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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그들은 왜?

90년대 아이돌의 끝없는 추락

사기·도박·폭행…

글·정혜연 기자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1.03.16 16:35:00

H.O.T·젝스키스·신화·NRG 등 90년대 말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아이돌 그룹이 일부 멤버들의 추문으로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한때 세상 모든 것을 가졌던 그들이 한순간 밑바닥으로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90년대 아이돌의 끝없는 추락


한때 그가 윙크하며 눈웃음이라도 치면 소녀팬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는 사기 혐의로 고소당해 경찰서를 오가는 신세가 됐다. 90년대 말 그룹 ‘H.O.T’와 함께 가요계를 이끌던 그룹 ‘젝스키스’의 멤버 강성훈(31)의 사연이다.
2월 중순 한 언론사의 보도를 통해 강성훈이 투자 목적으로 빌려간 돈을 갚지 않아 사업가 K씨 등에게 피소를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K씨 측은 강성훈이 연예인 콘서트 사업, 주식 투자 등을 명목으로 K씨를 포함한 4인으로부터 11억2천만원을 빌렸다고 주장했다. 강성훈은 이 중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고소를 취하한 이들의 금액을 제외한 1억5천만원을 사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연 투자 명목으로 지인을 통해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그 돈을 갚아 이미 변제 의무를 다했다. 오히려 내가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한편 그룹 ‘NRG’ 출신의 방송인 이성진은 해외 원정 도박과 사기 혐의로 현재까지 재판을 받는 중이다. 그는 2010년 강원도 정선 인근에서 대리운전 기사 이모씨에게 2천만원을 빌린 뒤 갚지 않은 혐의, 2008년 필리핀·마카오 등에서 도박을 하며 오모·문모씨로부터 총 2억3천3백만원을 빌린 뒤 갚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룹 ‘신화’ 출신 신혜성도 2009년 해외 원정 상습 도박 혐의로 기소돼 1천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이듬해 일본 기자간담회에서 잘못을 시인했다. 그룹 ‘H.O.T’ 출신 이재원도 2008년 친구들과 만취 상태의 가수 지망생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경찰 조사 과정에서 합의, 곧바로 군 입대행을 선택했다.

돈·명예·인기… 한순간 잃은 상실감 커
한때는 이름만 대면 다 통하던 아이돌이 왜 지금은 범죄자 신세가 됐을까. 신경정신과 전문의 손석한 박사는 가장 큰 이유로 ‘상실의 심리 상태’를 꼽았다.
“보통 일반인은 은퇴를 예측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어느 정도 대비하는 삶을 삽니다. 그렇더라도 막상 은퇴를 하면 무력감을 느끼고 주변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10대 아이돌의 경우 갑자기 많은 이에게 인정받고 명예와 부를 한 손에 쥐었다가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위치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감지한 순간 은퇴를 경험하죠. 경우에 따라서는 일반인이 가장 왕성하게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20·30대에 은퇴하기 때문에 일반인의 상실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타격을 받습니다.”

또 하나는 ‘나르시시즘의 심리 상태’ 때문이라고. 스케줄을 관리하는 소속사 사장, 운전을 해주고 식사를 챙겨주는 로드 매니저, 헤어·의상을 담당하는 스타일리스트 등 주변의 많은 사람이 아이돌을 위해 움직이고 심지어 가족까지 연예활동에 몰입할 수 있도록 내조를 해준다.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삶을 살던 아이돌은 인기가 떨어진 후 그들이 더 이상 자신을 위해 행동하지 않으면 적지 않게 당황하며 화를 내는 등 공격적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나르시시즘은 현실의 사회생활에서 전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돌은 점점 더 깊은 상처만 받을 뿐이다. 손석한 박사는 “이 경우 계속해서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면 ‘인지 부조화 상태’에 빠진다”고 설명했다.
“인지 부조화 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객관적 현실을 자신의 생각에 맞게끔 왜곡한 채 받아들인 뒤 심리적 안정을 찾는 경향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10대에 성공한 아이돌은 자신이 과거에 성공한 것처럼 사업 혹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도 성공의 과정일 뿐이라 믿는 거죠. 그러면서 자신이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기 때문에 주변 충고나 조언은 먹혀들지 않게 됩니다.”
최영균 대중문화 평론가는 90년대 성공했던 10대 아이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에 대해 또 다른 시각을 제시했다. 학교에서 건전한 교우관계를 맺는 일반 청소년들과는 달리 이들은 성인의 사회생활인 ‘이해관계에 얽힌 인간관계’를 먼저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는 것.
“스타의 주변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적인 교분을 명목으로 다가가지만 실제로는 스타의 지명도를 빌려 도움을 얻기 위한 ‘비즈니스적 인간관계’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건전한 사업 파트너도 있지만 불순한 목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도 많죠. 만약 사회 활동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경험을 축적한 일반인이라면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인지능력도 어느 정도 갖췄을 겁니다. 하지만 10대 때 데뷔한 아이돌은 판단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범죄에 연루되거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사안인지 모르고 행위에 가담하는 경우가 상당수입니다.”
그는 이어 한국의 아이돌 관리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수라면 스스로 음악을 만들거나 프로듀싱을 할 능력과 감각을 겸비하거나, 다른 가수를 압도할 만큼 가창력을 보유하거나 둘 중 하나는 갖춰야 하는데, ‘상품’으로 만들어진 아이돌 중에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어 단명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요즘 아이돌은 소속사가 만들어준 음악과 활동 콘셉트를 무대 위에서 소화하는데 그쳐 젊은 시절이 지나면 팬들로선 더 이상 애정을 갖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그는 90년대 아이돌 일부가 범죄에 연루된 이유를 무조건 외부적·환경적 요인 탓으로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어떤 결과든 그 책임은 행위 주체가 짊어져야 할 몫이기 때문. 다만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지금의 아이돌들은 “90년대 아이돌의 경우를 반면교사로 삼아 차후의 활로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연기자로 자리 잡은 에릭, 예능에서 인정받는 은지원·이효리·토니안 등 90년대 아이돌 중에는 자리를 잘 잡아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는 이들도 있습니다. 지금의 아이돌들도 상대적으로 노래를 잘하면 노래 실력을, 연기에 재능이 있다면 연기 실력을 키워 장기적인 연예 생활을 준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인기 절정의 시기에 벌어들인 적지 않은 수입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물의를 일으킨 경우 상당수가 ‘돈’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에 비해 수중에 돈이 없을 때 돈벌이의 유혹에 빠지거나 도박·마약에 손을 대기 때문입니다.”
손석한 박사 또한 아이돌의 추락을 막으려면 “가족이나 주변 지인은 인기 급락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끔 조언을 해주고, 적절한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평소에 받는 일적인 스트레스나 개인적인 고충을 가족 혹은 친구에게 털어놓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 받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여성동아 2011년 3월 5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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