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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와-세시봉 친구들’ 탄생 주역 작가 김명정 방송 뒷얘기

“장수 프로에 자극 주려 시도한 ‘세시봉 친구들’ , 앞으로도 인간에 대한 애정 바탕으로 시청자와 교감하고 싶어요”

글·정혜연 기자 사진·조세일, MBC 제공

입력 2011.04.15 16:04:00

오랜 벗들의 만남은 잊었던 추억을 불러일으켜 진한 여운을 남겼다. MBC ‘놀러와’ 특집 ‘세시봉 친구들’은 방송 이후에도 한동안 ‘감동이었다’는 평을 들었다. ‘세시봉 친구들’의 탄생 뒤에는 김명정 작가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 그저 좋아서 한 기획이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킬 줄 몰랐다며 겸손하게 말하는 그에게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겼다.
‘놀러와-세시봉 친구들’ 탄생 주역 작가 김명정 방송 뒷얘기


아이 엄마가 맞나 싶을 정도로 터프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에 놀라고, 대화하는 내내 개그맨 뺨치는 화술로 웃음 터지게 만들어 또 한 번 놀랐다. MBC 예능 프로그램 ‘놀러와’ 김명정 작가(38)와의 만남은 ‘놀러와’를 시청하는 것만큼이나 유쾌했다.
3월 중순, 김 작가가 이례적으로 MBC와 1년 계약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 해에도 프로그램이 수십 개씩 생겼다 사라지는 방송계 특성상 작가와 1년씩 계약하고 일을 맡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그의 계약 소식은 화제가 되기 충분했다. 바쁜 일정 속에 어렵사리 만난 김 작가는 “20년, 30년 일해도 조명받지 못하는 작가도 많은데 이리저리 떠돌던 내가 이런 대우를 받게 돼 민망하다”고 말했다.
“성실하게 일한 건 제 인생에서 ‘놀러와’가 처음이에요. 성질이 욱하는 편이라 방송작가로 일하면서도 언제나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었거든요. 20대 때 한 일이라고는 낮술 마시고, 하루 종일 음악 들으며, 친구들과 모여 ‘흐트러짐 없이 앉아서 자기’ ‘시대별로 가요 훑기’ 같은 내기를 했던 기억밖에 없어요. 그 추억을 되살려 ‘세시봉 친구들’ ‘300회 특집-전설의 MC’ 등을 기획했는데 운 좋게 잭팟이 터졌죠. 아무리 생각해도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어요(웃음).”
‘놀러와’에서 3년 동안 일한 김 작가는 각종 기획 아이디어를 냈다. 그중 지난해 추석 특집으로 방송된 ‘세시봉 친구들’은 몇 달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방송을 기피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송창식·윤형주·김세환을 한꺼번에 앉혀 놓자 예능국장까지 놀라워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어려워도 멋모르는 손자는 할아버지 수염을 잡아당기기도 하잖아요. 제가 그런 손자 꼴이었죠(웃음). 지금 방송국 윗분들은 20·30년 전에 프로그램을 만들던 분들이기에 제가 섭외한 인물들이 선망의 대상이었을 거예요. 방송국에선 ‘섭외 불가능’이라 생각하는 인물이 몇몇 있는데 ‘세시봉 친구들’이 그중 일부였죠. 시도도 안 해보고 포기하기보다 일단 전화부터 걸어 무작정 매달렸어요.”
조영남을 제외하고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꺼리던 송창식·윤형주·김세환은 그의 전화를 받고 하나같이 출연을 거절했다. 그럴수록 더 간절해진 김 작가는 ‘세시봉 카페’를 이야기하며 그들의 노래를 하나씩 부르곤 “당신들을 진심으로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마음이 움직인 ‘세시봉 친구들’은 어렵사리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승낙했고, 오랜 친구들과 청년시절로 돌아간 듯 편하게 녹화를 마쳤다.
‘세시봉 친구들’ 기획특집을 기점으로 김 작가는 제작진의 믿음을 얻었다. 그전까지 나이 많은 게스트 출연에 부정적이던 이들도 그가 어떤 시도를 해도 난색을 표하지 않게 됐다. 이후 그는 ‘전국노래자랑’의 장수MC 송해를 섭외, 300회 특집마저 성공시킨 점을 인정받아 지난 연말 ‘연예대상’ 작가상까지 받았다. 수상 소감에서 “4년제 대학을 나오지도 못하고, 월세방을 10년간 전전하면서도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작가라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고 말해 그가 그동안 얼마나 노력했을지 짐작케 했다.

