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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영어 꿈꾸는 초보 맘 실전 가이드 - 마지막회

‘귀국 학생’이 한국 영어 교육에서 살아남는 법

“영어는 원래 그런 거야!”

글&사진·오미경|사진·REX 제공

2014. 03. 04

외국에서 생활하다 귀국한 아이들이 당연히 영어 점수가 높을 것 같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조차 학원에서 집중 교육을 받은 아이들에게 밀리기 일쑤. 귀국 학생들이 교육 현장에서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는 법.

‘귀국 학생’이 한국 영어 교육에서 살아남는 법
11년 동안 몸담았던 학교 현장을 떠나 온 가족이 영국으로 이주한 것은 2005년 여름이었다. 당시 영어 알파벳 ABC도 몰랐던 세 살과 한 살짜리 아이들은 영국과 미국에서 7년 동안 학교를 다니며 영어에 훨씬 익숙해졌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한국어를 불편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2012년 여름,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초등학교 4학년, 2학년이 된 두 녀석의 학교 생활은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다. 2학기 개학에 맞춰 편입된 탓에 친구 사귀기부터 쉽지 않았다. 한국 학교에 대한 아이들의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한국말이 잘 생각나지 않으면 영어를 써도 된다’고 다독였지만 녀석들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정현이와 준용이의 학교 생활은 처음부터 ‘좌충우돌’에 ‘실수 만발’이었다. 외국 학교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열중쉬어!’나 ‘주목!’같은 말을 듣고 눈만 껌벅껌벅하기 일쑤였다. 학업 성취도에 따라 그룹을 지어 수업을 듣는 영국 학교와 달리 모든 아이들이 선생님만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준용이는 ‘좌향~좌!’라는 구령을 ‘자리에~ 앉아!’라는 말로 알아듣고 다른 아이들이 모두 왼쪽으로 돌 때 혼자 그 자리에 주저앉기도 했다. 정현이는 초등학교 5학년 사회 시험에서 ‘녹두장군의 이름을 쓰라’는 문제를 받아 들고 ‘정몽주’ ‘정봉주’나 ‘정몽준’ 같은,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을 잔뜩 써놓았을 뿐 결국 정답을 맞히지는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휘력은 조금씩 늘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듣기·말하기·쓰기’와 ‘읽기’로 구성된 국어 교과서 속의 이야기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경지식이 없다 보니 수업 내용을 따라잡기 쉽지 않았다. 이전소득이니 가계부니 하는 용어들이 튀어나오는 사회 과목은 아예 처음부터 난공불락이었다.



그나마 수학이나 과학은 좀 나은 편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있었다. 수학에서 단순 연산이 아닌 서술형 문제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애를 먹었고, 과학에서도 ‘photosynthesis’라는 긴 단어는 아이들에게 너무 쉬운 것이었지만 이의 한국어 표현인 ‘광합성’이란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엄마 아빠가 도와주지 않으면 숙제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두 녀석을 한국 학교 생활에 적응시키느라고 끙끙대던 내 속앓이를 알 바 없는 주변 사람들은 은근히 부러운 시선으로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영어 걱정할 일은 없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적어도 당분간’이라는 사실만 전제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고민은 다른 데 있었다. 한국식 영어 교육 시스템에서 볼 때 우리 아이들의 영어 실력은 그리 출중한 것 같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영어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현이의 4학년 첫 영어 시험 성적은 80점대에 머물렀다.

영미권 학교 7년 다녀도 영어 점수는 80점대

특히 입시를 목표로 하는 한국식 영어 교육에서 예나 지금이나 절대시하는 문법에 관한 한 우리 아이들의 수준은 바닥이나 다름없었다. 실생활의 용례를 통해 언어적 법칙을 깨달아가는 영미식 영어 교육과, 주격·소유격 또는 목적어·보어 등의 문법 용어를 동원해 구조 중심으로 영어를 가르친 후 이를 예문에 적용하는 한국식 영어 교육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한국 시스템에 맞춰 문법 위주로 공부를 시키다가는 영어 학습에 흥미를 잃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자신이 지닌 영어 능력을 뽐낼 기회를 가지면 학교 생활에 좀 더 재미를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정현이를 교내 영어 말하기 대회나 쓰기 대회에 출전시켜보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7년 가까이 영어권 유치원과 학교를 다닌 정현이가 이들 대회에서 우승을 휩쓴 것도 아니었다. 그럭저럭 수상자 범위 안에 들거나 망신당하지 않을 정도의 성적을 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최우수상은 어려서부터 영어유치원을 다니며 ‘훈련영어’에 익숙한 아이들의 몫인 것 같았다.

