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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작가 정유정의 히말라야 무용담

“안나푸르나에서 운 좋게 어른의 문턱을 넘었다”

글·김명희 기자 | 사진·이기욱 기자, 은행나무 제공

2014. 05. 15

독자들을 깊은 바다로, 알래스카로 끌고 다니며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었던 것과 어울리지 않게, 태어나서 한 번도 한국을 벗어나본 적이 없는 골방 체질 정유정 작가가 히말라야 종주 여행을 다녀왔다. 타고난 이야기꾼이 펼쳐내는 무모한 여행의 무용담, 귀가 솔깃하지 않은가.

작가 정유정의 히말라야 무용담
신간 더미 속에서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은행나무)을 꺼내드는데 누군가가 물었다. “그 책 재미있어?” “설마 ‘7년의 밤’이나 ‘28’만큼 재미있겠어?” 끝까지 읽은 지금, 대답을 정정해야겠다. 환상적으로 재미있다고. 그의 소설이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까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면, 에세이는 눈물 날 만큼 웃기고 생생해서 책장 넘어가는 것이 아쉬울 정도다. 정유정(48) 작가와 수다도 떨고, 음식과 변비로 고생도 하고,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히말라야를 넘고 온 기분이다. 순전히 일방적이지만, 뜨거운 동지애를 안고 정유정 작가와 마주 앉았다.

난생처음 밟은 외국 땅, 히말라야.

지난해 9월, 17일간 히말라야를 방문한 데 이어 올해 2월에는 40일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까지 다녀왔다는 작가는 파김치가 됐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너무나도 쌩쌩했다. 평소 복싱으로 체력을 단련한 덕분이리라. 지방 한 줌 없는 그의 몸은 폭주 기관차처럼 내달리는 그의 문체를 닮은 것도 같았다. 정유정의 소설에는 남도의 섬, 저수지 아래로 잠든 마을, 히말라야, 알래스카 등 ‘미지의 어떤 곳’이 등장한다. 그런 곳을 그리는 작가라면 오지까지 샅샅이 훑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히말라야행을 결심하기 전까지는 공항에 가본 적도 없다고 한다. 그런 그가 무모하게도 ‘신들의 거처’ ‘산에 목숨 건 사람들이 가는 곳’을 가겠다고 나섰다. 그가 택한 코스는 안나푸르나 영봉을 끼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17일간 걷는, 이른바 히말라야 환상 종주다. 중간 지점에 ‘매년 두 사람의 목숨을 통과세로 요구한다’는 해발 5416m의 소롱라패스라는 관문도 있다.

작가 정유정의 히말라야 무용담
▼ 그간 펴낸 작품을 보고 여행광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번에 비행기를 처음 탔다고요.

여권도 없었어요. 심지어 아들이 3년째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방향치라 길을 나서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이기도 했고, 글을 쓰는 것 외에는 안중에 없었기 때문에 그 외 모든 것들을 뒤로 미루다 보니 여행 같은 건 생각할 겨를이 없었죠.



▼ 그런데 첫 여행지가 히말라야라니, 용감하시네요.

누가 저더러 아드레날린 중독자라고 그러더라고요. 마라톤을 하다 보면 러너스 하이(Runner‘s High·강도 높은 운동 후 찾아오는 쾌감)가 오잖아요. 위기나 힘든 일이 닥치면 그걸 이기기 위해 몸이 비상 체제에 돌입하고, 그걸 이기고 나면 환희를 느끼고. 저는 그런 게 좋아요.

▼ 그렇게 자신을 극한적인 상황으로 밀어 넣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나요.

내리 8년간 골방에 갇혀서 4편의 장편소설을 뽑아내니 제 힘의 원천인 ‘쓰고 싶다’는 욕망이 사라진 것을 느꼈어요. 일생 글에 허기진 사람이라 그런 적 없었는데, 더 이상 한 글자도 못 쓰겠더군요. 사실 소설은 독자분들이 더 잘 알거든요. “정유정 힘 떨어졌네”라는 말을 들을까 봐 죽을 만큼 두려웠어요. 다시 링 위에 저를 세워야 했죠. 안나푸르나는 ‘내 심장을 쏴라’의 주인공 승민이 마지막까지 그리워하던 곳이자, 제 개인적으로 상상 속에서 존재하는 곳으로 느껴지던 공간이었어요. 그곳에서라면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전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 2007년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로 등단한 이래 ‘내 심장을 쏴라’‘7년의 밤’‘28’을 잇달아 내놓으며 승승장구했잖아요. 자판기처럼 누르면 글이 나오는 분인 줄 알았어요.

