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Style 공신의 조언

“영영사전은 필수, 책과 영화로 표현 연습, 연설엔 웃음 코드 넣어”

국제대중연설대회 한국인 최초 우승자 강전욱의 영어 비법

글·구희언 기자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11.07.05 10:11:00

5월27일 영국 런던에서 전 세계 49개국 학생 82명이 모여 영어 연설 실력을 겨루는 ‘국제대중연설대회(IPSU·International Public Speaking Competition)’ 결승전이 열렸다. 한국외국어대 부속 용인외고 3학년 강전욱군은 영미권의 쟁쟁한 실력자들을 제치고 한국인 최초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영영사전은 필수, 책과 영화로 표현 연습, 연설엔 웃음 코드 넣어”


6월7일 용인외고 3학년 2반 영어과. 강전욱군(18)은 사파리 스타일 교복 차림으로 자습 중이다. 책상 위에는 노트북과 책이 펼쳐져 있다. 강군이 인터뷰 사진을 찍는 동안 친구들은 그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며 즐거워했다. 여느 고등학교 3학년 교실 같지 않은 밝은 분위기였다. 용인외고 학생들은 3년 내내 같은 반이다. 강군의 반 친구들은 “전욱이는 1학년 때 반장을 했다”고 기자에게 귀띔했다. “우승을 예상했느냐”는 뻔한 질문에 강군은 “언제나 우승을 예상하는 건 한국 양궁팀 정도 아닐까요”라고 위트 있게 대답했다.
“이번 대회에는 예선에만 전 세계적으로 4만 명이 참가했어요. 대회 규모도 크고 부상으로 버킹엄 궁 방문이 주어져 현실과 먼 이야기 같았죠. 영어가 모국어인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워낙 많아서 입상은 기대하기 어려웠어요. 단지 재미있는 경험을 하겠다 싶어서 참가했고 친구도 많이 만들어서 아쉬울 게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마음이 편해서 더 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체험 토대로 쓴 연설문에 관중 호응
‘국제대중연설대회’는 세계적인 영어 말하기 교육기관인 ESU(English Speaking Union)가 세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개최하며 올해가 30회째. 5월23~27일까지 5일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이번 대회 결승의 주제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다(Words are not enough)’였고 준결승 주제는 ‘여행은 가장 좋은 교육(Travel as the best education)’이었다.
강군의 아버지는 건국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이고 어머니는 분당정보산업고등학교 교사다. 세 살 터울 누나는 미국 인디애나주립대 영어교육과에 재학 중이다. 교육자 집안에서 자란 경험은 자연스럽게 그의 연설에 녹아들었다.
“저도 당연히 교육 분야에서 일할 줄 알았는데 교육 봉사활동을 통해 아이들을 가르쳐 보니 제가 가르치는 일을 잘 못하더라고요. 그런 개인적인 경험을 연설에 담았어요. 자기가 잘하는 게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주위 사람의 조언이나 책을 통해 진로를 결정하는 학생들이 많잖아요. 필리핀 사람들의 직업 만족도는 53%뿐이라고 해요. 말로는 충분하지 않으니 인턴십과 같은 경험을 통해 학생들이 진정 원하는 직업을 가지면 좋지 않겠느냐는 주제로 이야기했어요.”
강군은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유치원에 가기 전에, 갔다 와서 늘 영어 노래와 율동이 나오는 비디오와 애니메이션을 봤다. 그의 손이 닿는 곳마다 영어 동화책이 놓여 있었다. 강군의 어머니는 잠들기 전 매일 자녀들에게 책을 읽어 줬다. 영어와 독서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2005년 12월 아버지가 교환교수로 인디애나주 블루밍턴에 가게 되자 중학생인 강군도 따라갔다. 2년여 동안 한국인이 거의 없는 미국 학교에 다니며 공부 외에도 재즈 밴드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육상부원으로 활동하는 등 신나게 생활 했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성격이 활발한 편이라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잘 다가가요. 외국인은 그런 걸 좋아하더라고요. 두려워하지 않고 먼저 다가가면 굉장히 친절하게 대해줘서 좋았어요. 그곳에 오래 살았던 한국인 친구를 만나서 그 친구의 친구를 만나는 식으로 외국인 친구를 많이 사귀었어요.”
용인외고 영어과에 재학 중인 강군에게 영어 공부 비법을 묻자 “특별한 게 없다”며 웃었다.
“결과는 한 만큼 나와요. 아무리 영어를 공부해도 안 된다는 분들은 아마 포커스를 잘못 잡았기 때문일 거예요. 단어가 정말 중요해요. 무조건 외워야죠. 영어를 아무리 잘해도 단어는 무조건 외워야 해요. 책을 읽다가 ‘어, 이 단어 어디서 봤는데’ 싶으면 사전을 뒤적이죠. 책을 많이 읽어 두면 연설할 때 어디선가 읽은 문장이 튀어나오기도 해요.”

