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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엄마표 영어 꿈꾸는 초보 맘 실전 가이드 ⑩

영어로 말하는 아이보다 소통하는 아이로 키워라

중요한 건 문화야!

글&사진·오미경

2014. 02. 04

영국 생활이 6년째 이르렀을 즈음 남편이 미국의 한 대학에서 1년간 연구원으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우리 부부는 음식이나 날씨 등 영국 생활을 힘들게 했던 여러 환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떴다. 같은 영어권이기 때문에 언어 장벽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웬일인지 아이들은 미국행을 반기지 않았다.

영어로 말하는 아이보다 소통하는 아이로 키워라
우리 가족의 미국행이 결정됐을 때 이웃들도 우중충한 영국과 산뜻한 캘리포니아 날씨를 비교하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정작 아이들은 캘리포니아로 떠난다는 사실을 반가워하기는커녕 실망스런 표정이 가득했다. 특히 준용이는 실망을 넘어 미국행에 저항하려는 태도까지 보였다. 생후 15개월에 영국으로 와 6년간 살았던 준용이는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자신은 영국에서 계속 살겠다는 말을 반복하곤 했다. 그러다 미국 이야기가 나오자 이제 말을 바꿔 미국으로 갈 바에야 차라리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버텼다.

남편과 나는 미국에 대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디즈니랜드와 할리우드, 그리고 메이저리그 야구 같은 것들을 다 동원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일곱 살 준용이는 미국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고 아홉 살 정현이도 자유의 여신상이나 오바마 대통령 정도를 알 뿐이었기 때문이다.

며칠간의 신경전 끝에 결국 아이들에게 1년 후 다시 영국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어설픈 공약’을 내걸고 나서야 이삿짐을 쌀 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국어보다 영어에 훨씬 익숙했던 아이들이 미국행을 주저한 데는 미국 문화와 미국 영어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깔려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정현이와 준용이에게는 영어와 한국어의 거리보다 영국 문화와 미국 문화의 거리가 더 크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어로 말하는 아이보다 소통하는 아이로 키워라

1 영국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전통적인 모자를 쓰고 캐럴을 부르고 있는 모습. 2 파티에서 아이들이 ‘텀블링 타워’라는 게임을 즐기고 있다.

영국 영어 vs 미국 영어

그러나 이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미국식 버터발음으로 무장한 한인 1.5세와 2세들이 북적거리는 LA에 도착하자마자 두 녀석의 영국식 발음은 여기저기서 신선한 화제를 불러왔다. 슈퍼마켓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일요일 아침 성당에서 마주친 주변 사람들은 머리가 까만 동양 어린이들이 영국식 영어로 조잘거리는 것을 보고는 힐끗힐끗 희한하다는 눈길을 던졌다.



아이들의 영국식 발음과 표현이 주변에서 놀림거리나 되지 않을까 걱정하던 나는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제야 과거 대학 시절 영국식 영어가 영어권 전체에서도 ‘정통 영어’ 대접을 받는다던 교수님의 말씀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사실 영국 영어에 대한 영국인들의 자부심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많은 영국인들이 말은 안 하지만 속으로는 ‘미국인들이 영어를 훼손해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노년층은 미국 영어에 대한 은근한 우월의식도 갖고 있다.

한때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영국 이웃 할머니들과 모여 성경과 영어를 함께 공부하는 모임에 참석했다. 전직 교사들이 대부분이던 이 그룹의 할머니들은 내 영어를 듣고 가끔 한마디씩 위로의 말을 던졌다. 이를테면 ‘당신의 영어는 훌륭하지만 가끔 미국 단어나 악센트가 섞여 있는 것이 흠이다’ (Your English is beautiful, but it’s a shame to have American words or accent)’라는 식이었다.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외국인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영국인과 미국인의 태도에서조차 차이가 발견된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우리 그룹에는 영국인과 결혼해 20대부터 영국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 할머니가 있었다. 그는 70대 중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밝고 활력 넘치는 스타일이었는데 영어를 가르치는 데도 마찬가지였다. 이 할머니는 영어를 거의 모르는 외국인에게 구체적 표현이나 문법보다는 표정과 몸짓, 손짓을 동원해가며 의사소통하는 법을 가르치려고 했다. 이를테면 미국식 실용주의다. 그러나 비슷한 연배의 영국 할머니들은 보다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했다. 문법과 문장의 구조 하나하나를 설명해가며 외국인이 영국식 표현을 익힐 때까지 자상하게 돌봐주는 방식이었다.

