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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우리 사회 강타한 CODE NAME 19禁

안방부터 대학로까지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문형일 기자, CJ E&M 이다엔터테인먼트 아시아브릿지컨텐츠 제공

2012. 11. 06

경기가 불황일 때 짧아지는 건 치마 길이만이 아니다. ‘SNL 코리아’ ‘드립걸즈’ ‘발칙한 로맨스’ ‘극적인 하룻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등 19금 코드로 흥행몰이에 성공한 콘텐츠로 살펴보는 아찔한 금기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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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관람 불가. 일명 ‘19금’이 분야를 막론하고 퍼져나간다. 경기가 불황이면 치마 길이가 짧아지고 빨간 립스틱이 잘 팔린다는 속설이 있지만, 이제는 속(콘텐츠)까지 야해지는 추세.
최근 19금 코드를 표방하며 가장 흥한 TV 프로그램은 단연 tvN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코리아(이하 SNL 코리아)’다. 미국 NBC 인기 프로그램 ‘SNL’의 형식을 수입해서 제작한 프로그램으로, 매주 호스트와 함께 생방송으로 진행된다. 술자리 안줏거리로 회자될 법한 시시껄렁하고 야한 농담부터 연애와 사랑, 가정과 사회, 신랄한 정치계 풍자까지 전방위를 마크하며 시청자를 웃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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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립의 황제 신동엽이 가세하며 더욱 성적 풍자의 수위가 높아진 ‘SNL 코리아’.



아찔 수위 넘나드는 TV, 풍자에 성역이란 없다
지난해 12월 시즌1 방영 당시에는 지금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았지만 시즌2부터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더니 3회 호스트 양동근 편부터 시청 연령 등급을 기존의 15세에서 19세로 상향 조정했다. 9월부터 시즌3로 접어든 ‘SNL 코리아’는 지난 시즌에서 ‘쨔ㄱ-재소자 특집’이나 ‘골프 아카데미’ 등 호스트로 나올 때마다 ‘빵빵’ 터트려주던 ‘섹드립의 황제’ 신동엽이 메인 MC를 맡아 한층 수위 높은 개그를 선보이고 있다. 퇴폐업소 취재에 열성적인 보도국장이나 목탁을 든 야릇한 변태 도박사 스님을 신동엽보다 더 잘 소화할 수 있는 개그맨이 있을까.
‘SNL 코리아’에 원초적인 섹드립만 있는 것도 아니다. 어린이 프로그램 ‘텔레토비’를 패러디한 ‘여의도 텔레토비’에서는 색깔 있는 친구들 ‘구라돌이’ ‘앰비’ ‘문제니’ ‘또’ 등의 캐릭터가 나와 정치를 풍자한다. 동산 위에 웃고 있는 햇님에 이명박 대통령의 얼굴을 덧씌우고 실제 당명을 거론하며 ‘저래도 될까’ 싶을 정도의 직설적인 패러디로 호응을 얻었다.
이 프로그램이 높은 수위의 패러디와 콩트를 보여줄 수 있는 데는 케이블 방송의 심야 프로그램이라는 이점도 작용했다. 실제로 지상파 방송이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노출로 인기를 끈 ‘로맨스가 필요해’나 ‘TV 방자전’ 역시도 케이블 드라마라 심의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공연계에서도 19금 코드는 잘만 쓰면 극의 완성도를 높이면서 마니아층 외에 일반 관객까지 끌어모으는 효과적인 장치다. 대학로에서 높은 수위를 강조하는 공연장에는 남녀 불문하고 관객들이 몰린다. 연극과 뮤지컬 문화를 향유하는 관객 대다수가 여성이지만 이들 작품은 연인과 부부, 드물게는 남자끼리도 공연장을 찾을 만큼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대학로에 제작 PD로 첫발을 내디딘 배우 김수로의 ‘프로젝트’ 1호 연극 ‘발칙한 로맨스’는 올해로 시즌2를 맞았다. 첫사랑과 재회한 남녀의 솔직담백한 이야기가 수위 높은 대화와 야릇한 상황에서 전개된다. 지난해 무대에 오를 당시에는 제목이 ‘달콤한 원나잇’이었다. ‘만약 첫사랑과 15년 만에 만난다면’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공감을 끌어내는 한편, 남의 연애사를 훔쳐보는 듯한 재미도 빠지지 않는다.
15년 전 고교 시절 순수한 첫사랑을 여전히 간직한 수지와 봉필. 수지와 이별한 봉필은 할리우드로 건너가 세계적인 영화감독 대니얼로 성공한다. 결혼하고 평범한 유부녀로 살던 수지는 우연히 그의 소식을 접하고, 한국에 잠시 머물게 된 봉필은 수지에게 연락해 만나자고 한다. 봉필의 대단한 유명세 때문에 눈에 띄지 않는 고급 호텔방에서 단둘이 만난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운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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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가 제작 PD로 나선 연극 ‘발칙한 로맨스’.





