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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겹쌍둥이 아빠 되는 이동국의 인생 드라마

20대엔 ‘라이언 킹’ 30대엔 ‘봉동 청년회장’

글·구희언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나비의활주로 제공

2013. 04. 16

축구 선수 이동국이 겹쌍둥이 아빠가 된다. 최근 자서전을 내고 사인회에서 팬들과 만난 그는 겹경사 덕에 한층 밝아 보였다. 위기를 즐긴다는 그의 인생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축구 경기 그 자체였다.

겹쌍둥이 아빠 되는 이동국의 인생 드라마


3월 17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선큰광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의 손에는 축구 선수 이동국(34·전북 현대 모터스)의 자서전 ‘세상 그 어떤 것도 나를 흔들 수 없다’가 들려 있었다. 이동국은 앞선 2월 18일 자신의 트위터에 “쑥스럽지만 제 이야기가 책으로 만들어졌어요. 정말 밤에 잠이 안 오시거나 할 일이 없을 때 읽어보세요. 많은 분이 잠이 오지 않기를 기대하면서~^^”라고 썼다.
회색 정장 차림의 이동국이 사인회장에 나타나자 광장은 일순 아이돌 팬 미팅 현장으로 돌변했다. 남녀 가릴 것 없이 반기는 팬들에게 이동국도 미소로 화답했다. 이날 현장에선 그의 책을 구입한 독자 2백여 명을 대상으로 사인회가 진행됐다. 첫 번째로 사인을 받은 사람은 백발 어른. 사인회 내내 이동국은 팬들의 갖가지 요구에 싫은 기색 없이 흔쾌히 응했다. 이동국의 이름이 새겨진 축구 유니폼을 챙겨와 사인을 받는 이들도 있었다. 한 여성 팬은 즉석에서 가방에 사인을 받는 열의를 보였다.

겹쌍둥이 아빠 된 10만분의 1의 사나이
축구 인생 15년을 돌아보며 자서전을 낸 그에게 기쁜 일이 또 생겼다. 아내 이수진(34) 씨가 2007년 쌍둥이 딸 재시·재아(6) 양을 출산한 데 이어 또다시 쌍둥이를 임신한 것. 평소 “우린 왜 동생이 없느냐”며 투덜거리던 딸들에게 동생은 큰 선물이다. 사인회를 마친 그에게 “겹쌍둥이 아빠가 된 걸 축하한다”고 인사하자 씩 웃으며 “고맙습니다. 지금 5개월 정도 됐고, 8월이 예정인데 아직 성별은 모른다”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라이언 킹’ 이동국은 여성 팬을 몰고 다녔던 스트라이커다. 1998년 열아홉 살에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된 그가 네덜란드전 후반 32분에 날린 슈팅은 모두에게 ‘스트라이커 이동국’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그가 세계를 향해 날린 첫 번째 슈팅이었다. 16강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입국장으로 나온 그에게 사람들은 그의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환호했다. 단 15분의 출전이 그의 운명을 바꾼 것이었다.
프랑스 월드컵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팬 덕에 하루에 1천여 통의 팬레터와 선물을 받았다는 이동국. 집 앞에는 주말이면 전국에서 몰려든 소녀 팬으로 장사진을 이뤘다. 이번 사인회에는 15~16년 전 숙소로 찾아오던 여성 팬이 초등학교 2학년 자녀와 함께 찾아오기도 했다.
“축구장이 아닌 곳에서 팬들을 만나니 느낌이 새롭네요. 처음에 책을 낼 땐 좀 쑥스러웠어요. 누가 읽을까 걱정했는데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죠. 아내도 읽어보고 재미있다고 하네요.”
아내 이씨는 지난해 여성동아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남편이나 저나 쉽게 낙담하는 성격이 아니다. 동국 씨는 의지가 참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동안 기복이 많아서인지 힘든 일이 찾아오면 ‘이제 또 그 시기가 찾아왔구나. 더 열심히 해서 힘든 시간을 견뎌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위기를 즐긴다”는 것. 과연 그럴까.
“어떻게 보면 굴곡 있는 삶이 재밌어요. 이제 시련은 더 찾아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런 건 또 오게 마련이니까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이 오잖아요. 마냥 힘들어 하기보다는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돌아보고 생각을 전환하는 게 낫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어요. 그러면 나중에 위기나 시련을 이겨냈을 때 희열이 느껴지죠.”
축구 실력에 잘생긴 외모까지 더해져 그라운드의 황태자로 불리던 그의 축구 인생은 ‘위기’를 빼놓고는 설명이 어렵다. 1998년 월드컵에서의 인상적인 활약 덕에 2002년 월드컵은 이동국의 무대가 될 거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2002년 4월 30일 발표된 한일월드컵 최종 명단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모든 상황이 좋은 쪽으로 흘러갈 순 없죠.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게 인생이니까요. 특히 제 축구 인생이 그랬고요.”
열아홉 살에 스타가 됐지만 4년 만에 바닥을 맛봤다. 그는 말 그대로 폐인 같은 시간을 보냈다. 온 나라가 월드컵의 열기로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있던 본선 내내 방황했다. 밤에는 술을 마시고 낮에는 해가 중천에 떠야 잠에서 깼다.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들과 전국을 돌아다니며 방랑 생활을 했다. 대표팀이 경기할 때면 그를 피해 경기가 열리지 않는 도시로 향했다.
“생각해보면 그때 제게 부족했던 건 절박함이었어요. 저는 늘 자신이 최고라고 믿고, 주변의 우려와 충고에 귀 기울이지 않았어요. 제대로 된 기량이 나오지 않아 초조해하면서도 ‘설마 나를 떨어뜨리겠어’ 하는 자만심으로 가득했죠.”
결국 스스로 바뀌는 것밖에 답이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시즌이 끝나고 곧바로 입대를 결심했다. 2005년 3월 상무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그는 7년간 함께한 여자 친구와 눈이 펑펑 내리던 그해 12월 18일 평생의 연을 맺는다. 또래치고는 이른 나이에 하는 결혼이었지만, 안정을 찾고 그만의 울타리를 갖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고.