사실 영국 영어와 미국 영어는 여러 가지 면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우리가 잘 아는 단어들만 해도 영국에서만 통하거나 미국에서만 통하는 단어들이 적지 않다. 차량에 연료를 주입하려면 미국에서는 ‘gas station’을 찾으면 되지만 영국에서는 ‘petrol station’을 찾아야 한다. 바지를 가리킬 때 미국에서는 ‘pants’를 쓰지만 영국에서는 ‘trousers’를 고집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탕조차 영국에서는 ‘candy’가 아니라 ‘sweet’라는 말로 불린다.

영국에서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이 되면 각자 조금씩 음식을 싸갖고 와 나눠 먹는 ‘미니 파티’를 여는데 이를 단순히 ‘bring-and-share’ 파티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파티를 미국에서 ‘potluck’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미국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난 뒤였다. 영국 사람들은 ‘elevator’를 ‘lift’라고 부른다. 건물 층수를 나타내는 표현조차 영국에서는 1층을 ‘ground floor’라고 하고 2층을 ‘first floor’, 3층을 ‘second floor’라고 하기 때문에 영국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한국 사람들은 간혹 약속 장소를 헷갈려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쓰는 영어에도 미국과는 다른 표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교장은 ‘principal’이 아닌 ‘headteacher’ 또는 ‘headmaster’로 불리고, 미국에서 ‘custodian’이라고 불리는 학교 관리인이 영국 학교에서는 ‘caretaker’로 불린다. 야구나 미식축구보다 훨씬 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크리켓과 럭비를 여태껏 즐기는 나라가 영국이니, 아이들이 주로 접하는 스포츠에서도 차이가 났다. 영국에서는 ‘football’이라고 하면 당연히 축구를 가리키지만 미국에서는 미식축구를 가리킨다. 미국에서는 축구를 ‘soccer’라고 부르지만 ‘football’에 비하면 대중적 인기는 떨어지는 편이다.

준용이가 다니던 영국 학교에 미국 친구 한 명이 전학 온 적이 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마다 축구에 매달리는 영국 사내 녀석들 틈새에서 미국인 소년도 수업 종료 벨이 울리자마자 ‘Let’s play football!’을 외치며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그러나 정작 이 녀석이 들고 나온 공은 축구공이 아니라 미식축구공이었다. 럭비공을 들고 나와 축구하자고 외치는 이 미국 소년 앞에서 영국 아이들이 배꼽을 잡고 데굴데굴 굴렀음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미국인이 쓰는 영어를 영어의 표준으로 생각해온 한국식 영어 교육 시스템에서 보자면 정현이와 준용이의 영어는 어딘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유창한 미국식 발음도 아니고 이 아이들이 쓰는 영어에는 영국과 영 연방 국가에서만 쓰이는 단어들도 꽤 많이 섞여 있다.

그러나 호주, 캐나다를 포함한 영 연방 국가들을 합치면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인구는 미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인구를 훨씬 뛰어넘는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영국식이냐 미국식이냐가 아니라 글로벌한 환경에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사고력과 콘텐츠를 갖추고 있느냐다. 따라서 미국식 발음이 정답이라는 강박관념은 초보자들의 영어 습득 과정에서 발음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더 많은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 주변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진다. 나도 이런 경험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영어로 말하는 아이보다 소통하는 아이로 키워라

1 영국 이웃들과의 파티에서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는 아이들. 2 아이들이 LA 페이지 박물관에서 공룡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어휘보다 중요한 건 사고력과 콘텐츠