“영영사전은 필수, 책과 영화로 표현 연습, 연설엔 웃음 코드 넣어”

용인외고 학생들은 3년 내내 같은 반이다. 강전욱군은 동고동락한 친구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하며 청중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강군은 “시험 기간에는 하루에 단어를 백개씩도 외우지만, 평소에 그런 식으로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전자사전과 구글 사전을 주로 활용하는데 영영사전은 예문이 풍부한 것을 고르라고 권했다. ‘이 단어는 이런 식으로 쓰인다’고 설명한 사전이 초심자에게는 적합하다고. 한 권을 추천한다면 뜻이 정확한 편인 ‘옥스퍼드 사전’을 꼽았다.
“단어 백개를 쭉 써놓고 달달 외우는 게 아니라 예문을 보면서 외워요. 평소에는 책을 활용하고요. 영어 단어에는 유의어가 엄청나게 많은데 써도 되는 경우, 써서는 안 되는 경우 이런 걸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잖아요. 그걸 배우려면 책이 좋아요. 책에 쓰인 용례대로 따라해 볼 수도 있고요. 문법은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게 좋아요. 가장 재미없는 파트잖아요. 말로 먼저 배우면 나중에 틀린 문장을 들었을 때 ‘좀 이상하다’ 싶은 게 있거든요. 외국인에게 말 걸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틀린 문장이라도 계속 말하면 ‘이 문장은 이 부분이 잘못됐다’고 고쳐줘요. 그런 식으로 배우면 기억에도 오래 남고 이해가 잘 되죠.”
강군은 평소 영어로 쓰인 책을 많이 읽는다. 소설과 비문학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을 섭렵하며 연설에 쓸 아이디어를 얻는다.
“처음에는 원숭이 조지가 나오는 ‘큐리어스 조지(Curious George)’ 같은 어린이 책으로 시작했어요. 지금은 조셉 콘라드의 ‘하트 오브 다크니스(Heart of darkness)’,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을 읽고 있어요. 뉴욕타임스나 뉴스위크 같은 비문학도 많이 읽었어요. 비문학의 장점은 풍부한 콘텐츠 덕분에 연설에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지금은 고교 3학년이라 예전처럼 책을 많이 읽지 못하지만 어릴 때 독서를 많이 한 게 이번 대회에서 큰 도움이 됐어요.”



연설은 발음보다 콘텐츠가 중요
영어가 모국어인 학생들과 겨루는 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그는 “영어 연설을 잘하는 데에는 발음이나 외국 생활 경험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흔히 영어를 잘해야 연설을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외국인처럼 영어를 구사할 필요는 없어요. 연설은 콘텐츠가 훨씬 중요해요.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거라 관객의 호응도 중요하고 가끔 농담을 던져 웃길 줄도 알아야 하죠. 연단에 섰을 때 사람들이 호응을 잘 해주지 않으면 당황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잘 대처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사람들과 교감하고 돌발 상황을 넘길 수 있는 순발력이 중요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영어 연설을 한 그는 고등학교 때 본격적으로 영어연설대회에 출전했다. 지난해 12월 한국 예선에서 고등부 대상을 받았다. 영국 런던에서 열린 본선 대회의 주제가 발표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강군은 본선용 원고를 쓰는 데 3~4개월이 걸렸다고 말한다.
“5분짜리 연설은 A4 용지 한 장 반 정도면 충분해요. 말이 느린 사람은 7백자 정도만 써도 되는데 저는 말이 빠른 편이라 8백여 자 분량의 원고를 써서 연습했어요. 쓰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외우는 것은 마음 먹고 두세 시간 투자하면 할 수 있죠. 남이 써준 내용이 아니라 내가 직접 몇 개월을 연구해서 쓴 내용이니까요. 혼자 거울 앞에서 연습하고, 직접 말해 보다가 어색하면 입에 붙는 표현으로 바꾸고 하는 식으로 교정했죠. 연설 자체를 연습한 기간은 2~3주 정도예요.”
연설에서 쓸 자연스러운 표현은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익혔다. ‘프렌즈’ ‘하우스’ ‘모던 패밀리’ 등 유명한 미국 드라마를 보면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도 배울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했다. 강군은 “학교 수업과 인터넷 동영상도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저희 학교는 프레젠테이션 수업을 강조하거든요. 경제 수업에서 ‘독과점시장’에 대해 배우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례를 연구해서 영어로 발표해야 해요. 그러면서 관객과 소통하는 법을 많이 배웠어요.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거라 부담도 적었고요.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영상도 자주 봤어요. 프레젠테이션을 어떻게 하는지, 농담은 어떤 식으로 던지는지, 어떤 부분에서 쉬어야 하는지 등의 기술을 익혔죠. TED 콘텐츠가 교육적이라서 말할 거리도 찾고 영감도 얻었어요. 주제를 하나 잡으면 인터넷 검색으로 추가적인 정보를 찾았고요.”

