨범 작업을 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아무래도 모니터링해줄 사람들이 회사 사람밖에 없는데 노래 만들어서 들어보라고 하면 별 반응이 없어요. 그러면 ‘별로 안 좋나?’ 싶어서 지우고, 또 다른 노래 만들고 그런 식으로 1백여 곡 가까이 완성했어요. ‘반응할 때까지 만들어보자’는 심정이었죠. 녹음에 참여한 친구들이 다 젊었거든요.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자는 저랑 달리 그 친구들은 오후 5시쯤 일어나서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 5~6시면 자러 들어가더라고요. 절충해서 오후 4시부터 노래했는데, 다들 벌게진 눈으로 늦게 나와서 ‘선배님 죄송합니다’ 하고(웃음). 제가 그 올빼미들 데리고 작업하느라 고생 좀 했죠.”

그는 “평소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모니터링을 자주 하는 편인데, 세대에 따라 제 이미지가 다르더라”며 “데뷔 당시를 기억하는 분들에게는 보컬리스트, ‘왕의 남자’에 삽입된 ‘인연’으로 저를 안 어린 친구들에게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인식이 더 강한 것 같다”고 했다.

“굳이 싱어송라이터로 기억돼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저는 보컬리스트예요. 노래하는 게 좋고, 마이크 잡는 게 좋고, 말 보다는 노래로 감정 표현을 더 잘할 수 있고 그걸 사랑해요. 직접 곡을 쓰는 이유도 제 목소리를 더 잘 표현할 수 있어서예요. 평상시의 저는 제가 제일 잘 알거든요. 낮게 이야기하거나 속삭이는 목소리 등 전문 작곡가가 표현하지 못한 자신을 표현해야겠다 싶어 곡 작업을 시작했어요. 록, 국악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을 하면서 느낀 점을 표현하다 보니 욕구가 생겨서 다른 장르는 어떨까 자꾸 실험하게 되더라고요. 물론 실험이 성공한 적도, 실패한 적도 있었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인지” 묻자 그는 “앞으로 어떻게 나갈 것인가…”라며 질문을 나지막이 읊조렸다.

“좋아하는 장르는 발라드예요. 보컬이 세게 부르고 샤우팅해서 주는 힘이 아니라, 우리말과 음색이 주는 힘이 있는데 그런 힘을 담는 음악이라면 장르 상관없이 노래할 거예요. 나이도 들고 어릴 때 듣던 음악이 다 그래서인지 가사가 주는 힘이 무한히 큰 노래를 좋아해요. 그냥 흘러가는 곡도 좋지만 곱씹고 생각할 수 있는 가사가 훨씬 좋더라고요. 앞으로도 계속 그런 음악을 만들고 그런 가사를 쓸 생각이에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제가 어떻게 달라질지 몰라서 말 못하겠지만, 머물러 있지 않을 거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데뷔 30주년 맞은 ‘써니 언니’의 놀라운 귀환

가요계 선배 이선희의 새 앨범 쇼케이스 지원에 나선 후배들. 왼쪽부터 타카피, 임정희, 거미, 이승기, 윤도현.

그는 대표적인 연예계 ‘동안 스타’로 꼽힌다. 그는 “우스개 삼아 시술했다고 하면 그런 게 기사에 크게 나간다”며 “그러진 않고 마사지를 받고 피부과도 다닌다”고 말했다.

“저도 많이 변했어요. 하지만 변화가 크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건 제게서 느껴지는 뚜렷한 이미지 때문일 거예요. 아마 머리 올리고 드레스 입으면 시간의 흔적을 찾으실 텐데 지금도 바지에 재킷 입고 있으니(웃음). 전에는 민얼굴로 뵈었는데 이제는 화장을 조금 했다는 것 정도죠.”

‘언니의 귀환’은 안방극장 시청률 상승에도 일조했다. 2회에 걸쳐 방송된, 그가 출연한 SBS ‘힐링캠프’는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과거 마이클 잭슨의 부모에게 러브콜을 받은 사연을 들려줬다. 27세 때 여자 가수 5명을 모아 아시아판 ‘잭슨 파이브’를 만들고자 했던 마이클 잭슨의 부모로부터 뉴욕에서 활동하자는 제의를 받았던 것. 그는 “오디션까지 합격했었다”고 밝혔다. 이 시기 그는 일본 그룹 ‘안전지대’가 쓴 곡으로 일본에 진출할 생각도 있던 상태였다.

머무르지 않았지만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가수

데뷔 30주년 맞은 ‘써니 언니’의 놀라운 귀환
하지만 그의 해외 진출은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대신 그는 정치권에 나왔다. 이선희는 그해 최연소 서울시 시의원이 돼 화제를 모았다. 그는 “한국에 잠깐 들른 사이 매니지먼트에서 나와 상의 없이 시의원 출마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여러 사람이 어려워지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해외 진출의 꿈을 접고 정치에 도전했다”고 해외진출이 무산된 이유를 밝혔다.

