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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준·레나 부부가 말하는 스칸디 교육법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 스칸디 대디가 되기까지

글·진혜린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13.03.15 10:55:00

‘베타 맘’ ‘알파 맘’ ‘타이거 맘’ 등 우리나라 교육의 주체는 늘 ‘엄마’였다.
그런데 요즘 뜨는 스칸디 교육법은 ‘스칸디 대디’ 즉 아빠의 교육 참여를 강조한다.
가부장적이고 고집 센 한국의 경상도 남자가 자유롭고 합리적인 스웨덴 여성을 만나 ‘스칸디 대디’가 된 이야기를 통해 ‘한국형 대디’의 밑그림을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
황선준·레나 부부가 말하는 스칸디 교육법


남편은 매일같이 오후 5시쯤 퇴근해 가족을 위한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아내가 요리한 날 설거지는 당연히 남편의 몫이다. 식사를 마치면 아이들과 블록 쌓기 등을 하며 한참을 놀아주거나 동화책을 잔뜩 쌓아놓고 책도 읽어준다. 아이들 공부도 도와주고 집안일도 한다. 주말이면 산이나 들, 공연장이나 박물관으로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고 휴가 기간이면 온 가족이 힘을 합쳐 집 앞 뜰에 뚝딱뚝딱 오두막을 짓기도 한다.
스웨덴에서 스웨덴 여성과 결혼해 세 아이를 낳아 키운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 황선준 원장은 스웨덴의 평범한 가족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런 꿈같은 이야기가 가능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최근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스칸디 교육법이 탄생했다. 스칸디 교육법은 스웨덴으로 대표되는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속한 북유럽 국가가 가진 공통적인 교육법을 일컫는다. 저녁 6시만 되면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고, 근무 시간도 하루 평균 8시간을 넘지 않는, 그래서 모든 것이 가족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아빠들이 참여하는 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
엄마뿐 아니라 아빠에게도 직접적인 애정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더 높은 자존감과 성취감을 갖게 된다고 한다. 황선준 원장과 그의 가족들이 그동안 스웨덴을 떠날 수 없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평범한 스웨덴 가족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남자의 태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해 지기 전 퇴근은커녕 야근이나 회식으로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은 주말이면 이불 속에서 피로와 싸우느라 아이들과 놀아줄 틈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 교육은 늘 엄마의 몫이다.
물론 황선준 원장이 스웨덴으로 간 것은 이런 일과는 전혀 상관 없었다. 26년 전,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 과정까지 마친 황 원장은 스웨덴 국가 장학생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스웨덴 여성 레나 씨와 6년여의 열애 끝에 결혼을 해 아들 둘, 딸 하나를 낳아 키우며 20여 년을 스웨덴의 남자이자 스웨덴 여성의 남편으로, 그리고 스칸디 대디로 살았다. 그러는 동안 대학 강의교수와 연구원을 거쳐 감사원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고 스웨덴 국립교육청 간부로 지냈다. 그리고 2011년,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 원장으로 임명되며 한국으로 돌아왔고, 작년에는 스웨덴의 중학교에서 상담교사로 근무하던 아내 레나 씨도 한국으로 와서 함께 지내고 있다. 황 원장에게 스웨덴에서의 삶은 일종의 도전이었다고 한다.

합리적 교육은 남녀 평등에서 시작된다
스웨덴에서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레나 씨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황 원장이 레나 씨를 ‘천사’로 기억했던 것과 달리 레나 씨는 남편을 ‘어둡고 말 없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눈치’나 ‘한(恨)’처럼 한국어의 독특한 표현에 대한 설명도 참 재미있었죠. ‘아리랑’이나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남편에 대한 관심이 커졌던 것 같아요.”
그렇게 연애하다 한지붕 아래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 ‘사랑’ 그 하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우스갯소리지만 경상도 남자가 집에 돌아와서 하는 말이라고는 ‘아는?(아이들은?), 밥 도(밥 줘), 자자’, 이 세 마디밖에 없다던데, 그게 스웨덴에서 통할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스웨덴에서는 여성이 직업을 갖는 것은 남성이 직업을 가져야 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 이 때문에 집안일이나 육아는 남편이 아내를 ‘도와주는’ 차원을 넘어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황 원장이 이것을 납득하고 실행하는 데까지 많은 조율이 필요했다.
“사소한 다툼이나 오해가 생길 때, 여러 번 곱씹으며 아내가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했어요. 아내도 다혈질적이고 고집스러운 저의 성격 때문에 기다려주고 차분히 설명하려고 애썼죠. 아내의 합리적인 설명을 듣다 보면 결국 제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레나 씨가 20년간 한국 남자와 살면서 지금까지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바로 ‘불같이 화를 내는 성격’이라고 했다.
“한국에 와서 주변의 한국 남자들이나 TV 드라마 주인공들이 늘 소리 지르며 화 내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제 남편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죠(웃음). 물론 스웨덴 남자들도 화를 내지만 한국 남자들처럼은 아니거든요(웃음). 하지만 지금껏 아무리 남편이 화를 낸다고 해도 옳지 않은 일을 따른 적도, 따를 생각도 없어요.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는 남녀의 문제에서 시작돼 ‘자녀 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여성과 남성의 위치를 결정하는 문제는 그 사회의 ‘어린이’의 위치를 결정하는 중대한 요인이라는 것이 레나 씨의 설명이다.
“제가 스웨덴에 간 지 10년 만에 아내와 아이 셋을 모두 데리고 아예 한국에 들어와 살려고 했어요. 그때 취업 준비도 할 겸 한국에 잠깐 머문 적이 있는데, 아내에게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됐죠.”