“영영사전은 필수, 책과 영화로 표현 연습, 연설엔 웃음 코드 넣어”


강군은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에서 한 졸업 연설을 좋아해 몇 번이고 반복해 읽었다. 안철수 박사를 존경해서 그가 나온 ‘무릎팍도사’ ‘피플인사이드’를 챙겨보며 ‘나라면 저런 생각을 청중에게 어떻게 전달할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해도 막상 남 앞에 서는 것이 두렵지 않을까.
“당연히 처음에는 떨리죠. 하지만 내 연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고, 내 말이 옳다고 믿으면 떨리지 않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예요. ‘내가 이 세상에서 말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하고 단상에 서는 거예요. 내 콘텐츠가 좋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확신이 서면 자신감도 생기죠.”
연설하다가 당황스러운 일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하는지 물었다. 그는 “내용을 잊어버릴 때보다 내가 웃기다고 여긴 부분에서 청중이 웃지 않을 때가 훨씬 당황스럽다”며 말을 이었다.
“순발력이 있는 편이라 그런 상황에서는 애드리브를 가미해요. 즉석연설에서 레바논에서 온 친구 ‘오마하’의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레바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오마하에게서 알 수 있다’를 반대로 ‘오마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레바논을 통해 알 수 있다’고 말한 거예요. 사람들이 웃기에 ‘아, 당연히 그럴 리가 없죠’라고 말하며 잘 넘어갔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친구랑 이야기하면 잘못 말해도 그냥 웃고 넘기잖아요. 저는 완벽주의자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요. 연설을 할 때는 굉장히 자유로운 편이에요. 무엇보다 사람은 자기 말이 아니면 당황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몇 개월에 걸쳐 제 손으로 쓴 원고여서 도중에 잊어버릴까봐 두려워하지는 않았어요.”
순발력을 늘리는 팁을 달라고 하자 그는 “개그 프로그램을 보라”고 조언했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유머가 필요하잖아요. 웃기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도 없고요. 저는 미국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즐겨 봐요. 유머도 늘 뿐더러 몇만 명 대중 앞에서 그들이 대처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요. ‘개그콘서트’나 ‘다큐 3일’ 같은 한국 프로그램도 즐겨 봐요.”

봉사활동 하며 사회적 기업 경영 꿈꿔
이번 대회를 통해 그는 무엇을 얻었을까. “크고 무거운 트로피?”라고 말하며 웃던 그는 “세계 각국의 친구를 얻을 수 있어서 정말 좋다”고 말했다. 몰도바부터 칠레, 미국, 캐나다, 멕시코, 호주, 쿠바, 예멘,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이번 대회를 통해 만난 친구들은 국적도 개성도 제각각. 지금도 서로 ‘우리나라에 놀러 오라’며 페이스북 등으로 꾸준히 연락한다.
“결승에서는 6명이 실력을 겨뤘는데 분위기가 훈훈했어요. 누군가를 깎아내리기 위한 공격적인 질문도 없었고, 연설이 끝난 뒤 서로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요. 대회가 끝나고 영국 도심의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저녁식사를 했어요.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이 저를 위해 식당 관계자에게 말해 케이크를 가지고 왔더라고요. 식당에 식사하러 온 백여 명의 외국인이 일면식 없던 저를 위해 자기 일처럼 일어나서 축하해 준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강군은 고등학교 때부터 지적장애인이 생활하는 경기도 성남 한 사회복지시설에서 기부와 봉사를 하고 심장병 어린이에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쳤다. 좌우명이 있느냐고 물으니 “아직 그런 거창한 건 없다”며 “‘참되고 최선을 다하자’가 가훈”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경영학도가 되어 사회적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롤 모델은 애플 CEO 스티브 잡스와 정주영 현대건설 명예회장.
“스티브 잡스는 언제나 새로운 아이디어로 산업을 선도하는 점이 대단해요. 정주영 명예회장이 한 말 중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라는 말이 제게 와 닿았어요. 다들 리더십은 물론이고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 많다는 점에서 존경해요. 저도 나중에 산업을 이끌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을 세우고 싶어요.”

여성동아 2011년 7월 571호
LifeStyle 목록보기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