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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화제의 사건 뒷얘기

만삭 의사부인 의문사

친정 vs 남편 엇갈리는 입장

글·정혜연 기자 사진·현일수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11. 03. 17

출산을 한 달 앞둔 임신부가 자택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전문의 시험을 앞두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던 남편은 장모의 연락을 받고 집으로 뛰어갔으나 이미 아내는 숨진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남편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를 두고 친정 측과 남편 측은 각각 답답하고 억울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만삭 의사부인 의문사


1월14일 서울 마포 한 오피스텔에서 만삭의 임신부 박씨(29)가 화장실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시신은 옷을 입은 채 욕조에 목이 꺾여 누운 상태였고, 서울의 한 대학병원 소아과 레지던트인 남편 백씨(31)가 아내를 처음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시신은 곧바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으로 옮겨갔고 2월1일 국과수는 아내 박씨의 사인이 ‘목 눌림에 의한 질식’이라고 발표했다.
수사를 담당한 서울 마포경찰서는 시신의 손톱 밑에서 발견된 피부조직의 DNA가 남편 백씨의 것과 일치하는 점, 백씨의 팔에 손톱으로 할퀸 상처가 여럿 남아 있는 점, CCTV 확인 결과 외부 침입의 흔적이 없고 사라진 물건 등이 없는 점을 토대로 남편 백씨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2월3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영장실질심사에서 “만삭의 임신부가 쓰러지며 목이 자연스레 눌려 질식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그러자 경찰은 “충분한 물증과 심증이 모두 확보된 상황에서 납득할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 보강수사 후 다시 한 번 구속영장을 신청하겠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이후 2월13일 경찰은 현장 검증을 마친 국과수로부터 “비산흔을 찾을 수 없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비산흔이란 몸에 상처가 발생했을 때 혈액이 특정 방향으로 흩뿌려진 흔적을 가리킨다. 만약 숨진 박씨가 남편 백씨의 추측대로 “어지러움을 느끼고 넘어져 사고로 숨진 것”이라면 욕실에서 비산흔이 발견돼야 마땅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는 것. 또한 국과수는 박씨의 정수리 등에서 흐른 피가 욕조 벽을 타고 흘러내린 형태의 핏자국을 확보해 “박씨가 다른 곳에서 외상을 입고 타살된 뒤 욕실로 옮겨졌다”는 소견을 첨부, 남편 백씨의 범행 가능성을 의심하는 경찰의 주장에 무게를 실었다.

“갑자기 딸 잃어 하늘이 무너지는 심경” vs “딸 잃은 한을 무고한 사위에게 풀려는 것”
숨진 박씨의 부모는 멀쩡하던 딸을 잃고 심한 충격과 실의에 빠진 상태다. 2월 중순 전화통화에서 박씨의 아버지는 “그날 이후 우리 가족은 말도 못할 지경”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딸이 죽은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가족은 늘 공기처럼 옆에 있는 줄만 알았지 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 친구(사위)에게 연락을 받고 ‘이건 아니다.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는 생각만 들었어요. 정신없이 뛰어갔는데 그 친구 얼굴에 눈에 띄는 상처가 나 있었고, 팔 여기저기도 상처투성이였어요. ‘싸웠니?’라고 물으니 ‘제가 일방적으로 혼났죠’ 그러더군요. 경찰한테 싸우지 않았다고 말했다는데 상처만 봐도 싸웠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죠. 또 가려움증 때문에 긁었다는데 직접 보면 긁어서 난 상처가 아니라 파여서 피가 날 정도였어요.”

만삭 의사부인 의문사

부인 박씨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부부가 함께 살았던 마포 오피스텔 전경.