한번 모험에 성공하니 MC까지 한마음
‘놀러와’는 올해로 8년을 맞았다. 유재석·김원희 콤비의 조합으로 친근한 토크쇼를 선보이던 ‘놀러와’는 어느 순간부터 기획특집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 뒤에는 김 작가의 오기가 있었다.
“지난 3년 동안 온 마음을 다해 기획한 특집이 10개가 채 안 돼요. 나머지는 스타들 초대해서 이야기 듣고, 드라마·영화 홍보하는 선에서 무난하게 진행했죠. 8년 전에는 전부 그런 포맷이었는데 딱 ‘36평 아파트’ 같은 이미지더라고요.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은 대한민국 중산층의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처럼 무난했죠. 그렇다 보니 시청자도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면 보고, 안 나오면 안 보는 프로그램’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놀러와-세시봉 친구들’ 탄생 주역 작가 김명정 방송 뒷얘기

1 김명정 작가가 애착을 갖고 밀어붙인 300회 ‘전설의 MC특집’은 방송국 안팎으로 크게 호평을 받았다. 2 ‘세시봉 친구들’은 열띤 호응에 힘입어 후속으로 ‘세시봉 콘서트’를 열었고 설 특집으로 편성돼 대박을 터뜨렸다.



그러던 중 200회 특집을 끝내고 김 작가는 새로운 시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당시 200회 특집은 송윤아·강혜정·엄지원 등을 불러 진행했는데 김 작가와 친분이 있던 송윤아는 발 벗고 나서 자신의 이미지를 망가뜨릴 정도로 몸을 던져줬다. 하지만 시청자 반응은 “딱 ‘놀러와’스럽다”는 선에서 그쳤다.
“뻔한 방식을 오래 고집하다 보면 나른해지죠. 자극을 주고 싶던 차에 첫 기획으로 ‘무브먼트 특집’을 시도했어요. JK김동욱, 바비킴, 리쌍을 불러 시청률 생각하지 않고 신나게 녹화했어요. 기존 제작진은 ‘음악만 하는 사람들인데 재미가 있을까’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친분이 있던 전 그들이 얼마나 웃긴지 알기에 개의치 않았어요. 다행스럽게도 반응이 좋았고 이후 호시탐탐 그런 특집을 시도하기 시작했죠.”
‘악역 특집’ ‘성우 특집’ 등이 그의 머리에서 나온 기획들이다. 이런 특집은 섭외가 쉬울 것 같지만 오히려 더 어려웠다고 한다. 출연시킬 만한 명분이 없는 데다 그들이 예능 프로그램 자체를 불편해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악역을 주로 맡던 손병호·윤제문은 이미지와 달리 순수해 ‘우리더러 나와서 웃겨달라는 건가?’ 하며 의아해했다고.
“어렵게 승낙을 받고도 대본으로 풀기가 힘들었어요. 왜 악역만 하시냐고 묻자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역할이 없어서 그렇다’고 했고, 팬에 얽힌 에피소드를 말해달라고 하자 ‘하나도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모습에서 어떤 연민을 느꼈고 재미뿐만 아니라 그들의 심정을 전할 수 있겠다 싶었죠. ‘성우 특집’을 준비할 때도 성우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마당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뭐 하겠냐며 달가워하지 않는 분이 많았어요. 직업에 회의를 느낄 정도라고 하셨을 때 씁쓸함을 포착했고 그런 점을 불식시키고자 애썼죠. 다행히 두 특집 모두 반응이 좋았고 끝나고 다들 고마워하셨어요.”
김 작가가 해낸 이런 특집들이 매번 호의적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다. 그가 재미있을 거라 생각하고 낸 기획을 보고 ‘너무 구식’이라며 반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300회 특집에 ‘장수MC 송해를 출연시키면 어떠냐’고 하자 하나같이 말렸다고. 그런 말을 들을수록 그는 묘한 오기가 발동했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송해 선생님 찾아가서 낮술 마시며 섭외하고 싶다고 말했죠(웃음). 신정수 PD한테 전화를 걸어 하고 싶다고 조르자 원래부터 의견이 잘 맞았던 그는 ‘일단 나갈 만한 시기를 보자’며 반쯤 승낙을 했고요. 사실 MC들도 ‘녹화가 한나절이나 걸리는데 송해·이상용·이상벽 등 연로하신 분들 건강도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며 그리 찬성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녹화 당일 유재석씨는 그분들 컨디션 챙기느라 바빴지만 다들 정정하신 터라 별 탈 없이 녹화를 마쳤죠. 기획을 할 때마다 ‘너무 마니아스럽지 않은가’ 하며 불안한 기색을 보이던 MC들도 그 300회 특집을 기점으로 완전하게 한마음이 된 것 같아요.”



