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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스타의 재발견

악녀의 화신 ‘새와’로 거듭난 박정아 다시보기

“실패한 가수 출신 연기자란 꼬리표 떼기 위해 오기로 연기했어요”

글·김유림 기자 사진·지호영 기자

2011. 06. 15

눈 하나 깜짝 않고 거짓말을 술술 지어내는 한 여자 때문에 지난 8개월 동안 온 국민은 애꿎은 TV를 향해 화를 내야 했다. 시청률 40%를 육박하며 인기리에 막을 내린 KBS 드라마 ‘웃어라 동해야’의 윤새와가 바로 그 주인공. 이번 기회에 제대로 연기 검증을 받은 박정아는 “이제야 연기가 뭔지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한다.

악녀의 화신 ‘새와’로 거듭난 박정아 다시보기


매일같이 얼굴을 보다 보면 누구든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게 마련이다. 얼마 전 종영한 일일드라마 ‘웃어라 동해야’ 역시 처음에는 애간장 녹이는 느린 전개로 비난을 받았지만, 중반에 접어들어서부터는 따뜻한 가족애를 담은 ‘국민 드라마’로 거듭났다. 정애리, 도지원, 강석우 등을 비롯한 중견 연기자들의 노련하면서도 애절한 연기가 무게감을 실어줬고, 젊은 연기자들도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로 각자의 캐릭터에 생명감을 불어넣었다.
특히 악녀 연기를 실감나게 선보인 박정아(30)는 이번 드라마를 계기로 연기자로 다시 태어났다는 평을 들었다. 5월 중순 8개월간의 대장정을 마친 그를 ‘드디어’ 만났다.
촬영이 끝난 지 3일밖에 지나지 않아서인지, 박정아는 여전히 윤새와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었다. 단정하지만 왠지 깍쟁이 같아 보이는 아나운서 머리. 처음 그와 마주했을 때는 드라마 속 윤새와를 대하는 것 같아 (내게 아무런 해코지를 하지 않을 것임에도) 순간 긴장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는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말투로 10년간의 연예계 생활을 들려줬다. 그의 밝고 화사한 모습 이면에는 남모르게 흘린 눈물과 상처도 있었다.
드라마를 마친 지금, 그는 아쉬움과 후련한 마음이 동시에 든다고 했다. 아직도 드라마가 끝났다는 게 실감 나지 않을뿐더러 그 어느 때보다 배움이 큰 작품이었기에 ‘더 잘할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고. 그는 “진짜 새와가 되기 위해 죽어라 연습했다”고 말한다.
“혹여나 저 때문에 다른 연기자들이 피해를 볼까 봐 걱정을 많이 했어요. 한두 달 하고 끝나는 것도 아니고 반년 넘게, 그것도 매일 시청자들을 찾아가는 일일드라마니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촬영장에서 아주머니들한테 등짝도 맞아보고, 길을 걷다가 난데없이 ‘그렇게 살지 말아~’ 하는 고성도 들었지만 기분 나쁘지는 않아요(웃음). 극중 인물과 저를 동일하게 봐주시니 오히려 고마운 일이죠. 그런데 언젠가 한번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는 못 보겠다’는 말씀을 하셨어요(웃음).”
하지만 처음부터 새와라는 인물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대본을 읽다가 도저히 보고 싶지 않아 내려놓기를 수십 번. 안나(도지원)와 제임스(강석우)의 만남을 방해하는 등 온갖 못된 짓을 하는 새와가 그 자신도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와가 미울수록 더 열심히 대본을 보며 새와를 사랑하려 애썼다고 한다.
“모든 시청자들이 느끼신 것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새와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열 번 정도 고비가 찾아왔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새와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주겠나’ 하는 연민을 가지려 애썼죠. 결국 나중에는 대본을 읽으면서 새와가 너무 안쓰러워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행복이 바로 옆에 있는데 그걸 모르고 바보같이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 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안타까웠거든요. 심리상태도 항상 초조하고 불안한데, 드라마를 하는 내내 저도 그런 긴장감을 안고 있어야 해서 많이 힘들었어요.”
자연스러운 눈물 연기도 그가 새와를 마음 깊이 끌어안았기에 가능했다. 그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상태에서 한 생명을 품고 있는 새와의 처량한 신세에 저절로 눈물이 났다고 한다. 박정아는 “같은 여자로서 새와가 불쌍하고, 아직 임신을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모성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고 말한다.
8개월 동안 동고동락한 선배·동료 연기자들과도 정이 많이 쌓였다. 동갑내기인 오지은과 대여섯 살 아래인 이장우, 지창욱과는 사석에서도 자주 만나 속 깊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일에 대한 열정이나 연기자로서의 위치가 비슷해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서로를 격려해줬다고 한다. 박정아는 부족한 자신을 따뜻하게 이끌어준 선배 연기자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밝혔다. 특히 극중 시어머니로 나온 정애리를 자신의 ‘멘토’라 밝혔다.