황선준·레나 부부가 말하는 스칸디 교육법

황선준·레나 부부는 첫째 아이를 낳은 후 결혼식을 올렸다. 아이와 책을 읽고 바깥나들이를 하는 것은 이들의 일상. 오른쪽 하단의 두 사진은 스웨덴에서 살던 황선준·레나 부부의 집 앞이다.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 두 사람의 바람이었다고 한다.



철석같이 한국에서 살겠다고 약속했던 아내가 ‘한국에서 못 살겠다’고 마음을 바꾼 것은 한국에 있는 황 원장의 친구 아내들이 대학 교육까지 받고도 일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나, 조카들이 학원이나 과외 때문에 놀지도 못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잠재적인 사회상을 아파트의 놀이터에서 발견한 아내의 통찰력에 할 말을 잃었다고 했다.
“주차장은 겨울에도 해가 드는 양지에 있고, 아이들이 뛰어놀아야 할 놀이터는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응달에 있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아이들의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럼에도 누구 하나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게 이상하다는 거죠. 아내는 중학교에서 전문 상담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만 지내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한국에 살면서 아내가 걱정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가 없었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토론하는 교육의 힘



황선준·레나 부부가 말하는 스칸디 교육법


황선준 원장이 스웨덴에서 처음 받았던 충격만큼 아내도 한국의 교육 환경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레나 씨가 원했던 것은 남편과 평등하게 살면서 아이들을 다그치지 않고 보충수업이나 과외 등으로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키우는 것이었다고 한다.
황 원장은 자신이 스웨덴의 ‘교실 풍경’에 놀랐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에서도 ‘스웨덴처럼’ 살 자신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교수가 강의하고 학생들이 지식을 배우는 형식의 수업을 당연하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스웨덴에서는 학생들이 교재에 나와 있는 내용을 토대로 토론하고 그것을 교수가 지켜보는 방식으로 진행되더라고요. 제 생각에 굳이 교재에 다 나와 있는 내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토론해야 할 필요가 있나 싶었죠. ‘교재도 읽지 않았나?’라고 질문을 했더니 교수가 제게 물었어요. ‘그렇다면 당신은 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황 원장의 학창 시절은 1970, 80년대 보수적인 대한민국을 관통하고 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그의 시절에는 특히 ‘사실’을 ‘많이 외우는 것’으로 좋은 점수도 받고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다. 그런 황 원장에게는 학생의 생각을 묻는 교수의 질문이 낯설기만 했다.
“과제든 시험이든 다 오리무중이었어요. 그동안 공부하고 배운 것과 전혀 달랐으니까요. 그 뒤로는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많이 했어요. 어떤 것이든 쉽게 정답을 내지 않고 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가를 반추해보려는 노력을 많이 했죠. 그러다 보니 4~5년쯤 지나서야 책에 대해, 이론에 대해, 학문의 세계에 조금씩 눈을 뜬 것 같아요.”
이런 교육의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세 아이를 키우면서 현실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큰아이가 중학생일 때, 작문 숙제의 주제가 ‘중남미 나라 중 두 나라를 선택해 미국과의 관계가 어땠는지를 규명해보시오’였죠. 그런데 이런 숙제를 할 때도 책에 있는 내용을 짜깁기하는 법이 없었어요. 관련 서적을 열 권 이상 읽고 직접 자신의 생각을 서술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키워놓았으니까요.”
스웨덴의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독후감이나 에세이 등을 쓴다. 이 모든 것의 핵심은 비판적 사고다. 이것은 건설적인 비판으로 이어지고 문제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창의적인 해결점을 찾는 것에 도달한다.
“책을 많이 읽고 내용을 기억하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겠지요.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정립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에요. 기억이 아닌 생각을 위한 공부를 하려면 공부하는 방식부터 바꾸어야 하겠죠.”
스웨덴에서 이 같은 교육 방법이 통할 수 있는 것은 대학입시 제도가 수행평가와 작문, 토론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는 손에 꼽을 만큼 적다. 대학에 진학하는 아이들도 2, 3년은 직장을 다니거나 여행을 다니는 등 사회 경험을 쌓는 시간을 가진다고 했다. 그 시간은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고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찾는 값진 시간이 된다.

