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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세계의 교육 현장을 가다 | 미국

죽음 부른 사이버 폭력

글&사진·김숭운 미국 통신원

2013. 07. 03

인터넷이나 SNS상에서 이뤄지는 사이버 폭력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쉽지만 실제로 이 문제로 고통을 겪다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문제는 사이버 폭력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음에도 이를 막을 방법이 마땅히 없다는 것이다.

죽음 부른 사이버 폭력


2013년 5월 28일 뉴욕 시 퀸즈빌리지에 있는 109중학교 앞에서 작은 시위가 벌어졌다. 이 학교 재학생 가브리엘 모리나의 죽음을 추모하는 한편, 경찰에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시위를 벌인 이들은 가브리엘의 친구들로, 가브리엘 양은 5월 22일 자신의 침실에서 목을 매 숨졌다.
가브리엘 모리나 사건은 뉴욕의 거의 모든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고 정치인들도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 사건에 관심이 집중된 이유는, 가브리엘의 죽음이 SNS나 휴대전화 등을 통한 ‘사이버 폭력(Cyber Bullying)’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 때문이다. 가브리엘이 사이버 왕따를 당했다는 사실은 유서와 친구들의 증언으로 증명되고 있다. 그가 목숨을 끊기 전 휴대전화에 ‘매춘부(a whore)’라는 모욕적인 문자 메시지가 왔다고 한다. 수사에 착수한 뉴욕 경찰국은 가브리엘이 학교 내에서 여러 학생들과 갈등이 있었고 최근 남자친구와 결별하기도 했지만, 자살의 직접적 원인은 익명의 발신자들이 보낸 모욕적인 내용의 문자 메시지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컴퓨터 통신과 휴대전화가 일상화되면서 학생들 간의 갈등과 싸움이 사이버 공간으로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악성 댓글, 트위터상에서의 욕설이나 험담, 익명 채팅방에서의 욕설과 험담, 모욕적인 문자 메시지 등이 대표적이다. 사이버 폭력은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기 때문에 피해자가 급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어린 학생들의 자살 사건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사이버 왕따는 특히 여학생들 사이에서 더욱 심각하다고 한다.

학생들도 사이버 폭력을 법으로 금지시키는 데 동의

죽음 부른 사이버 폭력

1 미국에서는 학생들을 위한 사이버 폭력 예방 교육에 검사장급 법조인들이 직접 나선다. 조지워싱턴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사이러스 반스 뉴욕검사장.



뉴욕 주에서 3~12학년 학생 1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무려 83%가 ‘사이버 폭력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조사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를 법으로 금지시켜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학생들 스스로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뉴욕 주는 이미 사이버 폭력 사건을 형사범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한 바 있다. 따라서 뉴욕 시경은 이번 가브리엘 양 사건을 형사범죄 사건으로 다루게 될 것이다. 가해자에게는 실형도 가능한 엄중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다. 또한 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뉴욕 시 교육국은 교육감 명령으로 시내 1천7백 개 학교에서 ‘증오범죄와 왕따 방지책’에 대한 긴급 학생 교육을 실시했다.
이 법에 따르면 사이버 폭력이나 기타 왕따 사건에 대한 학생이나 부모의 문제 제기, 혹은 제3자의 신고가 접수되면 학교는 반드시 사건을 즉시 교육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또한 학교는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과 피해자 그리고 참고인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반드시 서면으로 남기고, 피해 학생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피해자는 학교의 조치가 미흡하다고 판단되거나 계속해서 가해 학생들로부터 위협을 받을 경우 상급 기관인 주 교육국이나 인권국에 사건을 신고할 수 있다. 학교는 이런 내용을 학생들의 눈에 잘 띄는 학교 곳곳에 게시해야 한다. 사이버 폭력 사건이 접수되면 주정부는 경찰과 특별수사관을 통해 사건을 조사한다. 물론 학생의 안전에 미흡한 조치 혹은 즉각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경우 교장이 해임되거나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보고하지 않은 교사와 교직원도 해임과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사이버상에서의 폭력 문제는 뉴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전 연령대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건으로는 미주리 주에서 13세 소녀가 목을 맨 메건 마이어 사건(2008)과 뉴저지 주 럿거스 대학의 신입생이던 타일러 클레멘티 사건(2010)이 있다.



죽음 부른 사이버 폭력

2 3 미국 학교에서는 사이버 에티켓 교육 후 포스터 그리기를 통해 교육 내용을 확인한다.



메건 마이어 사건은 학급 친구의 어머니가 10대 남학생인 척하면서 메건 양을 사이버 왕따시킨 사건으로,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으나 친구의 엄마는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타일러 클레멘티 사건은 게이였던 대학 신입생 클레멘티의 동성애 모습을 기숙사 룸메이트가 몰래 컴퓨터로 중계방송한 것을 알고 그가 허드슨 강에 몸을 던진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두 명의 대학생에 대한 재판은 현재 진행 중이다.
아직까지 미국 연방법에는 직접적으로 사이버 폭력을 처벌할 법이 없다. 연방법으로 사이버 폭력을 처벌하는 ‘메건 마이어법’이 국회에 제출돼 있지만, 몇 년째 위원회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사이버 폭력은 일개 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주 경계를 넘을 수 있는 사건이다. 따라서 연방 차원에서 사이버 폭력을 처벌할 수 있는 강력한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사이버 폭력은 전 세계에 걸쳐 일어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IT와 통신 분야의 초강대국인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숭운 씨는…
뉴욕 시 공립 고등학교 교사이자 Pace University 겸임교수. 원래 우주공학 연구원이었으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좋아 전직했다. ‘미국에서도 고3은 힘들다’와 ‘미국교사를 보면 미국교육이 보인다’ 두 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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