이혼 후 싱글맘으로서 인생 정면 돌파하며 단단해져
김명정 작가와 대화를 할수록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을 것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낮술을 먹고 무작정 전화 걸어 섭외한 과정이며, 일반적인 사람들과 반대로 가는 습성까지, 인생이 온통 불규칙투성이였다. 그 스스로 학창 시절을 회상하며 “규칙적으로 한 거라곤 불규칙적으로 산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학교로 가려면 500번 버스를 타야 하는데 1번 버스가 오면 ‘저건 어디로 가는 버스지?’하며 무의식적으로 올라타 끝까지 가곤 했어요. 그런 식으로 학교를 빠진 날이 숱했는데 담임선생님에게서 ‘이제 한 번만 더 결석하면 퇴학입니다’라는 전화가 오면 놀란 엄마가 제 손을 잡고 학교로 뛰어 가셨죠. 겨우 졸업을 하고 서울예대에 들어가서도 기인으로 살았어요. 날씨 좋다며 괜히 창밖 나무를 타고 4층에서 1층으로 내려갔죠. 스스로도 ‘내가 미친 건가?’ 싶었어요(웃음).”
김 작가는 자신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조차 모른 채 그저 자유롭게 하고픈 대로 살았다. 그러던 중 이탈리아 등반가 라인홀트 메스너의 여행책을 읽고 전환점을 맞았다. ‘세상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떠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만으로 나뉠 뿐, 자신 또한 떠나기 전 두려움을 느낀다’고 고백한 메스너의 글귀가 마음을 울린 것. 그는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정답을 가지고 사는 건 아니다”는 걸 깨달은 후 자유로운 기질을 어디로든 표출하자 싶어 글 쓰는 일을 선택했다.

‘놀러와-세시봉 친구들’ 탄생 주역 작가 김명정 방송 뒷얘기


94년 한 주간신문에 입사하며 기자로 일했다. 하지만 휴머니즘이 결여된 것 같은 기자의 일이 체질에 맞지 않았다. 우연히 방송작가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매력을 느껴 97년부터 MBC에서 본격적으로 작가 일을 시작했다. TV ‘전파견문록’ ‘느낌표’ ‘쇼 음악중심’,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등 각종 프로그램을 거치며 직장과 가정에서 많은 일을 경험했다.
그는 99년 ‘이브의 성’이란 프로그램을 하다 당시 인기 MC와 심하게 말다툼을 하면서 홧김에 일을 그만두고 남자친구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다시 방송국에 들어가 종갓집 며느리로서 작가 일을 하느라 정신없던 중 남편이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이혼을 했다. 얼떨결에 싱글맘이 된 그는 세 살배기 아이를 키우면서 난생처음으로 자신의 삶에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목표가 불분명할 때는 대안이 많다는 생각에 타협하기보다 충돌하는 쪽을 택했죠.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는 그러질 못하겠더라고요. 한번은 아이 맡길 곳이 없어 정육점에 들어가 ‘지갑을 놓고 와서 잠깐 다녀올 데가 있으니 아이 좀 봐주세요’라고 말한 뒤 밤 10시쯤 데리러 갔어요. 주인이 놀라서는 ‘안 오는 줄 알고 경찰에 신고할 참이었다’며 자고 있으니 데려가라고 한 적도 있죠. 어린 아들이 그런 일에 익숙해졌을 정도로 비슷한 에피소드가 1만 개도 넘어요.”
힘들게 아이를 키우며 김 작가는 단단해지고, 덜 비겁해졌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일을 할 때도 충돌하기보다 손 내미는 쪽을 택했다. 성실해지기로 마음먹었을 때 기적같이 ‘놀러와’를 만났고, 자신을 내 맘같이 이해해주는 신정수 PD를 만났으며, 프로그램을 위해 몸 사리지 않는 유재석·김원희 두 MC를 만났다.