공연계는 ‘19금 코드’로 남성 관객까지 쌍끌이
이번부터 15세 이상 관람가로 수위를 낮췄지만, 노골적인 대사와 배우들의 느끼한 표정은 발칙한 로맨스를 제대로 보여준다. 봉필이 “사실 난 남자로서 기능을 상실했다. 직접 확인해보라”라며 자신의 ‘그곳’에 수지의 손을 갖다대는 순간 객석에서는 남자들의 “헉” 소리와 여자들의 “꺄” 하는 탄성이 동시에 울려퍼진다.
‘발칙한 로맨스’와 ‘SNL 코리아’에는 ‘19금 코드’ 외에도 공통분모가 있다. ‘발칙한 로맨스’ 각본을 쓰고 연출한 김민교 씨가 ‘SNL 코리아’에도 고정 출연하고 있다. 배우 겸 연출가인 그는 ‘SNL 코리아’에서 수염 자국이 선명한 여장 남자로, 때로는 게이로 분해 오묘한 눈빛을 쏘며 감초 노릇을 하고 있다.
연극 ‘극적인 하룻밤’은 한층 수위가 높다. 올해부터 15세 이상 관람가로 바뀐 ‘발칙한 로맨스’와 달리, 이 작품은 인기리에 8차까지 재공연하면서도 ‘19금 딱지’를 떼지 않았다. ‘극적인 하룻밤’의 정훈과 시후는 팬티 한 장과 슬립 차림으로 성관계를 직접적으로 묘사하지만 천박해 보이거나 눈살 찌푸려지기보다는 유쾌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친했던 선배 형과 사랑했던 애인의 결혼식에 씁쓸한 기분으로 참석한 정훈은 뷔페에서 연어초밥을 내놓으라며 막무가내로 엉겨 붙는 이상한 여자 시후를 만난다. 승강이를 벌이던 두 사람은 각자의 옛 애인이 서로 눈이 맞아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죽고 싶은 마음의 시후는 정훈에게 하룻밤만 같이 자자고 보채고, 엉뚱한 그녀의 매력에 호기심이 발동한 정훈은 ‘극적인’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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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런 중인 연극 ‘극적인 하룻밤’.



붉은 정육점 조명 아래 야릇한 음악이 깔리고 극에서 가장 ‘야한’ 파트인 잠자리 신이 나온다. 무대 위 소품의 재치 있는 활용이 돋보인다. “나 쌀 거 같아!”라고 소리치는 시후에게 정훈이 “여자도 쌀 수 있어?”라고 하면 시후가 식탁을 식탁보로 ‘싸고’, “좀 더 벌려봐!”라고 하면 두 사람이 함께 책상 위 노트북을 힘차게 ‘벌리는’ 식이다.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탄탄한 줄거리에 젊은 세대의 거침없는 사랑 풍속도를 감각적으로 그려내 공감대를 형성한다. 정훈과 시후, 두 사람은 육체적인 관계를 넘어 서서히 서로의 빈 가슴을 채워나가지만 ‘다시 사랑으로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갖고 있다. 장기간 흥행한 작품인 만큼 결말은 지난 시즌과 다르게 그려지며 재관람자에게도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실제로 등장인물이 남녀 주인공 둘뿐인 데다 살과 살이 맞닿는 장면이 많아 지난 공연에서는 주연을 맡은 두 배우가 실제 연인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KBS2 ‘개그콘서트-분장실의 강선생님’을 이끈 4명의 개그우먼 안영미, 강유미, 정경미, 김경아가 3년 만에 뭉쳐 만든 뮤지컬 ‘드립걸즈’ 역시 ‘19금’ 전략이 제대로 먹혀들어간 작품이다. 제목처럼 그야말로 ‘애드립’의 향연이 펼쳐지는 작품에서 네 사람은 각각 ‘성형드립’ ‘섹드립’ ‘연애드립’ ‘육아드립’ 등 숱한 ‘애드립’을 선보이며 관객에게 웃음폭탄을 선물한다.
15세 이상 관람가인 작품에서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시의적절한 ‘섹드립’으로 극을 맛깔 나게 만드는 건 ‘김꽃두레’ 안영미의 몫이다. 그는 “오늘은 한 59금까지 가도 되겠다”며 너스레를 떨더니 “모텔에 가서 단둘이 술을 마셨지만 난 숫처녀”라는 식의 ‘애드립’을 치며 부담스럽게 야한 자세나 민망한 동작으로 공연장 분위기를 후끈 달궜다.
윤형빈과 7년째 연애하며 장기 연애의 고충과 노화를 소재로 공감을 사는 건 ‘국민요정’ 정경미, 유학 후 예뻐진 얼굴로 돌아와 ‘성형드립’을 치는 건 강유미다. 이들 중 유일한 ‘애엄마’ 김경아는 남편 권재관의 외모와 기사에 자기 이름을 ‘김경미’로 잘못 쓴 기자의 실명까지 언급하며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까지 웃기는 데 활용한다.
“남자 화장실을 가본 적 없으니 머릿속으로 풍경을 상상해봤다”며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남성들의 웃음소리가 더 컸다. 서서 볼일을 보던 이들은 피치 못할 상황으로 양손을 쓸 수 없자 서로의 ‘물건’을 잡아주는 의리를 과시하고 마무리로 탈탈 털어주기까지 한다. 관객도 공연을 즐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섹드립의 세계에 빠져든다. 서로의 남자친구를 자랑하는 자리에서 “지난밤에 남자친구와 너무 열심히 해서 이게 빠졌다”라며 침대 스프링을 꺼내 흔들던 안영미는 남자 관객에게 음료수 병 다섯 개를 보여주며 “자기 것만 한 걸로 고르라”고 한다. 그가 큼직한 파워에이드를 집어들기가 무섭게 옆에 있던 남자 관객은 두 번째로 큰 오렌지 주스를 집어들어 관객을 폭소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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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관람가지만 수위 높은 대사로 아슬아슬한 개그를 선보이는 ‘드립걸즈’.