아버지 박씨는 사위에 대해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사위’라고 칭하자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다. ‘그 친구’라고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백씨에 대해 “가족으로 맞아들인 이후 2년이 지났지만 얼굴을 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성격상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보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사위가 게임을 좋아한 탓에 결혼 후 딸과 평소에도 자주 다퉜고, 딸에게서 전화가 걸려와 “스트레스 받을 정도”라며 하소연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사건 당일 사위의 몇 가지 행동이 이해가지 않는다고 했다.
“평소 그 친구가 저희에게 직접 전화를 건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장모님, 어제 시험을 잘 봤습니다’라는 말을 했다는 거예요. 그때가 오전 9시 정도로 우리 딸이 살아 있었다면 출근을 했을 시간이었어요. 저로선 ‘안심을 시키고 시간을 벌려고 전화를 한 것인가’ 싶을 정도로 의심이 가는 부분이죠. 또 전문의 1차 시험은 개인적으로 치르지만 2차 시험은 그룹 스터디로 공부를 해야 시험을 치를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에 혼자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는 게 이해되지 않아요. 거기다가 상식적으로 전날 시험을 치른 사람이 이튿날 새벽 3시까지 게임을 했다면 피곤해서라도 집에서 쉬었을 텐데 왜 굳이 도서관에 갔는지….”
죽은 박씨는 경기도 분당에 있는 한 영어유치원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이날 평소 같으면 오전 8시에 출근했을 박씨가 모습을 보이지 않자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그의 학원 동료는 오전 8시50분경 박씨에게 연락을 했고, 받지 않자 오전 9시30경부터는 남편 백씨에게 연락했는데 그의 전화는 꺼져 있었다. 이후 학원 동료는 오후 2시경 박씨의 친정으로 연락을 했고 친정 엄마는 사위가 전화를 받지 않아 문자를 남겼다. 마침내 문자를 확인한 남편 백씨는 오후 4시46분 장모에게 전화를 걸어 박씨가 출근하지 않았다는 말을 전해 듣고 집으로 가 시신을 발견해 오후 5시경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한다. 박씨의 아버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46분까지 사위의 행방이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리고 박씨는 사위인 백씨가 경찰에서 숨진 딸의 건강상태를 두고 “고등학교 때도 고도비만이었고 평소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아내가 음식도 잘 챙겨 먹지 않았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 강하게 반박했다.
“만삭인 임신부가 마포에서 경기도 분당 직장까지 왕복 2시간 넘는 거리를 자가 운전해서 다녔다면 얼마나 건강했을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평소에도 우리 딸은 굉장히 체력이 좋았어요. 책임감도 강하고 일에 대한 애착도 커서 출산 예정일인 2월12일을 보름 앞두고 휴직하기로 약속한 상태였죠. 저쪽에서 사고사를 주장하기 위해 ‘빈혈이다. 건강상의 문제다’라고 하는데 전혀 그런 문제는 없었습니다.”
한편 남편 백씨의 형은 “사위가 딸을 죽였다고 오해한 장인 장모가 딸을 잃은 한을 무고한 동생에게 풀려고 한다”며 답답한 심경을 표했다. 이어 그는 경찰 수사 결과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날 백씨의 몸에 난 상처를 두고 그는 “동생 이마의 상처는 물을 마시기 위해 컵을 꺼내려고 주방 찬장을 열다가 났고, 양 팔뚝의 상처는 시험 스트레스 때문에 팔짱을 낀 채 손으로 긁다 보니 생긴 것이다. 평소에도 동생은 피부가 건성이라 건조한 날이면 자주 긁곤 했다”고 설명했다.
“제수씨 손톱 밑에서 동생의 DNA가 나왔다고 하는데 등을 긁어주다 낀 각질에서도 발견되는 거거든요. 싸웠다면 아마도 살집이 손톱 밑에 있었겠죠. 옷에서 발견된 혈흔도 경찰은 ‘혈흔’이라고 표현하지만 불과 1~2mm 정도의 핏자국으로 뾰루지를 짠 뒤 고름과 섞여 나온 피가 묻은 정도의 생활흔이에요. 이렇게 언론과 인터뷰를 계속해도 저희 쪽 주장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경찰 쪽에서는 계속 강압적으로 나오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에요. 경찰이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한다는데 그래봐야 또 기각될 거라고 보기 때문에 결과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제 동생을 용의자로 볼 수 없겠죠.”
남편 백씨는 변호사를 선임해 경찰 조사에 임하고 있으며, 숨진 박씨의 시신은 남편 백씨가 근무하는 대학병원 안치실에서 태아와 함께 장례 치를 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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