언젠가 시트콤 도전하고 싶어
힘든 시절을 이겨내는 데 지지대가 돼준 건 무엇일까. 그는 “작가의 신념, 그리고 송지나 작가가 있어 견딜 수 있었다”며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지나 언니와는 인연이 깊어요. ‘인간시대’라는 휴먼 다큐를 참 좋아했는데 자막에 ‘극본 송지나’라 적힌 걸 보고 그 이름이 머릿속에 박혔죠.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아주 어릴 때 ‘11시에 만납시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최초의 배낭여행을 했던 여대생으로 지나 언니가 출연한 게 생각이 났죠. 운명처럼 느껴졌고 기자 생활을 하던 중 언니가 운영하는 천리안의 모임에 들어가 친분을 텄어요. 이후 ‘모래시계’가 대박이 났고 언니 집에 놀러 갔다가 3층 전원주택에서 사는 걸 보고 ‘작가도 성공하면 저런 데 사는구나’ 싶었죠(웃음).”
김 작가는 송지나 작가에게서 인격적으로 천재성을 느꼈다고 한다. 삶을 너무나도 긍정적으로 살기에 시장에서 콩을 팔아도 세상에 이름을 떨칠 것만 같았다고. 그 에너지를 얻고 싶어 송 작가가 살던 경기도 일산으로 이사까지 했다. 힘들 때면 그의 집으로 가 불 켜진 창문을 가만히 바라보면 기운이 났다. 송 작가는 그에게 정신적으로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줬다.
“20만원짜리 월세방에 살 때였어요. 하루는 술을 마시고 언니를 저희 집으로 초대했는데 그걸 보고 적잖이 당황하더라고요. 경제적인 상황 같은 건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까 몰랐던 거죠. 안타까웠는지 ‘태왕사신기’ 보조작가로 거둬주더라고요. 하지만 그보다 방송작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준 데 고마움을 느껴요. 언니는 늘 ‘방송은 결국 사람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말해줬거든요. 그 말이 가슴 깊이 박혀 일을 할 때도 절대로 트릭 쓰지 않고, 말만 잘하면 섭외할 수 있는데도 힘들게 돌아갔어요. 뒤돌아보면 그 말은 제게 덫이 되기도, 닻이 되기도 했어요.”
김명정 작가는 ‘놀러와’의 메인작가로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언젠가 시트콤을 써보고 싶다고 한다. 과거 몇 차례 시트콤을 쓰기는 했지만 고배를 마신 아픈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균형감각이 생겨 조절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다른 작가들에게 정말 창피한 말이지만 예전에는 정말 변덕이 심해 아니다 싶으면 침 뱉고 도망가는 인생을 살았어요. 지금 제 짝꿍(현재 남자친구)은 ‘어떻게 너처럼 이것저것 하다가 덜컥 상을 받을 수 있냐. 상 받던 날 내가 더 창피했다’며 놀리는데 저도 동의하는 부분이죠(웃음). 성실하게 살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놀러와’를 하면서 사람들의 진심이 조금씩 보이더라고요. 그런 속마음을 조율해 부대끼고 어우러지는 과정 속에서 웃음을 전하는 시트콤을 언젠가는 꼭 써볼 생각이에요.”

여성동아 2011년 4월 5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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