‘힐링캠프’에서는 진솔한 그의 가족사도 들을 수 있었다. 이선희는 대처승(결혼해 아내와 가정을 둔 남자 승려)인 아버지 덕에 어린 시절 숲 속에서 자랐던 이야기도 들려줬다. 그는 “할아버지는 풍류를 아시는 분이어서 동네에서 창을 하셨지만, 아버지는 굉장히 정확하신 분이었다. 학교는 도심에 있는 곳으로 다녔지만 가족은 숲 속의 절에서 생활했다”며 “염불을 많이 외시던 아버지 덕분에 목이 트이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2006년 공백기를 갖고 딸과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오른 ‘열성 엄마’이기도 한 이선희는 현재 미국 명문대인 코넬대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있는 딸 윤양원 양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양원이가 어릴 때는 천재인 줄 알았어요. 품에 안고 동화책을 읽어줬는데, 두세 번 읽고 나서 그 장을 펼치면 그대로 말하더라고요. 모든 엄마들이 착각하듯 속으로 ‘난 괜찮은 아이를 낳았어’라고 생각했어요. 책을 읽어주고 그 책을 꼬아서 스토리를 다르게 해석하면 얘는 다시 꼬아서 다른 얘기를 해줬어요. 상상을 계속하게 만드는 우리만의 게임 방식이었죠. 그런데 책을 사서 읽어보라고 했더니 ‘엄마가 읽어줘야 알지’ 하더라고요. 스토리를 외우고 상상한 거지 글 자체는 몰랐던 거예요(웃음).”

앞서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음악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려 인기 가요 프로그램을 자주 모니터링하고, 홍대 인디 밴드 공연을 많이 찾아다닌다”고 밝히기도 했다. 오랜 시간 사랑받을 수 있는 그만의 힘은 뭘까.

“돌이켜보면 매해 늘 좋기만 한 건 아니었어요. 어떨 때는 혼자만의 시간으로 지나가기도 했고, 지금보다도 더 많은 관심을 받으며 한 해를 맞기도 했죠. 그럼에도 지금 이렇게 기쁜 오늘을 누릴 수 있는 건 제가 ‘잘 있었기 때문’일 것 같아요. ‘잘 있었다’는 건 머무르지 않았다는 거거든요. 어떤 방법으로 성공했지만 그걸 버릴 줄 알고, 물론 새로운 시도를 하다 발을 잘못 디딜 때도 있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뭔가 하려 했기에 많은 분들이 ‘이선희는 늘 그 자리에 있었어’라고 기억해주시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움직일 거고, 수많은 질문을 제게 할 것이고, 도전할 것이고, 그때마다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이제껏 그래온 것처럼 실패한다 해서 겁먹거나 위축되지 않을 거예요.”

이선희가 직접 쓰고 들려주는 15집 수록곡 가사 뒷이야기


데뷔 30주년 맞은 ‘써니 언니’의 놀라운 귀환
Someday [ 작사 이선희 ] 이제는 외로운 줄도 모르고, 어떤 게 진실인지 거짓인지 굳이 가리지 않아도 그냥 넘어가는 삶에 대한 생각을 무겁지 않게 담았어요. 굳이 ‘다른 사람들이 그래요’가 아니라 저도 그렇고 현재가 그런 것 같아요. 지금을 사는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죠.

이제야 [ 작사 이선희 ] 어느 날 저뿐 아니라 주변 모두가 굉장히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자기 걸 다 표현하고 사는 것 같지만 정작 위로받지 못하고 산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분들과 그런 나를 위로하고 싶었어요. 따뜻함을 전하고 싶었고요. 그래서 목소리와 피아노, 오케스트라 셋만으로 삶에 대한 기승전결을 담았어요. 가사에 직접적으로 따뜻함이나 위로라는 말이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그런 느낌을 주고자 했어요.

나에게 주는 편지 [ 작사 이선희 ] 전 나이 들면 되게 현명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40~50대가 되면 크게 얻는 게 있겠지, 웬만한 일에도 마음이 요동치거나 잠을 못자는 그런 일은 없겠지 생각했거든요. 막상 그 나이가 되어보니 똑같더라고요. 똑같이 아플 건 아프고, 답을 못 찾아서 헤매고 말이죠. 그런 자신에 대한 이야기예요.

이뻐 이뻐 [ 작사 이선희 ] 조카 백일잔치에 갔는데 남동생이 조카를 어찌나 물고 빨고 예뻐하는지(웃음). 얼마 전의 제 모습이겠구나 싶었어요. 제가 첫아이를 만났을 때의 모습, 그리고 여러분의 모습일 거라 생각해요. 자기 아이가 최고로 예쁘다고 생각하고 아이로부터 받는 행복감이 있잖아요. 그런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나는 간다 [ 작사 이선희 ] 가볍지만 가볍지 않게 삶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어요. 인생은 사막 같은 곳이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 인생도 사막도 가운데를 뚫고 지나가야 거기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들 가로지르지 않고 경계만 돌다가 삶을 끝내려 하지 않나 싶어요. 그러면 사막을 벗어나지 못하잖아요. 그런 나름의 인생철학을 담았어요.


여성동아 2014년 5월 6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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