기진맥진하며 글을 쓰는 스타일인데, 엔진이 고장 난 거예요. 자동차라도 고장 날 때가 됐죠. 슬럼프와는 또 다른 거였어요. 충전이 필요했죠.

죽음과의 대면은 두고두고 남을 밑천

네팔행 비행기에 오르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호랑이나 산적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혼자 산속에 남겨지면 후회해도 늦다는 등 히말라야에 가서는 안 되는 이유를 날마다 하나씩 찾아내던 남편은 끝내 그가 여행을 떠나던 날 비상시에 쓰라며 독일제 잭나이프를 쥐여주었다. “발리나 몰디브면 몰라도 히말라야가 웬말이냐”며 숱한 사람들에게 거절당한 끝에 요가 강사로 활동한 적이 있는 씩씩한 후배 김혜나 작가를 파트너로 삼을 수 있었던 건 행운. 그 밖에 스티븐 킹의 ‘최선을 기대하며 최악을 대비하라’는 지침에 충실하게 무등산·월출산 등을 숱하게 오르내리며 체력 훈련을 하고, 고산병에 대비한 약과 여행자 보험 그리고 믿을 만한 현지 가이드와 셰르파까지 치밀하게 준비했다. 전사를 찾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안고 떠났건만, 여행 초반 그를 괴롭힌 것은 철학적인 고뇌보다 생물학적인 문제들이었다. 이를테면 먹는 것과 빼내는 것 같은.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마살라’라는 향료는 유독 그의 입맛만은 비켜갔다. 자신이 밥과 김치만 있으면 되는 무던한 식성인 줄 알았으나, 실은 밥과 김치가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하는 까다로운 식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48년 만에 깨달았다. 또 어찌나 변비에 시달렸던지, 작가는 ‘똥을 뿌리며 앞서가는 당나귀가 부러울 지경이었다’고 책에서 고백한다.

작가 정유정의 히말라야 무용담

정유정 작가는 히말라야의 풍경은 아름답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고 말한다. 오른쪽 사진은 김혜나 작가, 셰르파, 가이드 검부 등과 함께 소롱라패스 정상에서.

▼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건 뭔가요.

변비도 그렇고 못 먹는 것도 괴로웠지만 고산병이 가장 문제였어요. 해발 3000m 이상 올라가면 등에 20~30kg 정도 짐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고산병이 더 무서운 건 누구에게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모른다는 거죠. 체력이나 폐활량, 심장병 이런 것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데 유전과 관련된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소롱라패스에 도착하기 직전 고산병으로 죽을 뻔했어요. 차가운 손이 심장을 움켜쥐고 한숨에 비틀어버리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헉” 소리가 나고 허리가 접히고, 머릿속이 아득해지더군요. 30분 정도 공포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나서 살만해지니 ‘아! 이건 축복이다’ 싶었어요. 관찰자 시점으로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볼 수는 있지만 죽음과 직접 대면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잖아요. 작가에겐 두고두고 밑천이 될 수 있는 경험이고요.

▼ 실제로 같은 시기에 등반을 하던 사람 중 사망자도 있었다고요.

소롱라패스를 넘어 푼힐로 가던 길이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았어요. 푼힐 전망대는 다울라기리, 히운출리 같은 안나푸르나 주봉들을 한눈에 파노라마처럼 볼 수 있는 곳이라 기대가 컸는데, 우리의 노련한 가이드 검부가 비가 오면 길이 미끄러워 위험할 수 있다며 일정을 취소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가이드 없이 포터들과만 푼힐에 갔던 중국인 트래커 한 명이 절벽에서 발을 잘못 디뎌 추락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우리가 푼힐에 갔더라면 그 광경을 목격했거나, 그와 비슷한 변을 당했을지도 모르죠.

▼ 가이드 검부는 거의 신적인 존재로 묘사돼 있더군요.