겹쌍둥이 아빠 되는 이동국의 인생 드라마

1 다정한 쌍둥이 자매 재시와 재아. 2 이동국은 아버지가 인생 전반전의 매니저라면, 후반전의 매니저는 아내라고 했다.





아내는 인생 후반전 매니저
입대 전 ‘남자다운 행동’이라는 생각에 겁도 없이 여자 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했는데, 막상 입대하니 그렇게 외롭고 쓸쓸할 수가 없었단다. 자존심도 내팽개치고 첫 휴가를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전화를 건 그를 넓은 아량으로 받아준 여자 친구가 지금의 아내다. 아버지가 인생 전반전의 매니저였다면, 후반전을 담당한 매니저는 아내 이씨였다.
7년이나 연애했지만 실제 만난 날을 꼽으면 남들의 1년 연애한 수준일 거라는 두 사람. 첫 만남은 1998년의 어느 날 장대비가 쏟아지던 서울 타워호텔 로비에서 이뤄졌다. 그해 청소년대표팀에 선발돼 호텔에서 합숙하던 이동국은 장마로 훈련이 연기돼 모처럼 자유 시간을 즐기다 로비에서 이씨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친한 호텔 종업원에게 방 번호를 알아내 전화한 그는 미모와 달리 이씨의 수수하고 싹싹한 태도와 배려심에 놀랐다고. 당시 신세기통신의 모델이던 이동국은 무료로 전화를 쓸 수 있었는데, 재미교포였던 아내가 하와이에서 수신자 부담으로 전화를 걸게 해서 신세기통신에 2년간 막대한 민폐를 끼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아내 이씨는 이동국에게 축구 이상의 운명이었다. 운동선수인 자신의 스케줄에 늘 맞춰주는 아내에게 해준 것이 많지 않아 미안한 마음이라고. 아내는 그에게 가정적인 모습을 요구하지 않았다. 집에서는 오로지 편히 휴식을 취하게 해주었다. 안 되는 걸 하려다 스트레스를 받아 오히려 가장 잘해야 할 운동에 영향을 받지 말라는 배려에서다. 여장부 기질이 있어 리더 역할을 곧잘 하지만 남편과 있을 때는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보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는 이씨는 좋은 아내이자 매니저, 동시에 수석 코치 같은 존재다.
2007년 8월 쌍둥이 딸 재시와 재아가 태어나자 아내는 이메일과 블로그를 통해 타국에서 경기 중인 그에게 아이들의 성장기를 보내줬다. 그는 “아빠가 된다는 게 참 특별한 일”이라고 했다. “원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그가 두 딸과 동네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고 직접 분유를 타 먹이는 모습에 부모님도 놀랐다고 한다. 하지만 ‘강남스타일’ 말춤을 배워 아빠 앞에서 선보이는 애교쟁이들 앞에선 누구나 ‘딸 바보’일 수밖에 없다.
그는 “첫아이가 쌍둥이라서 놀랐지만, 키워놓고 보니 둘이라 다행이었다”라고 한다. 아이들은 TV도 많이 안 보고, 인형 사달라고 보채는 대신 늘 함께 다니며 소꿉놀이를 즐긴다. 재시는 왈가닥에 자기애가 강하고, 재아는 여성스럽고 배려심 많은 성격이라 쌍둥이지만 이렇게 다른가 싶을 때도 있다고. 아내 이씨는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남편은 놀이동산이나 공연장처럼 사람 많은 곳에도 잘 가고, 인터넷서점에서 아이와 놀아주는 법이 소개된 책을 살 정도로 교육에 관한 관심이 많다”며 “아이와 뉴스를 함께 보면 좋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날마다 9시 뉴스를 아이들과 본다”고도 했다.
“아내와 딸들은 제가 잘하든 못하든 언제나 뒤에서 응원해주는 든든한 제 편이라 책임감을 많이 느껴요. 축구 경기가 없을 때는 되도록 가족과 지내려고 노력해요.”