악녀의 화신 ‘새와’로 거듭난 박정아 다시보기


“정애리 선생님의 집중력과 연기를 대하는 자세는, 후배로서 정말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카리스마도 있고, 차가울 것 같지만 내면은 정말 아름다운 분이세요. 한번은 제가 너무 긴장한 탓에 대사를 자꾸 틀리고 NG를 수없이 냈는데, 선생님이 저를 말없이 안아주시더니 귓속말로 기도를 해주는 거예요. 덕분에 마음이 많이 편해졌고, 힘도 났어요.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감사하다는 말씀도 제대로 못 드려 죄송해요.”

첫 드라마 실패로 연기 의욕 잃어
댄스 그룹 ‘쥬얼리’로 활동하던 중 2004년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로 처음 연기에 발을 들여놓은 박정아는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씩 연기자로서의 자질을 갖춰나갔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는 마치 막 걸음마를 뗀 어린아이처럼 불안하고 미숙한 모습이었는데, 그때 받은 상처 때문에 다시는 연기를 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드라마 한 편으로 갑자기 안티 팬이 급증했어요. 나를 이렇게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충격이었죠. 사실 그 전까지는 저를 싫어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기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또 결과가 좋지 않았던 연기 경력이 다른 일에도 악영향을 미치면서 점점 자심감을 잃어갔어요. 다시는 연기를 하고 싶지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안 들었죠. 드라마나 영화 출연 섭외가 들어와 미팅 자리에 나가도 마음속으로는 ‘제발 되지 말아라, 되지 말아라’ 하고 되뇌었어요. 그러니까 정말로 안 되더라고요(웃음). 결국 지난해 ‘검사 프린세스’로 다시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 6년이란 시간이 걸렸어요.”
‘검사 프린세스’에서 차분한 연기를 선보인 박정아는 그것을 계기로 연기에 대한 자신감을 조금씩 회복했다. 이후 ‘웃어라 동해야’ 출연 섭외를 받고 뛸 듯이 기뻤다고 한다. 두렵다고 피하기보다는 직접 부딪쳐서 몸으로 익히고 배우자는 마음의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다시 연기를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뭘까. 그는 “실패한 가수 출신 연기자라는 오명을 벗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20대를 돌아보면 바쁘기만 했던 것 같아요. 가수로 활동하면서 예능 프로그램에도 수시로 출연하고 방송 3사 MC에, 또 연기까지. 이런 저를 두고 혹자는 ‘만능엔터테이너’라 불러주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된 거죠. 어릴 때는 뭐든 열심히 하는 게 좋은 줄 알고 눈앞에 놓인 일은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었는데, 나이가 드니까 뭔가 일을 할 때는 하나에 집중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어요. 그래서 노래와 연기를 철저히 구분하기로 했고, 당분간은 연기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사실 가수 출신 연기자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실패한 가수 출신 연기자’를 꼽는 기사에 매번 제 이름이 거론되는 것도 정말 싫더라고요. 보란 듯이 연기자로 재평가받고 싶었고, 그렇게 되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어요.”
그렇지만 그가 가수로서의 꿈을 버린 것은 아니다. 2009년 쥬얼리에서 탈퇴했지만 언제든 좋은 음악이 찾아왔을 때, 노래하고 싶을 때 다시 마이크를 잡을 생각이다. 연기와 노래를 병행하지 않을 뿐, 언제든 가수 활동에 대한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그는 쥬얼리로 데뷔하기 전 카피 밴드(아마추어 뮤지션들이 취미로 하는 밴드)에서 보컬로 활동하며 절실한 마음으로 가수의 꿈을 키웠다.
“그때 함께 음악 했던 친구들은 제가 댄스 그룹으로 활동하게 되자 많이 놀랐어요. 평소 제 성격과 음악적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들은 제가 록을 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저 역시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제가 거울 앞에서 밤새 춤 연습을 하고 있더라고요(웃음). 처음 뜻했던 음악을 하진 못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원하던 가수가 됐고, 쥬얼리로 많은 사랑도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앞으로는 제 색깔이 담긴 음악, 제 이야기를 노래하고 싶어요.”