일선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문법 영어’에만 익숙했던 탓에 영국인들을 만나 대화를 시작할 때마다 가장 먼저 머릿속에 맴돈 것은 ‘어떻게 하면 올바른 발음과 문장 구조를 사용할 것인가’였다. 그러나 발음과 문장 구조를 머릿속에서 연습해보는 사이 이미 대화 주제는 바뀌어버리고 그나마 한 마디 던질 기회조차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머릿속에서 생각한 단어와 입에서 튀어나온 단어가 서로 다른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의 경우는 다르다. 영어를 실제로 사용하기 전에 혹시라도 잘못된 어법을 구사할까봐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어 전문가들은 어른들이 가진 이러한 두려움을 설명할 때 ‘감성적 여과 장치(affective filter)’가 높다고 한다.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머릿속에서 여과 과정을 많이 거친다는 뜻이다. 따라서 아이들의 영어 말하기에서 정확한 ‘미국식’ 발음을 요구하고 가르치려고 한다면 아이들이 갖는 이러한 장점을 오히려 반감시킬 것이다.

발음뿐만 아니라 영어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이 더욱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영어권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폭넓게 이해하는 일이다. 가장 간단한 것부터 따지자면 형이나 누나, 오빠에 대한 호칭부터 다르다.

형제자매 간에 서로 이름을 부르는 영국 아이들 틈에서 자라는 한국 아이들에게 형이나 누나, 오빠, 언니라는 호칭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집에서까지 한국식 호칭을 버리고 형제자매 간에 서로 이름을 부르게 할 수도 없다.

준용이도 형 정현이와 영국 유치원에 함께 다니면서 형을 부를 때 ‘형!’이라는 한국식 호칭이 아닌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Hey Jung(정현이가 영국에서 불리던 이름)!’이라고 형을 부르던 것을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들었다. 하지만 나중에 한국에 돌아갈 때를 생각해서라도 이를 바로잡아주기로 하고 영국 아이들과 대화할 때도 형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못하도록 했다. 그 후로 준용이는 영국 아이들과 이야기하면서 정현이를 지칭할 때면 이름 대신 ‘my brother’라고 불렀다. 주변의 다른 아이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한국에 돌아올 생각을 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습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해서인지 준용이는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친구들에게 제 형을 이야기할 때는 늘 ‘우리 형’이 아닌 ‘내 형’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아이들과 선생님 사이의 호칭도 마찬가지다. 영국이나 미국 학교에서는 당연히 교사를 호칭할 때 ‘Mr’나 ‘Miss’, ‘Mrs’ 등의 타이틀을 붙여 부른다. 외국 학교라고 해서 자유분방할 것 같지만 선생님에 대한 태도나 학생들의 행동거지에 대해서는 대단히 엄격한 규율을 요구한다.

한국에 온 후 영어유치원이나 원어민 교사가 가르치는 영어학원에서 한국 어린이들이 교사들을 이름 그대로 부르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영국에서도 유치원 단계에서는 교사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허용하지만 만 4세부터 학교에 입학하면 반드시 ‘Mr’나 ‘Mrs’ 같은 타이틀에 성(姓)을 붙여 부르도록 지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교사를 부른다고 해서 외국인 교사들에게 똑같이 ‘teacher!’라고 부르게 하는 것도 다소 우스꽝스런 일인 것 같다. 가능하면 아이들이 영어를 습득할 때 영어권의 문화를 함께 익히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사실 나 스스로를 돌이켜보더라도 영어권 문화에 익숙지 못해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적지 않다. 호칭과 관련해서는 아이들 간의 호칭보다 더욱 피부에 와 닿은 것이 외국 아이들이 친구 부모를 부를 때였다. 나 역시 정현이와 준용이의 친구들로부터 내 이름으로 불리는 ‘수모(?)’를 겪었으니 말이다. 대여섯 살 되는 어린 녀석들이 대놓고 내 이름을 부르는 게 처음에는 말할 수 없이 어색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적응되자 이마저도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반가운 사람끼리 만나 포옹하거나 양 볼에 자연스럽게 키스하는 습관도 한국 사람들에게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우리 가족도 영국 지인들과 만나 포옹하는 데 익숙해지긴 했지만 처음에는 꽤나 닭살 돋는 경험이었다.