낯 뜨거움의 수위는 소설이 더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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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도 19금 열풍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최근 ‘엄마들의 포르노’라 불리는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대인기다. 책 소개에는 ‘청소년에게는 권장하지 않는 도서입니다’라는 문구가, 표지를 싼 비닐에는 ‘19세 미만 구독 불가’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다른 책과 달리 꽁꽁 래핑된 채 펼쳐볼 수 있는 견본도 없어 호기심을 더욱 자극한다.
8월 한국에 출간된 작품은 영국 작가 E. L. 제임스의 소설로 후속편인 ‘심연’과 ‘해방’까지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4천만 부 이상 팔린 메가 베스트셀러. 영국에선 ‘해리포터’ 시리즈를 제치고 영국 역사상 가장 빨리 1백만 부 판매를 달성한 소설이 됐다. 아마존닷컴 사상 1백만 부 이상 판매된 최초의 전자책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출간 2주 만에 16만 부(종이책 15만 부, 전자책 1만 부)가 팔리며 인기를 과시했다. 낯 뜨거운 섹스 묘사가 가득하다는 입소문이 난 책이라 눈치 보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전자책 구매율도 높았다. 전자책만 놓고 보면 주요 인터넷 서점 1위를 9주가 넘도록 이 시리즈가 석권하고 있다.
지금껏 우리 사회에서 이처럼 대놓고 ‘19금’인 책이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오른 사례는 드물다. 1989년 마광수 교수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나 탤런트 서갑숙이 1999년 쓴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정도가 있었지만 지하철에서 대놓고 ‘19금 소설’을 읽는 독자가 늘어난 현상은 이례적이다.
소설은 하버드대를 중퇴한 천재 사업가이자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인 27세의 크리스천 그레이와 남자와 한 번도 자본 적 없는 21세의 대학 졸업반 아나스타샤 스틸이 만나 진한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가 골자를 이룬다. 결박(Bondage), 훈육(Discipline), 사도마조히즘(Sadomasochism)을 뜻하는 ‘비디에스엠(BDSM)’같은 파격적인 성애 묘사로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청소년유해간행물 판정을 내렸다.
단순한 ‘야설’이었다면 이 정도 인기는 얻지 못했을 것이다. 작품은 순정만화와 하이틴 로맨스에서 흔히 쓰이는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를 답습하면서도 비밀스러운 남자의 트라우마에 접근하는 미스터리적 구성으로 흡인력을 더했다. 더없이 완벽해 보이지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남자와 그를 구원하는 순수하고 평범한 여성, 일반적인 연애 소설에서 보기 어려웠던 섬세하고 파격적인 성애 묘사 역시 작품의 인기 비결이다.
‘테스’ 같은 고전 소설부터 아이폰, 아이패드 등 최신 전자기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아이템을 등장시켜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법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저자는 이 작품이 ‘상처받은 남자의 구원과 치유를 그린 사랑 이야기’라고 밝혔다. 현재 영화 ‘소셜 네트워크’ 제작팀에 의해 영화화가 확정돼 할리우드 인기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거론되고 있다.

‘19금 코드’로 성공한 콘텐츠의 공통점

1 막장은 NO! 무조건 야하기만 해도 NO! 현실 반영한 이야기로 공감대 형성. 2 우리 사회가 정한 금기에 대한 도전과 패러디가 주는 긴장&카타르시스. 3 남녀노소 불문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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