바쁘게 보낸 20대, 이제부터는 나를 사랑하며 살고파



악녀의 화신 ‘새와’로 거듭난 박정아 다시보기


박정아는 올해 서른이 되면서 한 가지 다짐한 게 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로 한 것. 20대 때는 자기애가 부족했다고 고백하는 그는 “앞으로는 나 자신을 잘 돌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 첫 번째로 건강을 잘 챙기겠다고 다짐한다.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살이 많이 빠졌어요. 원래 마른 체질이지만 그동안 타고난 체력만 믿고 너무 관리를 안 했던 것 같아요. 여자 연예인 중에 저처럼 과일을 안 먹는 사람은 몇 명 안 될 거예요(웃음). 먹기 싫은 것도 먹고, 하기 싫은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저 자신을 아름답게 가꿔가고 싶어요. 그러고 보면 선배들 말이 다 맞더라고요. 10년 전 처음 데뷔했을 때 지금 제 나이 또래 선배들이 ‘어려서부터 건강관리를 잘해야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다’고 조언을 하셨는데, 막상 그때는 그 말이 귀에 잘 안 들어왔어요.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건강관리 해야죠. 참,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제가 20kg이나 감량했다는 기사가 났는데, 그건 과장된 얘기예요(웃음).”
박정아는 10년 동안 연예계에 몸담았지만 연예인 친구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말 많은 동네’에서 혹여나 구설에 오를까, 연예인들과의 사적인 모임을 자제해온 탓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2년 전 남성 듀오 그룹 ‘리쌍’의 멤버인 길과 열애 사실이 알려졌고, 최근 결별을 선언했다. 이와 관련해 박정아는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미련할 정도로 솔직한 편이라 아예 얘기를 하지 않는 편이 나은 것 같다. 선배들이 연애는 많이 하더라도 절대 걸리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더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그는 “솔직한 마음을 보인다고 해도 그 마음이 백 퍼센트 대중에게 다가가지 않더라. 개인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더 그렇다”고 말했다.
서른 줄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결혼에 대한 고민도 생길 법한데, 그는 아직까지는 외로움도 결혼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싱글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할수록 일에 대한 욕심이 커진다고.
“누구는 결혼 전에 연애를 많이 해야 한다고 하는데, 솔직히 저는 일(연기)을 많이 하고 싶어요. 일과 사랑에 빠지는 기분이 어떤 건지 한번 체험해보고 싶어요. 연기자로 승부를 건 만큼 ‘소름 끼치게 연기를 잘한다’는 말을 꼭 듣고 싶거든요. 이제 더 이상 여러 갈래 길 앞에서 방황하지 않고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리고 저 자신에게도 떳떳할 수 있는 그런 연기를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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