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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제2의 인생

국내 최초 이혼 전문 잡지 창간 이종민 대표 허심탄회 인터뷰

글·이혜민 기자 사진·이기욱 기자

입력 2011.03.17 10:51:00

한 해 평균 이혼하는 부부가 12만 쌍에 달하지만 여전히 이혼녀, 이혼남이라는 ‘주홍글씨’ 때문에 괴로워하는 ‘돌싱’들이 많다. 이들을 위해 이혼 문제 전문 잡지를 창간한 이종민씨를 만나 남다른 일을 벌인 속사정을 들어봤다.
국내 최초 이혼 전문 잡지 창간  이종민 대표 허심탄회 인터뷰


“언론에서 이혼 잡지를 만든 저의 개인사에 주목하니까 당황스럽네요.”
새로운 잡지의 발행인으로서 인터뷰를 하게 됐으니 밝게 웃을 법도 하건만 월간지 ‘이혼이야기’를 펴낸 프리덤하우스 이종민 대표(51)는 그렇지 않았다. 잡지를 만들게 된 개인적인 이유를 묻자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애써 말을 아꼈다. 하지만 창간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잡지를 만들게 된 ‘진짜 이유’를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종민씨가 ‘잡지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이혼한 직후인 2000년부터. “당시 상황을 어느 누구와도 상의할 수 없었다”는 그는 “이혼한 사람들을 위한 정보마저 찾기 어렵자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털어놓았다.
“친인척을 통틀어 이혼한 사람이 저밖에 없으니까 제 상황을 이해해주는 가족이 없었어요. 친한 친구들도 만날 때뿐이지 진정한 위로가 되지는 않았고요. 그렇다고 이혼한 친구를 만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제 자신이 이혼했는데도 왠지 그들은 불성실했기 때문에 이혼했을 거란 편견이 있었거든요. 물론 이혼 커뮤니티에 고민을 털어놓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이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친한 척하고 지내는 것도 싫었고, 만남이라는 ‘저의’를 갖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여겼죠.”
자연히 그는 고립됐다. 하지만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짐이 너무 컸다. 오랜 시간 의지해오던 사람과 단박에 인연을 끊어 삶의 회의가 밀려온 데다 아이들이 방황하기 시작하자 어떻게 키워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혼 당시 중학교 2학년생인 큰아들은 줄곧 수학경시대회에서 입상하던 우등생이었지만 공부와 담을 쌓아갔고, 초등학교 6학년생인 작은아들도 학습 부진아가 됐다. 그러자 그는 양육과 경제활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압박감 때문에 잠 못 이룰 때가 많았다.“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으면 아이들을 키우는 데 문제가 없을 줄 알았죠.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큰아이가 밤만 되면 남의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바람에 검찰청까지 같이 간 적이 있어요. 그때 검사님께 ‘이제부터는 충실한 아빠가 돼 가능한 한 아이들과 함께 지내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일을 계기로 자녀 양육권을 가진 부모에게는 그만 한 책임이 뒤따른다는 걸 실감했죠. 당시 전시 기획을 하느라 자주 해외 출장을 간 데다 제 상황을 인정하는 게 싫어서 집에 가는 걸 꺼렸지만 그 뒤로는 좀 달라진 것 같아요.”

폭주족 된 아들 보며 양육권의 책임 실감
하지만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기 시작했다고 해서 무 자르듯 문제가 단칼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당한 뒤로는 대인기피증이 생긴 나머지 급기야 숨어 지내는 삶을 택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혼의 원인 제공을 남자가 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아요. 남자가 바람기가 많아 불륜을 저지르거나 아내를 학대해서 이혼했을 거라며 수군대는 거죠.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모든 사람들이 제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사람들 만나는 것이 두려워졌어요. ‘하이서울페스티벌’에서 군인요리경연대회를 주최하며 새로운 요리대회의 지평을 열기도 했지만, 사람 만나는 걸 무서워하게 되니까 전시 기획도 더 이상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면서 사업을 자연스럽게 접었는데, 그 과정에서 저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나가면서 이종민이란 사람의 신뢰성마저 금이 갔죠.”

