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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With specialist | 김선영의 TV 읽기

김태희는 왜 장희빈이 되는 데 실패했나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

글·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 | 사진제공·SBS

2013. 06. 04

김태희가 연기하는 9대 장희빈은 ‘요부’ ‘악녀’ 같은 기존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조선판 알파걸이자 순정녀 장옥정으로 분한 그의 변신은 성공적일까.

김태희는 왜 장희빈이 되는 데 실패했나


김태희가 9대 장희빈을 연기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대중의 반응은 미스 캐스팅이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늘 연기력 논란이 따라붙었던 탓에 첫 사극 도전에 대한 우려가 많았고, 서울대 출신의 모범생 이미지와 장희빈을 대표하는 팜파탈 이미지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SBS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는 적어도 후자의 우려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한 답을 가지고 출발한 드라마다. 역으로 김태희의 이미지를 십분 활용해 지적이고 착한 장희빈이라는 재해석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 속 장희빈은 ‘요부’ 혹은 ‘악녀’와 같은 기존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대신 이 작품은 새로운 장희빈을 위한 키워드로 ‘꿈’과 ‘사랑’을 내세운다. 그는 조선 제일의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조선판 알파걸’이며, 작품 제목처럼 사랑에 진심을 바치는 순정녀다. “천하디천한 신분” 때문에 당해왔던 수모를 ‘꿈과 사랑’에 대한 희망으로 견뎌내는, “희빈 장씨가 아닌 인간, 그리고 여인 장옥정”은 분명 역대 장희빈들과는 차별화된 것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모습이 장희빈으로서는 신선할지 모르나, 캐릭터로서는 전혀 새롭지 않다는 데 있다. 주변의 괴롭힘도 씩씩하게 이겨내고, 밝은 성품과 미모로 숙종 이순(유아인)뿐만 아니라 왕족 동평군(이상엽)의 마음까지 사로잡는 긍정녀 장옥정은 영락없이 배경만 조선시대로 바뀐 ‘캔디렐라’다. 게다가 ‘조선판 캔디렐라’는 이미 숙종 시대 최후 승자였던 최숙빈의 이야기를 담은 MBC 드라마 ‘동이’가 그 정석을 보여준 바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장옥정’이 지향하는 장희빈 캐릭터의 재해석마저 ‘동이’가 이미 한발 앞섰다는 점이다. ‘동이’에서 이소연이 연기한 8대 장희빈은 숙종(지진희)으로부터 ‘사내로 태어났으면 왕이 될 그릇’이라는 찬사를 받았을 정도로 지적인 인물이자 그의 정치적 동반자로 그려지며, ‘조선판 캔디’에 그친 동이(한효주)에 비해 입체적인 캐릭터라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김태희의 기존 이미지를 활용한 ‘장옥정’의 전략은 시작부터 결정적 한계를 지녔던 셈이다.
이 드라마에 필요했던 것은 장희빈이 아닌 김태희의 변신이었다. 대중은 늘 여배우의 변신에 관심을 가진다. 김태희가 장희빈에 캐스팅됐을 때의 떠들썩한 논란도 실은 그 변신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연기로 처음 호평받은 작품이 억척스러운 짠순이로 변신했던 전작 MBC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였다는 점도 그를 뒷받침한다.
‘조선판 캔디’도, 김태희도 새롭지 않았으니 남은 관심은 모조리 연기와 외모에 쏠렸다. 입체적이지 못한 캐릭터 때문에 두드러진 단순한 표정 연기, 지나치게 짧은 저고리와 하이힐 등 튀는 복식 논란이 고스란히 작품에 부담으로 되돌아왔다.
문제점을 인지한 제작진은 10회부터 옥정의 캐릭터가 변화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정치적 음모가 판을 치는 궁에서 죽음의 위기에 몰렸던 장옥정은 자신의 신변과 사랑을 지키기 위해 권력을 갈구하는 정치적 인물로 거듭난다. 김태희가 큰 눈을 부릅뜨고 독설을 내뱉기 시작하자 드라마는 조금 흥미를 되찾았다. 그러나 이순 앞에서의 부드러운 모습과 인현왕후(홍수현)를 견제하는 이중적 모습은 순수한 장옥정과 ‘요부’ 희빈 장씨의 간격만큼이나 괴리감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사랑에 살고 죽는’ 여성이란 설정부터가 진부한 것이다. 장희빈이란 인물의 매력은 사랑만을 바라보는 왕의 여자 중 신분상승에 대한 야심과 생생한 욕망을 드러냈다는 데 있지 않은가. 결국 김태희와 드라마 ‘장옥정’의 선택은 예정된 실패의 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김태희는 왜 장희빈이 되는 데 실패했나


김선영은…
텐아시아, 경향신문, 한겨레21 등의 매체에 칼럼을 기고 하고 있으며, MBC, KBS, SBS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에서 드라마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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