사실 정현이와 준용이가 귀국 이후 영어 학습 과정에서 보여주는 이런저런 문제점과 에피소드는 비단 우리 아이들에게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조기유학 이후 귀국해 국내 초·중·고등학교에 전입오는 학생 수는 해마다 2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흔히 ‘귀국 학생’으로 불리는 이들은 대부분 영어 학습에 관해 비슷한 문제를 경험할 것이다.

이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한국식 영어 교육에서 요구하는 문법 지식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이다. 가정법이니 수동태니 분사구문이니 하는 문법 지식은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으므로 귀국 학생에게 이러한 용어는 외계인의 언어나 다름이 없다.

더구나 귀국 학생들은 완벽에 가까운 영어 대화 능력과 지식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영어 문제 풀이에 맞닥뜨리면 어처구니없는 점수를 받는 경우도 있다. 영어 해석을 요구하는 문제에서 정작 답을 써낼 만한 한국어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다.

‘귀국 학생’이 한국 영어 교육에서 살아남는 법

1 2012년 귀국 직후 경복궁 경회루 앞에 선 준용이와 정현이. 2 정현이는 방과 후 돌봄학교에서 저학년 학생들에게 영어 동화책을 읽어주는 봉사활동을 한다.

선택형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영어 지문을 100% 이해하고도 글의 내용을 묻는 ①~⑤번 보기 중 모르는 한국어 단어가 한두 개만 나와도 답을 써낼 도리가 없다. 귀국 학생들이 영어 과목에서 다른 아이들에 비해 우수한 성적을 거두리라는 예상은 고정관념일 뿐이다. 심지어 수학 문제집을 풀 때 국어사전을 옆에 가져다놓는 아이도 있다.

해외에서 5~6년간 생활하다 귀국한 엄마들끼리 마주 앉으면 비슷한 경험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가장 흔하게 접하는 아이러니 중 하나는 아이들이 어려운 영어일수록 쉽게 생각하고 쉬운 영어일수록 어렵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초등학교 4~6학년이 돼 한국에 돌아온 아이들은 한국 고등학교 수준의 독해는 큰 어려움 없이 해내지만 문법 어휘와 지식을 묻는 중학교 수준의 영어 문제는 오히려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우면서도 놀라운 점은 한국 학교에서 원하는 영어 문제의 정답이 너무나 도식화돼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How are you?”라는 인사에 대한 적절한 대답은 “I am fine, thank you. And you?”라는 식으로 단순화돼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어권에서는 이처럼 판에 박힌 대답보다 “Pretty good!”이나 “Very well” 또는 “I am doing OK”처럼 자연스러운 표현이 선호되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의 회화 교육이 너무 경직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보자면 물론 영어 문법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생활에서의 활용법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나 역시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당시 강력하게 믿고 있었던 문법 지식이 영국인 또는 미국인들과 대화하면서 여지없이 깨져나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서 대화 상대방에게 문법책을 들이밀고 ‘이건 왜 이렇고 저건 왜 저러느냐’며 따지고 들 만한 일도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문법과 실생활 영어의 차이에 관한 질문을 던질 때 정현이와 준용이의 반응은 판이하게 달랐다. 정현이는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 엄마의 ‘문법 영어’가 가진 이면의 약점을 설명하려 들었지만 준용이는 구조적으로 설명하려 하기보다는 두 가지 용법 모두 중얼거리며 두세 번 반복해 보고는 어느 것이 옳은지 즉각 결론을 내렸다. 이유를 묻기라도 하면 준용이의 반응은 열 번 중 아홉 번이 “That’s how English is!”였다. 영어는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언어 습득에 관한 한 이보다 더 정확한 말은 없다. 한국어와는 어순과 구조가 전혀 상이한 라틴어 계열의 영어를 한국어 사용자가 과학적으로 100%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지 모른다.

해외에서 명성을 날리는 한국인 석학들조차 영어 문장 쓰기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는 어떤 글에서 ‘내가 쓴 논문을 읽은 동료들은 정관사와 부정관사를 구별하지 못한 채 여기저기 적당히 뿌려놓은 것 같다고 웃곤 한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나 역시 정현이와 준용이가 정관사(the)와 부정관사(a)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두 번 놀란 적이 있다. 첫 번째는 아이들이 정관사와 부정관사를 정확하게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였고, 두 번째는 그럼에도 아이들이 어떤 경우에 각각 정관사와 부정관사를 사용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다.