영어로 말하는 아이보다 소통하는 아이로 키워라

1 LA 유니버설 스튜디오 앞에 선 정현이와 준용이. 2 영국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네트볼 게임을 하는 준용이. 영국에서는 미국의 농구와 달리 백보드가 없는 네트볼을 즐긴다.

문화와 생활양식도 함께 익혀야

아시아권 문화에 익숙한 외국인들도 가족이 아닌 아시아인들과 포옹하는 것이 결례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일주일에 한 차례씩 만나온 이웃 할머니들이 정작 내가 포옹하려고 다가가기도 전에 먼저 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곤 했는데 이 또한 자연스런 광경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처럼 서로의 호칭이나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에서 문화와 언어를 동시에 익히는 것이야말로 보다 효율적인 영어 학습법이 될 수 있다. 언어는 문화적 산물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이를 위해서는 엄마나 아빠가 초보적인 형태에서나마 영어권 문화에 대해 개방적이고 유연한 태도를 갖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의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을 통째로 영국식 또는 미국식으로 뜯어고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오히려 우리 아이들이 영국이든 미국이든, 남미 또는 아프리카든 간에 다문화적인 환경에 적응하면서 영어를 익히고 구사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외국에서 오래 아이를 키우다 보면 늘 정체성 문제에 부닥친다. 특히 우리 가족은 한국 아이들이 거의 없는 영국의 소도시에 살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다가왔다. 정현이와 준용이가 다니던 학교의 전교생 2백여 명 중 한국 학생은 우리 아이들을 제외하고 한두 명에 불과했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감수성이 예민한 한국 아이들은 수업 시간이 끝날 때 자기를 데리러 온 엄마가 한국말 사용하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 철모르는 또래 아이들이 ‘너희 엄마는 어느 나라 말을 하는 거냐’고 묻기도 하고 ‘너희 엄마는 영어 할 줄 모르냐’는 심술궂은 질문을 던지기도 하다 보니, 한마디로 자기 엄마가 친구 엄마들과 다른 언어를 쓰는 것이 낯 뜨겁다는 것이다.

주변 한국 아이들 중에는 어쩌다 한국어가 적힌 과자를 간식으로 학교에 가져가면 포장지를 들키지 않으려고 몰래 먹는 아이들도 있고, 여자아이들 중에는 ‘서양 아이들처럼 키만 크고 머리 크기는 더 안 자라면 좋겠다’고 일기에 써놓은 경우도 있었다. 아이들이 겪는 그런 어려움을 알고 있었기에 하굣길에 정현이에게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다.

“너 엄마가 친구들 앞에서 한국말 쓰는 것 싫니?”

“아뇨, 왜요?”

“응, 그냥. 엄마가 한국말로 너랑 이야기할 때 친구들이 무슨 말이냐고 묻지 않아?”

“묻는 아이들도 있어요. 무슨 말이냐고.”

“그럼 뭐라고 대답해?”

“그냥 우리나라 말(my own language)이라고.”

다행히 정현이와 준용이가 다니던 학교는 남편이 공부하던 대학 캠퍼스가 위치한 지역에 함께 자리해 학생들 역시 다문화에 익숙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 학교는 학기 중간에 ‘international day’나 ‘foreign language day’ 같은 행사를 개최하는 등 다문화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감수성이 예민한 여자아이들이 아니고 사내아이들이라는 것도 장점으로 작용했을지 모른다. 심지어 부드러운 금발의 영국 남자아이들은 유난히 뻣뻣하고 억센 정현이의 머릿결을 보고 ‘파인애플 헤어’라고 놀리면서도 은근히 부러웠는지 ‘어떻게 하면 머리를 그렇게 만들 수 있냐’며 호기심을 보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문화적 상대성에 대한 이해는 어린이들이 영어를 습득하는 데도 좋은 자양분이 된다.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영국이나 미국의 언어를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함께 익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어로 말하는 아이보다 소통하는 아이로 키워라
오미경

1994년부터 2005년까지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하다 2005년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해 6년, 다시 미국에서 1년을 살다 귀국했다. 서강대와 영국 워릭대학교(University of Warwick)에서 각각 영어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세 살과 한 살이던 두 아들은 열 살과 여덟 살이 돼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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