30대 중반인데 한국 사람처럼 생겼고, 첫인상부터 얼마나 시크하던지. 원래 에베레스트 고산족인 라이족 출신의 셰르파였대요. 10대 때 부모를 잃고 그때부터 20년 가까이 셰르파를 하며 가족을 부양했고 지금은 가이드로 활동하고 있죠. 워낙 베테랑이라 검부가 ‘무슨 일이 일어날 거다’ 하면 신기할 정도로 정확하게 들어맞았어요. 그러니 우리에겐 하나님 같은 존재였죠. 마치 유격 훈련시키듯, 쉬운 길을 두고 일부러 어려운 길로 돌아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올 때도 있었지만 군소리 안 하고 꾹 참았더니 마지막엔 ‘내게도 이번 여행이 휴가 같았다”고 말하더라고요. 숱하게 많은 여행객을 만났지만 우리처럼 강인하고 불평 없는 사람들은 처음이었대요(웃음). 특히 저더러는 소롱라패스를 50분 만에 내려가는 여자는 처음 봤다며 비공인 세계 신기록일 거라고, 실제로 그런 종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에베레스트 산악 마라톤에 나가도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를 게릴라 조련시키듯 끌고 다녔던 것도 안나푸르나의 최고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더라고요.

▼ 베테랑 가이드 검부를 따라다니며 본 히말라야의 풍경은 어땠나요.

언빌리버블. 아름답다는 말로 부족할 정도로 충격적이었어요. 5000m 위로는 흙과 돌뿐, 살아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인간이 그 이상을 올라가니 독하긴 독한 동물이에요. 회갈색 산과 골짜기가 첩첩이 펼쳐지는데, 광활하고 쓸쓸하고 황량하고. 작가가 뭐라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하면 안 되는 건데, 말을 잊게 만들더군요. 평생 기억에 남을 거예요.

▼ 처음부터 에세이를 쓸 생각이었나요.

아니에요. 작가들이 펴낸 에세이를 보면 철학적인 내용도 담겨 있고 그렇잖아요. 저는 그런 사유를 하는 사람들이 어떤 분들일지 궁금할 정도로, 철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요. 단지 직업병의 일종으로 메모하는 습관이 있어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놨는데, 돌아와서 보니 그때의 기억들이 그대로 다시 복원되더군요.

▼ 특히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많더라고요.

큰딸이었고, 병원에서 오래 함께 있었기 때문에(그의 엄마는 그가 간호사로 근무하던 병원에서 투병했다) 엄마가 저의 많은 부분을 지배하고 있었죠. 사실 이번에 마음에서 엄마를 떠나보내고 싶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아무리 애를 써도, 히말라야를 다녀와도 산티아고 길을 다녀와도 치유되지 않는 상처로 남을 것 같아요. 다만 그걸(엄마의 죽음)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 정도는 될 수 있겠죠. 마지막에 카트만두로 돌아와 파슈파티나트 사원에 갔다가 우연히 화장하는 모습을 목격했어요. 한쪽에서 시신이 불에 타고 있는데 어떤 이는 그 물에 몸을 씻고, 어떤 이는 머리를 감더군요. 그 모습이 한없이 쓸쓸하게 느껴져 눈물이 났어요. 우리도 결국 죽으면 그렇겠죠.

작가 정유정의 히말라야 무용담

‘신들의 거처’ 히말라야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자성이 있어 한 번 갔던 사람은 다시 또 찾게 된다고.

태생적으로 링을 좋아하는 싸움꾼

정유정은 그의 신, 스티븐 킹의 “어린아이가 삶을 배워가는 존재라면 어른은 죽음을 배워가는 존재”라는 말을 인용하며, 안나푸르나에서 운 좋게 비로소 어른의 문턱을 넘었노라고 말한다. 주인공 시점에서 죽음과 직접 대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신을 하나 얻었다. 누군가는 그에 대해 “기존의 한국 소설이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먼지 한 톨 한 톨의 사연을 연민 어린 눈으로 헤아리다 먼지 더미 꽃다발을 만들어 끝을 맺는 스타일이라면, 정유정은 그 먼지 구덩이 속에서 핏자국을 발견한다”고 했다. 여행을 떠나올 즈음, 전의를 상실했던 그는 다시금 자신이 태생적으로 링을 좋아하는 싸움꾼이요, 시끄러운 뻐꾸기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니 죽도록 달려들겠다는 다짐에 완전히 방전됐던 배터리가 빵빵하게 충전된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부러워할, 트레킹 중 열혈 독자를 만나 연예인급 인기를 확인한 것은 덤이다.