무엇이 옳은 표현이고 잘못된 표현인지 알고 사용하지만 이를 명확하게 구조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영어뿐 아니라 모든 언어의 숙명과도 같은 특징일 것이다. 우리가 쓰는 일상의 한국어를 하나하나 문법적으로 설명해보라는 요구를 외국인으로부터 받는다면 이를 참을성 있게 설명해줄 한국인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러나 이런 식으로 문법을 도외시한 채 실질적 용법만 강조하는 것은 한국적 상황에서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영어를 ‘제2언어(second language)’로 사용하는 프랑스나 독일, 스위스 등 유럽 국가들과 달리 한국에서는 영어를 순수한 ‘외국어(foreign language)’로 학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어 교육 즐거워야 효과 높아

우리가 유럽 국가들처럼 마음만 먹으면 영어를 일상어 수준으로 접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문법과 구조를 차근차근 다지면서 영어를 익혀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법 지식을 따라잡기 위해 해외 경험을 통해 체득한 읽고 쓰기 능력을 희생시켜서도 안 된다. 한마디로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주변에서 이렇게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정현이가 출전했던 영어 쓰기 대회에서 입상한 학생은 정현이처럼 최근 귀국한 학생이 아니라 4년 전 귀국해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던 아이였다. 그의 영어 실력이 녹슬지 않은 비결은 영어 일기였다.

‘귀국 학생’이 한국 영어 교육에서 살아남는 법

정현이와 준용이는 한국에 돌아와 ‘한국식’ 영어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 하지만 영어 교육은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방법으로 할 때 가장 효과가 크기 때문에 아직 사교육에 기댈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많은 귀국 학생들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국내 영어 교육 시스템에 안착하고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다. 숙명여대 글로벌인적자원개발센터가 귀국 학생 2백 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 중 88%가 ‘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국내 영어 교육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 중 상당수는 외국인 학교를 선택한다. 그러나 외국인 학교에 입학하려면 부모 중 한 명이 외국 시민권자이거나 3년 이상 해외 체류 경험이 있어야 한다. 설령 이런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외국인 학교의 평균 등록금과 수업료는 연 1천5백만~2천만원에 이르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요인들을 감안하면 귀국 후 외국인 학교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일부 소수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점점 늘어나는 귀국 학생들을 위한 체계적 영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들이 지닌 잠재적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한국어에 익숙지 못한 귀국 학생 중에는 한국 초등학교 교실에서 ‘툭하면 영어를 한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했다는 사례도 수두룩하다. 게다가 해외체류 기간이 길수록 언어·문화적 차이 때문에 교실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 착안해 서울, 경기, 부산 등 일부 지역에서는 각 시도교육청별로 몇 개 학교를 정해 귀국 학생 특별학급을 운영하기도 한다. 한국어 능력이 떨어지는 귀국 학생들을 위해 1~2년 정도의 별도 적응 기간을 거친 뒤 일반 학급으로 전환시켜주는 제도다. 그러나 특별학급을 운영하는 학교는 교육청별로 3~4개에 불과해 장거리 통학 문제가 발생하는 데다 저학년반이나 고학년반 등으로 학년별 통합 운영을 하기 때문에 교과 과정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결국 우리 부부가 귀국 후 1년 6개월이 되도록 아이들의 영어 실력 유지를 위해 한 일이라고는 ‘틈날 때마다 책 읽도록 해주기’가 전부였다. 남편은 주말마다 아이들을 지역 도서관에 데려가 지루해할 때까지 마음껏 책을 읽게 했고 나는 동네 중고서점을 찾아내 아이들이 원하는 영어책을 모조리 사주었다.

‘귀국 학생’이 한국 영어 교육에서 살아남는 법
정현이는 영어책 읽어주기 봉사클럽에 가입한 것도 도움이 됐다. ‘북 버디(book buddy)’라는 이름의 영어 봉사클럽은 방과 후 돌봄 교실에 맡겨지는 저학년 아동들을 상대로 영어 동화책을 읽어주는, 일종의 재능기부 동아리다. 다행히도 정현이는 영어 봉사활동에 큰 재미를 느끼고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북 버디’는 사회창안센터가 주최하는 ‘창의봉사 경연대회’에서 큰 상을 받기도 했다.

물론 주변에는 정현이나 준용이 같은 귀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 사교육 업체들이 즐비하다. 주변에서는 아이들을 그런 학원에 보내지 않는 것을 의이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영어 교육은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방법을 통해 이뤄질 때 가장 효과적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아직 사교육에 기댈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대신 아이들에게는 학원에 가지 않고도 영어 실력을 유지할 수 있다면 영국 여행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영국 여행은 아이들의 꿈이자 희망이기 때문이다. 매일 함께 뛰어놀던 영국 친구들을 다시 만나 밀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라도 정현이와 준용이는 영어책을 쉽게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귀국 학생’이 한국 영어 교육에서 살아남는 법
오미경

1994년부터 2005년까지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하다 2005년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해 6년, 다시 미국에서 1년을 살다 귀국했다. 서강대와 영국 워릭대학교(University of Warwick)에서 각각 영어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세 살과 한 살이던 두 아들은 열 살과 여덟 살이 돼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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