최근 인기리에 방송 중인 MBC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에는 함께 그라운드를 누볐던 송종국과 딸 지아가 출연하고 있다. “아이들과 출연할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우리 딸들이 워낙 별나서 힘들 것 같다. 데리고 갔다가 방송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며 웃었다.
그는 “축구 선수 이동국은 항상 모두의 사랑을 받는 존재는 아니었다”고 털어놓는다. 열렬히 응원하는 사람만큼 시기하고 헐뜯는 이도 많았다.
“예전엔 그런 상황이 짜증 나고 원망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며 부정적이었던 시선을 바꿔가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돌아선 마음을 되돌리는 순간, 그들이야말로 둘도 없는 지지자가 돼줄 것이라 그는 믿는다.

월드컵은 아직 풀지 못한 숙제

겹쌍둥이 아빠 되는 이동국의 인생 드라마

이동국의 축구 인생에서 상처를 치유한 곳도 결국 그라운드였다.



축구 선수라면 그라운드 위에서 보여주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2002년 한일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했을 때도, 4년 뒤 무릎 인대 파열로 월드컵이 또 한 번 그를 외면했을 때도 그는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섰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중요한 득점 기회를 놓치며 ‘역적’이 됐지만 포기하지 않고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이동국에게 월드컵은 아직 풀지 못한 숙제다. 국가대표 선수로 수많은 국제대회를 치렀지만 유일하게 골을 넣지 못한 대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2002년 월드컵에서 황선홍이 그랬듯 그도 마지막으로 명예 회복을 할 기회를 갖고 싶다는 바람을 늘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
그는 이제 비로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여유를 찾아가고 있다. 마음의 여유를 선물한 건 신기하게도 성공이 아닌 실패였다. 그라운드에서 상처받았지만, 축구화를 벗지 않고 그라운드로 돌아갔다.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곳도 결국 그라운드였다. 그는 “누군가는 축구와 인생이 닮았다고 하지만, 내겐 축구가 곧 인생이고, 인생이 곧 축구였다”고 했다.
“남들은 성공한 축구 인생이라고 하지만, 그 과정은 평탄치 않았어요. 부모님은 굴곡 많은 제 삶에 눈물 지으며 더는 고생하지 말라고 기도하셨어요. 하지만 제 인생을 후회해본 적은 없어요. 시련에 좌절하면 끝없이 추락하지만, 그걸 극복하면 고비마다 돌아볼 수 있는 멋진 훈장이 되니까요.”
‘봉동 청년회장’.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뛰고 있는 이동국에게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봉동은 전북선수단 숙소가 있는 지명이다. 최강희 감독이 스스로 ‘봉동 이장’이라는 별명을 지었는데, 그보다 젊은 그는 ‘청년회장’이 된 것이다. 그는 “20대에는 라이언 킹이라는 멋진 별명이 있었는데, 30대에는 청년회장이라는 구수하고 친근한 별명이 생겼다. 전북 팬들의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어 항상 감사하다”고 했다. MVP와 득점왕을 숱하게 차지한 그지만 프로로서 처음 찬 주장 완장은 그만큼 더 무겁다.
그의 책에는 좋았던 일만 쓰여 있지 않다. 미화시킨 에피소드도 없다. 찬찬히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연필로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적은 그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 같다. 그는 “내 삶을 말하는 데 올바르고 아름다운 일만 드러내는 건 진실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선수 생활을 하면서 힘들었던 순간과 환희의 순간을 가감 없이 써내려갔다.
“큰 욕심은 없고, 많은 분이 제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준다면 기쁠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좋겠어요. ‘뭘 느껴라’라기보다는 ‘아, 이동국이라는 선수가 어떤 선수였지’라는 것 말이죠.”
최근 그에게 별명이 하나 더 생겼다. 바로 ‘10만분의 1의 사나이’. 겹쌍둥이를 가질 확률이 그 정도로 낮아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올해 하반기면 네 아이의 아빠가 되는 이동국은 “책임감도 제곱이 됐다”고 했다.

참고도서·세상 그 어떤 것도 나를 흔들 수 없다(나비의활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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