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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체조 요정’ 손연재 어머니 윤현숙 씨가 말하는 딸의 행복

글 | 유근형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사진 | 동아일보 사진DB파트, 뉴시스 제공

입력 2012.08.14 17:27:00

여러 편의 CF를 찍으며 아이돌 스타급 인기를 누리는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 그가 국가적 재목으로 우뚝 선 데는 어머니 윤현숙 씨의 뒷바라지가 있었다. 지금도 딸을 보면 수만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는 윤씨가 마음 졸이며 지켜본 열여덟 손연재 이야기.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 어머니 윤현숙 씨가 말하는 딸의 행복


“사람들은 우리 딸을 그저 아이돌 스타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아요. 하지만 훈련 과정을 지켜보면 우리 딸 같은 독종도 없어요. 운동에서는 프로죠. 가끔은 제 딸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기까지 해요.”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18·세종고)를 키운 어머니 윤현숙(44) 씨는 요즘 딸을 보는 것이 못내 안쓰럽다. 런던 올림픽을 앞둔 딸을 보며 수만 가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조금 욕심을 내어 좋은 성적을 거두면 좋겠다는 바람은 일단 접었단다. 벌써부터 올림픽 후에 팬들의 관심과 비난의 화살이 딸을 할퀴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는 “팬들이 딸을 CF 스타나 연예인이 아닌 운동선수로서 응원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연꽃 태몽으로 낳은 딸, 남자아이로 오인할 만큼 활달했던 어린 시절
또 순순히 인정해버렸다. 사람들은 한 살배기 딸을 “아들이냐?”고 물었다. 애써 설명하기 귀찮을 정도로 자주였다. 엄마는 그냥 “네, 아들 맞아요”라고만 대꾸했다. 태몽은 산 중턱 호수에 떠 있는 연꽃이었는데…. 딸은 남자아이처럼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뛰어놀기를 좋아하고 목소리도 컸다. 사람들은 ‘머슴아이’ 같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훗날 딸이 ‘국민 여동생’으로 사랑받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안전하게 뛰어놀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여성스러움도 함께 키울 수 있다면 금상첨화. 고심 끝에 여섯 살 무렵 리듬체조, 발레, 무용을 함께 가르치는 클럽에 딸을 보냈다. 윤씨는 처음 딸의 손을 잡고 체육관에 간 날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행복한 미소는 처음이었어요. 머슴아이 같던 아이가 정말 사랑스럽게 보였어요.”
손연재는 클럽에 다니는 아이 중 작은 편이었지만 유난히 유연했다. 선생님들은 리듬체조 명문인 서울 광진구 세종초에 입학할 것을 권유했다. 딸은 리듬체조 영재로 자랐다. 초등부 대회에선 적수가 없었다. 하지만 엘리트 선수로 키워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취미나 특기 정도로만 여겼다. 가족이나 친척 중 운동선수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 메달이 늘어가면서 불안했어요. 운동하다 실패하면 어쩌나 고민이 많았지요. 우리 집안엔 스포츠 DNA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엄마는 운동만 하는 딸을 상상한 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공부도 열심히 시켰다. 딸은 교내 수학경시대회, 영어듣기평가대회에서 상을 탈 정도로 영특했다. 학급 임원도 여러 번 했다. 초등학교 4학년 이후 딸이 일본, 뉴질랜드 등지에서 열리는 국제 대회에 나갈 때면 아예 한두 달씩 현지에 체류하며 어학 공부를 시키기도 했다.
‘운동이냐 공부냐.’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중학교에 들어가면 전담 코치가 필요했다.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기술 난도를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부담이 느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무엇보다 딸이 엘리트 운동선수로 실패했을 경우가 무서웠다. 더구나 리듬체조는 비인기 종목이다. 당시까지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고민은 깊어져갔다. 하지만 결정은 온전히 딸에게 맡겼다. 엄마는 ‘경우의 수’에 대해 충분히 설명할 뿐이었다. 어느 날 딸은 엄마 손을 꼭 잡고 다독이며 말했다.
“엄마, 리듬체조가 내 평생 일인 것 같아. 나 한 번만 믿어줘.”

그 순간 엄마는 뒤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윤씨는 그때부터 헌신적인 엄마로 변신했다. 먼저 손연재가 진학한 광진구 광장중 주변으로 이사를 했다. 전세금은 비싸졌는데 평수는 되레 작아졌다. 경기복도 한 땀 한 땀 손수 만들었다. “내가 만든 옷을 입고 연재가 매트에서 실수 없이 연기를 잘 마무리할 때만큼 행복한 적은 없었어요.”
딸은 중등부를 평정했다. 곧 국가대표가 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선배 신수지가 본선 무대에 자력으로 진출하는 데 성공하자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2009년 손연재는 우상 신수지마저 넘어서기 시작했다. 결국 아무도 예상치 못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리스트가 됐다. 시상식장에서 손연재가 흘린 닭똥 같은 눈물에 온 국민이 녹아내렸다. 또 한 명의 스포츠 아이돌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훈련 패러다임 바꿔 세계와의 격차 줄이다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 어머니 윤현숙 씨가 말하는 딸의 행복