국내 최초 이혼 전문 잡지 창간  이종민 대표 허심탄회 인터뷰


당시 그가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술밖에 없었다. “술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그는 많게는 하루에 소주 13병까지 마셨다. 문제는 술에 의존할수록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 하지만 이종민씨는 2년의 방황을 끝으로 다시 일어서기로 결심했다. 어머니 덕분이었다.
“하루는 어머니가 저를 보고 울며 ‘이 사람아, 예전에 그 활발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이리 무기력해졌나. 기운 내게’ 하시더라고요. 그 일을 계기로 다시 시작해보자 싶었죠. 나락의 정점을 찍은 뒤 할 수 있는 일은 올라가는 것밖에 없잖아요(웃음).”
하지만 늪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여전히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스트레스만 더 많아졌다. 그래서 마음이 답답해지면 새벽이고 낮이고 할 것 없이 산에 올라 나무를 벗 삼아 마음을 다독였다. 하지만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가 쉽지 않았다. 다시 잡지를 생각했다. 이혼의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을 위한 출판물을 만들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된 것이다. 한창 ‘태백산맥’ ‘아리랑’ ‘장길산’ 등 장편소설을 읽으면서 위안을 얻던 그는 ‘출판물의 위대함’을 새삼 실감하고 있었다.
이후 재혼을 했지만 이혼에 따른 문제는 재혼 후에도 지속된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탓에 1년간 함께 살아보며 서로를 알아보는 시간을 보낸 뒤 4년 전 재혼했으나 삶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본인의 자녀 두 명과 현재 아내의 자녀 셋을 거느리는 대가족으로 살게 되자 그때부터는 두 문화를 조절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게 그는 ‘한지붕 두 가족’ 살림을 살며 3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야 비로소 가정의 화목을 얻었다. 하지만 어느 가정이나 그렇듯 풀어야 할 숙제는 늘 생겨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또다시 ‘이혼을 경험한 사람들을 위한 잡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렇다고 덜컥 이혼 잡지를 만들 수는 없었다. 일단 참고할 만한 잡지가 없었다. 이혼 관련 잡지가 북미권에 한 권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지만 일 년에 한두 번 비정기적으로 발간되는 데다 재정 전문가, 변호사 등의 전문가 상담 위주로 구성돼 고루하게 느껴졌다.
그는 먼저 잡지를 창간할 재원부터 마련하기로 했다. “잡지 발행을 돈벌이 수단이 아닌 공익 차원에서 하겠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재혼 뒤 리사이클링 사업을 하면서 어느 정도 재정을 확보하자 지난해 9월부터 잡지 창간 준비에 돌입했다. 직접 명함과 사무실 CI를 디자인하고, 회사 이름을 짓고 잡지 구성을 하면서 꿈을 구체화한 그는 “스태프 구성에 두 달, 창간호를 완성하기까지 3개월이 걸렸지만 결과는 만족”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가 신바람 속에 일할 수 있었던 데는 재혼한 아내의 힘이 컸다. ‘이혼’이란 주제로 잡지 만드는 것을 두고 고개를 젓는 이들이 많았지만 아내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뜻대로 하라”면서 전적으로 그를 믿어줬다. 철강업계의 유일한 여사장인 아내는 남편의 추진력을 높이 산다고 한다.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하면서도 정상까지 올려놨던 경험이 있어서 새로운 일을 대한 두려움은 없어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신발끈 동여매고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란 마음으로 해요. 대기업에서 기획을 할 때도 남들이 안 하는 걸 했고, 석재회사를 경영할 때도 업계 순위가 높은 편이었죠. 기획 일을 할 때는 국방부가 쉽게 허가 내주지 않았던 ‘군인요리경연대회’란 콘셉트로 대회를 만들어 미군은 물론 우리나라 육해공군을 참여시켰어요. 지금은 리사이클링 사업과 잡지 일을 병행하고 있는데, 저는 잠시도 그냥 있는 걸 싫어하죠. 운동도 산악자전거나 마라톤처럼 에너지가 소진되는 격한 종목을 좋아해요. 그런 운동을 하다 보면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않고 또 다른 희열로 받아들이게 되거든요.”



국내 최초 이혼 전문 잡지 창간  이종민 대표 허심탄회 인터뷰


그는 잡지를 통해 뒤에서 쉬쉬하던 이혼이란 문제를 양지로 끌어내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이혼 가정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싶다는 바람도 피력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과 달리 이혼을 조장할 생각은 전혀 없다. 도리어 “이혼하기 전에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이혼 사유는 수십 수백 수천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느 한쪽의 잘못이라기보다 서로에게 절반의 책임이 있지요. 그러니까 누구를 탓하기 전에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봐야 해요. 이 잡지를 보면서 이혼하면 내가 과연 양육을 해낼 수 있을까,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자가 진단을 해보면 이혼을 다시 생각하게 될 겁니다.”

이혼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혼을 만류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이혼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는 데 동의하며 “이혼은 마음먹기에 따라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이혼한 사람들을 위한 ‘삶의 처방전’을 제안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한다.
창간호인 ‘이혼이야기’ 2월호는 싱글의 식단,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 숙면 취하는 방법, 성상담교실과 같은 ‘돌싱’들을 위한 유익한 실생활 정보뿐 아니라 법률, 경제자문과 같은 전문적인 서비스를 담았다. 현재 이 잡지의 스태프들은 편집장, 취재기자 2명, 디자인기자 1명, 마케팅팀장을 포함한 5명이 전부. 혹자가 생각하듯 이혼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제가 약속했습니다. 잡지가 아무리 안 팔리더라도 2년은 만들어보겠다고요. 이전에 없던 잡지를 만들어 새로운 시장의 역사를 쓰는 것이니까 최소한 그만큼은 두고 봐야 승산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독자층도 많다고 생각해요. 이혼한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문제를 경험하고 있을 테니까요. 아무쪼록 이혼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저희 잡지를 읽고 용기를 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혼한 분들이 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물론 지금은 아이들이 잘 자라나 큰아들은 해병대에 있고, 작은아들은 골프를 공부하고 있지만 제가 일찍 깨달았다면 더 잘 자랐을 것 같은 아쉬움이 있죠.”
길을 가다 계단이 나오면 ‘걷기 힘들게 왜 높은 계단이 나왔을까’ 하고 투덜대기보다 ‘나의 건강을 위해 계단이 있구나’ 생각한다는 이종민씨. 그가 이혼이라는 삶의 계단을 오르며 힘겨워하는 이들에게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주길 기대한다.

여성동아 2011년 3월 5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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