대화하는 가족, 함께하는 가족

황선준·레나 부부가 말하는 스칸디 교육법


황 원장은 한국에서 스웨덴의 교육법을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아이의 생각을 물어보지 않는 어른들과 아이의 취향에는 관심 없는 사회에서 자신도 자랐기 때문이다.
경상도의 평범한 가정에서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그의 어린 시절은 ‘고집’으로 점철된 시기였다. 일류 중학교를 가라던 아버지의 권유를 마다하고 일반 중학교와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고등학교 1학년을 채 마치기도 전에 밑도 끝도 없이 다시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하겠다며 주장했던 것이 가장 대표적인 일례다. 뜬금없는 그의 주장을 부모님이 받아주지 않자 급기야는 가출을 감행하며 홀로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했단다.
“참 고집스러웠죠. 그런데 아이를 키우고 보니, 고집을 안 피우게 키울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우리 어렸을 때는 대화라는 게 없었으니까요.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지 아이의 생각을 물어보고 어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법이 없었죠.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려고 하면 부모와 싸우는 수밖에 없거든요.”
그가 터득한 방법은 ‘아이의 처지에서 생각하기’였다. 아이가 고집을 피울 때는 아이 나름의 고민과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아이가 틀렸다고 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마음을 열고 아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대화를 나눠보면 아이가 고집을 피울 이유가 없다.
황선준 부부가 한국에 와서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아이들의 생각을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다. 레나 씨는 최근 한국에서 만난 아이들이 너무 안쓰럽다고 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삶이라는 게 없더라고요. 아이가 커가는 시간을 단지 대학을 가기 위한 과정으로만 활용하는 것 같아 보이거든요. 하지만 아이에게도 그 나이에 맞는 삶이 있거든요. 두 살 때는 두 살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있고, 다섯 살 때는 다섯 살 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있죠. 그 시간들이 아이들에게는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는 건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공부만 해야 한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인 것 같아요.”
물론 황선준 원장 또한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훈육을 해야 할 때, 불같이 화를 낸다거나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한 적도 있었다.
“아무리 아이의 의사를 존중한다고 해도 공부에 대해서는 어영부영 할 수가 없더라고요. 결국에는 잔소리가 되는 거죠. 보통 책을 읽으라고 했는데 그냥 읽지 말고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웃음). 책 읽으라고 하는 것도 잔소리가 되는 것 같아서 나중에는 조심스럽더라고요.”
하지만 레나 씨는 한국인 아빠, 황선준 원장이 괜찮은 스칸디 대디였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많이 베푸는 아빠예요. 화낼 때는 무섭게 화를 냈지만 애정도 듬뿍 주고 아이들의 마음을 잘 감싸주었죠. 특히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어주고 아이들과 밖에 나가서 놀아주는 자상한 아빠예요. 무엇보다 아이들과 부모와 자식이 아닌 동등한 한 사람으로서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려고 노력하는 게 좋았어요.”
그렇게 키운 황 원장의 자녀들은 모두 장성해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첫째 아들은 6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의 고향인 한국으로 향했다. 젊은 시절 아버지가 스웨덴 국가 장학생이 됐던 것처럼 한국의 국가 장학생으로 한국 땅을 홀로 찾은 것. 부모님이 모두 한국에 머물고 있는 지금도 혼자 원룸에 살면서 대학을 졸업하고 최근 한국에서 취업까지 했다. 둘째 아이는 한국에서 한국어 연수를 받은 뒤 지금은 스웨덴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지금은 셋째 아이가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한국에 머물고 있지만 부모와 함께 살지는 않는다. 세 아이 모두 부모에게 ‘의논’은 해도 ‘결정’은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을, 그 결정에 책임지는 것도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미덕인 ‘예절’이나 ‘효’가 ‘권위 의식’으로 변질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부모 노릇은 ‘충고’와 ‘지원’에 머물러야 하는 거죠. 부모에 대한 예를 지키고 효도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부모의 뜻대로 살라고 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여성동아 2013년 3월 5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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