손연재는 국내 1인자로 만족하지 않았다. 세계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바로 세계 최고의 무대가 펼쳐지는 유럽으로 본거지를 옮긴 것이다.
당시 리듬체조 국가대표 선수들은 주로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며 연 1~2회 전지훈련 겸 국제 대회 출전을 해왔다. 하지만 손연재는 2002년 월드컵 4강의 주역들이 해외에 진출해 한국 축구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듯 ‘큰물’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모이는 러시아로 떠났다.
2010년부터 손연재는 일 년의 대부분을 러시아 체육의 산실 노보고르스크 훈련장에서 보내며 선진 리듬체조를 받아들였다. 세계적인 안무가 루시 드미트로바(불가리아)를 영입해 난도를 대폭 올린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유럽에서 열리는 다양한 대회에 출전하며 리듬체조 심판들에게 ‘아시아 퀸’의 눈도장을 받았다. 리듬체조는 심판의 재량권이 큰 종목이다. 점수에 알게 모르게 스포츠 외교력이 작동한다. 그만큼 국제 대회에 자주 출전하는 것이 유리하다.
손연재의 점수는 점차 세계 정상권에 근접해갔다. 지난해까지 종목별(30점 만점)로 25점과 26점을 오갔지만 올해는 안정적으로 27~28점을 오가고 있다. 손연재 이전까지 국내에서 평균 26점을 꾸준히 받은 선수는 없다. 손연재는 결국 지난해 프랑스 몽펠리에에서 열린 국제체조연맹(FIG) 리듬체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1위에 올라 당당히 런던 올림픽 티켓을 거머쥐었다.
손연재는 “장기간의 러시아 훈련이 없었다면 지금의 기량을 갖추기 힘들었다. 후원금이 늘어 내년에는 훈련비 걱정을 덜 수 있게 됐다”며 안도하면서도 “런던에서 성공해 후배들이 더 많은 후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 시즌에도 손연재의 컨디션은 상승세다. 한국 리듬체조 사상 최초로 국제체조연맹 월드컵시리즈 두 대회 연속 동메달도 따냈다. 러시아 펜자 월드컵 후프 동메달을 딴 데 이어 불가리아 소피아 월드컵 리본에서 동메달을 연거푸 획득한 것이다.
손연재의 프로그램 구성을 맡고 있는 안무가 루시 드미트로바는 “월드컵 2연속 메달 획득은 상위 톱10 랭커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며 “처음에는 귀여운 동양 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유럽 강국들의 견제를 받는 선수가 됐다”고 칭찬했다.
최근에도 러시아 노보고르스크에서 런던 올림픽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예선 상위 8명이 겨루는 결선 진출이 목표지만 당일 컨디션에 따라 톱5 진입도 노려볼 만하다는 평가다.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 어머니 윤현숙 씨가 말하는 딸의 행복

손연재가 세계 정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데는 어머니 윤현숙 씨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엄마와 함께해 행복한 딸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 어머니 윤현숙 씨가 말하는 딸의 행복


보이지 않는 창을 깨고 손연재가 세계 정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엄마는 딸을 ‘독종’이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어떤 어려움도 잘 견뎌요. 스스로 문제를 다 해결한 뒤에야 엄마에게 살짝 귀띔을 해주지요. 러시아에서 주로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해요. 자기 목소리를 들으면 엄마가 걱정할 것을 아는 것 같아요. 가끔 통화할 때도 절대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아요.”
손연재의 전담 심리치료를 맡고 있는 스포츠심리학자 조수경 박사도 혀를 내두른 적이 있다. 조수경 박사는 “손연재보다 강한 정신력을 지닌 10대 선수를 보지 못했다. 손연재는 박태환 같은 슈퍼 스타들에 비견할 정도의 강심장을 지녔다”고 말했다.
특히 ‘회복 탄력성(전 경기를 잊고 다음 경기에 집중하는 능력)’이 좋다고 했다. 조 박사는 “독기, 근성, 승리욕 등 정신적인 면이 러시아 생활 이후 몰라보게 달라졌다. 큰 대회 때는 자신의 실수를 빨리 잊고 다음 연기에 집중하는 능력이 중요한데 연재가 서서히 그 부분을 깨닫고 있다”고 밝혔다.
엄마는 어른스러운 딸 때문에 며칠 전 눈물을 쏟았단다. 딸이 초등학교 때 체벌을 받으며 운동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것이다.
“운동시키지 말 걸 그랬다는 생각을 처음 했어요. 부모로서 지금까지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게 한스러웠죠.”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꿈꿨던 런던 올림픽 무대를 코앞에 둔 엄마는 차분해지려 애쓴다. 딸이 여느 스타들처럼 정점을 찍고 내려올 일만 남은 인생을 살지는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 딸은 2016년 브라질 올림픽이 전성기랍니다. 이번이 끝이 아니에요. 한데 사람들은 이번이 마지막인 것처럼 기대를 하지요. 딸과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해요. 가진 재능이 많은 아이인데, 올림픽 결과에 따라 모든 삶이 좌우되지 않으면 좋겠어요.”
딸도 엄마의 행복을 생각하고 있다. 사생활까지 포기해가며 자식의 성공을 위해 다 걸기(올인)하는 스포츠 맘이 되지 않길 바란단다. 운동선수인 딸과 뒷바라지하는 엄마가 항상 붙어 있는 경우가 많은 ‘스포츠 모녀’들은 자주 갈등을 겪기도 한다. 딸과 엄마는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한다. 손연재는 기자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그동안 항상 같이 있는 엄마에게 짜증을 많이 부렸다. 하지만 올해 러시아에서 훈련하며 혼자 지내면서 엄마의 소중함을 다시 깨달았다. 이제 엄마를 감싸줄 수 있는 딸이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씨는 딸에게 부담을 줄까봐 런던 올림픽도 조용히 숨어서 지켜볼 생각이다.
“마음속으로 딸을 많이 내려놓으려고 해요. 연재도 행복하고 엄마도 행복해야 진정으로 성공한 인생 아닐까요? 연재야, 런던에서 훨훨 날아라.”

여성동아 2012년 8월 5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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