▼ 여행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터닝 포인트로 삼는 사람도 많은데, 인간 정유정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나요.

인간적으로는 불만이 많아요. 아내로서, 엄마로서도 잘했다고 말 못하겠고. 세상 물정 모르고, 덜렁대는 성격인 데다가 주변을 꼼꼼하게 챙기기엔 저 스스로가 너무 바쁘고 숨이 찼어요. 직장을 그만두기 전까진 제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고,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는 다른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죠.

▼ 아이에게는 어떤 엄마인가요.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네가 원하는 대로 살게 하겠다’고 다짐했죠. 자유방임으로 풀어놓으니 오히려 저 스스로 알아서 잘 살아요.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어느 날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더라고요. “네 뜻대로 살게 하겠다고 약속은 했다만 중졸은 심하지 않냐”고 했더니, 컴퓨터 보안 관련 공부를 하러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러고는 검정고시 준비해서 2달 만에 합격하고, 어학연수를 하고 대학 입시까지 모든 과정을 저 혼자 알아서 해냈어요.

▼ 아이가 시행착오를 겪을지도 모르는데, 그 부분이 걱정되지 않았나요.

도자기 굽는 일을 예로 들면, 처음부터 멋진 도자기를 만들어낼 순 없잖아요. 흙도 주물러보고 장작도 패는 시기를 거쳐야죠. 저만 해도 서투른 솜씨로 엉망진창인 도자기를 만들어 무려 11번이나 공모전에서 미끄럼을 탔잖아요. 자기가 정말 원하는 일이라면 그런 과정은 당연히 거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글쓰기는, 누군가 평생에 한 번 어쩌다 천재적인 작품을 쓸 수는 있겠지만 꾸준히 좋은 작품을 내놓으려면 글을 능수능란하게 주무를 수 있는 솜씨가 있어야 해요.

▼ 작가로서는 어느 정도 만족하나요.

아직도 갈 길이 멀고 그래서 글을 쓸 때마다 매번 자신에게 미션을 부여해요. ‘내 심장을 쏴라’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한 심사위원께서 ‘다 좋은데 여성 캐릭터의 겹이 얇다’는 평을 하셨어요. 그래서 ‘7년의 밤’을 쓸 때는 강은주 캐릭터를 구현하는 것을 지상 과제로 삼았고요. ‘7년의 밤’이 액자소설인 데 반해 ‘28’은 6개의 이야기가 직조되듯 얽히는 다중 플롯 작품이죠. 지금까지는 조금씩 스케일을 키워왔다면 다음 소설은 깊이로 들어가보면 어떨까 생각 중이에요. 사이코패스를 주인공으로 1인칭 시점으로 진저리가 나도록 깊이 들어가보는 거요.

▼ 작가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하고 싶고, 기왕이면 재미나게 들려주고 싶어요. 내가 만든 세계에 독자들을 데려다 놓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꼼짝 못하게 하는 것. 그걸 하지 못하면 사는 재미가 없어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어요. 대충 해도 되는데, 아등바등 하는 제가 부끄럽고 싫었던 적도 있죠. ‘이건 내 본성이 아니라 각박하게 살아서 그런 거야’라고 부인했었는데, 히말라야에서 원래 제 본성이 그렇다는 걸 확인했어요. 그러니 이제 죽도록 싸워야죠.

네팔 사람들의 인사말 ‘나마스테’는 ‘당신 안의 신에게 경배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 신을 간직하고 있는데 정유정 안에 있는 신은 싸움꾼의 유전자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한번 히말라야에 오른 사람은 그 자성에 이끌려 꼭 다시 그곳을 찾게 된다고 한다. 정유정도 미치도록 쓰다가 자신 안의 모든 것을 쏟아내면 다시 히말라야를 찾게 될 것이다. 나마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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